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2화 〉제국의 수도(7) (52/107)



〈 52화 〉제국의 수도(7)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세라와의 연결이 끊어지고 그 존재를 확인하지 못하게 되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이 기분이 도대체 무엇인지 확인을 하기도 전에 나는 냉정함을 잃고 그저 찾고 또 찾아다녔다.
주변에서 뭐라고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것 같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황궁의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찾고, 또 찾고, 또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미약하게 강한 마나의 기운을 아주 잠깐 느꼈다.
 성질이 굉장히 친숙해서 세라의 마나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마도 브레스를 사용한 것이리라.

아직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약간의 안도감과 브레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 다급한 마음이 같이 생겼다.

다만, 약간의 냉정함은 되찾았다.

그 때부터 나는 침착하게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 곳을 찾기 시작했고, 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곳을 찾을  있었다.

그냥 빈 허공에 마지 유리에 금이 간  마냥 되어 있다.

정확하게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계의 일종이라는 것만은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약간 친숙한 느낌이었으니까.

아무튼 나는 그곳을 날아 차기를 하듯이 발로 깨고 들어갔고, 그곳에서 엘리나와 세라를 볼 수 있었다.
아니, 처음 봤을 때는 엘리나와 어쩐지 눈에 익은 모습의 작은 여자아이...? 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 눈으로 봤을 때만 그랬다는 것이고 결계를 뚫고 들어가자 다시 느껴지는 세라와의 연결로 그 여자아이가 세라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여자아이로 변한 세라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와 나에게 말한다.

“엄...마...!”

어눌한 말투로 엄마라는 말을 나에게 한다.

엄마. 엄마...

 단어가  귓속으로 들어와 뇌로 그리고 가슴으로 흘러들어 간다.

분명히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을 텐데, 세라에게 들으니 이 벅차오르는 감정은 도대체 뭘까.
처음은 놀라움에서 조금 당황했다가 그다음부터는 기쁜 마음 밖에는 들지 않았다.

“엄마...!”

“그래. 엄마야.”

“엄마! 엄마!”

“응. 엄마 여기 있어.”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기분이 좋은지 까르르 웃는다.

다시 재회한 뒤로 세라는 본래 용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않고 인간의 모습인 채로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꼭 붙어 있다.
하루도 안 돼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단어인 엄마는 어눌함이 사라져 있었다.
하긴 지금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엄마라고 하는데 익숙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겠지.

“누, 누나가 이제 완전히 모성에 눈을 떴어...”

“이제는 누가 어딜 어떻게 봐도  명의 엄마야...”

외야가 시끄럽다. 우리 딸과의 시간을 방해하지 마.

“좋겠다...나도 엄마라고 불려보고 싶은데.”

“...아니. 시스티아  나이에 엄마라면 거의 범죄에 가깝겠지요. 저 정도는 돼야...”

“나, 나도 이제 2년만 더 있으면 결혼도 가능한 나이라고요!”

차분하게 이 행복감을 곱씹을 수가 없다.

“어흠!”

그렇게 내가 생각하며 한마디 하려고 하면 중후한 기운이 방 안에 퍼졌다.
오러를 담은  말에 놀라 그 진원지를 바라보면 조금 지쳤다는 듯한 모습의 페이론 후작의 모습이 보였다.

“아...오셨어요?”

“온 지는 꽤 되었다만,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말일세.”

“아하하...”

내가 세라의 귀여움에 넋이 나가 있었을 때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너무 귀여운 것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것을.
이게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는 거겠지.
내 친자식은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말도 있다.
지금은 그게 딱 들어맞는 거겠지.

아무튼 그건 그렇다 치고, 후작이 왔다는 것은 조사가 끝났다는 거겠지.

“결과는 어땠어요?”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없더군. 란델과 황궁 근위기사단과 함께 샅샅이 뒤졌지만, 흔적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아.”

어제 엘리나를 납치하려고  괴한의 존재.
‘이쪽’과의 연결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결계를 만들 줄 아는 정체불명의 존재.
혹 내가 게임을 통해 아는 인물인가 생각해봤는데 그런  사용할 줄 아는 존재는 모른다.

게다가 엘리나에게서 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그 괴한의 모습이 나랑 똑같았다는 것.
물론 전부 똑같았다는 것은 아니고 결정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 같지만...

“그 가슴 납작한 리제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시스티아. 무슨 말이 그래.”

“이름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지. 아, 하지만 계속 이렇게 부르기에는 기니까 빈유 리제라고 하자.”

