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제국의 수도(2)
제국의 황제가 나를 만나고 싶다.
뒤늦게 온 후작에게까지 그 말을 듣고 이게 뭔가 싶었지만, 그래도 한 나라 황제의 초대인데 간다는 선택지 외에는 없었다.
“좀만 더 빨리 알려주지.”
나는 후작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뭐,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후작도 단순히 황제가 나에게 관심이 많다. 라는 것만으로 이렇게 곧바로 부를 줄은 몰랐을 테니.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정중히 모셔오라는말만 들었기에...”
“...”
다른 사람은 없이 오로지 나만 불렀다는 점이뭔가 또 이상함을 느낀다.
황제. 황제가 나를 부를 만한 이유. 마스터야 제국에는 넘치니 그것 때문은 아닐 테고, 역시 블랙 와이번 때문일까?
그게 아마 가장 확률적으로는 높을 것 같다.
“이곳입니다.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 네.”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떠나가는 기사.
들어보니 근위기사 단장이라던데이런 심부름 같은 일을 하네.
아니, 단장이니까 더 그런 걸까. 황제에게 가장 신임을 받는기사이니.
“그냥 들어가라 했지...”
내 앞에는 거창한알현실 같은 것이 아닌 문도 작은 그런 방이었다.
방 자체도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안에는 인기척이 둘. 그 중 하나는 황제겠지.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내가 느낀 대로 안에는 그리 크지 않고 책장과 탁자 같은 것이 좀 놓여 있는 그런 방이었다.
탁자 앞에는 황제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메이드가 서 있었다.
“...”
황제와 눈이 마주친다.
역시 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걸까. 내가 무심코 약간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굉장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것과는 다르게 황제가 나를 보는 시선에는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
그 시선에는 당혹, 불안, 슬픔, 기쁨, 그리움, 두려움 등등 온갖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저기...?”
“폐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손님을 그리 빤히 바라보면 실례입니다.”
“아, 흠흠. 이쪽에 와서 앉게.”
“네.”
곁에 있던 메이드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황제는 자신의 정면 자리를 손짓하며 앉으라고 권했고, 나는 곧바로 그 자리에 앉았다.
자기소개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그렇게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메이드가 움직였다.
“실례하겠습니다. 리제 님.”
메이드는 나만큼이나 여자치고는 키가 크고 굉장히 차가운 이미지였다.
거기에어째서인지 독설도 굉장히 잘할 것 같았다.
“네. 특기입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괜찮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으니까요.”
내 생각을 읽은 메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넘기고는 분주히 움직이며 마치 다과회를 한다는 듯이 차와 과자를 준비한다.
차의 향기로움과 준비된 쿠키는 엄청난 고급품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요리하는 입장에서는 어디서 구하고 어떻게 만든 건지 굉장히 궁금했다.
“뀨!!”
“아! 이 녀석!”
그 향기에 이끌린 것인지 얌전히 있으라고 말해두었던 세라가 품속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돌발 상황이어서 당황했지만, 눈앞의 두 사람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세라 님의 몫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뀨우~~”
그 말에 기분이 좋다는 듯이 작은 날개를 퍼덕퍼덕 거린다.
너무 익숙하다는 느낌으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나만 이상하게 느끼는 것일까.
아무래도 나에 대해 굉장히 조사를 많이 한 것 같다.
“나오게 해서 드시게 하는편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네요.”
“뀨웅!”
내가 직접 잡아 꺼내 탁자위에 올려놓으면 곧바로 쿠키가 담긴 접시가 세라 앞에 준비되고 세라는 그것을 보고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그래도 막 먹지 않는 것은 칭찬해줄 만 하다.
“천천히 먹어야 한다?”
“뀨우~”
기다렸다는 듯이 쿠키에 달려든다.
쿠키는 세라가 한입에 먹기도 좋게 아주 잘게 부수어져 있었기 때문에 평소같이 내가 먹여주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리저리 어지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흘리지말고, 너무 묻히고 먹는다. 나 봐봐.”
“뀨우...”
손수건을 꺼내서 잔뜩 묻힌 과자 부스러기를 떨어트려 준다.
어차피 금방 또 묻힐 테지만, 틈이 날 때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일이 난다.
저번에이대로 두었다가 옷 속이 큰일(?)이 났던 적이 있다.
더러운 채로 그대로 파고드니까...
그래서 그때부터 쭉 이렇게 행동하고 있다.
“엄마 같군...”
“엄마 같네요...”
“아니, 엄마 아닌데요.”
이런 말도 이제는 익숙할 정도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많이 듣던 말이니까...
근데 나는 어디까지나 보호자지 엄마는 아니야. 하다못해 아빠라면 어떻게든 받아들일 테지만...엄마는 진짜 아니야.
그렇게 우리는 세라가 먹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그러다가 황제가 말을 걸어왔다.
