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혼란(1)
결국, 그 뒤로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오늘은 축제의 중간 날이기도 한 황제의 생일.
여태까지는 드문드문 모였던 인원도 오늘만큼은 절대로 결석하지 않는다는 듯이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따지고 들면 그저 생일일 뿐인데 이 정도의 인파가 몰리다니, 역시 권력자는 권력자다.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생일을 축하하는 건 고귀한 귀족, 왕족에서 하는 일이다.
대개 자신이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있지 않거나 기억하고 있더라도 특별시 여기지는 않는다.
난 원래 세계의 습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내 생일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생각해본 적은 없다.
애초에 이 몸은 내 몸도 아니고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열리게 된 황제의 생일 파티.
파티가 처음 열린 날에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그날 이후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파티 회장에서 황제와 비슷,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주목을 받는 것이 나였다.
다만, 첫날에는 그렇게 신경이 쓰였던 시선. 지금은 그 수가 훨씬 더 많아졌음에도 나는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엄마. 맘마~”
“맘마 줄까요? 아~ 하자.”
“아~”
“옳지. 잘한다.”
“마시써!”
“맛있어? 다행이네~”
아악~ 귀여워! 한껏 차려입은 우리 딸! 물론 차려입지 않아도 귀엽지만, 그보다 훨씬 더 귀여워!!!
그 누가 신경 쓰든 말든 난 온종일 세라를 돌보며 세라만을 바라보기에 바쁘니까.
고작 며칠 사이에 어눌하기는 하지만 많은 단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 세라다.
듣는 건 애초에 용의 모습이었을 때도 했었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벌써 이렇게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은 세라는 천재일지도 모른다.
지금부터 나중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옛날 그 애...여동생을 키울 때에 나는 그저 보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까지 해 본 적은 없는데, 지금은 누가 하지 말라고 해도 해야만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일단 꾹 눌러두고 있는 상태.
지금은 그저 맛난 것을 먹으며 잘 놀고 잘 자는 그런 아이 다운 생활을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뭐, 이건 내 생각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후작에게 조언을 받은 것이지만 말이지...
아무래도 후작은 귀족 출신이 아니고 평민 출신이라 그런지 이럴 때 받는 조언은 도움이 되는 것이 꽤 있었다.
거기에 의외라면 의외였지만, 란델에게서도 꽤 도움이 되는 말을 많이 받았다.
마치 육아를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의 말이었다.
그에 대해 물어보면 란델은 그저 웃어 보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 확실하게 무언가 있었구나 하는 추측만 가져다줄 뿐이었다.
아니, 그건 그렇고.
“세라야. 할아버지도 그 맛있는 거 주면 안 돼?”
“하부지, 아~”
“아~ 맛있다~”
“에헤헤.”
란델 씨. 왜 당신이 할아버지인 건데...?
주변에서도 위화감이 드는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잖아.
물론 나이로만 보자면 이 세계에서는 벌써 할아버지라 불려도 위화감이 없는 나이이긴 하지만, 나이 이전에 외모가 20대 후반인지라 위화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란델 씨. 오늘은 일없어요?”
“리제. 어째 빨리 가버리라는 듯한 말이네...”
“그런 건 아니고...매 번 피하는 듯이 있었는데 오늘따라 이런 곳에 있는 것이 신기해서요.”
솔직히 란델이 말한 부분이 맞는 말이었지만, 내가 말한 것도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다.
왕궁에 들어오고 나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란델이 오늘따라 적극 이곳에 있는 것이다.
“그거야, 세라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뀨웅?”
“...”
세라를 쓰다듬으며 하는 그 말은 얼버무리는 것 같으면서도 진실이 느껴져서 나는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건지...거기에 세라를 보는 눈이 너무 애틋해서 세라를 진짜 손녀로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저 눈빛은 가끔 나에게도 향했던 것이다.
...어쩌면 란델은 본래 자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정말로 끔찍한 일일 거다.
“그건 그렇고, 리히텐과의 오해는 풀렸을 텐데 주변은 눈치만 보는 사람들뿐이네요? 거기에 란델도 있는데.”
“뭐, 아마도 나한테 접근했던 녀석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자기들끼리 소문이 돌았겠지.”
아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게다가 난 권력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으니까.”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내 최종목표는 어디까지나 마왕과의 마지막 결전까지 소중한 이들을 지키는 것.
그 수단을 위해서 권력도 있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내가 그 속에 빠지는 것은 리스크도 동반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권력자와 친해지는 것.
이것은 리히텐이 이 후계 싸움에서 이긴다면 해결이 된다.
