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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화 〉19-새로운 출발(4) (19/107)



〈 19화 〉19-새로운 출발(4)

분명 나나 시스티아에게는 영향이 가게 조절할 텐데도, 피부에 찌릿찌릿 전해진다. 지금 이 살기를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이들은 어떨까. 얼마나 공포를 느끼고 있을까?

의기양양하던 디올드는 금방이라도 거품을 물고 쓰러질  같았다.
기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그들 또한 마찬가지. 얼굴 표정에 공포심이 가득했다. 모두가 란델을 두려워했다.

“라, 라, 란델… 네, 네가 어째서… ‘이쪽’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을 텐데!?”
“원래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지금 도련님이 강제로 데리고 가려던 여자아이가, 제가 지금 맡고 있는 아이라서 말이죠.”
“!”

나는 보았다.
란델의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동시에 헉!? 하는 표정을 지은 것을. 건드리지 말아야  사람을 건드린 것이라고 깨닫는 것을. 디올드도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제멋대로 하는 망나니 도련님이라고 해도, 란델이 어떤 이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백작 쪽에서도 신신당부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와 사이가 벌어지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란델이라는 남자는 다른 마스터들과는 다르게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공식적인 자리에는 그다지 얼굴을 비추지 않아, 그 무력에 대해 모르는 이도 꽤 많이 있다. 하지만 영주의 아들 씩이나 되면 이야기를 들었을 터이다.

“아, 아하하… 그, 그럴 리가. 강제가 아니고 난 정당하게 대가를 지불하고 말이지…….”
“돈을 아무리 많이 지불한다 한들, 가기 싫어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 것을 강제라고 하죠. 도련님 가문의 교육 담당은 그런 것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큭.”

명백히 비꼬는 말에도, 디올드는 이를 한  악무는 거로 끝냈다.
저렇게 꼼짝을 못하는 모습을 보니 재밌네.

“이 일에 대해서는 정식적으로 백작님께 항의할 겁니다.”
“기, 기다려! 너와 연관되었다고 알았으면 말도 걸지 않았을 거다!”
“몰라서 한 건 죄가 아닌가요?  하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으니, 그런 줄 아시죠.”
“이익……!”

초조함에 식은땀을 흘리는 디올드에게서, 뿌드득 하고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아버지인 백작은 아들에게 오냐오냐하는 양반이다.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대부분 묵인하는 설정이었던가.

그래, 큰 사고만 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백작은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타입이다.
게임에서도 용사를 건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분노했었지.

란델을 직접적으로 건든 것은 아니지만, 항의가 들어올 정도의 내용이라면 어떤 벌을 받을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란델은 이미 그것을 알고 찌른 듯했다. 보통이라면 이런 때는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무릎을 꿇든 빌든 한다.
그렇지만, 알다시피 이놈은 미친놈이다.

“란델! 네놈이 그렇게까지  정도면 굉장히 소중한 년이란 말이겠지?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인질이 있다면 아무것도 못 하겠지!”

디올드가 검을  들더니 내 목에 댔다.
…뭔가 이런 상황을 많이 겪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이 녀석은 란델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만 알지 ‘어떻게 강한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듯하다. 주변에서 하도 강하다 강하다 하니까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거지 실제로 겪어보질 않아 모르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마스터라는 경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나도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게임에서 봐서 어느 정도의 경지라는  알고 있지. 참나. 백작도 교육을 제대로 했어야지.

마스터라는 경지와 란델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가르쳤으면, 벌써 란델에게 빌고 있었을 텐데.

“…애송이.”

이 일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아까까지는 찌릿찌릿하고 살갗에 전해지는것이었다면, 이제는 그냥 날카로운 것으로 베이는 듯한 느낌이다. 이건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 것 같다. 잠깐 지켜보자.

“그 애의 몸에 작은 상처하나라도 내기만 해 봐라.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헉!”

무형의 기운이  강해진다.
기사들이 그 자리에서 픽픽 쓰러진다.
거품을 물고 움찔움찔 떠는 것이,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죽을 것만 같다.

“크억, 컥!”

디올드는 그대로 몸이 굳은 채로 몸을 덜덜 떨었다.
란델이 일부러 그렇게 만든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

란델이 말없이 다가왔다.
그리고 허리춤의 검에 손을 가져간 순간!

-번쩍!

 줄기 빛이 보였고, 철컥하고 검이 검집에 갈무리되며 나는 소리가 들렸다.

‘…검이 살짝 빠지는 순간밖에 보이지 않았어.’

눈앞에서 봤는데도, 제대로 보지 못할 쾌검이었다.
게다가 단순히 빠른 것만이 아니었다.

“헉……?”

디올드가 내 목에 들이밀고 있던 검이 박살났다.  등분으로 나뉘어 바닥에 후드득 떨어졌다. 나나 디올드가 다치지 않게 하는 정밀함도 있었다.

이게 바로 검성 란델의 실력.
검의 궤적 하나하나는 그야말로 섬광.