“그대는 어째서 용이, 드래곤이 우리 제국을 대표하는지 아는가?”
“아니요.”
게임에서의 배경은 주로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한 여행으로 갖가지 세세한 설정은 나오지 않는다.
마을이나 도시 같은 경우는 어디까지나 한동안 거점으로 삼으며 성장하기 위한 곳에 불과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 제국의 상징이 검은 용인 이유는 우리 제국이 검은 용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이기 때문이지.”
“제국이 용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라고요?”
제국은 이 대륙에서 가장 먼저 나라로 만들어져 이어져 온 곳.
물론 처음부터 제국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면 모든 나라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역사가 가장 긴 나라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국의 주장이라며, 다른 나라에서는 대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특히 가장 가까운 옆 나라인 마르티나 왕국에서는 전면부정하고 있으면서 그들은 그들대로 다르게 주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왕국과는 사이가 굉장히 좋지 않다.
아무튼 제국의 건국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려진 적이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듣게 되다니.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황제의 입에서 듣게 되었으니 가장 신빙성이 높은 것이겠지.
“음. 기록으로도 남겨져 있지않은 사실이지만, 황제에게 대대로 전해지는 내용이니 반 정도는 믿어도 되는 일이지.”
“왜 반이죠?”
“어디서 어떻게 왜곡되었을지 어떻게 아는가. 나는 실제로 보고 들은 것 말고는 잘 믿지 않으니 말이지.”
“...”
아니, 그거 제국을 대표하는 황제가 할 말인가요.
그건 그렇고 나는 어째서 이런 곳에서 황제랑 이런 대화를 하는 거지.
“그런데 황제 폐하. 저는 어찌하여 부르신 겁니까?”
“그것은...”
그런 내 질문에 황제는 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이상하다. 너무나도 이상하다.
황제는 나를 처음 봤을 때 내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들을 자주 보였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슬쩍 느낄 때가 있다.
나를 굉장히 반갑지만, 그래도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 느낀다고 해야 할까.
아니, 한 나라의 황제가 나에게그런 감정을 보일 일이 있나?
애초에 나는 황제와는 처음 만나는데?
“아무래도 폐하께서는 많이긴장하신 것 같으니 제가 대신 답해 드리겠습니다.”
“아, 네.”
그러고 보면 이 메이드의 존재도 굉장히 신기하다.
아무리 황제 직속 메이드라고는 하지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사이에 끼어들 수 있는 메이드가 있을까?
그 자식들도 어려워하는 황제에게?
“리제 님.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께서는 유미네 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 유미네요?”
그 질문은 들은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당연히 누구? 였다.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기억 속을 찾아보자.
유미네. 유미네...음. 모르겠는걸...?
“이 반응을 보면 그저 닮은 사람일까요?”
“아니, 그래도 저 모습은 그저 닮았다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나마 딸이라고 한다면 모를까.”
“리제 님이 올해로 15살.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그때는 이미 뱃속에 있으셨다고 해야 합니다만...아니, 하지만 솔직히 믿을 수 없습니다. 그 유미네 님이시라고요?”
“그건 그렇지...마음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못 들어봤으니......아.”
“아? 그 아? 의 의미는 뭔가요. 뭔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라도? 그게 아니라면 뭔가를 하신 겁니까? 이 쓰레기!”
“뭔지도모르면서 쓰레기라니! 말이 좀 심하군!”
“그게 아니면 개쓰레기 난봉꾼 뒤져라 라고 해드릴까요?”
“내가 아무리 네 독설에 익숙하다지만, 그만해다오...”
“그건 이다음에 나올 말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으, 으음...”
그렇게 두 사람은 마치 황제와 메이드가 아닌 친구사이와 같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관계가 아닌 정말 오랜 기간 사이를 둔 관계.
그것에 나는 더더욱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들의 대화로 추론하자면 내가 유미네라는 사람과 판박이라 할 정도로 닮았고, 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그런 사람은 모르겠다.
“...아니, 하지만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지만, 아마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있을 것 같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불안과 기쁨...그런 감정들이 뒤섞여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것은 ‘나의’감정이 아니다.
이것은 ‘리제’의 감정이며 기억이다.
이 몸이 되어서 한 번도 나왔던 적이 없었던 리제가 겉으로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리제’에게 있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다.
“아마도...”
“...?”
한창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은 그런 내 말에 나에게 시선을 돌린다.
“두 분의 말씀을 듣고 그 유미네라는 사람이 제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 두 분이 찾고 있는 분이 같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닮았다면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모릅니다.”
“그러...시군요.”
두 사람은 굉장히 안타깝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낸다.
특히 메이드는 이를 악물고 마치 슬픔을 참아낸다는 듯이 있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잘 알 것 같았다.