“그보다 주변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는 이유는 나 때문만은 아니야.”
“네?”
“리제가 내 아이와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면 죽여 버릴 거야. 라는 듯이 살기를 내뿜고 있으니까 다들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하는 거야.”
그렇게 쓴웃음을 짓고 있는 란델을 잇듯이 시스티아가 스테이크를 나이프로 자르면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내가 바라보고 있으면 시스티아가 자른 스테이크를 포크로 찍어 올려 그걸 내 쪽으로 향하면서 약간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세라가 눈을 반짝 빛내면서 입을 벌려 아주 행복하게 스테이크를 먹었다.
“너 요즘에 세라가 그런 모습이 되고 나서부터 주변에서 볼 때,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굉장히 험악해진 거 모르지? 네 지금 모습을 설명하자면, 그 왜 있잖아. 용의 계곡에서 알을 낳은 드레이크가 알을 지키기 위해 온종일 민감하게 반응했던 거. 그거에 10배 이상은 될 거야.”
“......”
그 말에 너무 놀라서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는 모르고 있던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시스티아가 말한 그때의 일이라면 나도 잘 알고 있다.
그 드레이크는 새끼를 잃고 난 뒤에 알을 낳은 상태였었는데, 그 때문인지 다른 용종들은 내 말이면 고분고분 따랐지만, 그 드레이크는 나조차도 알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
그 정도로 민감한 모습을 보였던 거에 10배 이상이라니...얼마나 심한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 그래도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딱히 문제없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뭐, 확실히 우리는 문제 없으니까 나도 별로 상관은 없지만.......난 그거보다 관심이 전부 세라에게 가 있는 게 좀 그런 거지만...”
엘리나의 말에 긍정하며 말하고 후반에는 굉장히 작게 중얼거렸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요즘 시스티아가 부루퉁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었던가.
그렇지만 불만은 있으면서도 그것을 세라에게 표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언니같이 잘 돌봐주려고 노력하지. 방금 스테이크를 먹여준 것도 그런 일환이고.
역시 상냥한 아이다.
“뭐, 뭐야. 머리 헝클어져...”
“후후.”
그리고 나는 좀 반성. 아무래도 너무 세라에게만 신경 쓰고 그와 동시에 나도 모르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던 모양이다.
“시스 언냐도 아~”
“아, 아~”
우리 사이에 자기도 끼고 싶은지 세라가 작은 쿠키 하나를 시스티아에게 내민다.
시스티아는 그런 말을 하고 난 뒤라 그런지, 조금 어색해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먹었다.
음. 역시 흐뭇해지는 광경이야.
그것을 잠시 감상하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리히텐과 후작은 주변 귀족들과 만나는 중이고 레온은 그 주변에서 호위 중.
“어머, 얘, 너 귀엽다~”
“이름이 뭐니?”
“에? 아, 아니...저기...”
아니, 그보다는 귀족 영애들에게 둘러싸여 귀여움받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저, 부러운 자식...
보면 2황자도 다른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고, 4황자, 5황자로 보이는 자들도 보인다.
4황자, 5황자 쪽은 그렇다 치더라도 2황자 쪽에 모인 사람과 리히텐이 모인 쪽 사람들 사이의 견제하는 기류가 엄청나다.
1황자가 탈락하고 나서 점점 후계는 이 둘로 좁혀지고 있다.
후작이 어려우리라 판단했지만, 최근에는 세력도 점점 커지는 중이라고 한다.
나와 란델 덕분이라고 하던데,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이다.
“...저 사람이 제국의 2번째. 커티스 후작인가요.”
2황자 근처에서 조용히 서 있는, 과묵해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상당히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 저 늙은이에게 밀려서 2인자 자리에 앉아 있는 불쌍한 사람이지.”
“아하하...”
농담조로 말하기는 했지만, 본인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신경 쓰이는 부분일 텐데, 그것을 거침없이 말한다는 것은 저 사람과의 사이에도 무언가 있었다는 걸까.
그리 호의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후작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살짝 나에게 꾸벅 인사를 하길래 나도 얼떨결에 같이 꾸벅 인사했다.
뭐지? 쓸데없이 나에게 굉장히 정중한 것 같은데.
그 의문에 답을 내리지 못하고 후작은 바로 시선을 돌렸다.
“자~ 요리 추가로 더 가져왔습니다!”
그 직후 트레이에 요리를 가득 담아 가지고 온 메이드가 다가왔다.
엘리나와 처음 만났을 때 있었던 그 메이드.
최근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싶었는데, 후작이 고생했다며 휴가를 줬다고 한다.
