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화 〉용희와 성녀(1)
시간은 조금 거슬러 올라가, 리제가 막 시체의 탑에 접근하려 하고 있을 무렵으로 돌아간다.
시스티아는 블랙 와이번을 타고 현재진행형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귀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고 있었다.
“홀리 라이트! 여신의 성역!”
정말로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는 느낌으로 시스티아는 마법을 또 쓰고 계속 썼다.
“하아...하아...”
시스티아의 얼굴이 금방 피로에 물든다.
혼자 갈아입을 시간이 없어 입고 있던 드레스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은 상태다.
다른 신관보다 월등히 많은 신성력을 지닌 시스티아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시스티아 님!”
“저쪽!”
시스티아가 지정한 곳에 정확히 블랙 와이번을 조종해주는 리리 덕분에 조금 편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조금 도움이 된다는 정도였다.
결국에 공격은 모두 시스티아의 차지이며 아무도 도울 수단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엘리나에게 기본적인 거라도 가르칠 걸 그랬나...’
시스티아는 자신 만큼은 아니지만, 신관으로서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엘리나에게 눈치채고 있었다. 분명히 이대로 꾸준히 늘려간다면 고위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어렵지 않을 정도.
소녀는 그것을 전부 파악할 정도였다.
하지만 엘리나는 제국의 황녀이기에 마음대로 가르쳐주는 것이 걸려서 가만히 있었는데 그걸 지금 조금 후회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지만 말이지...’
생각해보면 이유는 또 따로 있었다.
“홀리 라이트! 얼른 도망가요! 저쪽에 안전한 곳이 있어요!”
“가, 감사합니다!”
시스티아는 신성마법으로 시귀에게 쫓기는 모녀를 구해주고 기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남을, 인간을 도와준다.
그 사실이 이상한 찝찝함을 남긴다.
본디 시스티아는 인간이라는 것이 싫었다.
그들과 똑같이 자신도 인간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보육원에 막 들어갔을 때만 해도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날. 몬스터가 마을을 습격했던 날.
시스티아는 모든 의미로 전부 다 잃었다.
믿었던 부모님에게 배신당하고 친하게 지내던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배신당했다.
‘다 너 때문이야!’
‘저리로 가! 넌 원래 내 딸도 아니야! 이 재앙 덩어리!’
소녀에게는 이상할 정도로 몬스터가 자주 꼬였다.
하지만 한 마리 아니면 소규모 정도였고 그때마다 어떻게든 운이 좋게 도망치는 데 성공하거나 타이밍 좋게 지나가던 모험가가 도와주거나 했었다.
하지만 그날은 그런 운이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대량의 몬스터가 밀려왔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부모님이라 생각했던 이들이 죽었다.
오히려 시스티아는 미끼로 던져졌음에도 운이 좋게 살아남았다.
죽은 이는 모두가 하나같이 시스티아를 저주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악의를 가지고 소녀를 죽이려고 했다.
이게 전부 내 탓이야...? 아니야, 내 탓이 아니야. 무슨 증거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모험가 길드에서도 단지 운이 좋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나한테 왜 그래?
그것은 어린 시스티아에게는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부정적인 것들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인간 불신. 인간 혐오. 그리고 살의.
반드시 끝까지 살아남아 성공해서 인간에게 복수하고 말겠다는 그런 마음까지.
이상할 정도로 너무나 과하게 그리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에 무거운 덮개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리제의 만남 이후였다.
이제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시스티아에게 계속 진심으로 다가간 소녀.
곁에 있으면 차가워진 마음에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점점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식물이 햇빛을 필요로 하듯 자신은 리제가 필요로 하게 되었다.
리제는 자신의 햇빛, 태양이었다.
시스티아는 오로지 리제만을 위해 살아가기로 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하겠다고.
그리고 그녀가 가는 길이라면 어디든 따라가겠다고.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그렇기에 시스티아는 하기 싫은 인간을 구하는 일도 리제를 위해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녀가 원하는 것이니까.
“허억......허억......”
“시, 시스티아 님. 조금 쉬셔요...”
“전황이 꽤 좋아졌으니 조금 쉬셔도 될 것 같아요.”
자신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것에 표정이 좋지 않았던 엘리나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시스티아의 모습에 안절부절못한다.
둘의 말에 말없이 조금 높이 날아오른 블랙 와이번 위에서 도시를 바라본다.
자신의 노력도 있어서 그런지 확실히 아까보다는 많이 좋아진 것이 보였다.
신전, 모험가 길드, 기사단 주둔지. 이 세 곳을 중심으로 많은 생존자가 모였고 점점 진형도 굳혀져 가는 중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늘어가고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씩 줄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그것을 보고 조금 쉬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 시스티아.
이 정도 했으면 됐다는 그런 마음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은 몸에 힘을 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 저건!”
엄청난 마나가 느껴지는가 싶더니 엄청난 돌풍과 함께 그 마나가 아두크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아두크는 방어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마저 다 찢으면서 본체를 향해 날아간다.
-!!!!!!!!!!
그리고 그것은 거대한 아두크의 몸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렸다.
“저, 저건 설마...?”
“브레스...”
쭉 곁에 있었던 시스티아도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한 브레스.
저것은 용의 계곡에서 얻은 그린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 조각을 흡수한 뒤 얻은 능력이다.
그때 봤던 것보다 위력이 약하게 느껴지는 것은 지금은 힘 조절을 했기 때문일까?
