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화 〉제국의 수도(3)
갑작스러운 황제의 부름.
유미네라는 인물에 의해 성사된 이 갑작스러운 만남은 나로서도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게 된 것으로 마무리 지어진다.
“결국 아 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끝나버렸네요.”
“쯧. 그 쓰레기 황제가 뭘 알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습니다.”
대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일이 있다고 떠난 황제.
나중의 또 대화를 나누자는 말을 남기고 나는 아우리아의 안내를 받아 동료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제와 아우리아.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던 것인데 도대체 두 사람은 무슨 관계일까.
“황궁에서 그렇게 대놓고 폐하를 욕해도 되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요.”
“확실히 그렇지만, 그건 어떻게 아신 거죠?”
아우리아의 행동거지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정말 노련한 사용인의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저렇게 확신을 하고 말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황궁에서는 꽤 많은 분이 아는 사실이지만, 저는 수인입니다.”
“!”
아우리아의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붉은 머리와 똑같은 색의 털을 가진 동물귀가 머리 위에 생겨났고, 긴 치마 밑으로 푹신해 보이는 꼬리털이 보였다.
인간의 모습에서 동물귀와 꼬리가 있는 특징을 가진 수인의 증거였다.
“그랬군요.”
“네. 수인은 인간보다 신체능력이 월등히 뛰어나니까요.”
수인은 마나와의 친화력이 떨어지는 대신 태어나서부터 갖추는 신체능력이 엄청난 종족이다.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신체능력만으로도 맞서 싸울 수 있으니 그 능력이 짐작될 것이다.
“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다른 종족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라지만, 황궁에서 일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텐데요.”
기가 막힐 정도로 인간제일주의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종족에 무조건 함부로 대하지 않는 나라가 제국이다.
참고로 인간제일주의가 가장 심한 것이 마르티나 왕국이며 그 덕분에 아인의 노예가 가장 많이 있다.
아마, 나도 용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리 좋은 시선은 받지 못할 테지.
아무튼 제국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다.
황궁같이 중요한 곳에는 들어오기는 힘들 것이다.
“저는 옛날에 유미네 님께서 이곳에 데리고 와주셨습니다...이것을 봐주시겠습니까?”
“어, 어? 무슨...!?”
아우리아가 갑작스럽게 치마를 확 들쳐서 자신의 하반신을 드러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나였지만, 그녀의 하복부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단번에 이해했다.
“노예문...”
“노예상에게 붙잡혀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었을 때 유미네 님께서 저를 사서 구해주셨습니다.”
아우리아는 다시 치마를 내리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굉장히 괴롭다는 그런 감정이 전해져 왔다.
확실히 얼마의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정말로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노예에게는 용도에 따라 노예문을 새기는 부분이 다른데, 여자 노예에 하복부에 새긴다는 것은 성노예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노예는 노예 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부류 중에 하나다.
“그전에는 정말로 끔찍한 시간이었습니다. 조교라는 이름으로 온갖 짓을 당했으니까요. 그나마 순결만큼은 빼앗기지 않은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자조하듯이 웃는 그녀를 보며 내가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순결을 빼앗지 않은 것은 단순히 그래야만 값이 비싸지니까.
그것을 안 하는 범위 내에서 정말 말 못할 짓을 다 당했을 것이다.
“...인간이 밉지는 않았나요.”
“미웠습니다. 정말 죽도록 미웠어요. 저를 구해주신 유미네 님도 한동안은 미움의 대상이었지요. 하지만 점점 그분의 진심을 알아가면서 다른 상냥한 인간들을 알아가면서 그런 것은 점점 희미해지더군요.”
내가 빤한 질문을 한 것은 현재 그녀의 진심을 듣고 싶어서다.
마족과의 전쟁 때, 시종일관 방관만 하는 엘프와는 다르게 수인은 적극 마족을 도와 인간과 싸우는 것을 택했다.
수인이라는 말만 듣고 어쩌면 제국 내부에서 마족을 도왔던 것은 아우리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우리아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제국의 황제 직속 메이드 겸 정보부서 일원으로 지내고 있지요.”
“그, 그런 걸 저에게 말해도 돼요?”
정보부서라고 하면 은밀한 일이 아니던가.
