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21-내가 알고 모르는 것(2)
그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레온은 완전히 진정되었다.
새근새근 잠들었지만, 어찌나 내 옷을 너무 꽉 붙들고 있는지 떼어내기가 힘들었다. 뒤처리를 해야 하는데. 옷을 찢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어서 일단은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도 레온은 금방 눈을 떴다.
“으, 으응…….”
“깨어났어?”
“…어?”
내 품에 얼굴을 묻고 자고 있던 레온은, 눈을 뜨자마자 내 목소리가 들려 놀랐는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확인했다. 그러자마자 떨어져서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어, 어째서 리제 누나가 여기에!? 어? 여기 제 방 맞죠……!?”
“그래 맞아. 맞으니까 진정해. 설명은 해줄 테니까 일단 좀 씻자.”
“네? 에에!?”
나는 당황하고 있던 레온의 손을 잡고 수건을 챙겨서 그대로 집 마당에 있는 우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던졌다.
레온은 어제 발작을 하느라 눈물부터 콧물과 토사물까지 쏟아냈다. 이런 상태의 옷을 다시 입기가 곤란하다.
“너도 벗어.”
“에!?”
당연히 레온도 나랑 비슷한 상태여서 옷을 벗겼다.
다행히 방은 더러워지지 않아서, 몸이랑 옷만 잘 처리하면 된다.
“누, 누나. 이게 뭐 하시는!?”
“넌 냄새도 안 나냐. 잔말 말고 씻어.”
“으악!?”
어쩐지 얼굴이 새빨갛게 되어 잔뜩 움츠러든 레온에게, 우물물을 퍼서 머리부터 부어버렸다. 새벽의 찬 공기와 차가운 우물물이 어울려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다.
“흐으… 후우… 추, 추워…….”
“일단 이걸로 몸 좀 닦고 오러 운용해. 할 줄 아는 거 아니까 빼지 말고. 그럼 덜 추울 거야.”
심장에서 시작해 밖으로 방출되는 마력과는 다르게, 온몸을 돌고 도는 오러를 잘 운용하면 더위나 추위에도 효과가 있다.
오러를 잘 운용하는 레온이라면 잘하겠지.
그래도 아마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나 또한 우물물을 머리부터 뒤집어썼다.
“하~ 시원하다.”
본래라면 가볍게 아침 운동이라도 하고 나서 하려고 했다. 별 수 없이 미리 하게 되네. 어차피 시간표 맞추기에는 글렀으니까 딱좋다.
나는 한 번 더우물물로 몸을 씻고 대충 물기를 닦았다. 그 뒤 근처에 있던 대야를 가져와, 그 안에 내 옷과 레온의 옷을 넣고 빨기 시작했다.
“저, 저기 누나…….”
“추우면 들어가.”
“아니, 그건 이제 괜찮은데요. 이건 도대체…….”
슬쩍 곁눈질하니, 레온은 벌써 몸이 말라있다. 대충 말한 건데 벌써 터득한 거냐. 나는 기가 막히면서도, 손은 멈추지 않은 채로 레온에게 설명했다.
“네 방을 지나가는데, 네가 앓는 소리가 들리더라고.”
그 뒤로 방을 들어가니 누나를 찾으며 악몽을 꾸고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그걸 달래줬더니 눈물과 콧물과 토사물을 쏟아낸 것까지. 레온은 설명을 듣고 당황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죄, 죄송해요! 그런 일이 있었다니…….”
“죄송할 건 없어. 내가 멋대로 한 일이니까. 뭐, 토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으으으……!”
창피해 죽겠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여운 녀석.
피식 웃음이 나온다.
보육원의 아이들과 함께 있었을 때와는 또 다른 맛(?)이 있다.
재밌네. 재밌어.
“부모님 얼굴도 모르는 저에게는 누나만이 소중한 가족이었어요.”
“그래. 그랬겠지.”
평생 떨쳐낼 수 없는 그런 기억.
그렇기에 그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나는 잘 안다.
나도 어떤 애와의 마지막, 너무나도 끔찍하고 쓰디쓴 그런 기억이 있다.
하지만 굳이 그 괴로운 마음을 안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것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으니까.
“레온.”
“네?”
“앞으로 힘든 일이 더 많을지도 몰라. 하지만 어제까지와 같이 너 혼자뿐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 그러면 굉장히 힘들어.”
“…….”
“내가 네 누나를 대신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네가 대신이라고 생각하고 싶으면 그래도 돼. 누나를 찾을 때까지는 말이야.”
