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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20-내가 알고 모르는 것(1) (20/107)



〈 20화 〉20-내가 알고 모르는 것(1)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인물.
그렇게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색할지는 모르지만, 확실히 알고 있었다.
낮에 기사들에게 쫓기던 아이다.
나이는 시스티아랑 비슷할 정도는 되었을까?

더러워져 있지만, 그래도 금발머리 등의 외모가 출중해 보이는 남자아이.
좀만 크면 여자 여럿 울리고 다닐 것 같네.
축복받은 외모다. 부럽기 짝이 없군.

“낮에 소란을 일으켰던 녀석이지.”
“소, 소란을 일으키고 싶어서 일으킨 거 아니에요! 저도 살려고!”
“알고 있어. 다만 설명을 편하게 하려고 그런 거야. 이렇게 설명하는 편이 빠르잖아?”
“윽… 그, 그건 그렇지만…….”
“이런 일로 풀 죽지 마.”

억울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는 남자아이의 머리를 웃으며 난폭하게 쓰다듬는 란델.

‘어?“

 장면이 어떠한 기억과 겹치는 것 같이 느껴져 나는 기묘함을 느낀다.
어디선가  적이 있어? 어디서?

“그런데 그런 애를 왜 데리고 온 건데요? 아저씨.”
“음. 이야기하자면 좀 길어지는데…….”
“아, 그러면 안 들을래요.”
“아하하. 진짜로 가차 없네.”
“그런 것보다 리제가 만든 음식이  중요해요.”
“어쩐지 맛있는 냄새가 나더라니. 메뉴는?”
“메인이 고기랑 야채를 듬뿍 넣은 스튜에요. 그거 외에도 여러 가지…….”

-꼬르륵

시스티아의 말이 중간에 배에서 성대하게 울리는 소리에 끊긴다.
그 소리의 주인은 남자아이다.
자신에게 시선이 몰리는 것이 창피한지 배를 부여잡고 숙어진 고개가 더더욱 숙여졌다.

“감자스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라서 그만…….”
“어? 그래? 나도 제일 좋아하는 건데.”

-꼬르륵

란델이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또다시 배가 울리는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남자아이가 아니고 란델에게서.

“아, 아하하! 그러고 보니 오늘 한 끼도  먹었었어.”
“바로 준비할게요.”
“고마워. 리제.”
“리제. 나도 도울게.”

그렇게 시스티아와 식탁에 음식을 나열하는 일을 하기 시작한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서도 나는 자꾸 머릿속에서 걸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생각 같은 건 진작 끝났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이런 타이밍에 등장한다고?’

단지 내가쉽게 인정하기 싫었을 뿐.

“이건 진짜로 맛있네.”
“흐흥~ 대단하죠? 리제의 음식은 뭐든  맛있어요.”
“아니 어째서 네가 의기양양한 거야.”
“리제는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음식도 잘 만들어요. 그리고 전부  맛있죠.”
“흠흠… 앞으로가 기대되네. 아, 한 그릇 더 줄 수 있어?”
“저, 저도요!”

나란히 앉아서 감자스튜를 맛있게 먹는 이 장면은, 게임에서 본 장면이다.
물론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못할 정도다.

‘더 생각할 여지조차 없지. 란델이 데리고 왔으며 금발머리에 똑같이 감자스튜를 좋아하고, 무시무시한 재능이 있다.’

용사다.
란델과 같이 있으면 언젠가는 만날 거라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어이없게,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는 첫날부터 만날 줄은 몰랐다.
 세계의 과거 이야기는 나는 대부분 모르는 것이니까.

‘이건 예정된 수순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걸까?’

조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저녁을 다 먹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시스티아는 진심으로 아무래도 좋다는 듯했지만, 그래도 막상 이야기가 시작되니 진지하게 들었다.
란델이 처음 이야기했듯이 제법  이야기가 시작된다.

남자아이의 이름은 레온. 나이는 11살. 사정이 있어서 살고 있던 아루르펜을 뛰쳐나왔다고 한다.
…이름부터가 주인공 같네.

용사에 대한 것은 금발에 잘 생겼다는 특징밖에 몰랐다.
이름은 내(플레이어)가 정하는 거라서 어떤 이름일지도 몰랐고.
그래서 이곳의 용사가 어떤 이름일지 몰랐는데, 레온이라는 주인공 같은 이름에 금방 납득했다.

설명은 이어진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가 어떻게든 세피룸까지 왔는데 가진 것이 없어 여러 고생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재수 없게 그 귀족에게 걸린 것이다.
쫓긴 이유는 레온이 도둑질을했다는 혐의로 인해.