제국의 사정은 모르지만, 란델에게 들은 정보부서라는 곳은, 같은 소속인 것조차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은밀한 부서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걸 아주 시원스럽게 말하다니.
“후후. 괜찮습니다. 어쩌면 유미네 님의 따님이실지도 모르는 분인데요.”
“아닐 가능성도 있는데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로서는 리제 님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확신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아우리아는 갑자기 거리를 확 좁히더니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한다.
원래 그런 건지 아니면 나에게만 그런 건지 나와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깝다.
아예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고 있을 정도다.
그건 그렇고 아우리아 같은 미녀가자꾸 불쑥불쑥 가까워지면 여러모로 심장에 해로워...!
“이 상냥한 냄새는 유미네 님에게 느꼈던 냄새와 똑같습니다. 정말 완벽하게 똑같은 냄새...후아...후아...”
어쩐지 숨이 거칠어진 것 같지 않아...?
거기에 아마 개과 동물일 것 같은 푹신한 꼬리가 심상치 않은 속도로 흔들리는지 치마가 펄럭이고 마치 동물이 자신의 냄새를 다른 곳에 묻히듯이 몸을 비벼댔다.
어, 어라...? 혹시 이거 수인의 습성이라든가 그런 건가...?
“하아...역시 이 냄새 중독되어 버릴 것 같아요...”
“...!?”
아니, 아니다. 이거 단순히 아우리아의 취향!
만화 같은 데서라면 눈에 하트 모양이 그려져 있을 정도로 위험한 거야!
“아, 아우리아 씨. 일단은 진정하죠?”
“그냥 아우리아로 불러주세요. 그리고 경어도 필요 없습니다...”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좀 떨어져!”
“아앗...거, 거친 것도 좋아요...”
아니, 이 사람 성적 취향이 너무 괴팍하잖아!?
게다가 내 힘으로도 벗겨 내기 힘들 정도로 힘도 엄청 강해...!
이게 바로 수인의 힘이라는 건가.
그렇게 내가 좀 더 힘을 줘서 떼어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찰나.
“...뭐하고 있는 거야?”
“!?”
무심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큼 차갑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스티아...?”
단지 바라보고 있는 것일 뿐인데 어째서 무섭다고 느끼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이름을 부르면 시스티아는 싱긋 웃어 보였다.
“하도 오는 게 늦기에 혹시나 해서 찾으러 와봤더니 역시나...”
그것은 반드시 이런 일이 있을 거로 생각하고 나를 찾아다녔다는 말로 들렸다.
아니, 그런 뜻인가...?
“이건 말이지...”
“설명하지 않아도 돼. 대략 어떤 일인지는 알 것 같으니까.”
그건 그거대로 굉장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기요. 그렇게 멋대로 붙어 있으면 리제에게 민폐라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렇군요.”
시스티아가 나타났을 때부터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우리아는 떨어졌다.
...여전히 어깨가 닿는 거리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실례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이어서 제정신을 잃은 모양입니다.”
“자각하고는 있었구나.”
아우리아는 금방 본래의 모습...인지는모르지만, 냉정한 상태로 돌아왔다.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더니 나에게 사과한 뒤로는 시스티아를 향했다.
“리제 님의 동료이신 시스티아 님이시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황제 폐하 직속 메이드 중 한 명인 아우리아라고 합니다.”
“...”
시스티아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대개 저런 행동을 보일 때는 기분이 나쁠 때인데...어째서 저렇게까지 기분이 안 좋은 거지?
“리제, 가자. 다들 기다리고 있어.”
“아, 응. 그래.”
시스티아는 그대로 아우리아와 나 사이에 들어와서는 내 손을 붙잡고 나아간다.
딱히 남아서 할 일은 없기에 그대로 이끌려서 가지만, 그 걸음은 곧 멈춰졌다.
“왜따라오시죠? 안내는 제가 할 테니까 가셔도 되는데요.”
“제국에서 지낼 동안 리제 님을 보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성심성의를 다해 온종일 불편함 없이 지내실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어? 그런 말 처음 듣는데?
그런 말을 할 여유도 없이 아우리아는 시스티아와는 반대로 다가와서는 팔짱을 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
기묘한 양손의 꽃 같은 상황에서 나는 그저 긴장만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런 상황은 모두가 모여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는 사라졌지만, 또다시 경험하기는 싫은 것이었다.