“리제 누나…….”
그것 또한 괴로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의 하나다.
실제로 내가 쓰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고.
물론 이 방법은 굉장히 부작용이 심하다.
평생을 죄악감을 지니며 살아야 하니까.
시스티아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떨칠 수가 없으니까.
나는 정말로 약한 인간이다.
“아니요. 그런 생각은 하지 않을래요. 전 어디까지나 리제 누나는 리제 누나로서 생각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아이는, 미래의 용사는 너무나도 강한 인간이다.
정말로 눈이 부시다.
“그래. 그러면 누나 대신이 아니고 새로운 가족이라 생각해줘도 괜찮아.”
“네!”
레온은 아마 활짝 웃고 있겠지.
나는 지금 얼굴을 돌려서 그저 묵묵히 옷을 빨았다.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누나…….”
[다음 루트로 가기 위한 조건이 해방되었습니다.]
*
이번에도 뜬금없이 뜬 다음 루트 로그.
도대체 이건 뭘까.
생각해보면 시스티아, 란델, 레온 순으로 뜬 거였지.
일단 스토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다는, 그런 공통점은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외에는 잘 모르겠다.
딱히 공통점이라고 할 말 한 것이 있었을까?
‘아니, 없는데.’
그렇게 고민하다가 아침을 먹고, 우리는 란델을 따라 모험가 길드로 향했다.
“야.좀 더 떨어져.”
“시, 싫어. 내가 왜!”
“그걸 지금 몰라서 묻는 건 아니겠지?”
“아, 아침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길드로 향하는 도중.
시스티아는 나에게 꼭 달라붙어 있고, 그 반대편에는 레온이 약간 떨어져서 걷고 있다. 둘은 계속 티격태격하고 있다. 뭐… 시스티아가 일방적으로 으르렁 위협하고 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우물에서 씻었던 일 때문이다.
어쩐 일로 시스티아가 일어날 시간도 아니었는데 일어났고, 우리들이 옷을 벗고 있는 장면을 보고 난 뒤부터 저런다. 레온에게 굉장히 화를 내고선 쭉 레온을 경계하고 있다.
난 아무래도 상관없는데 시스티아에게는 아닌 듯하다.
‘리제! 아무한테나 속살을 보이면 안 되는 거랬어! 그리고 리제의 속살을 본 남자는 척……!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뒷말은 중얼거리느라 잘 듣지 못했지만, 뭐 비슷한 말이겠지. 레온에게 괜히 미안해지네.
옷을 벗은 것도 벗긴 것도 나인데.
‘티격태격하는 것도 결국에는 관심이 있어서 하는 거니까, 언젠가는 나아지지 않을까. 이러면서 정을 쌓아가는 것인지도 몰라.’
그렇게까지 생각하면 괜히 흐뭇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나 때문에 미래가 바뀔 확률이 높지만, 어쨌든 가장 맺어질 확률이 높은 두 사람이니 잘 봐둬야지. 시스티아를 시집보내는 건 굉장히 이르긴 하지만.
음…….
이러면 또 괜히 마음이 복잡해지네.
“너희들 거기까지 해. 다 왔으니까.”
“여기가 길드…….”
“우와.”
란델의 말에 두 사람의 다툼이 멈췄다.
규모로 보자면, 전 모험가 길드 지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실제로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지만 진짜 크다.
드나드는 사람들도 엄청 많고, 화려한 장비를 입은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앞으로 기본적인 건 집에서도 할 테지만 대개는 길드에서 할 거야.”
“직접적으로 활동도 해야 할까요?”
“그래. F급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올라가도록 계획을 짤 거야.”
“오…….”
그 말은 즉, 모험가 활동을 해볼 수 있다는 거렷다?
F급부터 시작한다는 것은 분명 수수한 일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그게 좋다.
모험가라는 직업을, 처음부터 해볼 수 있다는 것이니까.
괜히 란델이 힘을 써서 권한을 주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기대되네요. 전 원래 모험가가 되려고 했었거든요.”
“리제~ 나도!”
“아. 맞아. 시스티아도 같이요.”
그때의 일이 없었다면, 지금쯤 마을을 나와서 이곳에서 평범하게 모험가를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는 지금이 최적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말이지.
용신에 의한 강화에 소드마스터 란델의 지도까지 받을 수 있으니까.
그나저나 생각해보면 내가 의도한 것은 하나도 없단 말이지.
단순히 운이 좋다고 해야 하는 걸까, 이거?
