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용희와 성녀(3) (58/107)



〈 58화 〉용희와 성녀(3)

미지의 적이 존재한다.
그것도  세계에 대해 잘 아는 녀석이.
아니 어쩌면 여럿일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알았으니 이대로 멍하니 있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망가진 제국의 수도에서 나름의 평판도 많이 올렸으니 나는 곧바로 행동에 옮기기로 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이 내심 아쉽기는 하지만, 분명 기회는 올 것이다.

이번에는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물론 세라도 같이 가기에 진짜 혼자는 아니고 도중에 합류할 인원도 있기는 하지만, 같이 행동했던 시스티아나 레온도 놓고 갈 것이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시간이 아까우니까.

시스티아는 이제 정식으로 성녀가 되었으니 분명 위험에 처할 일도 많아질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는 이제  용사가 될 레온도 있고 에렌을 위시한 성녀 호위대도 있다.
여기에 끼지 못하는 것은 굉장히 아쉽지만, 지금의 내 행동도 엄연히 호위다.


진정한 호위는 곁에서 무조건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 위험을 미리 배제하는 것.

지금의  행동이 결국에는 그것으로 이어질 것이니까.


아직 해가 뜨기 전, 아직 모두가 잠든 새벽의 성문 밖.

“정말로 나 혼자서 괜찮은 건가?”


나는 아기용의 모습으로 품에서 잠든 세라를 데리고 에렌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주변에는 단지 에렌  명뿐이다. 이건 내가 에렌에게만 오늘 떠난다는 것을 알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앞으로 시스티아 호위의 핵심이라는 것도 있고, 현재 친구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알고 지낸 기간이 가장 짧은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괜찮아. 다른 사람에게는 편지를 남겼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성녀님은...”

“아...응. 아마 노발대발하겠지.”


 짧은 기간에 시스티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에렌이었다. 물론 내가 이것저것 시스티아에 대해 알려준 것도 있기는 하지만, 본래 관찰안이 뛰어난 거겠지.


여기에 란델도 아마 레온도 내가 떠나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해줘도 시끌시끌할지도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아니 용화 때는 자신을 뛰어넘는 실력을 갖췄음에도 란델에게는 그런  상관이 없는 듯하다.
란델은 나를 확실하게 딸로 생각하고 있고, 레온도 나를 누나 대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둘 다 가족과 연관해서 아픈 기억이 있는 이들이다.

“뒷감당은  수 있겠나?”

“솔직히 자신은 없어...”


에렌과 처음 만난 날, 시스티아에게 꼬리를 농락당하고 나서 시스티아는 틈만 나면 무언가 손에 쥐고 좌우로 훑는 행동을 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몸이 움찔 떨리고 용화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도 꼬리가 움츠러드는 것만 같다.

상스러운 행동 좀 하지 말라고 하면,


“뭐가 상스러운 행동인데? 내가 뭔가 남들 앞에서는 못 하는 행동이라도 했어? 응? 설명해줄래?”

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에 나는 말문이 막힌다.
진짜, 요망해졌어. 언제 저렇게 요망해진 것일까...? 난 분명 저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분명 내가 멋대로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분노할 테고, 그 분노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모르겠다.
벌써 몸이 떨려오는 것만 같다....


“아무튼 뒤는 부탁할게. 에렌. 너라면 반드시 잘해 줄 거라 생각해.”

“굉장히 부담되는 말이지만, 알았다. 내 모든 것을 다해 성녀님을 지켜 보이겠다.”

각각의 편지에 반드시 해야 할 일과 부탁할 일들을 적어두었으니 모두 잘해줄 것이다.
내가 없는 것에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내가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지금은 내가   있는 최선의 일을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말한 인물들을 조심해.”

“음....”

그런  말에 에렌의 표정이 복잡하게 물든다.
내가 말한 조심해야  인물. 6황자와 커티스 후작. 나와 얼굴이 똑같은 여자. 그리고 리리.