황제가 어째서 불렀는지는 ‘유미네’의 존재는 빼고 나를 직접 보고 기사로 들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해두었다.
어디까지나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니까 문제없을 거다.
유미네의 대한 문제는...아직 혼자서 생각해보고 싶다.
그렇게 이야기는 금방 마무리되었고, 곧 주제는 오늘부터 시작되는 황궁에서의 파티에 대해서다.
제국의 도시와 마을이 축제를 여는 것과 함께 황궁에서도 기나긴 파티가 열린다.
황제의 생일 당일을 제외하면 자유 참가이긴 하지만, 각지에서 아주 많은 황족과 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것은 다른 세력은 어떤지, 수상한 자는 없는지 확인을 할 기회도 된다는 것.
그렇게 다들 참가하는 것으로 방침이 정해지고 준비를 시작하기로 한다.
“자, 그러면 이제 신사분들은 퇴실을 부탁합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그런 말을 한 것은 아우리아였다.
아무래도 후작과 리히텐, 엘리나와는 아는 사이라 그런지 우리 사이에서 금방 녹아들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순전히 아우리아의 능력이라든지...
“오, 그렇군. 우리도 나름 준비를 하며 기대하고 있도록 하지.”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해줘.”
“어? 어...? 왜요?”
“흠. 레온은 강하긴 하지만 역시 아직 아이로군.”
“숙녀분들은 준비에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야.”
“그냥 옷만 입고 가면 되는 게...”
“자자, 나중에 천천히 알려줄 테니까 일단 나가자. 이러다간 숙녀분들께서 준비를 못 하시니까.”
“아...! 미, 밀지 마요! 제가 알아서 나갈 테니까...!”
그렇게 세 명은 방을 나갔다.
본래 이곳은 여성들이 쓰도록 주어진 방이기에 남자들이 나가는 건 당연한 일이긴 하지.
“그럼 너희도 천천히 준비해. 나도 끝날 때까지 주변 좀 둘러보고 와야지.”
나도 항상 착용하는 나이트 퓨어가 진화함에 따라 그 모습을 바꾸는 기능이 추가되었기 때문에 딱히 의복이 필요하지 않다.
파티에 나갈 때도 적당히 바꾸고나가면 될 테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도 방을 나가려고 하면,
“기다리세요.”
“기다려.”
아우리아와 시스티아에게 팔 한쪽씩 잡혔다.
데, 데자뷔...?
“왜 잡는 건데...?”
“설마 그 모습으로 파티에 나갈 생각?”
“아니 딱히 이 모습으로 나갈 건 아니지만, 그리 신경 쓸 부분도없으니까.”
“......”
“...어쩜 이런 부분까지 유미네 님과 똑같은 걸까요.”
응? 뭐, 뭐지...두 사람의 시선이 따가워...
“어, 어어...왜들 그래...?”
“리제. 지금부터 가만히 움직이지 마.”
“어, 어째서?”
“말대답하지 말고!”
“가만히 천장의 무늬의 숫자를 세고 있으면 금방 끝날 겁니다.”
“...!?”
도망가야 한다.
그렇게 경종을 울리지만 두 사람에게 꽉 잡힌 손이 떨어지지 않는다.
잘 보면 아우리아의 손에 힘줄이 돋아나 있었고, 시스티아는 아주 강력한 속박계 신성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뀨!”
“세라는 나랑 같이 리제 님의 예쁜 모습을 지켜보자.”
“뀨! 뀻!”
당황하고 있으면 어느새 내 품에서 빠져나간 세라가 엘리나에게 안겨 있는 것이 보인다.
둘은 눈을 빛내며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데...이, 이게 진짜 무슨.
“자, 리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게 꾸며줄게.”
“오늘의 주인공, 아니 모든 파티의 주인공은 단연코 리제 님이십니다.”
“...!?!?”
이 뒤의 일을 언급하는 데는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니 그저 한 마디만 설명하자면...
이 때의 일은 내 최대 트라우마 중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죽고 싶다...”
3분의 1은 그렇게 생각하며 세상에서 가장 어설픈(?)모습으로 사교계 데뷔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