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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5화 〉제국(7) (45/107)



〈 45화 〉제국(7)

“하하! 진짜로 움직일 줄이야. 멍청하긴.”

어떤 남자의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는 와인이 따라진 술잔을 기울이고는 자신의 정면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커티스 후작.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

중년의 남자, 커티스 후작은 제국에서 가장 강하다는 페이론 후작에게 유일하게 닿을 수 있는 자라 칭해지고 있다.
그의 경지는 확실히 후작과 비슷하긴 하지만, 아직 남은 그 한 걸음을 따라가지 못해 최강이라는 칭호는 얻지 못하고 있다.

그는 눈앞의 2황자. 위슬러의 질문에는 대답하기 싫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임시이긴 하지만 자신이 한때 모시던 이였으니까.

“...뭐, 됐다. 아무튼, 이걸로 눈에 거슬리는 형님이랑 3황자에 가담한 녀석들의 수준을 알 수 있었어. 거기에 형님의 세력도 무사히 흡수되었고...음. 좋은 일뿐이야.”

조용히 입을 다문 커티스 후작의 반응에 피식 웃고는 다 마신 잔을 채운다.
어차피 자신이나 커티스 후작이나 똑같이 더러운 일들을 해왔다.
이제 와서 깨끗한 척을 하는 후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초에 자신의 힘의 근원은 후작이지 않은가.
예전 1황자가 아닌자신을 지지한다고 하며 계약을 했을 때부터 바뀌지 않는 사실이다.

“근데 저쪽에 실력 있는 마스터가 3명이나 있는  역시  부담스럽네. 후작까지 한다면 4명이지 않나. 이쪽으로 회유할 만한 사람은 없는 건가?”

“전부 란델 경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쯧. 란델 그 녀석은 어째서 갑자기 페이론 후작의 편을 드는 거지.”

“그도 과거에는 제국의 기사였으니 생각하는 바가 있겠지요.”

“아. 그러고 보니 과거 페이론 후작의 부하였던가. 근데 내가 듣기로는 굉장히 좋지 않게 갈라졌다고 하던데?”

“저희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 봅니다. 애초에 어떤 이유로 갈라졌는지는 당사자를 빼고는 아무도 모릅니다.”

당시에는 제국에서 꽤 오르내리던 이야기였으나 역시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했다.
란델은 이유가 어쨌든 제국을 떠났고, 페이론은 실력만으로 평민 출신에서 귀족의 자리에 올랐고, 황족만이 될  있는 공작 작위를 제외하면 최대라고  있는 후작에 올랐다.
게다가 딸까지 황제에게 시집을 보냈고 말이다.

“뭐,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제 쪽에서 전부 막을 수 있습니다.  비책이 있으니까요.”

“나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그 비책이 무엇인지 굉장히 궁금하지만, 묻지는 않겠어. 어차피 자네와 나는 계약으로 묶여 있으니까.”

“...”

충성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계약이다.
물론 2황자 위슬러가 황제가 된다면 모셔야 할 주군이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충성보다는 계약을 선택했다.

“그나저나 다른 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 리제라는 여자는 어떻게안 될까 싶은데 말이야. 형님만큼 여자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여자는 확실히 남자라면 누구나 탐이 날 것만 같은 여자야. 리히텐 그 녀석에게 주는 건 너무 아까운데.”

“그건...”

위슬러의 말에 후작이 뭔가 말하려고 한 찰나였다.
문이 열리면서 자그마한 인영이 들어와서 위슬러에게 달려갔다.

“형아~ 이야기 다 끝났어?”

“들어오지 말라고 했지. 아디스.”

“그치만...심심한데...!”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짓는 위슬러에게 6황자.  황제 쟁탈전과는 전혀 관계없는 막내이며 위슬러의 친동생인 아이가 위슬러에게 다가가 그의 다리에 손을 올린다.

“윽!? 뭐, 뭐야!?”

“응? 뭐가?”

위슬러는 갑자기 느껴진 따끔함에 아디스의 손을 탁 치지만, 따끔함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마치 자신이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고.
위슬러는 이상함을 느끼고 자신의 바지를 걷어 올려서도 확인하지만,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형.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밖에서 혼자 놀아.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았어...”

아디스는 형의 말에 작은 어깨를 늘어트리고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방을 나간다.
그 모습을 쭉 보고 있던 후작이 문이 닫히면 입을 열었다.

