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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4화 〉혼란(2) (54/107)



〈 54화 〉혼란(2)

이변이 벌어진 것은 황제에게 보내는 선물 행렬도 없어져 파티 자체가 무르익고 있을 때였다.


“크, 큰일입니다!”


파티회장에 거의 난입하듯이 들어온 것은 피투성이의 기사.
가슴의 용의 문장을 보면 황제 직속의 근위기사였다.
오늘은 분명 성에 개미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도록 병사들과 함께 철통같이 성을 지키고 있었을 터.


그런 근위기사가 피투성이인 채로 왔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일 거다.

“무슨 일이냐!”

“성 내에...! 아니, 수도 전체에 괴, 괴물이...!”

“뭐라!?”

그 말에 파티회장은 단숨에 혼란에 빠진다. 어디 한 곳만 그런 것도 아니고 수도 전체.
그것은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곧 기사의 뒤를 이어 흐느적거리며 걷는 괴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용인으로 보이는 옷이나 기사나 병사로 보이는 이.  때는 인간이었던 자들이 변한 모습이었다.


“괴, 괴물들이 벌써 지척까지!?”


“사, 살려줘...!”


대부분이 거친 일은 모르고 자라는 귀족들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 채 그저 우왕좌왕 괴물들에게 도망치기 위해 발을 놀린다.

이 세계는 마왕이 부활하는 시기를 제외하면 전쟁이라는 것은 전혀 없는 평화로운 곳이다.
아니, 정확히는 좋게 말하면 평화로운 것이며 나쁘게 말하면 평화에 찌든 곳이다.


그런 세계의, 하물며 귀족들에게 냉정함을 요구하는 것은 가혹한 거겠지.


“크아악!!”


“시스티아! 성역!”


“여신의 성역!”

내 말에 재빠르게 괴물들을 차단하는 결계를 만든다.
사람들은 안전하게 지키고 괴물들을 막는 것과 동시에 그것에 닿은 괴물들을 정화하는 성스러운 결계.

“윽...!  숫자면 그리 오래  버텨!”

“란델 씨!”

“그래!”

점점 엄청난 숫자의 괴물들이 밀려온다. 결계에 정화 당해도 또 다른 괴물이 결계를 두들기는 장면이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다.
시스티아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재빨리 준비하기 시작한다.
란델이나 모두가 나에게 맡겨 두었던 장비를 꺼내고, 한쪽은 레온에게 던져 그쪽도 준비하도록 한다.
나는 나대로 드레스를 벗어 던진다.


“엄마...?”


“엄마한테서 절대로 떨어지면 안 된다?”


“응...”

세라도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는지 입을 꾹 다물고 폴리모프를 풀어 아기용 모습으로 돌아가더니 내 가슴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머리만 내민 세라를 쓰다듬고는 단숨에 장비 착용을 마친다.
나이트 퓨어 하나만 있으면 입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에 시간은 걸리지 않는다.

“두 사람도  곁에 붙어 있어.”


“네, 네!”

“알겠습니다!”

전투 능력이 없는 엘리나와 리리는 어떻게든 곁에 두고 지키는 수밖에 없다.
일단 이들에게는 내 용언마법으로 방어마법을 걸어두자.
웬만한 공격은 막아줄 것이다.

“도대체 저것들은 무엇이란 말이냐!”


“그, 그것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그저 괴물에게 물리는 순간 똑같은 괴물이 된다는 것이고 굉장히 강하다는 것밖에는...”


“그, 그러고도 네가 근위기사란 말이더냐!”


이런 상황에서도 책임을 묻고 소식을 들고 온 기사에게 비난을 퍼붓는 귀족들이 있다.
나는 그것에 어이없어하면서도 기사가 말한 정보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귀로군요.”

“리제, 알고 있는 거야?”

“네. 흡혈귀들이 만드는 피를 빠는 시체에요. 시귀에게 물리면 똑같이 시귀가 되죠. 지능은 굉장히 떨어지지만, 귀찮게도 생전의 능력을 유지하기 때문에 굉장히 까다로운 상대입니다.”


