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화 〉제국(5)
후계자 싸움이라는 것은 당사자만의 싸움이 아니다.
암암리에 어딘가에서 각 파벌의 사람들은 글에 의한 싸움이든, 말에의한 싸움이든, 피로 의한 싸움이든 어떤 싸움이든 벌이고 있다.
이번 후작이 나에게 호위를 부탁한 것은 자신이 두 사람을 지킬 여력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후작은 적이 굉장히 많다.
제국의 마스터 중 한 명. 그리고 최강의 마스터라 불리는 것은 후작에게 있어 득이 되기도 실이 되기도 한다.
아군도 많으면 적도 많다.
제국 최강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스터끼리 1:1이었을 때의 이야기.
2:1로 덤빈다면 아무리 후작이라고 해도 안전하지 않다.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두 사람과 자신의 딸, 즉 두 사람의 엄마가 되는 제3황비를 지키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이것저것 한 모양인데, 이제는 3황비만을 지키면서 다른 세력의 견제에 들어가는 데 집중한다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나...?
아니, 하지만 그때의 내가 왔어도 그다지 도움은 되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애초에 후작도 나를 부르는 걸로 란델을 부르게 하는 이 방법은 성공률은 낮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냥 해보자. 라는 식으로 했다는 모양이다.
그게 지금 후작에게는 엄청난 카드가 되어서 완전히 숨통이 트이게 된 것이지.
참, 세상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 맞는 것이다.
이 세계에 대해서 알고 미래에 대한 것을 알고 있던 나였지만, 그건 지금 확신이 전혀 없는 미래가 되어서 나도 이제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것도 모른다.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어떻게든 힘을 키우고 한발 앞서 대처할 수 있는 것은 하면서 하는 수밖에.
아무튼 그렇게 후작의 의뢰를 받은 것을 동료에게 전했다.
이미 후작과 이야기하기 전에 어떠한 의뢰가 나올 것이고 판단은 전부 나에게 맡긴다고 했기에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앞으로의 일만을 상의했다.
본래 엘리나는 밖에 있는 별장에서 머물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후작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거의 요새와 다름이 없는 곳으로 밖으로 나오지만 않으면 안전하다고.
그 날은 원래 후작이 데리러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는데 어쩐지 정보가 ‘잘못’ 전달되어서 도중에 만나는 것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본래 후작이 오기로 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몰래 움직이는 거라면 호위가 없는 편이 낫다고 호위도 없었고, 깜빡 잊고 황실의 문장도 벗기지 않았다고.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싶겠지만, 그때는 진짜 그렇게 일이 진행되었다고 한다.
즉, 이것은 내부에 배신자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
후작은 이 배신자를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단서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후작은 일단 배신자의 가능성이 절대로 없는 자들로만 꾸려서 두 사람에게 붙이기로 했다.
두 사람을 시중들 시종들 몇 명과 우리 세 명.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이들뿐이다.
아, 란델은 어떻게 되었냐고?
당연하게도 우리에게 붙고 싶었던 란델이지만, 란델까지 있으면 너무 시선이 집중된다는 것으로 후작 곁에 붙어 약간의 도움만을 주기로 되었다.
란델은 혹시 우리가 위험해지면 한걸음에 달려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후작을 대할 때는 정말로 솔직하지 못하다.
정말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중에 알려달라고 해봐야겠다.
그나저나 길드 일은 괜찮을까 했는데, 셀린만 있어도 잘 돌아가며큰일이 생기거나 길드장으로서 책임을 질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기본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고. 급한 연락은 제국의 길드를 통해 오고 말이다.
뭐, 우리가 오기 전까지는 대부분길드에 박혀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렇게 란델과나뉘게 된 우리는 곧바로 호위의 일을 개시.
기본적으로 두 사람에게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다만 여기서도 호위 인원은 나뉘었는데, 나와 시스티아가 엘리나에게 붙고 레온이 혼자 리히텐에게 붙는다.
