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27-수상한 움직임(1)
갑작스럽게 시작된 도적 토벌은 아주 손쉽게 끝나버렸다.
도적은 모두 전멸. 습격당한 사람 중 생존자는 비명을 질렀던 귀족의 여성 한 명이다.
나머지 10명쯤 되는 호위와 사용인의 시체는 가족들에게 보내주기 위해 인벤토리에 수납했다.
살아있는 생물은 인벤토리에 넣지 못하지만 죽은 생물은 넣을 수 있다.
이는 게임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부분이지만 아마 게임에서도 기능이 있었다면 됐을 거로 생각한다.
음. 모든 것을 다 넣을 수 있다면 편하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사기적이니 불만은 없다.
애초에 공간도 용량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수납기능은 쉬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도적의 시체는 대충 정리해서 버려뒀다.
두목의 시체라도 가지고 간다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겠지만, 내가 머리를 전부 뭉개버렸기 때문에 본인확인이 불가능.
다른 증명할 물건이 있으면 좋겠지만 딱히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포기했다.
규모는 조금 있었던 것 같지만 약한 놈들이었고 얼마 되지도 않겠지.
다만 돈이 될 만한 것은 챙겼기 때문에 정리 수고비 정도는 된다.
이것도 몬스터를 잡고 전리품을 챙긴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시체처리가 다 되면 물건도 인벤토리에 전부 넣어놓고 여성을 마을까지 데려다주는 목적도 생겨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에마라고 이름을 댄 16살의 여성은 그 마을에서 사는 귀족 영애로 세피룸까지 놀러 가던 중에 도적과 만났다고 한다.
그 뒤로 우리가 나타나기 전에 있었던 일들은 쉽게 상상이 갈 거로 생각한다.
“레온 님. 레온 님은 아직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그렇게 강하세요?”
“어? 아... 그, 그냥 스승님께 배우고 매일 같이 훈련하고...”
“멋져요~! 전 매일 같이 노력하는 사람이 좋던데...”
“아하하...”
이번에 받은 큰 충격에서 금방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내 예상은 완전히 뒤집혀 에마는 완전히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이 레온에게 착 달라붙어 있다.
확실히 제일 먼저 달려간 것은 레온이었고 가장 활약한 것도 레온이지.
거기에 나날이 달라져 가는 빛나는 외모도 한몫 할 테고.
에마의 눈에는 레온이 백마 탄 왕자님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난 다들 레온이 멋있다고 하는 걸 이해하지 못하겠던데.”
“그런 말 하는 건 시스티아뿐일걸...?”
어디를 가나 여자들에게는 눈에 하트가 생길 것만 같은 주목을 받고 남자들에게는 금방이라도 찌를 것만 같은 질투와 시기를 한 몸에 받는 레온이다.
아직 완전히 남자로 보기에는 어리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기이기에 내뿜는 매력이 있어서 특히나 연상에게 더 인기가 좋다지.
지금의 에마처럼...
“제일 멋있는 건 리제인데 말이야.”
“그것도 너뿐일 거야...”
나날이시스티아와 레온이 친남매와 같이 되어가는 현상에 관해...
시스티아는 레온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일찍 엔딩이 바뀔 준비는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나저나 멋있다는 말은 굉장히 기분이 좋네.
최근 들어 귀엽다는 말은 줄었지만 아름답다든지 예쁘다든지 그런 내 마음을 시무룩하게 만드는 말을 듣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좀 그랬는데.
역시 내 편은 시스티아뿐인가...후후.
“레온 님은 좋아하는 여성이 있으신가요...?”
“어...?”
갑작스러운 그 질문에 당황하는 레온.
그러면서 힐끔힐끔 나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이 녀석아. 나한테 도움을 요청해봤자 소용없어.
그런 건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언제까지나 내가 가르쳐만 주기는 힘들어서 스스로 해결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자. 얼른 스스로 생각하고 말해. 나는 절대로 도와주지 않을 거니까.
“그... 저는 좋아하는 여성이...”
“레온은 좋아하는 여자 없어요. 그건 레온과 함께 지내는 제가 보장하죠.”
“뭐...!?”
더듬더듬 뭐라고 말하려는 레온의 말 도중에 피식 웃으며 시스티아가 말한다.
너무 우물쭈물하다 보니 결국에는 시스티아가 도와주기로 한 듯 보인다.
“어머. 정말요?”