실제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니 엄청 멋지다.
나도 해보고 싶다.
이왕 이런 세계에 왔으니, 남자라면 저런 목표를 가져봐야지!

“그 더러운 손 놔. 죽고 싶지 않으면.”
“아… 아아…….”

나는 틈을 타서 내 몸을 붙잡고 있던 손을 털어냈다. 디올드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지리지 않는 것이 용하다 싶을 정도의 상태다.
그것을 생각하면  버틴 건가?

“괜찮아?”
“네. 덕분에요. 근데  힘을 과하게 쓰신 것 같네요.”
“아…….”

나를 마주 보는 순간 그  막히는 기세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지금 보이는 건 평소의 온화한 란델의 모습이었다.
그는 내 말에 주변을 둘러보더니, 난감한 듯이 볼을 긁적였다.
 죽어가는 기사들이 무더기로 바닥을 구르고 있다.
한바탕 소규모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만 같다.

애초에 나도 뭐라고 말할 처지가 아니지만 말이다. 진심으로 검을 뽑는 란델을 볼 수 있을  같아서, 일부러 가만히 있었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과도하게 힘을 썼다. 무서운 아저씨.

“그, 그게 나도 모르게 굉장히 화가 나서 말이지…….”

냉정한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다는 말인가?
란델도 참. 도대체 얼마나 책임감이 넘치는 거야?
그 말은 즉, 보호자로서 그렇게 행동했다는 거잖아.

하긴 나도 시스티아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다.
아니, 오히려 란델보다도 날뛰었을지 모르지. 란델이 신사적으로 행동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리제. 어차피 이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해도 싸.”
“아하하하. 그거야 나도 알지.”

내가 납득하고 있으면, 타이밍 좋게 시스티아가 그런 말을 해온다. 시스티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조절하긴 했어도 그 기운을 정면에서 받았는데도, 역시 시스티아도 제법 담이 크다니까.

“아, 그렇지. 인사를 먼저 해야 했는데. 란델 씨. 감사합니다. 진짜로 곤란한 상황이었거든요.”
“…고맙습니다.”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 보호자니 말이야. 이 정도야 당연하지. 흠흠…….”

란델은 조금 쑥스럽다는 듯이 약간 시선을 돌렸다.
역시 조금 달라. 내가 가지고 있던 란델의 이미지랑 매치가 안 될 때가 있단 말이지.

그나저나 보호자라.
보호자는 오래 해봤어도 보호자가 있었던 적은 엄청 적었는데.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야.

“근데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그야 이렇게까지 난장판을 해놨는데 내 귀에도 금방 들어왔지. 본래라면 참견하지 않지만,  근처라서 혹시나 해서 말이야. 아니나 다를까 이런 상황이었어.”
“본래라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수 있었는데 저도 굉장히 예상외였어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예상외다.
설마하니 이 마을에 온 첫날부터 이런 일을 당할지 누가 알았겠나.
아직 제대로 강해지기 전인데, 자꾸 이러면 곤란하다.

“음… 뭐,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지만 말이야. 리제. 그 옷 정말로 잘 어울린다. 엄청 귀여워.”
“지금 절 놀리시는 거예요?”
“아, 아니.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데.”

이 모든 것이 옷 때문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입기는 싫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시스티아와 함께 고른 거니까.
그냥 남들과는 많이 다른 특징 때문에 눈에 띄었을 뿐이다.
그 때문에 재수 없게 걸렸을 뿐.

그렇게 생각하자.
그러니까 이제…….

“머리를 다른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자르는 것이 좋지 않…….”
[그건 절대로 안 돼!]
“윽.”

워… 깜짝이야.
란델과 시스티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말한다.
그 기세는 엄청나서, 내가 이대로 계속 자른다고 말하면  자른다고 다시 말할 때까지 나를 설득할 기세였다. 굉장하네.

“아니, 하지만 짧으면 관리하기도 편하고…….”
“리제는 짧은 머리도 어울리겠지만 그래도   가장 어울려. 자르는  절대로 안 돼.”
“관리가 힘든 거라면 차라리 사용인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럴 만한 능력은 있으니까.”

거, 거기까지 말하는 거냐고.

“아,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둘 다 거기까지만 해요!”

이대로 가다가는 끝도 없을 것 같아, 나는 곧바로 항복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번이고 두 사람에게 자르지 않겠다고 약속을 해야만 했다. 이 두 사람 실은 엄청 사이가 좋은 거 아니야?
응?



*



난장판이 된 그 자리에서 분위기에 맞지 않는 일을 좀 벌이게 되고  뒤, 그 자리는 란델에게 맡기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러모로 지치긴 했지만 할 일을 미룰 수는 없지.
일단 청소부터 시작해서 사 온 물건들을 정리했다.

아직 사야 할 물건은 많이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 배치해놓으니 약간은 사람이 사는 곳 같이 되었다.
앞으로 여기서 계속 지내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집’이 되어가겠지.