“좀 더 아디스 님에게 잘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유일하게 남은 혈육인데 말입니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게다가 저 녀석은...”

“아디스 님이 뭔가 있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보다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더 이야기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후작은 얼버무린 말에 대해 궁금하긴 했지만, 그냥 넘어간다.
아마 자신은 그 대답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가족은 가족이라는 건가...’

후작은자신의 앞에서 재잘거리는 위슬러를 앞에 두고 그런 의미심장한 말을 속으로 하는 것이었다.

*



1황자는 서약을 쓰고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났다.
앞으로 황제 쟁탈에는 절대로 볼 일이 없겠지.
다른  곳으로 유배되듯이 가버려서 우리와도 볼 기회도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 1황자와의 일이 끝난 뒤, 좀 더 세력을 키우기 위해 나갔던 페이론 후작이 돌아왔다.
이번에 가장 세력이 컸던 1황자가 깨졌기 때문에 떨어져 나온 자들이 꽤 있어서 기대하고 있었지만, 돌아온 후작에게서 들은 말은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거의 모든 세력이 2황자에게 붙었다고요?”

“음. 커티스 후작을 시작으로 한 원래 1황자 세력이 전부 갔다고 하는 것이 정답이겠지.”

내가 궁금했었던 커티스 후작.
페이론 후작과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자라고 하는 그는 본래 1황자 세력이었는데, 그게 이번에 대거 2황자로 옮겨갔다고?

“1황자는 더미고 진짜는 2황자라는 말이겠군요.”

“그렇지. 아마도 1황자를 내부에서 쉽게 쳐내려고 이런 일을 벌인 것 같다만, 너무 장황하다는 생각이 들었네.”

“아마 몰래 내부에서 1황자 세력을 흡수하고 있었겠죠. 저희에게 졌던 백작과 자작도 사라진 것을 보니 몰래 그쪽으로 흘러들어 갔을 테고...”

“결국 우리는  좋은 일만 했을 뿐이라는 것인가...”

“아니요. 어차피 1황자는 적극 저희를 위협하는 세력이었으니까  구심점이 하나 없어졌다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성과고, 지금 3황자 세력이 이런 힘이 있다고 알리는 것도 할 수 있었으니까 마냥 손해는 아닙니다.”

어차피 나나 레온의 힘이 어느 정도 알려지는 것은 각오한 일이고 오히려 알려야지만 이 상황에서는 유리하다. 쉽게 덤빌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우리의 비장의 패는 따로 있다. 그러니 적절한 순간까지 숨기고 있으면 된다.

“확실히 그건 그렇군.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모양이야.”

“문제는 여기서 세력을 어떻게 더 늘리느냐인데, 현재 비어 있는 곳은 없죠?”

“다들 어딘가에 속해 있지. 그게 아니라면 아예 참전하지 않겠다는 중립 세력이 있을 뿐.”

“중립이라...”

좋게 말하면 평화주의자. 나쁘게 말하면 방관자.
누가 다음 황제가 되었든 그에 따르겠다는 자들이다.
이들도 전체로 따지면 상당히 숫자가 되고 힘도 있지만, 웬만해서는 건들 수가 없는 곳이다.

만약에 우리를지지해준다면 지금 엄청나게 몸을 불린 2황자와도 비빌 수 있겠지만, 아마 무리겠지.

“일단 가능성이 희박한 건 내버려두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여기서는 일단 다른 세력과 동맹을 맺는 게 어떨까요?”

“4황자와 5황자 말인가? 확실히 세력이야 가장 약하긴 하다만...”

“왜요?”

“아마 쉽지는 않을 걸세. 그들은 확실한 이익으로만 움직이니 말이지. 지금이야 황제 자리를 포기하고 있지 않지만, 그게 확실한 이익이 되니 유지하고 있는 것이지.”

“이익...혹시 4황자 5황자가 세력이 가장 작은데도 버틸 수 있는 건.”

“돈일세.”

아, 역시.
무력이 아닌 돈의 힘.
후작의 말을 들어보면 4황자 5황자는 쌍둥이로 어머니가 상업에서 유명한 귀족 출신에 그들을 따르는 상인들이 줄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돈으로 할  없는 것은 없다.
돈으로 못하는 것은 애초에 돈이 모자랐을 뿐.

