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용의계곡(5)
보너스 스테이지의 좋은 점은 뭐라 해도 난이도는 낮으면서 모든 것이 고효율이라는 것일 거다.
갑자기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무언가.
투명한 푸른색에 인간과 같은 형상에 슬라임처럼 흐느적거리는 거대한 그것은 유령으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저건 유령이 아니라서 실제로 만질 수도 있다.
다만...
“누, 누나! 누나! 이게 도대체 뭐에요!?”
“꺄악!? 저리 가!”
물리공격, 마법공격 둘 다 통하지 않아서 아예 만질 수도 없는 것보다도 더 하다.
음. 이 녀석들이 여기서는 이렇게 표현되네.
“레온 이 녀석 공격은 통하지 않지만 느리니까 잘 보고 피하면 문제없어.”
“그, 그렇게 말씀하셔도...으앗!?”
레온을 잡으려고 손을 휘두르면 레온은 잠시 한눈팔다 그것을 가까스로 피한다.
질량만 따져도 상당한 힘이 담겨 있었을 텐데 풍압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지 않는 것만 같다.
역시 신기하다.
실체가 있는 듯 보이지만 없다.
만질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진짜 모순덩어리다.
“리, 리제...! 나, 나는...!”
“시스티아도 잘 보면 피할 수 있어. 그리고 대부분의 공격은 레온이 받아 줄 거야.”
“그, 그런...!?”
“제, 제가 다 한다고요!?”
“그래. 적당히 공격도 섞어가면서 시선을 끄는 연습.”
“으어어!?”
시스티아가 울먹이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에 순간 마음이 약해졌긴 했지만, 나는 강행시킨다.
나는 이번에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느슨하게 할 수는 없지.
“흐아앗!”
레온이 이제야 검을 빼 들고 틈을 노려 공격을 시도한다.
공격 자체는 어렵지 않다. 내가 먼저 말했듯이 이 녀석의 공격은 매우 느리다.
하품하면서 피할 수 있을 정도.
다만 패턴을 모르는 초보자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으니 연습이 필요하긴 하지.
그런데도 바로 공격할 수 있는 것을보면 역시 레온은 엄청나게 재능이 있다.
하지만.
“오. 어?”
검이 분명 닿았음에도 자신이 생각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지 레온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나에게 그딴 공격은 통하지 않는다! 침입자!』
“헉!?”
놀라서 몸이 굳어 있는 사이 공격이 들어와 레온은 다급하게 피한다.
그리곤 다급히 나에게 말을 걸었다.
“누, 누나! 이 녀석 공격이 전혀 안 들어가는데요!? 게다가 제 오러를 흡수하는 것 같아요!”
오. 제법이다. 흡수하는 것까지 벌써 알았네.
“그래. 맞아. 공격이 전혀 들어가지 않으면서 그녀석 마력이나 오러도 흡수해. 그러니까 적당히 조절하면서 공격해.”
“에...? 그, 그게 무슨...”
공격이 통하지 않는데 적당히 공격하라는 건 도대체 무슨 말? 이라는 듯이 레온은 눈만 깜빡인다.
나도 알아. 이상한 말이라는 거.
하지만 이게 최선인 걸 어떻게 해?
경험치 쌓기에는 이만한 방법도 없거늘.
물론 이들은 나처럼 능력치라는 개념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 경험을얻어 성장하는 것은 똑같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일은 약간의 실험이기도 하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을 경우 어떠한 효과를 발휘할지.
2배 보너스 시간은6시간이나 된다.
그 정도면 실험도 하면서 나 자신도 강화하기에는 충분하다.
“아무튼 날 믿고 그냥 해. 내가 언제 너에게 말도 안 되는 일 시킨 적 없잖아?”
“그건 그렇....죠!”
『어딜 한눈을 파는 것이냐!』
내 말이 끝나면 곧바로 레온의 움직임에 망설임이 사라졌다.
뭐가 되었든 일단 내가말한 대로 따르기로 한 것이다.
“시스티아는 레온의 보조! 공격이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긴장은 늦추지 말고!”
“으으...아, 알았어!”