“허...”

그런 내 말을 들은 주변에 있던 이들은 모두가 표정이 굳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미지의 괴물이나 마찬가지인 것들이다.


마왕이 마지막으로 출현했던  400년 전이고, 마왕이 쓰러지면 마족들은 일제히 모습을 감추니 본 사람은 없을 거다.

그래도 기록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 있을 테지만, 그것을 주의 깊게 본 사람은 손에 꼽을 거로 생각한다.
성녀가 탄생하고 용사가 성검을 뽑는 순간이 마족과의 전쟁 준비의 시작이니까.

몇 번이고 게임을 하면서 생각했지만, 굉장히 느슨한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게임에서는 어디까지나 용사의 모험이 주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에 문제로 삼는 사람은 굉장히 적었다.
나도 그랬고 말이지.


아무튼 마족에 관한 것은 전부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보다 지금 내가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정체가 아니고 시스티아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흡혈귀는 마족의 종류 중 하나. 분명히 무슨 이변이 생겼다면 시스티아가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을 텐데.


“폐하! 얼른 피하셔야 합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후작도 준비가 끝났는지 아직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귀족들을 제치고 페이론 후작이 황제의 앞에 섰다.
그런 페이론 후작의 모습에 이곳에 있던 누구나가 안도한 표정을 지은 것이 보였다.
제국 최강의 마스터인 페이론 후작이 가까이에 있다면 안전할 테니까.

나도 다른  신경 쓰지 않고 이쪽에만 신경 쓰기로 했다.
저쪽도 페이론 후작에 리히텐, 레온이 있으니 괜찮을 거다.

“시스티아! 이제...!”


그렇게 내가 생각하며 시스티아에게 다른 오더를 내리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


“폐하...?”


후작의 굉장히 당황한 듯한 목소리에 나는 다시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부름에도 황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속 옥좌에 앉아 약간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기사가 들어왔을 때도 황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지.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쿨럭...!”

황제가 갑자기 대량의 피를 울컥 토해내고는 그대로 힘이 빠진 듯이 추욱 늘어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연실색한다.

“폐, 폐하...?”

그나마 정신을 차린 후작이 쓰러진 황제에게 다가가려고 하면, 상황이 다시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카학...!?”


황제가 피를 토하는 것을 시작으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고통을 호소하더니 똑같이 대량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건 안 돼!

이 현상이 무엇인지 생각난 나는 다급하게 외쳤다.

“피를 토한 사람에게서 떨어져!!!!!!!”


그런 내 말에 반응한 이가 도대체 얼마나 있었을까.
피를 토하고 쓰러진 이에 가장 가까이에 있던 자는 가족이며 친한 이다.
그런 이가 쓰러졌다가, 자신의 몸이 타들어 가도 결계를 벅벅 긁어대고 있는 시귀와 똑같이 흐느적거리며 일어나고 있다면 아무리 조금 이상하다 느낀다고 하더라도 금방 떨어진다는 선택을 하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한 번 겪기 전까지는 말이지.


하지만 그 한 번 겪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한다.


“크아악!!!”

“꺄아악!?”


“괴, 괴물이...!”


기껏 결계를 쳤더니 안에서도 시귀가 끓기 시작한다.
피를 토하는 것은 시귀에게 물린 것이 아니고 흡혈귀에게 물린 증거.
그렇지만, 이렇게 멀쩡하다가 일제히 시귀로 만든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게다가 황제까지...

 황궁에서 그 누구보다도 안전하게 지켜지고 있을 황제가 저렇게 되다니,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이쪽은 우리에게 맡겨라!”

“알겠어요! 약점은 성속성, 불! 그게 아니라면 반드시 목을 자르거나 심장을 찔러야 해요!”


“알았다!”

시귀와 아직 생존한 사람들이 뒤엉킨 후방은 란델과 페이론 후작, 리히텐, 레온이 대응을 시작했다.
이곳에는 전투를   있는 자는 한정되어 있어 싸울  있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

하지만 이곳에서 발생한 시귀 정도는 저들이라면 문제없다.


