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화 〉26-모험가(4)
란델은 그날 이후 계속 강도 높게 가기로 작정을 했는지 하루하루가 거의 지옥과도 같은 훈련이었다.
덕분에 란델의 소망대로 용의 계곡에 가는 것은 늦춰져서 한 달이나 더 걸려버렸다.
하지만 그만큼 성과에 대한 보람도 있어서 나나 레온은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시스템 보조를 받는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레온 이 녀석은 진짜 사기다.
혹시 이 녀석도 시스템 보조를 받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니, 주인공이니까 용사이니까 그런 거겠지만...게임이었다면 아직 이때의 용사는 제대로 능력치도 받지 못한 존재인데...
무조건 게임과 같다고 생각하는것도 웃기긴 하지만 말이다.
지금이 이런데 나중에 성검까지 손에 들면 얼마나 강해질지 상상도 가지 않네.
아직은 내가 강하긴 하지만 금방 따라잡힐 것 같은 느낌.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아무튼 그렇게 성장한 것도 있어 란델은 마지막에 수긍했다.
여전히 후작을 만나러 가는 것은 싫어하는 것 같지만 용의계곡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어진것이다.
세르니아를 채취하고 나서 다시 세피룸에 돌아왔다 제국에 가라고는 하는데, 글쎄?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히 따라올 것 같은데, 그러면 괜히 더 이야기가 복잡해질 것 같아.
‘음. 일단 모든 일이 정리된 다음에 생각할까...’
그렇게 판단은 뒤로 미루고 떠날 준비를 한다.
짐은내 인벤토리가 있어서 몸은 가볍게 출발할 수 있었다.
대신 마차는 타지 않고 걸어가기로 했다.
일주일정도 걸리기는 하지만 뭐, 천천히 모험을 한다고 생각하며 가기로 했다.
“제가 없는 동안에 잘 부탁드립니다. 스승님.”
“그래. 네 누나를 찾는 건 내가 책임지고 해두마.”
레온은 항상 누나를 찾는데 활동하면서 번 돈을 사용하고 있다.
틈틈이 자신이 직접 찾으러 다니거나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딱히 단서가 없기 때문에 무작정 찾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이 누나의 생사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이지만 레온은 절대로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적극적으로 되어간다고 해야 할까.
이번에 용의계곡으로 가면서도 누나에 대한 단서도 찾고 이쪽에는 자신이 없는 동안 란델에게 그 일을 부탁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고 우리는 세피룸을 출발했다.
처음으로 하는 장기 임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렇게나이에 맞지 않게 두근거리며 나아간다.
초반에는 고블린이나 슬라임 같은 자잘한 몬스터를 처리하면서 진행했다.
몬스터가 없을 때는 잡담을 하거나 가는 길에 뭐가 있는지 이야기했다.
너무나도 평화로운 시간.
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는 1개의 마을이 있고 딱히 특별한 곳은 없다.
길은 정기적으로 몬스터를 소탕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함은 거의 없어서 평범한 사람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는 길 중 하나기도 하다.
“하암~ 평화롭네요.”
“레온 너는 세피룸까지 혼자 왔었지? 그때는 어땠어?”
“저 혼자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몬스터는 처리하고 그렇지 않은 몬스터는 숨어서 피하거나 다른 길로 가거나 했었어요.”
문득 레온이 세피룸까지 오기 전까지의 일이 신경 쓰여 질문하면 레온은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면 며칠이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고생한 흔적이 보였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어떻게 보면 레온이 우리보다 선배로군...
나이도 어린데 참 대단하다니까. 우리 애들은.
“그러고 보면 가장 위험했을 때는 몬스터가 아니고 인간... 이었어요.”
레온이 생각이 났다는 듯이 한 그 말에서 나는 어째서인지 오싹함을 느꼈다.
어쩐지 어디서 느껴본 적이 있는 듯한 그 오싹함을 이상하게 느끼며 나는 레온에게 질문한다.
“인간... 이라니?”
“정확히는 인간이 아니고 도적이라는 이름의 몬스터 같은 놈들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아...”
그 말을 듣고 나는 납득했다.