그렇게 약간 바뀐 집안을 보고 뿌듯해하고 있자니, 곧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었다. 란델도 저녁때까지는 돌아온다고 했다. 나는 그 전에 서둘러서 식사를 준비했다.

“시스티아. 힘들면 쉬고 있어도 돼.”
“괜찮아. 그리고 리제가 만들어 주는 밥은 엄청 맛있고 좋아하지만 나도 얼른 연습해서 리제 만큼 맛있게 만들고 싶어.”
“…알았어.”

오늘은 시스티아가 보조로서 도와주고 있다.
같이 만드는 건 너무나도 즐겁다. 저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시스티아의 손놀림은 아직 불안 불안하지만 금방 숙달되겠지.

하지만 나만큼 할 수 있는 건 꽤나 힘들 거라고? 시스티아.
내가 가사 경력만 몇 년인데.
빨리 숙달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쉽게 따라잡히지는 않겠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나도 꽤나 가사에 대한 자존심(?)이 높으니 말이지.
그렇게 별것 아닌 생각을 하면서 나는 시스티아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며 모든 준비를 끝낸다.

“자, 이제 약하게 끊이기만 하면 되겠다.”

몇 가지 간단한 음식에 더해서, 오늘의 메인은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고 끊인 감자스튜다. 이제 밤이 되면 상당히 추워지는 시기이다. 이 스튜는 란델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알고 있다. 게임에서 나왔으니까.

여기서 살게 해주는 것, 오늘 도와준 것,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후~ 역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이쪽도 다 했어.”
“응.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네.”

시스티아가 식탁에 식기를 나열해놓은 것을 끝으로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란델을 기다리기로 했다.

“리제는 말이야. 시집가고 싶어?”
“…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니, 그냥…….”
“…….”

식탁 앞에 앉아 있기를 얼마 후.
갑자기 시스티아가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긴 했지만,  내  위에 겹쳐지는 손과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 이유를 알  있었다. 아까의 일을 떠올리고 있는 거다.

“나 어디 안 가. 시집도 갈 생각 없어.”

장가도 가본 적이 없는데 시집을 가겠어.
난 이미 이 세계에서는 솔로로, 마음이 가는 대로 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물론 이건 마왕과 마족의 위협에서 벗어난 뒤의 이야기. 아무튼 지금 내가  일은 시스티아를 지키는 일. 적어도 교단에 들어가 용사와 만날 때까지는 내가 그녀를 지킬 것이다.

“진짜? 그럼 계속 곁에 있어  거야?”
“그럼. 나중에는 시스티아의 아이도 보고 싶은걸.”

어디까지나 시스티아의 아이를 보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볼 때까지는 멀리 떨어질 생각이 없다는 뜻으로  말이다. 그때쯤 되면 내가 없어도  테고, 나는 나대로 이 세계의 이곳저곳을 보고 싶다.
정말 뜻대로만 된다면 즐거운 미래인데 말이야.

“어? 아이? 어… 음… 가, 가능할까?”
“응? 무슨 말이야?”
“그, 그러니까 아이…….”
“아이가 왜?”

뭔가 대화가 맞물리지 않는다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착각인가? 내 물음에도 시스티아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우물쭈물하다가, 급하게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내가 어떻게든 힘내볼게!”
“어, 어…….”

무엇을 힘낸다고 하는지는 모르지만, 힘을 낸다니 일단 수긍은 해둬야겠지?
근데 진짜 무슨 이야기지?
그렇게 내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나는 곧바로 문 근처로 다가갔다. 그와 동시에 문을 열고 란델이 들어온다.

“다녀오셨어요.”
“…!?”

내가 인사를 하자 란델이 몸을 움찔! 크게 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런 반응을 보일지는 몰라서 나도 덩달아 놀라버렸다.

“뭐,  그렇게 놀라세요?”
“아, 아니. 미안하구나. 혼자 살던 집에서 누가 마중을 나오니까 좀 놀란  같아.”

그렇게 말하며 아하하… 하고 얼버무리듯이 어색하게 웃는 란델.
어쩜 이렇게 거짓말을 못 할까.
란델 같은 수준의 사람이 집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리도 없고  변명은 거짓말이다.

그렇다면 모종의 이유로 놀랐다는 이야기인데. 그러고 보면 란델은 가끔 날 보고 놀라는 표정을 보인단 말이지.
물어보고 싶은데 란델로서는 필사적으로 숨기며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가 않아 물어보기가 좀 그렇다.

“그런가요. 이제부터 계속 이런 식일 테니까 익숙해주세요.”
“그래. 그럴게.”

티는 내려고 하지 않지만 안도하는 기색이 보인다.
진짜 뭘까. 굉장히 궁금하다.

“아, 그건 그렇고 또 한 사람 같이 살기로 되었어. 갑작스럽지만.”

란델이 그렇게 말하며 뒤로 손을 뻗어 누군가를 앞으로 밀었다.

“어? 너는?”

그 모습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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