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제국(4) (42/107)



〈 42화 〉제국(4)

란델은 나에게 분명히따라간다고 말하긴 했었다.
길드의  때문에 우리와 떨어지게 되었을 때도 반드시 자신과 함께 가라며 나에게 당부했다.

아마도...란델은 이런 상황이 벌어질지 예상하고 그런 말을 했던 것이 아닐까?

확실히 그런 걱정하지은 고마우나 나로서는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해줬으면 했다.

그러면 이런 사태는 면했을지도 모르는데.

“이 빌어먹을 늙은이. 지금 내 소중한 제자에게 뭐 하려고 했어?”

“허허. 이놈이? 오랫동안 길드 일을 하더니 예의를 밥 말아 먹었나 보군.”

“댁한테 차릴 예의 따윈 없으니까.”

서로 으르렁거리며 진짜 거의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이미 두 사람의 근처는 기(氣)로 충만해서 그것만으로도 위험지대가 되어버렸다.
아마 저것도 두 사람이 조절하고 있는 것일 거다. 이곳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다만 저 근처에 가면 아마 비슷한 경지가 아니고서야 그냥 기혈이 뒤틀려서 죽을 지도 모른다.

살벌하네. 살벌해.

그런데 두 사람 이렇게 으르렁거리는 모습을 보자니 굉장히 유치하다고 해야 할까. 나잇값을 못 한다고 해야 할까...
이 두 사람이 옛날에는거의 스승과 제자와 같은 사이로 있었던 때가 있었다.
란델이 제국에 잠깐 몸을 담고 있었을 때의 이야기.

다만 어떤 일이 있어서 그런 식으로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죄송합니다. 리히텐 님. 막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모두 치료하고 쉬어.”

“알겠습니다...”

 봐도 너덜너덜한 기사가 들어왔다 리히텐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간다.
아무래도 란델을 막으려 들다가 된통 당한 것 같은데, 안됐네...
들어왔을 때의 기세를 보면 아마 진짜 죽지만 않을 정도로 했을 것 같은데.

“저분이 말로만 듣던 란델이시군요. 정말로 할아버님과 대등하신 분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

은근슬쩍 내 곁에 다가와서 말을붙이는 리히텐.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자꾸 친근한 척을 하려 드는 거야?

 이미 이 녀석에 대한 호감도가 최하로 떨어져 버렸다.
동료고 뭐고 그냥 남남 하고 싶어.

“이런. 미움받아 버린 걸까요?”

“...”

무시. 여기선 무시하자.
그보다 일단   사람을 어떻게 해야겠는데.

“어디 오랜만에 한 판 해볼까? 나이를 너무 먹어서 녹슬지 않았을까 모르겠네?”

“흥. 내 나이를 얼마나 먹던 너 따위에게 밀릴 내가 아니다.”

이제는 진짜 서로의 무기를 꺼내  것만 같은 분위기다.
만약 이곳에서  두 사람이 싸우게 된다면 아무리 조절한다고 한들 이 저택은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
일단은 란델을 막으면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이런 때만 이용하는 것 같아서 좀 그렇지만 란델은  말이라면 어느 정도 들어주니까.

“란델 씨...!”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행동에 옮기려는 순간이었다.

“아하하하~!”

응접실에 폭소에 가까운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 주인은 리히텐.
뭐야? 미친 거야? 라고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으면 리히텐은 한참을 웃더니 후작에게 말한다.

“아아~ 안 되겠어요. 할아버님. 저는 역시 이런 역할은 어울리지 않는 거 같습니다.”

“음.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군요.”

“에?”

이 때 만큼은 후작과 리히텐을 제외하고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지었으리라.
란델과 후작 사이에 있던 험악한 분위기도 단숨에 사라져서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같이 되었다.

“여성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먹히는 남성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으음. 아마 할아버님이 생각하시는 건 영애들 사이에서나 먹히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리제에게는 오히려 역효과 같습니다.”