리히텐은 본인이 4서클 마법사이기 때문에 단지 호위만 받는다기보다는 레온과 합을 맞추는 형태이지만 말이다.
“긴장을 늦추시면 안 된다고요!”
“크윽...!”
오늘도 두 사람은 저택 내에 있는 연무장에서 수련에 매진한다.
아니, 정확히는 레온이 리히텐을 수련해주고 있다고 해야겠군.
마법사는 근접에 약하니까 그 대책이라고 해야 할까?
앞으로 나타날 적으로 예상되는 존재들은 분명히 무인들일 것이다.
마법을 업신여기고 힘과 무(武)를 신성시하는 제국으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마법사 같은 것은 마법을 사용하기 전에 다가가 죽이면 된다는 그런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리히텐은 이제 18살에 4서클인데, 진짜 천재 중의 천재인데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기본 5서클=초급~중급 마스터로 동급 취급이니까 마법사로서의 마스터 경지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느낌인데 말이야.
그나저나 드래곤을 좋아하는데 마법을 업신여기다니 뭔가 모순적이지 않아?
뭐, 일반적인 서클의 마법과 드래곤의 마법은엄연히 다른 거긴 하지만 그래도 그 발상이 좀 이상해.
후작이나 리히텐에게 물어보면 제국은 본디 그런 나라라는 말만 들었다.
아무래도 본인들도 이상하게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음. 나도 얼른 마법도 제대로 배워야 할 텐데.”
리히텐이 레온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방어마법으로 막는 모습을 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오러로서의 힘은 상당히 끌어올렸으니 마법에 관해서도 좀 어떻게 해야 할 텐데, 아직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단순히 서클 마법을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용언 마법을 배워야 한다.
“리제 님은 마법도 사용하실 수 있으신가요?”
“응. 잘 쓰지는 못하지만 말이야.”
“와...그렇게 강하신데 마법까지. 굉장하세요!”
“뀨우!”
지금 내 품에는 꼬맹이 둘이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정확히는 내 품에 엘리나가 있고 엘리나 품에 세라가 있다고 해야겠지.
엘리나가 세라를 안고 싶어 하지만, 세라는 내 품에서 오래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 것 때문에 최종적인 합의(?)로 이 자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저 시스티아 씨만이라도 떨어져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싫어. 절대로 안 떨어져.”
“이대로는 여차할 때 잘 움직일 수 없어.”
“어차피 리제의 품이 가장 안전한 곳이잖아. 그러니 문제없어! 거기에 방어만이라면 나도 할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지만...”
요 며칠 이곳에서 지내는데 틈만 나면 이 사달이다.
시스티아로서는 나랑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져서 그것을 메운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이거 처음에는 금방 고쳐질 줄 알았는데 이제는 완전히 버릇처럼 되어버렸구나.
나로서도 좋기는 하지만, 좀 더 커서도 이러면 어쩌지 싶어 굉장히 걱정이 된다.
“리히텐 님!”
그렇게 내가 장래에 대한 걱정을 조금 하고 있으면 기사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항상깍듯이 예의를 지키던 기사가 저런모습을 보이다니, 어지간히 급한 일인 모양이다.
...어쩌면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찾아왔다든가?
“무슨 일이지?”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네. 제 1황자 전하이십니다.”
그 말을 들은 리히텐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한다.
역시나 기다리고 있던 손님인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제 1황자. 설마 세력 중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니고 있다는 1황자가 먼저 움직일 줄이야.
“이쪽으로 모셔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기사가 떠나가고 두 사람은 연무장에서 내려온다.
리히텐은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간단하게 손님을 맞을 준비.
나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해둔다.
그리고 곧 1황자로 보이는 인물이 나타났다.
허리춤에 있는 검부터 시작해서 몸에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이 마법이 부여된 물건으로 보이는 것들뿐이다.
그게 너무 눈에 띄어 외모 확인이 뒷전이 되어버렸다.