잘은 모르겠지만 디올드가 여자들에게 자랑하기 위해서 잠깐 집안의 가보를 몰래 가지고 나왔다고 한다. 그것을 잃어버린 건지 도둑맞은 건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없어져서 우연히 근처에 있던 레온이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것. 레온은 금방이라도 목이 달아날 것만 같았기에, 필사적으로 도망을 쳤다는 것이다.
그 난장판이 그때의 일이고 말이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레온이 주장하는 말일 뿐이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란델이 알아봤다고 하니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뭐, 기사들이 뭉텅이로 잡으려고 들어도 잡지 못하는 레온을 이렇게 쉽게 잡아서  란델 아닌가. 그도 뭔가가 알고 있는 것이 있으리라.

나로서는 그런 것보다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레온이 여기에 오기까지 란델과 나눴던 대화 말이다. 그걸 지금의 내가 알 수는 없겠지만.

“사정은 알았어요. 란델 씨가 굳이 데리고 오신 것은 무언가 있다는 거겠죠. 저로서는 남동생이 생기는 것이랑 비슷하니까 환영이에요. 앞으로 잘 지내보자. 레온.”
“네, 넵! 잘 부탁드려요! 아, 저기… 리, 리제 누나.”

이것저것 따질 필요 없다. 용사인 레온과는 잘 지내는 것이 좋다.
아니, 아직은 예비 용사라고 하는 것이 좋으려나?
뭐, 시스티아가 성녀. 레온이 용사. 이 미래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테지만.

“난 물어볼 것이 하나 있어. 너,  집을 나온 거야?”
“그, 그건…….”

시스티아의  질문에 레온이 우물쭈물한다.
란델도 알려져도 좋은 이야기인지 말리고 있지 않았다. 나도 가만히 두 사람을 바라보기로 했다. 이윽고 레온이 마음을 먹은 듯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제가 태어났을 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아빠는 3살 때 돌아가셨다고 해요. 그래서 남은 건 누나 한 명이었는데…….”

그렇게 레온은 자신이 아루르펜에서 나오게 된 경위에 관해 설명했다.
유일한 가족은 누나 한 명. 하지만 그 누나는 셀비움이라는 명약으로도, 신성마법으로도 고칠 수 없는 특수한 병에 걸려 있었다. 거기에 고아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겹쳐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고 한다.

힘들기는 하지만, 레온은 이대로 계속 누나와 함께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어느 날.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누나가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평소에 자기가 없어야 내가 편하게 살  있다고,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누나여서요.”

자신의 병으로 인해 동생이 자유롭게 지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녀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으리라. 나는 레온의 누나를 이해할  있었다.

“한참을 찾다가 혼자 밖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뒤를 쫓아 저도 나왔고요. 중간까지는 어떻게든 쫓아갈  있었는데, 그 뒤로는 감으로 쫓다가 이곳에 오게 된 거예요.”

‘중병에 여자아이의 몸으로 혼자 돌아다녔다면 솔직히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어쨌든 아직 레온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마 시체라도 찾지 않는 이상은 포기하지 않으리라.
무엇보다도 누나를 믿고 있다.

그러고 보면 게임에서도 용사의 누나에 대해 잠깐 나왔던 것 같은데.
누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같은 것이 몇 번 나왔던 것 같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라 그냥 넘어갔는데, 이런 식으로 떠올리게 되네.

“스승님 밑에서 좀 더 강해져서 누나를  찾아낼 거예요.”

이게 란델 밑에서 배우게 된 계기인가.
진짜로 일어났던 일이라면 크게 바뀌지는 않은 내용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누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일이라면…….

아니, 아니다.
한  그런 식으로 생각했더니 자꾸 사고가 이상한 쪽으로 흐르네.

“그… .힘내.”
“아, 네!”
“그리고 너랑 나랑 동갑이니까 존댓말은 쓰지 마.”
“아, 알았어.”

그렇게 금방 친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는 건, 가까워지는 데 제법 효과가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일찍 만나는 건 게임에서는 없었지만 어쨌든 미래에는 부부까지 되는 사이다.
뭔가 통하는 것이 있을지도.

“그리고 다른 건 다 좋지만 리제랑은 적당히 사이를 두고 지내. 허튼수작 부리면 알지?”
“그, 그게 무슨!?”

시스티아가 레온에게 다가가더니 아주 작게 속삭인다.
나는 무슨 말인지 듣지 못했지만, 레온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보인다.

