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제국(2)
결과적으로 누구였든 도와주기는 했을 테지만, 이번에 빠르게 판단한 것은 마차에 그려진 문장 때문이었다.
블랙 드래곤의 모습을 본떠 만든 문장.
그것은 황족에게만 허락된 문장이다.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저 마차 안에는 황족이 타고 있고,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 습격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중에 마족과의 싸움에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제국이 가장 힘을 많이 쓰며 동시에 피해도 가장 많이 입는다.
전체적인 피해도 물론이고 황족들에서도 그 피해는 엄청났다고 게임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마족 측에서 황족을 집중적으로 노렸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명은 마족의 의식 제물로서 바쳐서 끔찍하게 죽었다.
그리고 나는 제물로 바쳐지는 인물이 누구인지 안다.
마차에 탄 인물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구해주고 나면 그것을 막기 위해서 어떠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컥!?”
마차를 몰던 마부가 죽임을 당하고 마차는 통제를 잃고 그저 앞으로 달려나간다.
얼른 하는 것이 좋겠는데.
“얘들아. 인정사정 봐주지 마라.”
“끼이익!!”
블랙 와이번들이 내 명령에 브레스를 준비한다.
처음부터 쓸어버릴 생각으로 임한다.
누가 봐도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하는 상대이며 누가 되었든 황족을 노린 것이니 어차피 산다고 해도 잡혀서 더 큰 고통을 맛보고 죽게 될 것이다.
음. 하지만 한두 놈은 살리는 게 낫겠지?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으면 세 마리의 블랙 와이번의 입에서 강한 산성을 띤 불꽃의 브레스가 뿜어져 나온다.
“으, 으악!?”
“이게 뭐야!?”
한창 마차를 제압하려고 하는 찰나, 닿기만 해도 녹아버리는 브레스가 쏟아져 내리니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간다.
“우와...나 이렇게까지 불쌍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이야.”
시스티아가 중얼거리며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단 브레스 3번에 완전히 풍비박산이 났다고 봐도 좋다.
직격을 맞은 이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운이 좋게 맞지 않았다고 해도 산에 당해서 고통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진형은 유지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이 쫓던 마차는 이미 거리가 상당히 벌려진 상태.
완전히 범위 밖에 있던 자들은 재빨리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되지 않고 하늘에 있는 우리의 눈치를 보고 재빠르게 흩어지기 시작한다.
막무가내로 흩어지는 것이 아닌 효율적으로 후퇴하기 위한 체계적인 움직임.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바로 후퇴하는 것을 보면 역시 어중이떠중이 도적 같은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레온. 가볍게 몇 명 잡아와. 혹시 자살한다고 하면 못하게 하는 건 알고 있지?”
“네. 맡겨만 주세요.”
나와 함께 급성장하려고 굉장한 노력을 한 레온.
이제는 꽤 듬직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아무리 급성장을 했다고 해도 여러 상황에 대한 대응은 부족하다. 가르치기는 했지만, 실제로 하는 것은 다른 일이니까.
이런 일에도 적극 행동시키는 것은 굉장히 좋은경험이 될것이다.
“너도 같이 가서 레온의 말을 따라.”
“끼익!”
나는 기수가 없는 블랙 와이번. 음 알기 쉽게 구분하자면 블랙이3을 레온에게 붙여준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면 전력이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좋고 일손이 부족하면 보충도 되니까.
“리제! 저 마차 저대로 가면 위험한대?”
“그래. 알고 있어!”
난 급히 블랙이1을 고삐를 잡고 가속해 날아간다.
마부가 없어진 마차는 계속 속도를 높이며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나무에 부딪힐 것만 같은 상황.
“시스티아! 여기에 가만히 있어!”
나는 그렇게 말해두고 고삐를 놓고 뛰어내렸고 바로 마차의 지붕에 착지.
죽은 마부를 잠깐 옆으로 치워놓고 고삐를 잡아당겼다.
“히이잉!”
갑작스러운 명령에 말들이 놀라 울지만, 그래도 금방 멈추기 위한 동작에 들어갔고 아주 아슬아슬하게 멈춰 설 수 있었다.
“후우...”