“그럼요. 그러니 아예 사귀어 보시는 것도...아니, 아예 약혼하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결혼은 아직 레온이 나이가 안 되니 3년만 기다리면 될 테고.”
“어머나...”
“야, 야!”
에마는 뭔가 행복한 상상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고 레온은 에마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미소를 짓는 건지 화가 난 건지 미묘한 표정으로 시스티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시스티아는 그 시선을 히죽거리며 받더니 말을 이었다.
“만약 결혼한다면 제가 주례 봐 드릴게요. 그때면 저도 성인이고 자격은 충분할 테니까요.”
“그, 그럴까요? 아, 아니.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분명히 그렇게 될 거예요.”
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막 던지는 거 아닌가 싶은데.
상대는 귀족 영애이기도 하고 괜히 복잡해지는 게 아닌지 몰라...
“흐지므르...!(하지 마라...!)”
“우후후.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아도 돼.”
그래도 미소는 풀지 않고 에마에게는 모르게 이를 악문 채로 항의하듯 말하면 시스티아는 아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한다.
저 표정은 알고 있어. 이겼다고 생각했을 때 짓는 표정이지...
정말이지 못 말린다니까.
하지만 두 사람이 이런 식으로 장난치거나 싸우거나 할 때 어린아이다운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다.
이 두 사람은 너무 어른스러운 면이 있으니까.
“누, 누나. 아, 아니니까요?”
“응?”
그렇게 두 사람을 쓴웃음 지으며 바라보고 있으면 레온이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뭐가 아닌데...?
주어를 전부 빼먹고 그러면 내가 맥락을 알아채야만 한다.
알아채야만 하는데...음. 잘 모르겠다.
“뭔지는 모르지만 네가 원한다면 말릴 생각은 없어. 하지만 아직 결혼할 나이는 아니니까 잘 생각하고.”
“...네.”
어, 어라? 굉장히 시무룩해졌는데?
“푸...”
시스티아는 엄청나게 부들부들떨어가면서 웃음을 꾹 참고 있고...
아니, 도대체 뭐야?
“...”
“아...”
그렇게 내가 어리둥절하고 있으면 나를 보고 있던 에마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에마는 내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다.
조금 겁을 먹은 듯한 모습.
그녀는 나를 조금 거북해하는 것만 같았다.
할베르트로 도적 두목의 머리를 찍어낸 것이 잘못된 것일까.
확실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좀 잔인해 보일 테니...
‘그게 아니라면 레온과 내가 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다.
세피룸에 있었을 때도 그러한 오해를 받았던 적이 몇 번 있었으니까.
그때는 일일이 오해라고 풀고 다니기 귀찮아서 그냥 뒀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해야 하려나...?
여러 가지로 고민이 되는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
용의 계곡까지 가는 데 있는 마을은 오로지 아르단뿐.
세피룸에서는 4일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에 그전에는 무조건 노숙이다.
우리는 어두워지기 전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노숙할 준비를 했다.
인벤토리에 챙겨 넣은 간이텐트를 설치하고 장작을 주워 불을 피우고 저녁 준비를 한다.
“리제. 도울 거 있어?”
“저기 꺼내놓은 그릇 좀 가져와 줘.”
“알았어.”
내 말대로 그릇을 가져온 시스티아는 모닥불 근처에서 활기차게 레온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에마를 바라봤다.
“아까는 장난스럽게 말하기는 했는데 저 사람은 진심인가 봐.”
“그럴지도 모르지. 레온은 아닌 거 같지만.”
레온은 단지 사람이 좋아서 계속 상대를 해주고 있을 뿐인 것 같다.
몰래몰래 곤란하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것을 보면.
“둘 다 행복하다면 어울리긴 하는데 말이야.”
일단 미남미녀인 것부터 말이다.
다만 에마의 외모는 확실히 미인이긴 한데 특징이 없는 만들어진 외모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단 말이지.
아니, 이런생각을 하면 실례겠지...
“그런가...?
“넌 아닌 거 같아?”
“으음...솔직하게 말하면 그런 것 같아.”
평소의 둘의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으면 드디어 레온에게 마음이 가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을 테지만,아쉽게도 그런 건 아니다.
시스티아는 조금 불편한 느낌으로 있다가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나도 좀 이상한 느낌이긴 하지만 저 사람이 좀 꺼려진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어울리지 않는 건 확실하다는 건 알 것 같아.”
“...”