“으으으!!! 이제 더는 못 버텨!”

시스티아는 확실히 지금도 강하기는 하지만, 아직 정식적인 성녀가 아니므로 내가 아는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
만약 사용할 줄 알았다면 이곳에 있는 시귀 따위는 단번에 정화했을 텐데.


하지만 지금 없는 것을 아쉬워할 때가 아니다.


“후우...용화!”


[용화를 발동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5배 상승합니다.]
[용언의 LV이 3의 보정을 받습니다.]
[신체 일부가 변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내가 시스티아의 몫까지 온 힘을 다할 수밖에.


버티고 있던 시스티아의 결계가 깨지면 정말 징글징글하게도 밀집해 있던 시귀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타올라라!]


[타올라라!]

[타올라라!]


용언마법으로 일대를 태워버린다.
아직도 규모가 있는 마법은 사용하지 못해서 이렇게 연속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 자신이 어느 정도 강해졌다고 생각은 하지만, 아직 애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랜드 마스터와 같이 검을  번 휘두르면 산을 자르는 영역에 있다거나, 드래곤 같이 도시 하나를 지울 수 있는 규모의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직 더 성장이 필요하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짓을 할  있는 수단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그건 이곳에서 사용할 수가 없다.
이 제국의 수도가 깨끗하게 날아가 버릴 테니.

그건 조절이 너무나도 힘들다...

“하, 이런 젠장. 도대체 얼마나 있는 거야!”

태우면 또다시 그 자리를 채우는 시귀들.
수도에 인구가 대단히 많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끝도 없는데!

여기서 계속 소모전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안전하고 유리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

“시스티아! 결계 다시 칠 수 있어?”

“윽...해, 해볼게!”


결계가 강제로 깨진 여파로 비틀거리던 시스티아는 이를 악물고 다시 마법을 시전 한다.
아까보다는 약한 결계가 쳐진다.


“이번에는...! 진짜! 얼마 못 버텨...!”

“알았어!”

나는 곧바로 마나를 담아 휘파람을 분다.
이것은 블랙 와이번들을 부를 때 하는 신호.

멀리서도 그것에 즉각 반응하는 것을 느낄  있었다.

후우. 이럴 때는 공중으로 도망치는 것이 제일이지.

“뭐, 뭐야!? 이게 뭐야!”

“2황자님!?”


“모, 몸이...!”

아니, 또 뭐야!
뭐  하려고 하면 이상한 일이 계속 벌어진다.
블랙 와이번을 부르고 시스티아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용언으로 숫자를 줄이고 있으면 또 다시 기묘한 일은 벌어진다.

근처에서 호위들에게 지켜지던 2황자의 몸이 점점 기묘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내, 내 몸이...왜....!”

으직으직하고 기형의 모습으로 부풀면 이상한 고깃덩어리같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뭔가 반응하기도 전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크기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금방 그것은 한때 2황자였던 것으로 되어갔고 황궁의 바닥과 천장을 뚫고 나갔다.

그 여파로 가까스로 생존해 있던 사람들은 시귀들과 같이 추락하거나 떨어진 파편에 깔리는 것이 보인다.

“끼이익!”

나는 다급히 주변에 있던 세 명을 끌어안고 날아올라 타이밍 좋게 날아온 블랙 와이번 등에 세 명을 태운다.
란델이나 후작을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쉽게 죽을 위인들은 아니니까.


대신 시귀로 변한 황제가 떨어져 가는 것이 보인다.
한 나라의 황제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허무한 죽음.

“하...”

이게 진짜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조금 전까지 평화롭게 파티나 즐기고 있었는데...

-----------!!!!

그것이 분노에 가득 찬 포효를 했다.

“아니 이런 미친...저게 왜 여기서 나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과 그것을 본 내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온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고깃덩어리. 그것은 게임에서 그로테스크 순위에서 1위를 한 아두크라고 하는 보스 몬스터였기 때문이다.

“진짜...뭐야...”


상황은 너무 혼란스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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