“그건 리제 님에게 너무 불명예인 말이 아닌지...? 이렇게 훌륭한  지니고 계시는데.”

“음. 그것도 그러네요. 그러면 가짜 빈유 리제, 줄여서 가빈 리제라고 하죠.”

“반대로 빈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좋네요.”

“아니, 좋기는 개뿔! 하지 마!”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이상하게 불릴 것 같아서 끼어든다.
이런 말을 이렇게나 진지하게 정하려고 하다니 시스티아나 아우리아나 처음에는 굉장히 궁합이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굉장히 좋은 것 같다.

내가 하지 말라고 하니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왜 안 되느냐는 듯이 물어보며 슬쩍 재밌다는 듯이 웃는 것도 비슷하다.
진짜 못 살겠네...

아무래도 진지함 반에 나를 놀리기 위해 하는  반인 느낌이다.

“...이야기를 계속해도 되겠는가?”

“아, 네. 계속해주세요.”

“일단 시스티아의 질문에 관해서이지만, 그것도 현재 상태에서는 조금의 흔적조차 없다고 대답해야만 하겠지.”

“저희가 허둥지둥거리는 사이에 도망쳤다는 거군요.”

“음. 리제의 발차기에 맞고 날아갔다고 해서 어쩌면 어딘가에 기절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래도 그대로 우리가 모르는 방법으로 도망을 친 모양이다.”

나랑 똑같은 괴한은 내가  결계를 깨고 들어갈  내 발차기에 맞고 날아갔다고 한다.
확실히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신경 쓰지 않았는데 발에 누가 맞은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진짜 용화만 하지 않았을 뿐이지 내 있는 힘을  담은 발차기였는데, 그걸 버티다니 무슨 맷집인지...

“일단 란델이 계속해서 조사하고 있긴 하지만, 결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군.”

“란델 씨도 참 일 열심히 하시네요...”

정확히는 후작에게 부려 먹히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대화도 제대로 나눈 적이 없는 것 같아. 특히 황궁에 들어오고 난 뒤에는 우리 근처에도 있지 않은 것 같고.
우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마치 다른 뭔가를 피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 황궁에 뭔가가 있는 건가?

애초에 우리가 걱정되어서 호위 의뢰를 맡은 란델이다. 그쪽에서 먼저 피할 일은 없지.
더 귀찮게 달라붙는다면 모를까.

“...녀석도 생각하는 것이 있겠지.”

“...음.”

역시 좀 이상하단 말이지.
후작은 다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가르쳐  생각은 없는 것 같고.
딱히 끼어들 생각은 없지만, 조금 궁금하긴 하다.

“아무튼 조사 결과는 결국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다. 그걸로 끝인 건가요?”

“아쉽게도 말이지. 다만 황궁 내의 방비를 더 강화했네. 자네에게는 별 볼 일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심할 거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

후작의 시선이 이야기하는데 방해되면 안 된다며 얌전히 있다가 내 품속에서 얼굴을 묻고 꾸벅꾸벅 조는 세라에게 향한다.
어째서 굳이 무게를 잡아가며 아무런 진전도 없는 이야기를 하러 왔나 했더니 그런 거였나.

“아니요. 그래도 조금은 안심이 되네요.”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다행이로군.”

이곳에서 유일하게 부모의 감정을 아는 것은 후작뿐.
그는 지금 내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한 번 연결이 사라진 일을 겪고 난 뒤 세라에 대한 것이 너무 걱정되어서 어쩔 수가 없다.

잃는 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그것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수록.

아마 현재 나에게 가장  것은 시스티아와 세라일 것이다.
이 둘 중 하나라도 잃으면 당장에라도 어떻게 되어버릴 자신마저 있다.

그렇게 이야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졸고 있던 세라의 등을 톡톡 두들겨 그냥 재우면 금방 새근새근 잠든다.
그러면 아우리아가 그것을 확인하듯이 한 번 보더니 후작을 향했다.

“폐하께서는 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근위기사단장에게 알아서 하라는 말만 하셨을 뿐이네. 다른 말은 없으셨지.”

“...그렇습니까.”

“나야말로 묻고 싶은 것이 있네만. 폐하께서 굉장히 바빠 보이시던 것 같았는데 자네는 아는 것이 없나?”

“폐하께서 말씀이십니까?”

“게다가 뭔가 굉장히 초조해하고 계셨던  같았네.”

