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제국의 수도(4)
화려한 조명. 고상한 음악. 그에 맞춰 서로 다가가 춤을 추는 남녀.
주변에는 갖가지 고가의 물건으로 치장하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시선 대부분은 한쪽으로 향한다.
...정말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아우리아와 시스티아에게 강제적으로 치장되기를 몇 시간 후.
어깨와 가슴께가 훤히 드러나는, 척 봐도 고가의 물건으로 보이는 검회색 드레스와 같은 색의 높은 하이힐, 머리에는 작은 머리핀에 머리 자체도 말아 올려 목을 드러내고 귀걸이와 목걸이까지 완전히 풀로 장비(?)시켜진 나는 익숙하지 않은 하이힐 덕분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한 것을 넘기며 어정쩡한 자세를 아우리아에게 교정 돼 겨우 걷기만은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되어 파티 회장에 가게 되었다.
첫 날이라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거로는 아우리아의 말과는 다르게 파티 회장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 대부분의 사람의 시선은 지금과 같이 내가 다 받고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다는 걸까.
“돌아가고 싶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어쩐지 즐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내 착각인가?”
“이게 그렇게 보이냐?”
“아니, 이렇게나 먹고 마시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하게 되잖아?”
리히텐이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은 내가 서 있는 테이블에 겹겹이 쌓여 있는 접시들과 술병들이다.
입식 파티이기 때문에 정말 수많은 요리와 술, 그리고 디저트가 있다.
나는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 자리를 잡고 닥치는 대로 먹고 마시고 있었다.
“즐기는 게 아니고 스트레스를 푸는 거지. 먹으면서 푼다는 말 못 들어봤어?”
“뭐, 그런 방법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그걸 실천하는 여성은 그리 드물 거라 생각하는데.”
“아무리 먹고 마셔도 살이 안 찌니까 나한테는 적절한 방법이지.”
“...대부분의 여성이 적의를 보일 것만 같은 발언인데.”
나도 알아 인마.
그래서 다른 여자들에게는 들리지 않게 말한 거야.
“누나! 먹을 거 또 잔뜩 가져왔어요!”
“술도 가져왔어.”
아직 익숙하지 않은 하이힐이기에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나를 대신해서 레온과 시스티아가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을 가져와 준다.
기껏 처음으로 참가하는 호화로운 파티인데 나 때문에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미안해. 나 때문에 즐기지도 못해서...이제 이걸로 괜찮으니까 자유롭게 놀아도 돼.”
“아, 아니요! 괜찮아요! 전 이게 즐겁습니닷!”
내가 기진맥진으로 치장 당하고 만났을 때부터 계속 말을 더듬다가 이상하게 흥분한 목소리를 내는 레온.
“지금 리제는 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잖아? 이런 즐거운...아니, 안타까운 일을 그냥 둘 수는 없지.”
아우리아와 경쟁을 하듯이 나를 치장할 때부터 시종일관 즐거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 시스티아.
...그래. 레온은 모르지만 시스티아는 어떻게 보면 제대로 즐기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네.
나를 가지고 놀면서.
“리제 님. 디저트도 가져왔습니다.”
“아, 고마워. 아우리아. 일단 세라랑 엘리나에게 나눠줘.”
“알겠습니다.”
테이블 한쪽에서 밥을 다 먹고 서로 장난치면서 놀고 있는 세라와 엘리나에게 디저트를 들고 다가가는 아우리아를 보고 난 뒤, 두 사람이 가져온 음식과 술을 다시 먹고 마시기 시작한다.
먹는 것만 철저하게 하다가 가야지.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자.
“음. 근데 진짜 신기한 것은 시선은 느껴지는데 다가오지는 않는단 말이지...”
“그거야...나에게 사양하는 걸 거야.”
“아...”
“리히텐 씨!”
리히텐이 그리 말하면 레온과 시스티아가 당황하며 뭐라 말하려고 하는데, 리히텐은 오히려 두 사람을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
“당사자이니까 알아야 해. 거기에 이런 식으로 숨긴다고 해도 어차피 나중에는 알게 될 거야.”
“그건...그렇죠.”
“도대체 무슨 말이야?”
“그게 말이지...”
리히텐은 곧바로 설명을 해주었다.
요즘 제국 내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서.
물론 내가 아는 나에 대한 소문이 아니고, 내가 모르고 있던 소문...
그것은 내가 리히텐과 약혼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개 같...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냥 사람들이 재미로 하는 소문이라 생각하고 넘어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무슨 그런 소문이...게다가 너 이미 약혼녀가 있잖아.”
“그건 알고 있었어?”
“어? 응. 뭐...”
이곳에서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고 게임에서 본 정보였다.
리히텐은 약혼녀가 있었고 그 약혼녀는 엘리나가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잡혀갔을 때 휘말려서 죽었다고.
분명 자신의 의지로 한 약혼은 아니었지만, 리히텐은 약혼녀에게 전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이야기에서 나왔을 때 그러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다.
그때 리히텐이 가장 많이 표출한 감정은 그리움과 후회.
마음이 전혀 없는 상대였다면 그런 것을 느낄 리 없었겠지.
음, 그나저나 이건 좀 그러네.
리히텐을 계속 여기에 둬서는 안 될 것 같아.
“야. 혹시 약혼녀가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얼른 찾아봐. 오늘 왔을지도 모르잖아.”