나는 마부석에서 내려 투레질을 하는 말들을 잠깐 달래고 마차에 다가갔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두 사람.
한 명에게는 조금 이질적인느낌이 들지만, 둘 다 일반인인 것 같다.
그렇다는 건 황자보다는 황녀 쪽이겠군.
그렇게 예상하며 나는 마차의 문을 연다.
“주, 죽어...! 꺄아악!?”
“어이쿠.”
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여자 한 명이 단도를 들고 튀어나왔다.
복장을 보니 메이드로 보이는데딱 봐도 초짜의 움직임.
기습으로 누구 한 명이라도 죽이고 죽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다만 그것도 내가 바로 옆으로 피해서 불발.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박게 될 것 같이 되어서 나는 급히 잡아 올렸다.
“이놈들! 이 분이 누군 줄 아느냐! 황녀 전하께...!”
“아...일단 전 적이 아니니까 진정 좀 해주실래요?”
“어...?”
내 손에 잡혀서 버둥거리던 메이드는 내 말에 동작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와...”
그리고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감탄.
무슨 뜻이지?
여러모로 궁금증을 자아냈지만, 지금은 이 궁금증을 해소할 때가 아니지.
나는 모험가증을 보이며 말한다.
“저는 모험가입니다. 지나가던 도중에 수상한 인물들에 습격당하는 것을 보고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아, 모, 모험가셨군요. 저는 또...”
“또...?”
“아, 아니에요. 그보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황녀 전하! 이제 괜찮습니다!”
궁금증만 계속 나게 했지만 역시 명확한 답은 주지 않고 메이드는 마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곧 누군가와함께 마차를 나온다.
“황녀 전하. 이쪽이 저희를 구해주신 모험가분이세요.”
“...”
짙은 푸른색의 머리를 지닌 여자아이.
나이는 한 10살쯤되었을까?
메이드의 등 뒤에 숨어 나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엄청 소심한 아이로 보인다.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다. 게임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아이 같은데.
황족이라고 하면 굉장히 많아서 말이지...
“이쪽은 제국의 4황녀 엘리나 폰 카이테스 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엘리나 황녀 전하. 전 리제라고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나는 황녀에게 다가가서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춰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황녀의 눈이 힐끔 나에게로 향한다.
“...!?”
그러더니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그대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메이드와 똑같은 반응.
‘아니, 도대체 왜 이래?’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제국의 귀족이나 황족들 사이에서의 이상한 검은 머리 찬양.
이건 아주 옛날에 초대 황제와 연관이 있다나?
그렇게 중요하게 나왔던 내용이 아니라서 그 정도밖에는 모른다.
아무튼 어디에서든 희귀한 검은 머리이니 그리 신경 쓸 필요는 없나.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아무...것도...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시선은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신기한 걸까?
그나저나 황족들이 대부분 한 미모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아이도 심상치 않은걸?
나이에 맞게 그 뛰어난 외모가 귀엽게 빛을 발하고 있다.
그 귀여움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소심함도 한 몫 거들고 있는 것 같다.
막 지켜주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리제!”
“끼이익!”
그렇게 내가 황녀에 대해 평가하고 있을 때 블랙이1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시스티아가 이곳 상황을 보고 내려가라 한 모양이다.
시스티아가 전혀 타지 못해도 간단한 명령은 따라주기 때문에 이 정도는 문제없다.
오히려 문제는 이쪽에 있었다.
“브, 블랙 와이번!? 어, 어째서!?”
“!?”
블랙이1이 큰 날개를 퍼덕이며 하강하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엄청 놀라는 두 사람.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은 엄청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용종 중에서도 상위종이기도 하니 일반인이 얼어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제가 키우는 아이니까요.”
“끼이~”
나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듯이 땅에 내려온 블랙이1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 기분이 좋은 울음소리를 내며 굉장히 순한 모습을 보였다.
“서, 설마...!? 블랙 와이번을 테이밍 하신 거예요!?”
“네. 운이 좋게 그렇게 되었네요.”
“우, 운...”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 역력했다.
이들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고작 운 따위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으음...그나저나 어째 나에 대한 경계심이 더 높아진 것 같다?
“뀨우!!”
“어엇...!?”