“모르는 척하지 마.  리제를 본 다음부터는 10번에서 7번은 리제에게 시선을 보내는 걸 모를  알아?난다 알아.”
“그, 그냥 예쁘고 상냥하게 생긴 누나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뿐인데…….”
“리제가 예쁘고 상냥한 건 당연한 일이니까 핑계 대지 마. 확 눈 못 쓰게 할 수도 있다.”
“~~!?”

치, 친해진 거 맞겠지?
내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란델은 쓴웃음을지으며 어깨만 으쓱한다.
뭐, 뭐야? 뭔가를 들었으면 좀 알려달라고. 신경 쓰이잖아.
결국  의문은 풀리지 않고 걱정거리만 늘어난 밤이었다.

*

사는 곳은 바뀌었어도  하루의 시작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시스티아도 이제는 제법 가사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요리에 관해서는 혼자 맡기기가 힘들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오롯이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란델이 그런 일을 할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 사람, 가사는 완전히 꽝이니까.
눈이 떠지면 시간은 새벽 5시정도 일 것이다.
전생에서도 버릇처럼 일어났던 시간이니까 아마 맞을 거다.

“시스티아.  좀 일어날게.”
“우우웅…….”

내가 돌아오고 나서부터 나랑 시스티아는 같은 침대를 사용하고 있고, 내가 눈을 뜨면 어김없이 시스티아가 착 달라붙어 있다.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양팔로  홀딩하고 있는 상태.
아침일과는 이런 시스티아를 떼어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떼어내려고 하면 떨어지기 싫다는 듯이 몸부림을 치지만, 눈을 뜨지는 않는다. 애초에 시스티아는 아침에 약하다. 내가 없는 동안에는 어떻게 했을까. 내가 돌아오고 난 뒤부터는 계속 이 모양이다.

“후헤… 리제… 좋아해…….”
“그래. 나도 좋아해.”

내 베개를 대신 안게 만들며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시스티아의 잠꼬대에 피식 웃으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그 뒤에 유유히 방을 나섰다.

‘어디 보자. 나머지 사람들도 보고 올까?’

방을 나와 기지개를 켜고 주변을 둘러본다.
우리 방을 기준으로 왼쪽이 란델, 오른쪽이 레온이 지내고 있다.

‘둘  아직 자고 있는 것 같네. 란델은 일찍 일어날  알았는데 좀 의외…응?’

“으… 아……!”

레온의 방을 지나치고 있을 때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싶어서 나는 방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크읏… 아아…….”
“레온……!?”

침대에 누워있던 레온은 식은땀을 엄청나게 흘리며, 가슴을 부여잡은 채로 괴로운 소리를 내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상태라는 것을 누가 봐도  정도였다.

“레온! 정신 차려!”
“으으으! 누, 누나……!”

조금 상태를 살펴보고 시스티아에게 데려가려 했지만, 갑작스럽게 강한 힘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는 레온. 그러면서 하는 누나라는 말.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가지 마! 누나… 누나……!”

애타게 누나를 찾으며 괴로워하고 있다.
레온은 현재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나라는 존재가 사라지고  뒤부터 시작된 것일까. 여기에 와서 긴장이 조금이라도 풀려서 그런 것일까. 잘은 모르지만, 악몽을 꿀 정도로 누나가 그립고 불안한 것이다.

“용서 못해… 다 죽일… 누나, 누나를… 아… 아니야!”

뭔지 모를 증오심 또한 느껴진다.
자신을 두고  누나가 밉다는 마음도 있는 걸까?

“하아…….”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왜.
어째서.

내가 눈부시다고 생각한 인물들은, 하나 같이 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있는 걸까.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단지 이런 존재가 된다면 그저 힘들고 괴롭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똑같이 따라하면 내가 지키고 싶은 존재를 지킬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들은 모두가, 괴롭고 어두운 과거를 딛고 일어선 존재였다.

‘난, 결코 그렇게 될  없을 같아.’

나는 내 과거를 평생 딛고 일어서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질질 끌고 있으니까.
알고 있다.

지금은 시스티아를 대리로 세워서 만족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
이들은 나 같은 것은 없어도 모두 눈부신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
내가  하지 않아도…….

“으, 으으…….”

하지만 지금의 그들은, 아니 이 아이들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연약하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고통이 덜어지면 좋겠다.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큰 인물이 될지도 모른다.
이건 미래를 아는 어른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다.

“레온. 누나 여기 있어. 그러니까 괜찮아.”
“아, 으응…….”

덜덜 떠는 레온을 안아주었다.
등을 살살 쓸어내리며 두들기자 조금씩 진정되어 갔다.
지금만큼은 내가 누나가 되어주기로 했다.
그게 내가 해줄  있는 최선의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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