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화 〉22-내가 알고 모르는 것(3)
어디에든 주인공 편인 인물이 있으면 그 반대편인 존재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인물들은 모두 아군인 존재들이다.
하지만 눈앞의 여자는 확실하게 적이었다.
20대 중반 정도의 보라색 머리의 안경을 쓴 수수해 보이는 여자.
확정할 수 있는 큰 특징은 보이지 않지만, 왼쪽 눈 밑에 점을 봐선 확실히 그 인물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마 란델이 이 존재에 대해 알지 못 할 리는 없고. 혹시 그냥 놔두는건가? 아니면 정말로 교묘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는 건가?
확실히 란델도 만능은 아닐 테니 모를 수도 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하는 도적이나 암살자를 싫어하는 그가, 암살자 길드의 간부를 맡고 있는 여자를 그냥 둘 리가 없으니까.
‘암살자 길드… 이놈들은 내가 필히 짓밟아야 하는 놈들이다.’
경계해야 한다. 앞으로 이 녀석들이 할 짓을 생각하면 필수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일단은 티를 내지 말고 지켜보도록 하자.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아이들이 이 아이들이로군요.”
“그래. 리제, 시스티아. 레온이다.”
“안녕하세요.”
“이쪽은 셀린. 우리 지부 부길드 마스터로 대부분의 업무를 모두 맡고 있지. 내가 길드 마스터로 불리고는 있지만, 셀린이 오히려 마스터답다고 할 수 있으니까.”
“아, 아니에요. 마스터께서 계시니까 저희 길드가 돌아가는 거죠!”
연기인가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얼굴을 붉히며 손사래를 친다.
게임에서는 금방 퇴장하지만 암살자답게 차가운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어디에나 있는 여자로 보인다. 신기하네.
“네가 없으면 우리 지부는 돌아가지 않으니까. 언제나 고마워하고 있다.”
“…….”
이제는 얼굴이 새빨갛게 되며 손가락을 꼼지락꼼지락.
…뭐야? 이 분위기?
보면 란델은 진짜로 그냥 고마운 마음에서 하는 것 같은데 셀린은 아니다.
이게 순전히 연기로만 나온 거라면 저건 필시 여우주연상감이다.
‘이거 어쩌면?’
아니,아직 확정 짓지는 말자.
이제 본 지 얼마되지 않았잖아.
암살을 위해 갖은 재주를 부리는 암살자도 있으니까 그런 건지도 몰라.
하지만 만약 내 생각이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조금 지켜보고 나중에 확실해지면 흔들어 봐야겠다.
어쩌면 이용할 수 있을지도 몰라.
잡는 것보다도 그게 더 유용할 거야.
“하암~ 아저씨.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예요?”
“아, 그렇지. 미안. 셀린. 오늘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나?”
시스티아가 보고만 있기 지루했는지 하품을 하면서 말했다. 그것으로 이상한 분위기는 깨졌다. 나로서는 좀만 더 관찰해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앗!? 아, 네! 저기, 어제의 일로 백작께서 만나 뵙고 싶어 하십니다…….”
“무슨 일로?”
“‘사죄’라고 하십니다.”
“그런가.”
백작이 어지간히 똥줄이 탄 모양이군.
다른 사람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직접 사죄를 하러 오다니. 역시 이 세계는 무력이 정답이다. 어떻게 사용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일단 무력을 지니고 있으면 다른 누구도 얕볼 수 없으니까.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무시하는 것도 좀 그렇군.”
“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적당히 타협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음.”
란델은 그렇게 가만히 생각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일단 그쪽을 먼저 처리해야겠군. 셀린. 미안하지만 아이들에게 모험가증을 만들어줬으면 좋겠군.”
“바로 준비할게요.”
“미안하다. 얘들아. 아무래도 바로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괜찮아요.”
“저야 원래 리제를 따라서 온 것뿐이니까.”
“저도 괜찮아요! 스승님!”
그렇게 우리가 한마디씩 하면 란델이 빙그레 웃는다.
그러면 셀린 쪽에서 헙!? 하고 숨죽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어쩐지 알 것 같다. 란델은 이런 표정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지 않겠네.