“으음...아무리 그래도 그녀가 믿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건 네 생각이고! 이런 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직접 만나서 말을 전해.”
“정말로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데...”
“발로 한 번 차이고 갈래? 아니면 그냥 갈래?”
결국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리히텐은 기겁을 하며 거의 도망을 치듯이 어디론가 가버린다.
할 수 있을 때 뭐라도 하고 후회해야지 아무것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은 정말로 최악이다.
“근데 정말로 보내는 게 좋았어? 주변에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떻게든 되겠지 뭐.”
대충...그냥 대충 넘기면 되겠지 뭐...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다시 음식을 먹는다.
역시 황궁에서 만들 정도이니 뭐든 다 맛있다. 술도 그렇고.
“리제 님. 저 세라랑 화장실 다녀올게요.”
“응? 아, 그래. 알았어. 다녀와.”
“엘리나 님. 제가 같이 갈까요?”
“아니야. 나 혼자...아니, 세라랑 같이 가니까 괜찮아.”
“뀨~!”
아우리아의 말도 거절하고 엘리나는 여전히 세라를 품에 안은 채로 화장실로 향했다.
엘리나는 내 최우선 호위 대상이긴 하지만, 이곳은 제국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황궁 안이며, 세라와 함께 있으니 아무런 문제도 없다.
그렇게 우리 쪼꼬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난 다음.
나는 세 명과 함께 잡담이나 나누면서 다시 먹을 것을 먹으려고 하면 누군가가 다가왔다.
“잠깐 괜찮을까? 용희.”
아주 좋게 말해서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남자.
내가 굉장히 싫어하는 타입이다.
“2황자 위슬러 님이십니다.”
“아항...”
아우리아의 귀띔에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생긴 것도 그렇고 그냥 딱 보기만 해도 싫더라니. 적이었어?
“하하. 나에 대해서는 아는 것 같으니 소개를 생략하지. 일단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영광이다. 용희.”
“...네. 반갑습니다.”
악수를 청하기에 거절할 수는 없어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다.
그러면서 나는 2황자를 관찰한다.
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면서 딱히 내가 기분 나빠할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확실히 가장 주의해야 하는 세력을 지닌 자라 그런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어째서 오셨죠? 저희는 친근하게 대화를 나눌만한 사이는 아니라 생각하는데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런 곳에서까지 서로 경계하며 심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지 않나?”
“...”
확실히 듣고 보면 그렇기는 하다.
적대 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황궁 내에서는 사적인 전투는 금지.
이를 어길 시는 매우 무거운 벌이 기다리고 있다.
그 무거운 벌이 무서울 2황자에게는 그런 짓을 할 수는 없겠지.
“거기에 나도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정작 용희를 꼭 만나고 싶었던 이는 따로 있지.”
“음?”
2황자가 그렇게 말하고 살짝 뒤쪽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자그마한 인영이 있었다.
눈앞에 있는 2황자와 비슷한 얼굴의 작은 남자아이.
그렇다는 것은 분명 황위 쟁탈전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6황자라는 이야기로군.
“아, 안녕하세요! 용희! 전 아디스에요!”
“안녕하세요. 전 리제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아디스 황자.”
“.....!”
몸을 굽혀서 시선을 맞추고 인사하면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아디스.
역시 아이는 귀엽구나...2황자와 비슷한 얼굴인데도 귀엽게 느껴져.
“아~ 꿈만 같아요! 그 용희와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아디스 황자라면 언제든 놀러 오셔도 상관없어요.”
2황자의 친동생이긴 하지만, 6황자는 그 어떤 곳의 소속도 아니며 이미 황제로부터 6황자를 어떤 방식으로든 이용한다면 그 즉시 엄하게 벌한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황자 중에서는 가장 안전한 아이다.
“정말요!?”
“네. 정말이고말고요.”
“약속하신 거예요!?”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그 자리에서 방방 뛰는 6황자.
2황자는 그런 6황자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지. 내가 있으면 불편해할 것 같으니.”
“나중에 봬요!”
정말로 동생을 위해서 온 것뿐이란 말인가?
후작이나 리히텐, 아우리아에게서 들은 2황자에 대한 것과는 많이 다른데...
“우리가 들었던 2황자랑은 다른데? 다른 사람 아니야?”
“...저도 좀, 아니 정말로 많이 놀랐습니다. 평소 2황자는 저런 행동은 하지 않을 텐데.”
그건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닌지 다른 이들도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나 2황자를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우리아는 얼마나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며 2황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정말이지 뭐가 뭔지.
만약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려던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 목적은 완벽하게 달성한 셈이다.
“...어?”
그렇게 2황자에 의해서 혼란스러워진 것도 잠시.
나는 갑작스럽게 어떤 감각을 느끼고는 몸을 흠칫 떨었다.
“갑자기 왜 그래, 리제?”
“누나. 무슨 일 있어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두 사람에게 대답할 여유가 지금의 나에게는 없었다.
가슴에, 심장 위에 손을 얹는다.
마치 그곳이 뻥 뚫린 것만 같은 허전한 감각.
그곳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없어졌다.
“리제 님...?”
“세라...”
“에?”
이 온 몸에 힘이 다 빠질 것만 같은 상실감은 처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더 나에게는 효과가 너무나도 컸다.
세라와의 연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