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용의계곡(4)
“뀨우...”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는 내 예상을 증명하듯 곧 세라가 졸린 듯 눈을 반쯤 감으며 꾸벅꾸벅 거린다.
아마도 나와 떨어져서 마음 졸이고 있었기에 피곤했을 거다.
“졸리면 얼른 자자.”
“뀨...”
세라의 머리가 스르르 품속으로 들어간다.
옷 위로 몸을 살짝 토닥여주면 금방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자는 것이 느껴졌다.
“...바로 갈 거야?”
“그래. 최대한 빨리 일을 진행하고 싶어.”
“그럼 바로 가자.”
보통은 똑바로 볼 수도 없는 끔찍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애초에 바로 얼마 전에 도적들을 직접 죽이거나 죽이는 장면을 봤고, 그 뒤로도 아무렇지도 않았으니까 괜찮겠지.
“윽. 뭐야 이게?”
“뭔가 거대한 생물이라도 다녀간 걸까요?”
이곳에서 벌어진 상황에 두 사람은 눈살을 찌푸리는 것에 끝났다.
거기에 레온은 벌써 분석하기 시작한다.
“아직 정체가 뭔지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야.”
이미 파악은 되어 있지만 일단 그렇게 이야기해둔다.
미리 정체를 파악하고 있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이것에 관해서는 두 사람에게도 말할 수 없는 내 극비다.
“길드에는 보고해야 할까요?”
“아니, 그러진 않을 거야.”
지금 현재 이곳은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고급 재료들이 굴러다니고 있는 상태다.
손상은 좀 있어도 그야말로 나라가 움직일 수준이다.
“괜히 잘못하다간 나라끼리 전쟁이 일어날지도 몰라. 어쩌면 더 넓게 번질지도 모르고.”
마족이랑 싸우기도 전에 서로 전쟁이 일어나면 정말로 골치 아파진다.
“진짜 드래곤에 비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이 용종들만 해도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하던데...”
“눈이 뒤집혀서 달려들 가능성은 충분히 있겠네.”
단지 그 설명만으로도 둘을 이해시키기에는 충분했나 보다.
“그러니 여기 있는 모든 건 내가 다 챙겨갈 거야.”
“오. 좋네요.”
“응. 그게 제일일 것 같아.”
이득을 배제하고 생각해도 이게 제일인 것 같다.
이대로 내버려두고 간다고 해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거니까.
그렇게 우리는 주변에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면서 용종들의 시체를 거둬들이고 다녔다.
“우와...이런 거대한 것도 물어 뜯겨서 죽었어...”
“이곳에서 서식하는 보스 중 하나네.”
“아, 이곳은 몇 마리가 서로 경쟁하듯이 있다고 했던가?”
“응. 3마리.”
이곳의 보스는총 3마리라고 할 수 있다.
그 3마리가 자신들의 세력권 안에서 서로 경쟁하듯이 자리 잡고 서로 경계하고 있었다.
쉽게 비유하자면 삼국지 같은 느낌일까?
“나머지 2마리도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 몸집은 먹혔다고는 해도 크기에 보이지 않을 리는 없지만, 이곳은 굉장히 넓다.
아마 좀 더 찾아다녀야겠지.
“근데 여기 이렇게나 망가졌는데 앞으로 어떻게 되려나?”
“아직 생존한 용종들도 있을 테니까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돌아오지 않을까?”
“이렇게 많이 죽었는데 그게 가능할까...?”
두 사람의 대화를 나는 묵묵히 듣는다.
그것에 대한 명확한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생각만으로 말하자면 여긴 예전처럼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지나간 자리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재앙과도 같은 그라니토에 의한 이곳의 ‘상처’는 너무나도 크다.
기대라는 것이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우울한 마음으로 다시 용종 사체 탐색에 들어간다.
마법과 오러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면서 최대한 모두 인벤토리에 넣고 중간지점으로 향한다.
“여기서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어.”
“확인?”
“그래. 발견되지 않았다면 가장 중요한 곳이 될 곳이야.”
계곡의 중간지점에 있는, 입구 쪽과 비슷한 숲의 공간.
이곳도 많은 용종의 시체로 어지럽혀져 있지만 그래도 다른 곳보다는 나았다.