“그런 듯 보입니다.”

대화를 거기까지 들으면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수가 있었다.
후작이 여태까지 했던 행동이 모두 연기였는지는 모르지만, 리히텐이 했던 그 느끼한 행동은 전부 연기였다는 것.
도대체 뭣 때문에?

“여태까지 불쾌했다면 미안하다. 할아버님이 분명 이런 방법으로 하는 것이 좋을 거라 해서 말이야.”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리히텐 님도 공범이시니 말입니다. 밤늦게까지 연습도 하시고.”

“흠. 제가 그랬던가요?”

그렇게 장난치듯이 말하는 조부와 손자.
꽤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서 확실한 것은 한 가지.

우리는 이 둘의 재미없는 연기에 완벽하게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

여동생도 죽지 않고 황위에서 내려오지 않은 리히텐은 내가 질색할 정도의 느끼남이 아니고 오히려 내가 마음에 드는 타입이었다.

황족이라는 것을 내세우지 않고 남녀노소 마음 편하고 친근하게 지낼 수 있는 그런 성격.
남녀관계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마법 능력을 상승시키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그런 인물이었다.
이야기를 해보면 황위에도 그리 관심은 없다고 한다.

다만  녀석...

“우리 엘리나를 노린 사람은 아마도 형님들이나 밑에 동생 놈 중 하나 일 거야. 후...그렇게 엘리나 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이런 망할...아니, 나쁜 인간들.”

엘리나에 연관된 것만큼은 굉장히 거칠어지고 자기 일보다도 훨씬 더 신경 쓴다는 것.

말하자면 극도의 시스콘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자신의 여동생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버리고 용사 파티에 합류한 사람이다.
있을  없는 일은 아니다.

아무튼 그렇게 괴상한 연극이 끝이 나고 우리는 좀 더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흔히 말하는 어른들의 시간.
나와 란델. 후작과 리히텐 넷이서 하는 술자리다.

“그럼 결국에 후작님은 저를 보기 위해서 그런 의뢰를 내신 거죠?”

“그건 맞지. 다만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야.”

“음.”

후작은 단지 그렇게 말하고 컵에 따른 와인을 마신다.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잔에 술을 가득 들이부어 마셨다.

“리, 리제.  독한 걸 그렇게 마시면...”

“괜찮아요. 이 정도는.  주량은 제대로 파악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후작이 준비해준 술은 최고급 술이지만, 너무 독해서 마시는 사람은 그리 없다는 드래곤 블러드.
강하면서 용의 피를 연상하게 한다는 붉은색이라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마시고 또 마신다.

15살이되고 이제야 술에 대한 해금이 풀린 것이다.
애주가였던 나로서는 이 순간이 참을 수가 없었다.

“나도 주량은 제법 한다고 자부했는데 리제의 발끝에는 못 미치겠네.”

“주량이 된다는 사람이  그렇게 찔끔찔끔 마셔? 내가 마시는 술도 아니고 와인 마시면서 말이야.  팍팍 마셔.”

“후.  번 그래 볼까?”

내 말에 리히텐은 와인을 잔에 가득 채워 꿀꺽꿀꺽 마셔댄다.
황족의 체면이고 뭐고 없는 모습.

리히텐과 나는 친구 사이가 되기로 했다.

앞서 말했지만 알면 알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기에.
게임에서는 파티 내에서 그리 비중이 크지 않고 조용해서 잘 몰랐는데 제법 괜찮은 녀석이었다.
능력만 좋은 건 아니었단 말이지.

“하아...나로서는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말이야.”

“그렇게 불만만 할 거면 돌아가라. 이제 딱히  녀석은 필요 없어졌으니.”

“진짜 제대로 깽판 한 번 쳐 봐...?”

또, 또 시작이다.   사람.

“나도 이런 할아버님의 모습은 처음 봐서 굉장히 낯설어.”