리히텐이랑 형제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좋게 말하면 평범, 나쁘게 말하면 무개성.
황제가 굉장히 미형이라 하는데, 아쉽게도 그 유전자는 못 물려받은 것 같다.
불쌍하네...
“리히텐. 형님이 친히 방문했는데 직접 맞이하지 않고 뭐하는 거지?”
“형님과 제가 ‘적’이라고 봐도 될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는 것은 제국 전체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굳이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려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존댓말도 써드리고 소중한 대련도 멈추고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맞이한 것만 해도 감사히 여기시지요.”
“하...진짜 한 마디를 지지 않는구나.”
형제들 사이에 인사는 필요하지 않았다.
얼굴을 보자마자 험악한분위기를 내뿜는 두 사람은 그대로 기 싸움을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1황자 주변을 바라본다.
열댓 명의 기사가 있었는데, 단순히 호위라고 하기에는 숫자도 많고 그 질도 높았다.
1황자 바로 곁을 지키는 고집이 있어 보이는 남자와 히죽거리고 있는 남자는 수준으로만 보자면 마스터급. 그 외에도 익스퍼트 최상급은 되어 보인다.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온 것인가. 아니면 싸움을 걸기 위해 준비해온 것인가.
...뭐, 당연히 둘 다겠지.
“도대체 뭐 하러 오신 겁니까? 제가 좀 바쁘니 돌아 가주셨으면 합니다만.”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좀 들어서 말이야. 블랙 와이번을 3마리나 길들인 드래곤 여자가 네 호위로 있다며?”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나로 향한다.
이 집중되는 시선은 처음에는 굉장히 부담되었는데, 요즘은 하도 느껴져서 점점 신경 쓰이지 않고 있다.
그보다 저 드래곤 여자라는 건 도대체 누가 지은 거야?
“솔직히 소문이 과장되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정말로 블랙 와이번 3마리가 있고, 저 외모라니...거기에 강하기까지 하다지? 이름이 뭐지?”
“리제라고 합니다.”
“리제. 리제라...”
내 이름을 읊조리며 머리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관찰하듯이 바라본다.
뭘 그렇게 보냐. 이걸 확 그냥...!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는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너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다.”
“기회요?”
“그래.기회. 리히텐 같은 건 버리고 나에게로 와라. 거기는 가장 가망성이 없는 줄이다.”
“가망성이 없는 줄이요? 그럼 1황자님의 줄은 가장 가망성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 거기에 저 녀석에게 보수로 뭘 받는지는 모르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좋고 많은 것을 챙겨주마. 어떠냐?”
네가 받아들이지 않고는 못 배기겠지.
그런 표정으로 나를 우쭐거리며 바라보는 1황자.
지금 같은 상황만 아니었으면 짜증만 났을 텐데, 지금의 난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굉장히 웃겼다.
“풋...!”
“...뭐가 웃기지?”
“아니, 아니요. 저기 제가 뭘 받는 조건으로 여기에 있다 생각하세요?”
“고작 해봤자 돈...아니면 아티팩트일까?”
“틀리셨어요. 정답은 후작님의 목숨.”
“...뭣!?”
1황자는 물론 주변에 있던 자들도 당황한다.
하긴 그럴 거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후작이 자신의 목숨을 보수로 내놓았다니.
놀라지않을 수 없을 거다.
“후작님 목숨보다 더 좋고 많은 보수는 뭘까요? 1황자님. 제가 생각하기에 당신을 100마리 1000마리 준다고 해도 모자랄 것 같은데.”
“뭐, 뭐라고...!?”
“그야 그렇잖아요. 타지 않는 쓰레기와 후작님을 비교해봤을 때, 어떤 것이 가치가 있는지는 뻔하니까.”
“이, 이....!!”
녀석은 내 도발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 있는 상태다.
이제 마무리를 지을 차례.
“그 옆에 둔 것들은 장식입니까? 그렇게 놀려두지 말고 그냥 덤벼.”
그것은 일종의 선전포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