“...아니요. 저는 폐하 직속인 것은 맞지만, 전담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곁에 있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랬지...”

아우리아는 점점 의아해가고 후작은 조금 어두워진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때 만났을 때는 그런 기색은 전혀 없었는데.

어쩌면 나와 만난 것으로 인해 무언가 황제 안에서 변한 것이 있었던 걸까?
만남은 가볍게 끝났지만, 그때의 황제에게서 느낀 감정들은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분명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시스티아는 뭔가 느낀 건 없지?”

“응. 나도 꽤 이곳저곳 돌아다녀 봤는데 아쉽다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것도 느껴지는 것이 없어.”

“...”

시스티아가 아직 제대로 각성한 것은 아니지만, 마(魔)와 연관된 일에 민감하다는 것은 이미 검증이 끝난 뒤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이번 일은 마족은 연관이 없든지, 겉으로 봤을 때만 연관이 없는 것인지 둘 중 하나다.
후자는 즉, 마족이 아닌 자 중에서 협력자가 있다는 것.

그게 누구인지 찾아야  불안감은 전부 해소될 것이다.

*

어젯밤의 납치 소동은 굉장히 조용히 아는 사람만 아는 선에서 끝이 났다.
축제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함도 있지만, 단지 그게 엘리나를 노리고  일이었기에 그리 큰일로 번지지 않은 것도 있다.

제국에서 엘리나의 취급은 그런 것이다. 아니, 황녀라는 존재 자체가 그런 것일 거다.

“하암...”

엘리나는 어제의  일로 굉장히 지쳐 있었다.
일찍 잠들었음에도 해가 중천에 떠서야 눈을 부비며 일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그냥 지친 걸로 끝나 다행이라고 봐야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납치범 자체가 굉장히 어설펐기에 그런 것도 있고 엘리나가 뜻밖에 성격이 강한 것도 있다.

그렇지만 엘리나가 단순히 근처에만 있어도 심각한 거부증상을 보이는 상대가 있었는데...

“아, 누나 일어났구나.”

“!?”

그것은 6황자인 아디스다.
나이가 가장 가까운 이복남매.
아디스의 누구와도 금방 친해지는 순수함으로 친할 거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딱히 엘리나가 아디스에게 무슨 짓을 당한 것은 아니다.
다만, 엘리나는 아디스가 거북했다.
자신도 어째서 이렇게 느끼는 것인지 이상할 정도로.

“여, 여기는 왜...”

“누나가 큰일을 당했다고 해서 병문안! 아무 일도 없어 보여서 다행이다!”

단지 그렇게 순수하게 걱정하며 말하고 있을 뿐인데  자꾸 거북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게 너무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해도 마치 절대로 지워질 수 없는 각인 마냥 지워지지 않는다.

“누나. 목마르지? 여기 물.”

“고마워...”

목이 마른 것은 사실이었기에 아디스가 내민 물컵을 받기 위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렇게 컵을 받으려는 도중 아디스의 손과 살짝 닿았다.

“꺅!?”

 순간 닿은 곳이 갑자기 따끔하고 아파서 그대로 물 컵을 떨어트렸고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컵이 깨졌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엘리나의 작은 비명과 깨지는 소리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리히텐과 레온이 다급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지금의 상황을 보고 리히텐이 화가 나서 아디스를 향해 외친다.

“이 녀석! 아디스! 너 언제 들어 온 거야! 병문안은 나중에 하라고 했지!”

“히익!? 죄, 죄송해요!”

“거기  서!?”

리히텐의 호통에 아디스는 짧은 다리를 놀리며 빠르게 도망쳤고, 리히텐은 그 뒤를 쫓아갔다.

“괜찮아?”

“아, 네. 그냥 제가 뭔가에 놀라서 컵을 떨어트린 것뿐이에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저 애도 진짜 장난꾸러기인가 보다.”

엘리나에게 다가와서는 술래잡기를 하는 형제를 바라보며 말하는 레온.
하지만 엘리나는 그런 레온의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고 방금 따끔했던 부위를 바라본다.

그렇지만 그 따끔했던 부분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듯 상처 하나 없었다.
그냥 착각이었던 것인가.

“별것 아니겠지...”

그런 것치고는 굉장히 선명한 아픔이었지만, 엘리나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착각이라고 하는 편이 더  들어맞았으니까.

아무튼 지금의 엘리나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함께 들면서도 아디스가 멀리 가준 것이 무엇보다도 안심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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