내가 고민하는 것과 동시에 갑자기 세라가 엄청난 기세로 내품속에서 머리를 뺐다.
이건 나도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세라...너.”
“뀨우! 뀨뀻! 뀨!?”
내가 지그시 바라보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뭐가 아니라는 거야?”
“뀨우...”
뭔가 이상한 것을 느껴서 나오게 된 거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뭐느냐고 물어보면 자신도 모른다고 한다.
...솔직히 세라가 느끼는 것에 대해 가벼이 보기만 하기는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어중간한 것을 찾고 다닐 때는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 아이도 제가 키우고 있는 아이인데...!?”
“귀여워...요...”
이번에는 황녀님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눈을 반짝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어 깜짝 놀랐다.
갑작스러운 적극적인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이유는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새끼용인가요? 엄청 귀엽네요!”
메이드가 내 가슴 쪽, 아니 정확히는 세라를 보고 눈을 빛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작은 황녀님과 같은 상태라고 보면 된다.
“저, 저기...만져 봐도...되나...요?”
“저도요!”
“네. 괜찮아요.”
“뀨!”
세라는 자기 일이라는 듯이 내 품에서 나와 두 사람에게 애교를 부리기 시작한다.
뭐 잘은 모르겠지만 세라의 등장으로 둘의 긴장이 풀렸다.
이거라면 문제없이 일을 진행할 수 있겠네.
그렇게 나는 메이드에게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별장에서 지내다가 저택으로 돌아가던 중 일어난 갑작스러운 습격.
호위는 아무도 없이 그저 마차를 달려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우리가 구해주게 된 것이다.
음...결국에는 유용한 정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다.
이건 레온이 돌아오고 난 뒤에 뭔가 나오겠군.
“근데 어째서 호위도 없이 나오신 거죠?”
“아, 그건 엘리나님께서 그런걸 싫어하셔서요. 아니, 정확히는 무서워하신다고 해야 하려나.”
“아...”
그건 확실히 이해가 가는 거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부분만 이해만 했다 뿐이지 완전히 이 상황 자체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황녀가 외출하는데 호위가 하나도 붙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그것도 떡하니 황실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를 타고 말이야.
나 노려주세요. 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거기에 뭔가 걸리는 것도 있었고 뭔가 미심쩍지만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그냥 넘어가자.
이 뒤로는 마부의 시체를 수습하고 레온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누나!”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레온이 돌아왔다.
내가 잡아오라고 한 놈들을 3명 잡아서 말이다.
“제가 간단히 조사해봤는데 단서가 될 만 한 건 없어 보였어요.”
“그래. 그러면 뒤는 믿을 만한 곳에 맡겨야지.”
“네. 그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이번에 모든 것을 다할 생각은 없었기에 두 사람에게 혹시 아는 사람인지 확인을 하고 아니라는 말을 듣고 우리는 다시 블랙 와이번에 몸을 싣는다.
이번에는 황녀와 메이드를 포함해서.
“서, 설마 블랙 와이번의 등에 타볼 날이 올 줄은 몰랐어요...저 평생 운을 여기에 다 쓴 건 아니겠죠?”
“...!”
둘 다 무서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굉장히 흥분한 모습이었다.
확실히 흔하지는 않은 기회이지만 너무 흥분하지 않았다싶었는데, 왜 그런가 싶어서 잠깐 생각을 해보면이는 제국에 특성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카이테스 제국은 이 대륙에 있는 나라 중에서 유일하게 드래곤을 좋아하며 우호적인 나라다. 나라 전체가 그렇다.
황실의 문장부터가 드래곤인 것을 보면 딱 알 거로 생각한다.
다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드래곤에게 우호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설정으로도 나왔던 적이 없어서 말이야...
충분히 조사할 수 있는 시간은 있었지만, 그리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말이지.
좋아하고 우호적이라는 것도 지금 떠올랐을 정도고.
“어쩌면 오늘이 저희에게 있어 최고의 날인지도 모르겠네요. 엘리나 님!”
“...!”
엘리나는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다.
하긴 밑에는 블랙 와이번. 품에는 세라가 안겨 있으니엄청 좋기야 하겠다.
그렇게 이때의 나는 그저 피식 웃고 넘어갔다.
제국의 용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