아직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자신의 본능대로 사는 존재들이다.
그야말로 몬스터라 불러도 상관없는 존재들.
현대에서도 나는 그런 놈들을 수없이 봐왔다.
그것도 법이라는 구속력이 있는 나라에서조차 그런 놈들은 잔뜩 있다.
“꺄아악! 누가 좀 도와주세요!”
“!”
그렇게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으면 갑자기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티아! 레온!”
“응!”
“네!”
우리는 능숙하게 평소와 똑같이 진형을 갖춘다.
곧바로 목소리가 난 쪽으로 달려갔다.
“크흐흐. 제법 괜찮은 여자로군.”
“이번에는 운이 좋았습니다. 귀중품과 함께 여자까지...”
“충분히 즐긴 뒤에는 노예시장에 몰래 팔아버리죠?”
“아, 안 돼...! 이거 놔!!!”
청각을 강화해 대화를 들어보면 상대는 인간, 즉 도적들이다.
우리가 도적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 걸까?
“...누나. 먼저 갑니다.”
“레온!”
레온도 그 대화를 들은 것인지 갑자기 가속하기 시작했다.
나는 시스티아의 호위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뒤를 쫓아가지 못한다.
“크악!?”
“뭐, 뭐야! 네놈!”
“꼬맹이가!”
금방 상상이 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곧 그 장소에 도착하면, 막 근처에 있던 도적을 베고 있는 레온의 모습과 피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도적, 레온을 어떻게든 하려고 무기를 들고 달려드는 도적들의 모습이었다.
그 주변에는 쓰러진 마차에 옷이 찢어진 여자가 한 명. 마차의 호위였던 인물들의 시체.
“시스티아. 보조는 맡길게.”
“응!”
딱히 시스티아의 보조 없이도 그냥 이길 것 같은 수준으로 보였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나는 시스티아와 함께 전투가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쪽도 신경을 좀 써줬으면 좋겠는데!”
“컥!?”
나는 뒤에서 목을 창으로 찔러 넣었다.
몬스터를 통해 몇 번이고 느낀 살을, 뼈를 꿰뚫는 감촉.
아, 이건 몬스터든 인간이든 상관없구나.
인간은 현대에서의 삶도 포함해서 몇 번 불구로 만든 적은 있었지만, 죽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뭔가 거부감이나 다른 느낌이 들 줄 알았지만 별것 없었다.
죽어도 싼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 그런가?
뭐, 앞으로 인간을 죽이는 일도많이 있겠지.
경험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뭐, 뭐야!?”
“또 꼬맹이인가! 젠장! 얕보고 있어!”
도적은 쓰러진 놈들을 제외하면 20명 남짓.
가장 뒤쪽에 있는 두목처럼 보이는 인물이 보인다.
수준은 도적치고는 꽤 높지 않을까? 익스퍼트 중급정도는 되어 보인다.
“칵!?”
나는 깜짝 놀라 나를 목표로 하는 몇 명 중 한 명의 심장을 뚫어버린다.
그것을 바로 뽑아 휘둘러 목을 날리고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갈라버린다.
그런 일련의 동작을 보던 도적들이 기가 죽어 주춤했다.
“뭘 하는 거냐! 얼른 죽여! 이런 꼬맹이들에게 애를 먹다니!”
금방 두목이 나섰다.
레온은 저쪽에 혼자서 12명 정도와 싸우고 있는 상태.
아슬아슬한 장면도 보이지만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음?”
그렇게 분석하고 두목은 내가 상대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눈이 마주친다.
놈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깜짝 놀라더니 금방 탐욕에 젖은 듯한 굉장히 불쾌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다 필요 없고 저 검은 머리 꼬맹이는 무조건 사로잡아!”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목표가 내가 된 것은 상황이 좋다.
“그렇지만 굉장히 불쾌한데...”
그런 말이 나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창을 들어 던졌다.
“컥!?”
두목의 바로 옆에 있던 부하의 머리에 꽂아버린다.
남아 있던 놈들은 그것에 꽤 긴장한 모습이었지만, 내 손에 무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지 실실 웃으며 일제히 덤비기 시작했다.