유미네라는 사람을 정말로 좋아했구나 하고.
“그대가 스...아니, 유미네를 모른다고 하더라도 확실히 그렇다면 관계가 있을 것 같군.”
“가능성은 높을 거로 생각됩니다.”
“음...”
내 대답에 황제는 무언가를 생각하듯 입을 다물었고, 그 뒤를 이어 메이드가 말한다.
“저희는 15년을 찾아다녔습니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단서는 없었죠. 이제는 검은 머리인 것 같은 여성이 나타났다는 말만으로도 철저하게 조사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군요...”
“리제 님에 대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어떠한 연관이 있다고 느껴져서 이렇게 직접 초대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외모마저도 이렇게나 똑같으셔서...”
그녀는 울 것 같은 얼굴로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나는오늘 처음 본 사람. 거기에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닌 나와 똑같이 생긴 다른 사람.
그럼에도 나쁜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제 못 보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아마도 이두 사람은 내 입에서 직접 말을 듣기 전까지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겠지.
“아우리아.”
“아...! 죄송합니다. 리제 님.”
황제의 나무라는 듯한 부름에 메이드, 아우리아는 손을 급하게 떼고 고개를 숙이며 사죄한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면 아우리아는 메이드복의 치맛자락을 꾹 쥐고는 자신의 끓어오르는 감정을 참아내기 위해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에는 황제를 나무라던 그녀였는데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감정이 복받쳐 올라온 모양이다.
어쩌면 이게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르지.
일부러 감정을 죽이려 차가운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일 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이 자리 자체가 너무 갑작스러워 당황스러운데요. 그에 더해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제 어머니일지도 모르는 사람이 그랜드 마스터라는 흑기사일 줄은.”
“알고 있었나?”
“후작님에게 들었거든요. 15년 전, 갑작스럽게 사라진 그랜드 마스터가 있었다고요. 거기에 여자인 소문도 있었다고.”
“그녀는 관심받는 것이 귀찮다며 언제나 사람 앞에 나타날 때는 전신을 갑옷으로 두르고 나왔지. 뭐, 그 외모를 생각하면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야. 거기에 역사상으로도 한 손에 꼽을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최강의 경지인 그랜드 마스터였으니더더욱 그랬지.”
“분명히 갑옷을 입는 것을 고수하지 않으셨다면 분명 나라가 뒤집어졌을 겁니다. 지금의 리제 님과 같이 정말로 아름다우셨거든요.”
“아, 아름다워요...?”
“지금의 리제 님과 같이 외모만으로 평가받는 것을 매우 싫어하셔서...”
“...”
그 말을 들으며 여태까지 받은 수모(?)를 생각해낸다.
확실히 그런 것을 받을 바에야 갑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낫지.
“나도 한 번 고려해볼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
굉장히 심각한 표정의 아우리아가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면서 나를 말린다.
아우리아는 단정한 모습의 상당한 미인이었는데 그 얼굴이 불쑥 들어오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안타까운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하, 하지만...”
“유미네의 경우와 그대와는 다르지. 유미네의 경우는 처음부터 자신의 외모를 숨기고 다녔지만, 그대는 이미 알려진 상태이니.”
“...”
“거기에 매일 같이 갑옷으로 전신을 그렇게 숨기고 다니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뀨우! 뀨!”
“아, 알았다고요!”
그런 황제의 말과 함께 세라도 마치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안 된다는 듯이 소리를 내는 것으로 아무래도 내 편은 아무도 없는 듯하다.
“후우...아무튼. 저를 부른 이유는 그게 다인가요?”
“소문의 ‘용희’의 모습을 직접 보고 제국에 스카우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아직 유미네가 있었을 무렵, 그녀의 용과의 친화력으로 제국의 와이번 기사단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으니 말이지.”
제국의 와이번 기사단의 성장에는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군...
“죄송합니다만,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안 될 것 같습니다.”
“뭐, 그렇겠지.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다.”
황제 쪽에서도 가볍게 물어본다는 느낌이어서 그리 간절한 이야기는 아니라 생각은 했다만, 엄청 쉽게 넘어가네.
그편이 나로서는 좋지만.
어쨌든 갑작스럽게 시작된 황제와의 대면이었지만, 생각 외로 얻은 것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아마 ‘엄마’로 생각되는 인물이 나올 줄이야.
거기에 아마 이 두 사람도 모르는 그 유미네라는 사람의 일을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여자는 분명 드래곤. 그것도 블랙 드래곤.’
드래곤이 어째서 제국에서 그것도 그랜드 마스터로 불리면서 지냈을지는 모른다.
어째서 다른 사람에게도 아무 말도 없이 떠났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누군지 어째서 리제(나)를 낳아놓고 버렸는지도 모른다.
착해빠진 ‘리제’와는 다르게 ‘나’는 그저 용서할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