그런 레온을 보고 시스티아도 더는 뭐라고 하는 것은 그만뒀는지 내 지시대로 레온에게 보조 마법을 걸기 시작한다.
『어딜 감히 이곳에서 신성마법 따윌!』
그러면 곧바로 시스티아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딜러보다도 힐러에게 어그로가 끌리는 것은게임이나 이곳이나 똑같다.
딜러가 아무리 많은 대미지를 주고 있다고 해도 힐러가 큰 기술 하나 사용하는 것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게임에서도 시스티아는 굉장히 잘 누웠었지...
어그로도 어그로지만 원체 물 몸이라는 설정이어서...
여기에서도 물 몸인 것은 다름없지만 그래도 나름 단련을 해서 좀 괜찮다. 어쨌든 그것도 최우선적으로 고쳐야 하는 상태다.
시스티아는 그것만 어떻게 하면 나머지는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
“레온!!”
“흐아아압!”
레온이재빨리 시스티아의 앞에 나서서 최대한 녀석이 거슬리게 움직이며 공격을 시작한다. 전혀 통하지 않는 공격이지만 어그로라는 면에서는 제대로 통한다.
『크윽! 이 귀찮은 놈!』
일일이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대사를 남발하며 다시 레온을 쫓기 시작한다.
음. 꽤 잘하잖아?
어쩐지 게임에서 내가 조종하던용사 캐릭터 같은 느낌이야.
아직 성검은 없지만 역시 용사는 용사라는 건가.
“레온! 만약에 시스티아가 다치는 일이 일어나면 나중에 벌이다!”
“에!?”
“시스티아도 레온이 다친 채로 30초 이상 있으면 나중에 벌이야.”
“읏!?”
“참고로 무슨 벌일지는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서 압박을 해두자.
애들에게 역시 제일 무서운 건 벌이지. 암.
“야! 레온! 나 다치게 두면 나중에 죽는다!”
“누가 할 소리! 너나 치료마법 잘 써!”
음? 굉장히 필사적임을 느낀다.
또래보다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두 사람이지만 역시 어린애는 어린애로군.
그것에 조금 흐뭇함을 느꼈다.
그렇게 두 사람을 뒤에서 지켜보기를 약 2시간 후.
중간에 몇 번 위험하거나 내가 조언을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기는 했지만, 끝까지 큰일 없이 마무리가 지어졌다.
“더, 더는 못 움직여...”
“나, 나 죽어...”
녀석들. 엄살도...
두 사람은 내가 있던 곳까지 와서 그냥 드러누워 버렸다.
내가 있던 장소는 세르니아가 피어있지 않은 곳으로 가디언의 활동범위가 딱 세르니아가 피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이 은신처에 있어도 세르니아에만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안전하다는 뜻이다.
“그럼 이번에는 내가 갔다 온다.”
“조심하세요오...”
“...”
레온은 숨을 헐떡이면서 말하고 시스티아는 기절이라도 했는데 아무런 반응도 없다.
뭐, 단련은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시스티아에게는 많이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에 대한 보답은 있을 거로 생각한다고?
지금은 느끼지 못할 테지만.
“자, 그러면...”
1분 1초가 아까우니 나는 바로 세르니아가 피어있는 곳까지 다가간다.
그리고 두 사람이 했던 것 같이 세르니아를 건드리는데...
“?”
『...』
어라? 아무런 반응이 없어?
“야.”
『으, 음...뭐, 뭡니...아니 뭐냐!』
응? 이 녀석 뭔가 이상한데?
“나 지금 네가 지켜야 할 거 건드렸는데? 일 안 해??”
『흠흠...뭐, 이렇게 잔뜩 있으니 조금 정도는 상관없지 않겠습...아니 없으리라 생각한다!』
“...”
이 녀석 아까부터 나한테 존댓말 쓰려고 하다가 다급히 고치면서 괜히 세 보이려고 말끝에 힘을 주고 있는 거 내 착각 아니지?
“야...왜 사람 차별해?”
『무, 무슨 차별을!?』
“아니, 그렇잖아. 아까까지는 신이 나게 싸우던 놈이 왜 내가오니까 얌전하냐고. 이게 차별이 아니면 뭐야?”