시스티아는 대수롭지 않게 그저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느낌만으로 그런 말을 했을 테지만, 나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아직 정식적인 성녀는 아니지만 성녀와 가까워져 가는 시스티아가 느끼는 것이 그저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빛’인 그녀가 본능적으로 꺼려진다는 것은 거부감이 든다는 것으로 필연적으로 ‘어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근데 꺼려진다고 했는데 그런 것치고는 꽤 친하게 지내지 않았어?”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일을 당해서 마음 약해져 있는 사람을 단지 꺼려진다고 거부할 수는 없잖아.”
“그렇구나~ 우리 시스티아도 다 컸네.”
“헤헤... 더 쓰다듬어도 돼.”
“하하. 알았어.”
그렇게 웃으며 시스티아와 시간을 보내며 생각한다.
확실히 칭찬할만한 일이긴 하지만 앞으로 그 느낌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을.
“자, 그러면 이제 밥 먹자.”
“응!”
하루하루 생각이 많아진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아가는 것 같다.
자,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해야만 할까.
엄청나게 바빠지게 생겼네.
*
깊은 밤.
잠을 잘 때의 안전과 수면 보장을 위해서 모험가들이 선호하는 경계 아이템을 사용하는 파티의 밤은 너무나도 조용하다.
장작이 타는 소리와 얕은 숨소리만이 들리는 가운데, 두 텐트 중에서 좀 더 큰 텐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 안에서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나왔다.
“...”
에마였다.
아르단 마을에 있는 남작가의 영애로 오늘 도적들에게 좋지 않은 일을 당하려고 하는 것을 리제 파티가 구해준 여자.
그녀는 이 깊은 밤에 어째서 눈을 뜬 것일까?
오늘 일이 잊히지 않아 잠자리에 들지 못한 것일까?
그것에 대한 답은 전혀 모른 채 에마는 그저 조용히, 아주 조용히 모닥불 근처를 지나 캠프 밖을 나선다.
아무리 이 근처에는 약한 몬스터밖에 없다고는 하지만 귀족의 영애가 쉬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것을 모를 에마도 아니겠지만, 그녀는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일정 이상 캠프에서 멀어졌을 때 발걸음을 멈췄고, 품속에서 작은 수정구를 꺼내 들었다.
“...보고 드립니다.”
레온과 대화를 나눌 때는 생각할 수도 없는 감정이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나오면 수정구가 작게 빛났고 그 안에서도 목소리가 들려온다.
[보고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기묘한 목소리.
그에 더해서 스산함도 느껴진다.
“네. 3번째 작전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그들은 모두 저를 그저 보호 대상으로 보고 있고 의심하고 있지 않습니다.”
[쳇. 자고 있을 때 목을 그어버리는 편이 가장 편한데 말이지.]
“예상외로 대상들이 너무 강합니다...특히 ‘제일 중요한 대상’은...범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그 정도라고?]
“보이는 것 외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시스티아가 에마를 꺼리듯 에마도 리제를 꺼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 크기가 시스티아가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크기에 쉬이 다가갈 수가 없다.
지금의 상태의 에마조차 무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이겠지.
[그건 한 번 보고 싶어지는군...]
“앞으로 3일 후. 당도합니다.”
[아아, 그래. 기다리고 있지.]
그 말을 끝으로 수정구는 빛을 잃었고, 에마는 그것을 다시 품속에 넣는다.
그리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자신의 흔적을 지우며 캠프에 돌아갔고, 마지막에는 나왔을 때와 똑같이 눕기로 한다.
“어라? 어디 갔다 오세요?”
“...!?”
막 누우려고 하면 말이 걸려와 놀랐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을 텐데 그 목소리의 주인이 꺼려지는 상대라 약간 허둥대다가,
자신이 화장실을 다녀왔다는 것을 기억해내며 입을 연다.
“화, 화장실을 좀...”
“아...네. 혹시 잠이 안 오시는 건 아니죠?”
“네. 그런 건 아니에요...그럼...”
“네. 잘 주무세요.”
그것은 굉장히 상냥한 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이상하게도 위협적으로 들렸다.
어째서? 도대체 이건 무엇일까?
게다가 본래는 꺼려지는 정도였는데, 지금은 왜 이리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너무나도 무서웠다.
에마는 눈을 질끈 감는다.
엄청 피곤해서 금방 잠이 쏟아질 것만 같은데도 정작 잠은 오지 않는다.
강대한 포식자가 자신을 계속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너무나도 이상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