“그보다 모험가증을 만든다는 건 ‘실전’을 먼저 해보라는 거죠?”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의뢰를 받아 뭐라도 해보는 게 좋겠지. 뭐, F급부터 시작하니 큰일은 없을 거다. 약초 채집이나 토끼 사냥 정도일까?”
“그게 어디에요?”
F급이라는 건 어디든 다 그렇지 뭐.
전형적이라면 전형적이다.
란델의 수업을 못 받는 것은 아쉽지만 이건 이거대로 기대된다.
차근차근 랭크를 올리는 재미도 있을 것 같고. 본래 모험가는 돈벌이 수단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 걱정이 없어졌으니까 조금 여유는 있다. 해보자.
“하하하. 오크도 잡아 본 너에게는 따분한 일일 거라 생각하는데?”
“어차피 금방 올라갈 거니까 조금만 체험해본다 생각하면 되죠.”
“그래. B급까지는 실력과 실적만 있으면 금방 올라갈 수 있으니까. 힘내라.”
란델은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뭔가 틈만 나면 쓰다듬으려 한단 말이지.
저번에 실례니, 뭐니 했던 것은 다 잊어버린 듯하다.
그래도 뿌리치기가 좀 그래서, 란델이 만족할 때까지 그냥 하라고 뒀다. 란델은 한참 후에 내 머리에서 손을 떼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셀린. 뒷일은 부탁한다.”
“네. 맡겨만 주세요.”
그렇게 란델은 백작을 만나러 떠났다. 집무실에는 우리 셋과 셀린만 남았다.
“잠시만 기다려 줄래? 너희들 모험가증 준비할 테니까.”
“네.”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만지는 셀린을 바라봤다.
란델이 없지만 그녀의 행동은 변함이 없다.
하긴 란델이 없다고 행동에 변화가 있다면, 계속 여기에 있을 수가 없겠지.
‘흠. 이 여자에 대해 어떻게 알아봐야 할까.’
이것도 기회라면 기회니까, 뭔가 알아낼 수 있다면 알아내고 싶은데.
그렇게 내가 고민을 하는 순간이었다.
“셀린 언니라 했나요?”
“어? 맞아. 왜 그러니?”
“언니 아저씨 좋아하죠?”
-우당탕!
시스티아의 그 말에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을 떨어트렸다. 본인도 의자에서 주르륵 미끄러진다.
“무, 무, 무슨!?”
갑작스럽게 훅 들어오는 그 말에 충격이 컸나보다. 얼굴을 새빨갛게 하고는 말문을 잇지 못한다.
음, 확실하네. 이거.
이게 연기라고 한다면 존경할 만하다.
하지만 누가 봐도 연기가 아니었다.
란델이 이를 눈치를 채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알기 쉬운데 모를 리는 없겠지?
“근데 아저씨는 전혀 모르죠?”
“확실히 아까 보니 스승님은 전혀 모르시는 것 같던데…….”
“…….”
셀린이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나는 다른 의미로 충격을 받았다. 시스티아는 그렇다 치더라도 레온마저 잘 알고 있었다니.
모르는 건 나뿐이었어!
“힘내세요. 저도 엄청 둔감한 사람 한 명 알고 있거든요.”
“그렇구나. 고마워.”
그렇게 어쩐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진한 인연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어쩐지 귀의 간지러움을 느꼈다.
누가 내 이야기하고 있나?
*
셀린에 관해서는 수확이 있었다. 나중에 둘이 있을 때를 기회를 보기로 하고, 우선 시스티아와 레온과 함께 간단한 의뢰를 받았다. 그리고 셀린에게서 지급받은 장비를 입고 마을 밖에 나가기로 했다.
간단하게 약초채집이나 토끼사냥도 괜찮았지만, 꽤 괜찮은 것이 있었기에 그것을 받았다.
바로 고블린 퇴치.
신출내기 모험가가 받을 수 있는 의뢰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 중 하나다. 어느 세계관에서든 초급 몬스터 취급받는 고블린.
그것은 이 세계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레온이 전위, 내가 중위, 시스티아가 후위. 일단 이렇게 해보자.”