뒤에 두 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앞의 둘은 제국에 깊게 연관되어 있던 존재들이다.
그런 이들이 제국의 수도를  꼴로 만들고 황제를 죽게 했다니 쉽게 믿기는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여태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모두에게서 들으며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가장 의심이 가는 인물들이다.
특히 6황자는 파티 내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건넸다거나, 그 녀석과 닿은 사람들이 따끔함을 느꼈다는 말을 했다거나 하는 것을 보면 거의 확신에 가깝다.

커티스 후작의 경우는 시귀들이 들이닥친 타이밍에 그 모습을 감췄으니 당연히 뭔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시귀에게 물리고 나서 정화 당했다는 경우도 있겠으나, 그런 것치고는 흔적이 전혀 없다.
아예 제국 내에서 사라졌다고 할 정도였으니.

나와 얼굴이 똑같은 여자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모르니 뭐라 할 수는 없겠다.
다만, 그 여자에 관해서는 란델에게서 어쩌면, 이라는 말이 나올 법한 정보가 나왔는데 이건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리리. 엘리나의 메이드였던 그녀는 시스티아가 성녀로 각성하고 상황이 거의 종료된 직후 갑작스럽게 모습을 감췄다고 한다.
엘리나의 증언에 따르면 갑작스럽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던데, 그것에서 생각할  있는 것은 마족이라는 것. 그것도 시스티아를 속일 수 있는 상당히 고위의 마족.


이번 일에 연관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에 왔을 때는 즉위식도 끝나 있을지도 모르겠네.”


“너무 늦지만 않는다면 볼 수도 있을 거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겠네.”

다음 황제는 자연스럽게 리히텐으로 확정되었다. 4황자, 5황자도 살아남았다는 것 같은데 그들은 본래 황제 자리에는 흥미가 없었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리히텐이 황제가 된다. 그것이 정답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게 확정이 되어버린 후,

[다음 루트로 가기 위한 조건이 해방되었습니다.]


이 메시지가 떠서 아마도 이게 올바른 루트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저, 저기. 리제. 떠나기 전에 세라를 한 번만 만져도...”

“아, 그래. 자.”


“아니, 리제. 너의 가슴이 아니고 세라를 원하는 거다만...?”


“누가 내 가슴 만지래? 이 안에 있으니까 그러지.”

아기용일 때의 세라가 자는 곳은 이 쓸데없이 크게 자라 버린 가슴사이다. 덕분에 다른 곳은 제쳐놓더라도 가슴만은 제법 강조가 되는 옷이 강제되어버린다. 타이트하게 되어버리면 세라가 잘 수가 없으니까.
솔직히 다른 곳에서 잤으면 좋겠지만, 세라는 내 드래곤 하트와 가장 가까운 곳을 가장 좋아하기에 어쩔 수가 없다.

“흠흠...그,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어쩐지 잔뜩 긴장한 모습의 에렌이  가슴, 아니 가슴 사이에 있을 세라에게 손을 뻗고 있으면,

“뀨우...?”


잠에서 깬 것인지 세라가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일어날 시간이 다 되었던 건가. 본래 스스로 깨어날 때까지  번 잠들면 주변에서 시끄럽게 떠들든 흔들리든 절대로 일어나지 않으니까.

“세, 세라....!”


“뀨? 뀨우~♪”

"후, 후후, 후후후...."

고개를 내민 세라를 쓰다듬기 시작하는 에렌의 얼굴은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엄청 풀린 얼굴이었다. 오로지 마음 편히 귀여운 것을 만질 때만 하는 얼굴.


“어째 나보다 세라랑 헤어지는 게 더 아쉬워 보인다?”


“그건 부정하기가 힘들군. 세라를 놓고 가지 않겠나? 내가 책임지고 돌보도록 하지.”

“진지한 얼굴로 말하지 마.”


분명 농담이겠지만, 이 녀석은 농담도 진지한 얼굴로 한단 말이지.
...농담 맞지?

그렇게 잠시 에렌이 세라를 쓰다듬는 시간이 이어지고 나는 에렌과도 헤어져 나왔다.


“......”

생각보다 제법 오랫동안 지낸 제국의 수도. 아직 한참을 복구해야 하지만 내가 봐왔던 모습을 보면 문제는 없겠지.
그리고 나에게는 동료라 불러야만 하는 이들.