그것들도 전부 인벤토리에 넣으며 나는 두 사람에게 설명한다.
“여기에서 좀 특이한 상처가 있는 나무가 없는지 좀 찾아봐. 이런 식으로 초승달 모양같이 생긴 거.”
그렇게 말하며 설명을 하고 우리는 잠시 떨어져서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리제! 이거 아니야?”
시스티아에 말에 가보면 확실히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모양부터 전체적으로 다른 느낌의 나무가 있었다.
내 기억과 일치하는 나무였다.
“잘했어!”
“헤헷.”
나는 시스티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무 밑을 살펴본다.
하지만거기에는 딱히 아무것도 보이지않는다.
무성히 자라난 풀과 흙과 돌.
게임에서는 바로 표식이 보였는데...?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들면서 나는 주변을 계속 둘러보며 찾다가 흙을 조금 걷어내고 나서 발견한다.
“아...! 있다!”
내가 원하는 세르니아와 닮은 꽃 모양의 문장이 보였다. 입구가 이곳에 있다는 표식이다.
“좋아...!”
나는 쾌재를 부른다.
이게 그대로 있다는 것은 이 장소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뜻.
즉 안에 있는 것은 무사하다.
나는 주먹에 오러를 실어 그 균열 위를 때린다.
그러면 그 문장부터 시작해서 쩍쩍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얼마 안 가 우르르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우와...”
“여, 여기는...”
이런 곳을 처음 보는 두 명에게는 이질적인 곳일 거다.
봉인된 신의 성소와 같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장소.
바로 보너스 스테이지다.
*
[숨겨진 장소를 발견하였습니다.]
[폰티나의 옛 은신처에 입장하셨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로그가 증명해준다.
게임에서는 정말로 보너스 스테이지가 많았다.
뭐, 스테이지라기보다는 숨겨진 장소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지만, 게임에서 그렇게 우기니 어쩔 수 있나.
정말로 쓸모없는 곳부터 시작해 정말 엄청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곳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이곳은 내 개인적 순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장소이며 나밖에 모른다고 자부하고 있는 곳이었다.
나랑 같이했던 그 아이에게도 가르치지 않은 곳이었으니까.
“이런 곳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리제. 어떻게 안 거야?”
“...그냥 좀 조사하다가 알게 됐어.”
찾는 시늉이라도 좀 해야 했나.
하지만 뭐...
“헤에. 그렇구나.”
“굉장하네요.”
이 애들은 나도 깜짝 놀랄 정도로 나에게는 의심이라는 게 없는 애들이니까.
아, 물론 나 한정으로 말이야. 그게 아니었다면 빠르게 고치게 해야 하는 사안이야...
“근데 여기는 뭐하는 곳이에요?”
“레온. 너랑 나랑 스펙업을 위한 장소야.”
“스펙업이요?”
“말하자면 강해지기 위한 곳이라는 거야.”
“그건...!”
강해지기 위한 곳이라는 말에 레온의 눈이 번쩍 빛이 난다.
레온 녀석. 강해지는 것에 엄청 욕심이 많으니 말이지.
“시스티아는 보조 잘 부탁할게.”
“내 전문이니까 맡겨줘.”
시스티아의 그런 든든한 말도 듣고 나면 우리는 갈 길을 서둘렀다.
여기에는 딱히 함정이나 그런 것도 없다.
안쪽으로 쭉 이어지는 통로만이 있을 뿐.
“어? 이거 세르니아 아니야?”
“그림으로 본 거지만 확실한 것 같아. 이걸로 일단 의뢰는 달성할 수 있게 된 건가?”
“음...근데 뭔가 좀 다르지 않나? 회색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푸른색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세르니아가 나왔고 시스티아는 자신이 알고 있던 차이점에 눈치챘다.
“그림으로 봤을 때는 별로 예쁘지 않았는데 이건 예쁜 거 같아...”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어서 그런가?”
“원래 예쁘지 않은 게 맞아. 이게 특수한 거야.”
나는 둘이 보고 있던 세르니아를 조심스럽게 뿌리까지 채집했다.
그리고 그것을 내밀면서 설명한다.