잔뜩 쉬어서 그런지 굉장히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자, 리제 님. 이거 세라 님과 같이 드세요.”
“고마워요.”
“뀨우웅~!”
고기를 수북이 쌓은 접시와 작은 크기의 디저트가 담긴 접시가 눈앞에 놓인다.
세라는 그렇게 먹고도 아직 모자란 지 그것들을 보고 눈을 빛냈다.
너무 과식하지 않도록 조심시켜야지.
“리제 님께서 갑자기 엄마가 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굉장히 놀랐지만, 이런 딸이면 저도 엄마가 되고 싶네요~ 근데, 진짜로 친딸이 아닌가요? 리제 님이랑 똑 닮았는데.”
“아...그건...”
“참고로 리제 님의 친딸이다 아니다로 사람들이 꽤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하고 다니고 있어요. 친딸이다가 대략 48퍼 아니다가 52퍼로 비등비등하죠.”
“도대체 어디 정보인가요. 그건?”
누군가 설문조사를 한 것일까.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질문에도 메이드는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리리...그런 건 리제 님께 실례야.”
“아하하. 죄송합니다.”
엘리나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메이드.
아,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이름을 들은 것 같다.
“이름이 리리였었어요?”
“네. 맞아요. 그러고 보니 처음으로 이야기했네요. 저번에 말하려다가 못 했었죠?”
“그랬었죠.”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도 좀 그렇지만,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할게요. 리제 님.”
“아, 네. 저야말로.”
뭔가 말투가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딱히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고 나는 그 내민 손을 잡고 악수를 했다.
“황제 폐하 드십니다.”
그렇게 리리와 악수를 하고 나면 곧바로 그런 말이 나오고 드디어 오늘의 주역인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보는 황제의 모습은 기분 탓인지 굉장히 수척해 보였는데,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
나에게 진짜 24시간 붙어 있던 아우리아가 불려 간 것도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오늘은 짐을 위해 이렇게 모인 것에 감사하네.”
황제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곳에 모인 모두는 자신이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경청하기 시작한다.
그냥 의무적으로 듣는 것이 아닌, 그대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게 바로 제국의 황제라고 하는 듯이.
무심코 나조차도 집중해서 볼 정도였다.
“냠냠.”
물론 우리 세라는 어디까지나 마이페이스였지만...
“그럼, 계속해서 파티를 즐겨주게.”
약 5분간의 연설이 끝나고 마무리 지어진다.
그 뒤로는 황제의 말대로 파티를 계속 즐기는 이가 있는 반면, 자신의 옥좌에 앉은 황제에게 선물을 들고 다가가는 이들도 있었다.
음. 나도 뭔가 선물하나 준비하는 편이 좋았을까?
뭐, 나중에 만날 일이 있으면 그때 주면 되려나.
이 때의 나는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이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
파티를 즐기는 이들이 있으면, 그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이들도 있다.
성 내의 병사들과 황제 직속의 기사들은 평소와는 더 자세히 경비를 서고 있었다.
더 많은 인원으로 짧게 교대해 가면서, 더 집중적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아무런 문제도 없이 오늘도 넘어갈 수 있을 거로 생각한 그들이었지만, 이변이 일어났다.
“.......”
“어, 뭐야? 벌써 교대 시간이야? 아직 1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한 병사들은 다른 조의 병사들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할 참이었다.
물론 일찍 교대하면 좋기는 하지만, 그만큼 다른 이들이 힘들어지니까.
“왜 벌써 왔어? 아직 시간 남아 있는데.”
“...”
“응? 왜 말이 없어?”
그들은 말이 없이 그저 양옆으로 흐느적거리는 다른 조의 병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 그런 시간은 아니었지만, 설마 저러면서 조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러 그들에게 손을 뻗으면,
“크아악!”
“우악!?”
갈라진 울음소리 같은 것을 내며 그들은 일제히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에 저항하는 이들이었지만, 어찌나 힘이 센지 그대로 밀렸고, 날카로운 이빨이 그 목덜미에 꽂혔다.
“사, 살려...”
그런 도움을 요청하는 말은 누군가에게 닿지 않고 그들은 눈을 뒤집어 까며 죽는다.
그 사이에도 병사였던 괴물은 꿀꺽하고 목울대를 울리면서 피를 빨았다.
얼마 지나면 그들은 목에 꽂았던 이빨을 거두고 일어난다.
그리고 괴물들에게 피가 빨려 죽었던 병사들이 흐느적거리면서 일어난다.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괴물의 탄생.
“꺄아악!?”
“사, 살려줘!”
그리고 이 현상은 성내에서만이 아닌 제국의 수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