다들 걱정은 없지만, 시스티아만은 걱정이 된다.

이제는 나 또한 시스티아가 눈앞에 없으면 불안해진다.
게다가 정체불명의 적들이 시스티아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있고 만약을 대비한 것도 준비하고 왔지만,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일정에 데리고 다닐 수도 없다.
적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적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숨겨진 곳을 빠르게 돌고, 선수를  수 있는 것은 쳐야 한다.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놈들에게 계속 엿 먹었으니 이번에는 내가 엿을 먹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놈의 최고의 해피엔딩 두  보려면 말라 죽겠네.”

나를  세계에 보낸 정체불명의 존재.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이 많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걸 아는 것보다 눈앞의 일에 집중해야만 하겠지.


“...다녀오겠습니다.”


“뀨~”

그렇게 나는 모두를 뒤로 하고 세라와 함께 제국의 수도를 떠났다.


*


“...바보. 멍청이.”


시스티아는 떠나가는 리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리제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르게 떠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리제의 착각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시스티아에게는 그게 통하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리제의 모습이 이상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뭔가를 몰래 준비하고 있고 심각한 모습으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으니까.


이번 일에 대해 리제는 아마 다른 이들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용의 계곡에서 숨겨진 장소를 찾아낸 것과 같이 아마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시스티아는 언젠가는 말해주리라 생각하며 굳이 건들지 않고 있었지만, 리제는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듯이.

“......”

시스티아는 리제가 어제 갑자기 건넨 펜던트를 쥐었다.

‘이건 갑자기 왜 주는 거야?’


‘이제 성녀도 되었으니 몸을 지킬 수단은 하나라도 더 가지고 있는 것이 좋잖아? 물론 내가 지켜줄 테지만,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 갖고 있으면 나쁜 일로부터 지켜줄 거야. 그러니까 반드시 지니고 다녀.’


‘알았어....’


 때는 반신반의 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것이 이별의 선물일지는 몰랐다.
아니, 영원히 떠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시스티아에게는 그렇게 생각될 정도로 가슴이 미어졌다.

여신에게 힘을 받아 성녀가 되어 이제야 곁에 있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는데, 설마하니 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니.


“리제...”


알고 있다.
언제나 그랬다.

리제는 자신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그렇기에 안다.

리제가 이렇게 떠나는 것은 분명히 자신을 위한 일이다.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누나 갔어...?”


“어. 너도 알고 있었구나?”


“...그냥. 어렴풋이.”

그렇게 리제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레온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스티아의 질문에 레온은 멋쩍은 듯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누나. 내 누이인 루리아 누나가 갑자기 모습을 감출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거든.”

“.....”


 말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레온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 내심은 복잡할 것이다.
리제가 루리아의 대신이 될 수는 없지만, 그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 만난 그날부터 새로운 가족이라 생각해도 좋다고 한 그날부터, 레온에게는 누이와 똑같을 정도로 소중한 가족이 되었다.


그 덕분에 레온은 비뚤어진 생각을 접었다.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할 용사가 가져서는 안 되는 비뚤어진 생각을.

“너도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 리제를 위해서라도 말이야. 이번 대의 용사님.”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근데 진짜 내가 용사 맞아? 나중에 거짓말이지롱~ 막 이러는 거 아니야?”


“야, 내가 아무리 네가 싫다고 해도 그런 거짓말을 할 거라 생각해?”

“하긴, 그것도 그렇지.”

시스티아와 레온. 성녀와 용사.
 둘은 닮은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서로 싫어하며 동시에 서로를 믿는다.

본디 서로 탁한 빛끼리 만나 섞여 그것이 검게 물들 운명이었지만, 그 운명은 바뀌었다.

그들의 구심점에 있는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에 의해서.


물론 이 모든 것이 모두 그녀의 힘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리제의 공이며 힘이다.
이것은 아직 이야기할 수 없는 일.

“빨리 다녀와.”

그런 시스티아의 간절한 소원과 함께, 해가 뜨며 세상에 빛을 밝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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