이런 식으로 돈 제일주의이며 제국의 돈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세력에서도 쉽게 덤비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을 동맹으로 끌어올 있다면 확실히 힘은 되겠지. 그들은 황제 자리에는 욕심이 없고 오로지 이익에만 관심이 있으니까. 다만 그에 따른 확실한 이익을 전해야만 동맹을 맺을  있을 게야.”

“황족이 아니고 상인을 상대하는 마인드로 대해야 한다는 말이로군요.”

“아니지. 황족이기도 하면서 상인이기도 하니 그를 가정하고 대해야만 한다는 게다.”

“...복잡하네요.”

“복잡하지.”

하아...하고 나와 후작은 동시에 한숨을 쉰다.
당연하게도 뭐든 쉬운 일이 하나도 없다.
정말 머리가 아파진다.

“진짜 내부에서 이런 식으로 피바람이 불고 있다니 솔직히 말해 제정신이라  수가 없네요.”

“평화로우니 그런 것이지.  나라끼리의 전쟁은 교단에서 금해지고 있으니, 내부적으로 이렇게 되는 것이다. 비단 우리 제국뿐만 아니고 다른 나라도 비슷할 테지.”

“평화라...”

얼마 지나지 않아 성녀가 정해지고 용사가 탄생해 마왕이 부활한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그렇게 느끼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냥 확 마족이라도 나와서 깽판이라도 치면 좀 나을 텐데.

“그러고 보니 엘리나를 노렸던 놈들에게서는  좀 얻었나요?”

“아니,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지독한 놈들이야. 아마 특수한 훈련을 받은 녀석들이겠지.”

“...”

어쩌면 마족과 연관된 놈들이라 생각했는데 아닐까?
시스티아가 아무런 반응도 없었던 것을 보고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은 했는데 조금 아쉽긴 하다.

아직 마족이 숨어들지는 않은 걸까.

거기에 엘리나는 포기한 건지 그것도 좀 궁금하고 말이지.
아니면 시기가 아직 이른 건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쉽게 움직이지는 못하겠네요.“

“음. 그건 그렇지. 하지만 아마 가까운 시일 내에 뭔가가 움직이긴 할 걸세.”

“왜죠?”

“곧 황제 폐하의 생신이시니 말이지.”

“아...”

확실히 그건 무언가 크게 움직이지 않을까 싶을 이벤트였다.
딱히 뭔가가 벌어지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이벤트이기도 하고 말이다.

황제의 생일 전후로 제국 전체가 축제를 벌인다고 하니까.

“후우...정말이지 이런 혼란은 없어야 하는데 말이지.”

후작은 언제나 제국을 위해서 움직이는 사람으로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이 쟁탈전에 참여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다.
이런 개싸움이라면 없는 것이 낫다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니까.

“그분이 있었다면...”

“그분이요?”

“자네도 들어 본 적이 있을 거야. 제국의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나요?”

“그래. 알고 있는 사람은 적지만 정말로 계셨지. 15년 전에 홀연히 사라지시기 전까지는 말이야.”

확실히 대륙에는 유일한 그랜드 마스터가 한 명 있다고 정보로 알고 있긴 했었는데, 그게 제국이었어?

“어떤 사람이었죠?”

“그저 제국의 평화를 위해 힘 써주셨다는  외에는 나도 잘 모르겠군. 성별도 이름도  밖에 여러 가지 전부다. 언제나 검은 갑옷과 투구를 쓰고 다녔기에 흑기사라고만 불렸지. 그분에 대해  아는 것은 유일하게 황제 폐하뿐일세.”

“그렇군요...”

어떤 인물인지 알고 싶었는데 말이야.
만약 같은 편에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앞으로가 편할 텐데.

“아, 그러고 보니 소문으로는 여성이었다던가. 어디까지나 잠깐 떠돌았던 소문이기에 진상은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지.”

“후작님은 어떨  같은데요?”

“음. 확률적으로는 낮다고 생각하지만, 자네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아예 없다고 하지는 못할 것 같군.”

“아하하...”

저를 기준으로 삼지 말아 주시죠...
안 그래도 치트를 사용 중이라 찔리는데.

“아무튼 많이 안타깝군. 안타까워.”

그렇게 한숨을 쉬는 후작의 모습은 굉장히 피곤해 보였다.
없는 사람을 그렇게 찾아서 어쩌겠는가.
있는 사람만으로 어떻게 해봐야지.

나도  더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황제의 생일은 점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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