“그랬구나. 확실히 너희 또래의 아이들은 대개 그런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지. 나도 아마 리제정도 때 모험가를 시작했었지. 하지만 거의 2년 동안은 잡일만 하고 제대로 된 모험은 하지도 못했어.”
“지금의 란델 씨를 생각하면 상상이 가질 않는데요?”
“하하하. 누구든 그런 시기가 다 있는 법이야.”
의외다.
란델 또한 천재니까. 그때에는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 있는 줄 알았는데.
“사람들은 나를 희대의 천재, 최강의 검성이라 부르지만, 나에게는 아까운 말이야… 정말로…….”
그 말을 하는 란델은 그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부담스럽기 그지없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역시 그에게도 여러 가지 사정이 있는 것 같다.
“자, 그럼 가볼까. 마음의 준비는 됐지?”
“네.”
고작 길드에 들어가는 것인데 마음의 준비까지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들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특수하기 때문이다. 란델과 같이 사는 것도 모자라 그의 밑에서 배우지 않나?
이게 특수하지 않다면 말이 안 되는 것이지.
굉장히 주목을 받을 거라고, 란델은 미리 우리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들은 그 말을 듣고 충분히 마음을 다잡은 상태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니 어떨지는 모르지만, 아마 이 이후의 일은 상상 이상이지 않을까 싶다.
본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몰래 하는 것도 생각해봤다고 했었지.
근데 어제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란델은 숨기지 않기로 했다.본인이 이들의 보호자라고 알리고 다니는 편이, 종합적인 안전에서 좋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넌 너무 위험천만해. 여러 모로.)
특히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왜 내가? 라는 것과 이상할 정도로 걱정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나한테 더…….
‘역시 이상해……..’
계속해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뭐, 지금 풀리지 않을 의문은 접어두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우리는 란델의 근처를 걸으며 길드내로 들어선다.
“어이, 저기 좀 봐. 길드 마스터랑…….”
“저 아이들이 소문의 그…….”
“도대체 어느 정도면…….”
사람들은 모두 일단 란델에게 시선이 갔다가 우리에게 향해진다.
그러면서 뭔가쑥덕거린다.
오러로 청각을 강화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역시 그 얘기들이다.
“저기, 어쩐지 전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아! 내가 이미 언질을 시켰거든. 저 두 사람에게.”
란델이 가리킨 곳을 향하면 소피아와 마리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손을 붕붕 흔들었다.
유쾌한 사람들이다.
“저 두 사람은 길드에도 몇 없는 B급 모험가이면서 사교성이 굉장히 좋거든.”
“나머지 두 사람과 밸런스를 맞춘 거라 할 수 있겠네요.”
“하하…….”
란델은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실력이나 인성이나 좋은 쪽에 속하는 두 사람과 달리, 다른 두 사람은 이래저래 문제점투성이니까. 궁수인 랜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리더인 시리우스 때문에 고생 좀 할 것 같다.
얼마 보지 못한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란델은 오죽할까.
“시리우스도 나쁜 녀석은 아니야. 그런데 나랑 연관되면 조금…….”
란델의 이야기로는 기본적으로 인성은 나쁘지않은, A급에 가까운 B급 실력자. 길드에 대한 공헌도 굉장히 높다. 다만 본인과 연관되면 이상하게 비뚤어진다고 한다.
그 ‘흠’ 때문에 A급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요약하자면 실력은 있지만 안타까운 녀석이라는 것이다.
“지부장님 나오셨어요?”
“그래. 셀린은 어디에 있지?”
“집무실에 계세요.”
길드의 안쪽에 들어와 가까이에 있던 직원에게 질문하고 다시 나아갔다.
예전부터 좀 생각한 건데, 란델은 우리 말고 다른 사람과 말할 때는 말투가 다르다. 좀 진지하다고 해야 할까. 평상시 모드와 일 모드라는 걸까?
‘근데 셀린은 누구지?’
집무실에 있다고 할 정도면 길드에게 있어서는 주요인물일 테고, 그러면 내가 모를 리는 없을 것 같은데. 이런 것도 과거라 다른 점이 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며 우리는 집무실로 보이는 곳에 왔고 란델은 그 문을 열었다.
“셀린. 잠깐 괜찮나?”
“아, 마스터. 오셨군요.”
란델의 뒤에서 나는 고개를 내밀어 셀린이라 부르는 인물을 본다.
“!?”
저 여자가 왜 여기에!?
이곳에 있어서는, 아니 정확히는 있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