『벼, 별로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아니 같은데!?』
“이 자식이?”
『히이익!?』
내가 때리려고 손을 번쩍들어 올리면 가디언이 명백하게 겁을 먹은 소리를 지르며 뒤로 물러난다.
사람의 형상은 하고 있지만, 얼굴이 아예 없어서 시선이라고 할지는 잘 모르지만, 시선도 나랑 절대로 마주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이거, 잘은 모르겠지만 역시 이 녀석 나에게 겁을 먹은 것 같다.
아니? 도대체 왜?
“아, 진짜. 시간 아까워 죽겠는데.”
지금 이렇게 말씨름하고 있을 때에도 보너스 시간은 지나간다.
진심으로 아까워 죽겠다.
“너 뭐야? 왜 그러는데?”
『으으으...』
결국 답답해서 그렇게 내가 물어보면 가디언은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말한다.
『다, 당신은 드래곤이시지 않으십니까! 그것도 상당히 고귀하신 분! 그런 분에게 개기다 어디 죽을 일 있습니까!?』
“엥?”
설마 이 녀석?
“너 드래곤이랑 연관 있는 놈이었냐?”
『다 알고 오셨으면서 뭘 물어보십니까! 저 울어버립니다!?』
“헐...”
확실히 용의계곡 안에 있는 곳이니 연관은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지만, 진짜일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이 가디언이 드래곤에게는 쩔쩔매는 녀석일 줄도 몰랐다.
아니, 근데 너 울 줄도 아냐?
“하아...그래서? 지금 나랑은 싸우지 못하겠다. 그거지?”
『당연합니다. 제가 죽지 않습니까...』
“너 공격 안 통하잖아.”
『드래곤분들은 저를 죽일 방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난 없는데...?”
『그럴 리가 없습니다. 드래곤이라면 누구든 쓸 수 있는 건 데 없을 리가 있습니까.』
쳇. 다 알고 있다는 거군.
하긴 자신의 유일한 약점인데 모를 리가 없는 것이 더 이상하다.
...어쩔 수 없지.
“그래...그럼 알았어.”
『알아주신 겁니까? 다, 다행입니다...저기, 세르니아는 필요하신 만큼 얼마든지 가져가십시오. 어차피 몇 송이만 있으면 금방 또 불어나기 때문에...』
녀석은 마음대로 착각해서 아예 안도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야. 내가 말한 건그런 게 아니야.
“지금 당장 죽을래? 아니면 4시간 뒤에 살길을 찾을래?”
『에? 네?』
“얼른 선택해. 10초 준다. 10.”
『에에!? 에에에!?』
“9.”
『아니, 잠깐만 기다려주세요!』
“8.”
『아아악!?』
네가 아무리 불쌍한 척을 해도 나는 봐줄 생각이 전혀 없어.
지금도 시간이 아까워서 부글부글하고 있거든?
10초도 많이 준 거란 말이야.
“5.”
『아, 으아아! 아, 알았어요! 할게요! 하면 되잖아요!』
“진작에 그럴 것이지.”
『대, 대신에...그것만은 쓰지 말아 주세요...』
그것은 가디언의 최대한의 타협점이었다.
뭐, 나도 쓸 생각은 없다.
아니, 본래 다 끝나고 나서 정리하기 위해 쓰려고 했지만, 그건 말하지 말도록 하자.
“알았어. 그 대신에 너도 최선을 다해야 할 거야. 있다가 내가 널 죽이지 않고 끝내길 바란다면.”
『아, 알겠습니다! 반드시 그럴게요!』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며 쩔쩔매는 가디언을 보고 정말로 괜찮을까 싶었지만,
『침입자 놈! 죽어라!!!』
녀석은 정말로 레온이나 시스티아에게 했던 것처럼 아주 최선을 다해 나를 공격했다.
다만...
『흐하하! 죽어라! 죽어!』
죽어라는 말이 굉장히 많았던 것과 그것이 진심이라고 느껴졌던 것은 굉장히 기분이 나빴지만, 내가 그렇게 하라고 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저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죽이지 않고 아프게 때리는 방법은 없나?’
나는 남몰래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