“아무래도 둘이서 있을 때만 이런 거 같아.”

또 으르렁거리는  사람을 바라보며 우리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이는 처먹을 대로 먹어놓고 그런 모습을 하고 있으면 좋더냐?”

“아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걸 나보고 어쩌라고! 나라고 좋아서 이 모습으로 있는 줄 알아!? 이 모습으로 있으면 불편한 게 어디 한두 가지 일까!? 나도 싫다고!”

란델은 그대로 줄줄이 불만을 토로한다.
나이에 비해 젊은 모습으로 있는 것에 대해 굉장히 힘든부분에 대해서.

“나에게 맞게 좀 말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쳐다보지를 않나, 그렇다고 겉모습에 맞게 말하면 나이에 맞지 않게 주책없다든지...이런 젠장.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그 말은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더더욱 거칠었다.
그렇구나. 확실히 인간으로서 나이에 맞지 않게 훨씬 젊다는 것은 본인에게 있어서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구나.
그것은 결국에는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이니.

란델 나름의 고충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건 나도 남 얘기가 아니란 말이지.

카르아에 의해 용인으로서 각성한 이후부터 내 몸은 엘프보다도 훨씬 더 오래 살게 될 테니까.
란델의 말을 듣고 나니 어쩐지 나도 나의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나는 아마 빙의라는 경험을 했지만, 그래도 인간이다.
인간이라는 개념이 바뀌지는 않았으니 적응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겠지.

그렇게 란델은 술기운에 빌어 자신이 담고 있던 말들을 쏟아냈다.
후작은 그런 란델의 말을 아무 말 없이 그저 들어주었다.

어쩌면 후작이 노린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으르렁 거리기는 하지만 사이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를 부른 이유가 뭔지 이제는 말해주실  있으신가요?”

“음.”

란델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나는 그 사이에 들어가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뜸을 들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너무 시간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것을 이야기하는  우리 황실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 같아 좀 그렇다만, 이야기해야겠지.”

그 말에 나는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리히텐이했던 그 말.
엘리나를 노린 것은 분명 형님들이나 동생들일 거라고.

다음 황제가 되기 위해 후계자 싸움을 하는 것이 틀림없다.

“그 표정을 보니 깨달았나 보군. 본래 내가 자네를 의뢰로 부른 것은 란델을 부르기 위함이었지. 내가 부른다고 해서 솔직하게 올 녀석이 아니니까.”

“당연하지.”

“흠흠. 아무튼, 내가 그렇게 하려고 했던 이유는 우리 리히텐 님과 엘리나 님의 호위를 부탁하고 싶어서였네. 어째서인지는 이미 알고 있겠지? 오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엘리나 님이 위험에 처하셨으니까 말이다.”

“그렇군요.”

자신의 신뢰도 있으면서 실력이 좋은 인물을 찾았고, 그런 인물은 란델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부르면 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나를 미끼로 부르게 되었다.

하지만 직접 나를 보고 난 뒤에는 딱히 란델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이런 거겠군.

“그러면 후작님은 저에게, 아니 정확히는 저희 파티에게 호위를 맡기고 싶다는 것이죠?”

“그래. 보수는 자네가 달라는 대로 주도록 하지. 끝까지 지켜낼 수 있으면 이 늙은이의 목숨 또한 내놓을 각오도 되어 있다네.”

“딱히 후작님의 목숨까지는 필요 없지만, 아무튼 파격적인 조건이긴 하네요.”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굉장히 위험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어떤 수단을 쓸지 모르는 일이니.

그렇지만 아마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을얻을 수 있는 최단의 길이겠지.

“좋습니다. 그럼  조건으로 가죠. 두 분의 호위는 목숨을 걸고 맡도록 할게요.”

아마도 나에게 있어 호위의 의미로는  사람만이 아니게 되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

“잘 부탁하네.”

그렇게 나는 후작의 호위 의뢰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제국에서의 힘겨운 생활의 시작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