“응. 나야 전투능력은 없으니까 뒤에서 보조하는 게 맞겠지.”
“저도 문제없을 거로 생각해요.”
고블린이 출몰하는 숲의 입구에서, 개개인의 특기를 살려 진형을 편성해본다.
레온은 가벼운 한손검을 사용한 스타일로 전위에서 빠르게 공격하고 빠지기.
시스티아는 공격 수단이 없으니 신성마법에 의한 보조.
나는 일단 창을 들고 중위에서 전위의 레온을 보조하며, 후위의 시스티아를 지키는 것으로 정했다.
아직 임시로 정한 거라 어떨지는 모르지만 해봐야겠지.
그렇지만 딱히 걱정은 없다.
애초부터 고블린을 잡을 시기는 훨씬 지났다고.
레온은 레온대로 여기까지 오면서 실전경험은 있다고 하니까.
솔직히 레온 한 명만 있어도 문제는 없을 거다.
“문제는 저쪽이려나?”
“리제?”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시작하자.”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는 기척들은 신경 쓰지 않고, 슬슬 시작하기로 했다.
딱히 의뢰를 오늘 끝내야 하는 건 아니다. 숫자 10마리만 잡으면 완료.
후딱 잡고 여유롭게 주변도 돌아다녀 볼까?
“키이!”
그렇게 숲을 조금 돌아다니다 5마리를 발견했다.
예전에도 봤지만 금방 머리를 으깨버려서 잘 보지 못했었지.
정말 게임이랑 다를 게 없네. 못생겼어.
“가자.”
“응.”
“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무기를 들고 고블린 무리에 돌진했다.
*
길드 마스터인란델이 제자로 들인 아이들이 있다는 소문은, 정말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이제 10살을 조금 넘긴 아이들.
오늘 란델과 함께 모습을 보인 아이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부러움과 함께 질투를 느꼈다. 그의 가르침을 받는 것은 수많은 돈을 받는 것보다도 값진 것. 그러니 그런 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밑바닥을 굴렀거나 구르고 있는 자들에게는 더더욱.
잠깐씩 조언은 주어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란델이, 몸소 제자로 들일 정도인 아이들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겉으로 봐서는 그저 외모만 출중한 허약한 아이들로 보였다.
인정하기가 싫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은 고블린 토벌을 나가는 뒤를 쫓기로 했다.
물론 ‘확인’만 하는 것은 아니다.
뭔가 ‘트집’을 잡을 것이 있다면 잔뜩 잡아서 란델에게 어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생각을 금방 접어야만 했다.
앞서 치른 고블린 5마리와의 전투도 엄청났지만, 지금 아예 고블린 부락을 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흡!”
“키익!?”
레온이 빠르게 휘두른 검에 고블린의 목이 잘려나간다.
그 검에는 미약하지만 기(氣)가 서려 있었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오러 다루는 실력을 입증했다.
“레온! 너무 나갔어!”
“켁!”
“끽!”
레온보다 훨씬 완벽하게 창에 서린 기.
전체를 지휘하면서도, 완벽하게 고블린 두 마리를 꼬챙이처럼 꿰는 리제.
“방어랑 버프는 걱정하지 마! 블레싱! 홀리 배리어!”
상급 사제들도 쓰기 힘들다는 상급 신성마법인 블레싱을 다른 신성 마법과 같이 마치 물 쓰듯이 쓰는 시스티아.
미쳤다.
그 전투를 보며 드는 모두의 생각은 똑같았다.
이게 10살 초반의 어린아이 F급 파티가 낼 수 있는 실력이라고?
전 세계를 뒤져봐도 저들밖에 없으리라.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소드마스터의 제자.
정확히는 제자는 두 사람이지만 아무튼 저 정도가 되지 않으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부러움과 동시에 절망했다.
그렇지만 이들은 모른다.
이건 저 세 명이 너무나도 특별할 뿐이라고.
그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를 구할 사명을 지닐 이들이니까.
앞으로 그 누구보다도 잔혹하고, 괴로운 길을 걸어야 할 아이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