“멍청한 년! 스스로 무기를 버리다니!”
저런 말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이야. 내가 생각도 없이 그걸 그냥 던졌을까?
하긴 나를 모르는 놈들은 어쩔 수 없겠지.
실은 인벤토리를 이용한 기습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었다.
손에 있던 무기를 던져 없게 된 상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이걸 기습이라고 하기에는 이놈들은 너무나도 수준이 낮지만 말이야.
“잡아!”
나를 생포할 생각인지 공격이 굉장히 소극적이다.
그것을 확인하고 나는 인벤토리에서 이번에 장만한 무기를 꺼내 든다.
“뭐, 뭐야!?”
“갑자기 무기가...!”
-후웅!
크게 바람 소리가 들리며 주변을 휩쓴다.
어떤 것이 분리되는 소리, 뭔가 터지는 소리.
그런 것이 들려오며 주변의 도적들은 바닥에 쓰러진다.
“역시 좀 묵직한 게 좋네.”
“너, 너 그건...”
“할베르트 처음 봐?”
남은 두목 놈이 식은땀을 흘리며 내 손에 들린 할베르트를 바라본다.
흔히 도끼창으로 불리는 무기.
거리를 살리며 묵직한 무기가 없을까 하다가 이번에 장만한 것이다.
“너 같은 계집이 어떻게 그런 무기를...”
“자랑은 아니지만 나 힘 세거든.”
오래 대화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그대로 위에서 아래로 있는 힘껏 휘두른다.
놈은 반사적으로 그것을 막으려고 검을 내밀지만,
-챙강! 으직!
검은 부러지고 자연스럽게 놈의 머리에 박힌다.
몸은 몇 번 부들부들 떨다가 피를 뿜으며 쓰러졌다.
“누나! 이쪽도 정리가 되었어요!”
“그래.”
내가 정리하는 것과 동시에 레온에게서도 그런 말이 들려왔다.
나는 할베르트를 휘둘러 피를 털어낸다.
주변에는 그로테스크한 시체들과 피.
역시 아무런 감흥도 없다.
몬스터 시체를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가?
[도적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1상승합니다.]
“...”
나는 그 로그를 멍하니 바라봤다.
인간을 죽여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는 건가. 이건 게임에서는 없었던 건데.
역시 여기는 현실이라고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
시스티아는 리제의 손에 죽는 도적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날 이후 처음 보는 인간의 죽는 모습.
자신은 사람을 죽일만한 힘은 없지만, 그것을 리제가 대신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 굉장히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역시 리제는...
그렇게시스티아가 리제의 뒷모습과 자신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마음에 설레고 있으면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딱 시스티아의 근처에 있던 도적의 목소리였다.
레온에게 당한 듯 보이는 도적은 배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시스티아에게 간절히 바랐다. 살려달라고.
남자의 상처는 깊었지만, 사제인 시스티아의 신성마법만 있으면 살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도적이 거기까지 판단하고 살려 달라 말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능성은 있었다.
“...살고 싶나요?”
“.......”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질문하는 시스티아의 모습에 도적은 희망을 품고 고개를 끄덕인다.
살 수 있을 거야.
살 수만 있다면 착하게 살게요.
모든 죄를 뉘우칠게요.
살려주세요. 사제님. 여신님.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지만.
“안 돼요.”
그에게 돌아오는것은 냉소였다.
아까와는 다른 무서운 미소를 지은 시스티아를 보고 도적은 몸이 떨렸다.
“살 가치가 없는 당신을 살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여신님께서도 용납하지 않으실 걸요? 당신은 오히려 고통스럽게 죽어가야 해요.”
“으아...”
그 말을 남긴 시스티아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남자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괴로운 일이었다.
시스티아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만히 두었다.
“후후...”
미소가 절로 흘러나온다.
그녀의 안에 있던 무언가가 그렇게 만든다.
“시스티아.”
“응? 왜 그래? 리제?”
“이쪽에 여성의 상처 좀 치료해줘.”
“알았어. 리제.”
하지만 리제를 보자마자 그 무언가를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시스티아는 아무 일도없었다는 듯이 리제의 말에 따랐다.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