“밖에 있는 것과는 다르게 엄청 농도 짙은 자연의 마나를 품고 있어서 그래.”
“농도 짙은 마나라면...그거...설마...?”
“네가 생각하는 게 맞아.”
“어? 뭔데? 뭔데?”
레온은 금방 입을 떡 벌리며 놀라지만, 평소 마나와 큰 상관이 없는 시스티아는 잘 모르는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즉, 이 세르니아 하나하나가 오러나 마나를 높여주는 영약이라는 뜻이야.”
“여, 영약...”
시스티아도 알기 쉽게 설명하면 레온과 마찬가지로 입을 떡 하니 벌렸다.
영약이라고 하면 굉장히 귀한 약 종류를 뜻하기에 그 종류가 꽤 된다.
내가 예전에 카르아에게 받아 마신 최상급 포션도 영약 분류에 들어간다.
뭐, 그건 그 귀한 것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거지만 말이지.
이건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가 하면 솔직히 말해서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오러나 마력을 높여주는 효과를 지닌 건 그야말로 절대적인 물건이다.
남용하거나 그냥 막 사용하면 굉장히 위험하기는 하지만 제대로 방법을 알고 사용하면 힘이 강해진다.
심플하면서도 효과가 굉장히 좋은 것이다.
이 세르니아 한 송이만으로도 팔면 굉장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팔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가 사용하기에도 바쁘니까.
돈보다는 우선 능력치를 챙겨야 한다.
“이, 이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걸까요?”
“익스퍼트에서 사용하면 단계가 한 단계는 올라갈 정도는 될지도? 계속 사용하면 마스터급도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 단계는 단순히 오러만 많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지?”
“네. 그건 잘 알고 있어요.”
마스터의 경지라는 것은 깨달음에 경지다.
물론 나야시스템이 보조를 다 해주니까 능력치만 넘겨버리면 되겠지만 레온은 아니다.
깨달음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레온이라면 금방 해낼 테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진정한 사기는 나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이런 나를 금방 따라올 거라 생각되는 레온도 사기는 사기지만...
“고작 이 한 송이에 그 정도가...”
“벌써 놀라면 안 돼. 이 안에 들어가면 잔뜩 있을 테니까.”
“...”
결국 두 사람은 그런 내 말에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냥 내 뒤를 따라온다.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다가도 한 편으로는긴장한다.
“하지만 그걸 얻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어.”
확실히 이곳은굉장히 보상이 좋다.
하지만 그것이 공짜는아니다.
보상을 얻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게 뭔데요?”
“후후, 가보면 알아.”
이런 건 미리 가르쳐주면 재미없지.
“...나 어쩐지 불안한 느낌이 드는데.”
“나도...”
그렇게 두 사람을 이끌며 중간마다 세르니아를 챙기면서 나아가다 보면 곧 목적으로 했던 가장 끝에 다다른다.
아이 세 명이 지나가는데도 그리 여유가 없는 통로와 비교하면천장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넓은 곳이다.
“우와...”
“예쁘다...”
그리고 그곳에는 바닥을 메울 정도로 푸른빛을 내는 세르니아가 피어있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으로 이 두 사람처럼 무심코넋을 잃고 보게 될 정도다.
나도 게임과는 다르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라 멍하니 보게 되었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다만나는 금방 현실로 돌아왔다.
이 장소에는 단지 구경만 하러 온 것은 아니니까.
이곳은 금방 이 광경을 잃게 될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누나의 말에 뭔가 불안했는데 그런 기분은 싹 날아갔어...”
“응. 이런 곳이라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
다 들린다. 이 녀석들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피식 웃는다.
그도 그럴게. 이제 얼마 안 가서 이 두 사람의 반응은 바뀌게 될 테니까.
“리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제 이것들을 채집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일단 그러면 돼.”
그렇게 말해주고는 나는 두 사람이 모르게 뒤로 물러난다.
앞으로 벌어질 일에 말려들지 않기 위해서.
『누구냐!? 감히 주인님의 보물을 멋대로 가져가려고 하는쳐 죽일 놈들이!?』
“우와아!?”
“뭐, 뭐야!?”
[은신처의 가디언이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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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역시 보너스 스테이지. 정말 좋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