최대 위력을 연발로 쏘는 것은 힘들다고 했으니 아마 나눠서 쓰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안 돼.’
그것을 보면서 시스티아는 이를 악물었다.
부족하다. 너무나도 부족하다.
저 옆에 서기에는 자신은 아직 너무나도 부족하다.
리제는 레온을 자신의 뒤에 서도 괜찮다 생각하고 있다. 그만한 실력을 레온은 지금 지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자신은 아직도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그것은 기쁜 것과 동시에 슬프다.
저 옆에 서는 것이 아닌 뒤에 서야만 하니까.
‘강해지고 싶어. 나도 강해지고 싶어...저 옆에 설 수 있게, 다시는 리제가 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지만 지금의 자신에게 저 옆에 설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진다는 것은 어느 정도일까?
쉬이 예상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예를 들어 보자면...그래.
지금 이 도시에 창궐한 시귀 전부를 여유롭게 정화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힘이 필요하니?』
“!?”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갑자기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마치 머릿속에 직접 목소리가 들어오는 것만 같은 느낌.
이 느낌은 예전에도 한 번 느껴본 적이 있다.
오크가 나타나 리제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꿈에서 자신을 만류해준 여신의 목소리.
그때는 꿈이었기에 약간 애매한 부분은 있었지만, 그 목소리 자체는 기억하고 있었다.
‘여신님...?’
『그렇단다.』
‘어째서...’
『그것에 대해 설명하기에는 좋은 상황이 아니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 힘이 필요하지?』
‘네! 필요해요!’
생각해보면 지금의 힘을 얻은 것도 여신이 꿈에 나타나고 난 뒤였다.
어쩌면 그때와 같이 많은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여신이 말한다.
『이 힘을 받게 되면 넌 지금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쭉 해야만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니?』
‘네. 상관없어요.’
조금이라도 고민을 해볼 법하건만, 시스티아는 거침없었다.
그 어떤 싫은 일이라고 해도 리제를 위해, 그 옆에, 곁에 있을 수 있게 할 수만 있으면 상관없다.
그 방법이 꼭 여신이 아닌 마신이라고 할지라도 시스티아는 망설이지 않았으리라.
『즉답...인가. 후후. 역시 질투나.』
‘네?’
『아니,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럼 너의 동의도 얻었고, 말한 대로 힘을 주마. 앞으로 성녀로서 힘내도록 해. 시스티아.』
‘성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듣게 되니 느낌이 다르다.
성녀가 된다면 여러 가지로 변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싫은 일도 의무가 되는 것이다.
확실히 자신에게는 괴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그 때문에 얻게 되는 일도 많다.
아니, 오히려 플러스가 많다.
“어...!? 꺅!?”
“아윽!? 이, 이건!”
시스티아의 머릿속에서 재빠르게 계산이 끝나고 있으면 갑작스럽게 시스티아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닌 신성력.
소녀의 몸에서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의 양의 신성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으윽...! 마, 말을 안 들어...”
그것은 시스티아 본인의 제어를 듣지 않고 그저 점점 넓게 뻗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가며 모든 시귀를 정화하고 인간에게는 이로운 효과를 주고 있기에 나쁜 일은 아니었다.
제어는 듣고 있지 않지만, 어디까지나 이 도시 하나에 그치고 있다.
마치 시스티아가 여유롭게 이 도시의 시귀들을 정화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했던 것을 실현하게 해 준다는 듯이.
“우와...이, 이게 내 힘이라고?”
거의 10초도 되지 않아 도시의 모든 시귀가 전멸했다.
그리고 그렇게 신성력을 사용했는데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훨씬 여유가 있을 정도.
이것이 리제가 기억하고 있던 성녀의 정화 능력.
마(魔)와의 싸움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갖게 하는 성녀의 힘.
-------!!!!!!!!!!?????
시귀뿐만 아니고 리제에게 공격받아 약화하여 있던 아두크도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아두크는 엄연히 따지면 마는 아니었지만, 그와 비슷한 존재이기에 대미지가 없지 않았다.
거기에 자신의 먹이가 되어야 할 시귀들도 전부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벼랑 끝에 몰린 자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사냥꾼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리제!”
단순히 이름을 부르는 거였지만, 무슨 뜻인지 알았다.
그런 시스티아의 말에 답하듯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리제의 모습이 보였다.
“하앗!”
-!!!!!
리제는 우선 아두크의 눈알에 검을 꽂아 넣더니 브레스에 크게 뚫린 구멍에 진입한다.
그리고 곧바로 조금 전 사용한 브레스를 또다시 준비한다.
이번에는 그때보다도 더욱 위력적이게, 이 거대한 아두크를 내부에서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아두크는 무엇을 할지 알아챘기에 자신의 재생능력을 최대로 발휘해 구멍을 막아버리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강력한 약점 속성으로 공격당한 데다가 시스티아의 신성력의 방해도 있다.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아두크는 내부에서 촉수를 만들어 어떻게든 방해하려 하지만,
“늦었다. 멍청아.”
이미 늦은 뒤였고, 위력이 배증한 리제의 브레스가 또다시 아두크에게 작렬한다.
날카로운 바람, 거센 돌풍 같은 바람의 브레스는 아두크를 내부에서부터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그 존재를 삭제시키고 있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후우...지쳤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그곳에는 굉장히 지친 모습으로 땀을 훔치는 리제의 모습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제국을 덮친 재앙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한 명의 젊은 용인 아가씨와 이제 막 각성한 성녀에 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