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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해야 하는 것(2) (60/107)



〈 60화 〉해야 하는 것(2)

다크엘프 암살자. 시크리프. 예전에 세피룸의 망나니 영주 아들에게서 의뢰를 받아 나를 죽이러 왔던 암살자.
그렇지만 사실은 이 녀석이 뒤에서 전부 그런 식으로 흘러가게  것이다.


몸 보다는 머리로 암살을 시도하는 타입.

뒷공작이나 누군가를 속이거나 최면을 거는  온갖 더러운 짓은 초일류인 그런 녀석이다.

그때 죽이려고 했지만, 결국에는 살려서 내 노예로 만들어 수족처럼 부리는 것을 선택한 녀석.
그리고 그 선택은 정말로 탁월했다고   있다.
 녀석뿐만이 아니고 이 녀석이 이끄는 암살자 길드가 통째로 손에 들어온 것이 되니까.


그리고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뭘 하고 있던 거냐. 조금만  늦었으면 참가하지 못할 뻔 했다.”

“그때는 네가 대신 나가면 되잖아.”


“어떻게든 참가야  수 있겠지. 다만 자금이 부족하다.”

계속 틱틱 거리는 말투가 누가 봐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하여간 조금 늦었을 뿐인데 소심하고 까칠한 녀석이라니까.

그렇게 내가 작게 한숨을 쉬고 있으면 내 품에서 뛰어내려 폴리모프로 변한 세라는 시크리프 앞에 선다.

“아저찌, 누구에여?”


“...그러는 너야말로 누구냐.”

“어? 세라는 엄마 따리요!”

시크리프는 다 알고 있지만, 세라를 상대하기는 귀찮은지 퉁명스럽게 말했고, 세라는 그것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것 외에는 정답이 없다는 듯이 제법 진지하게 말한다.


...세라야, 엄마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런데 껴안아도 될까?

“음, 넌 나중에 엄마처럼 되지 말아라.”


“...? 세라는 엄마처럼 댈 건데...”


“...이 세계의 장래는 어둡군.”

시크리프는 세라를 내려 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그러고 보면 녀석이 항상 나를 보면서 하는 말이 악마였었지.


뭐...이 녀석 처지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하지만 걱정은 하지 마. 세라는 나처럼은 안 키울 거니까. 절대로.
내 딸이라고 하지만 나만의 딸은 아니니까.


“준비는 끝난 거야?”

“물론이다. 쓸데없이 끝나지 않아 다행이로군.”


그렇게 말하고는 시크리프는 따라오라는 듯이 앞장선다.
나는 세라의 손을 붙잡고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러면 풀숲에 숨겨 있듯이 세워져 있는 마차가 보였다. 그것도 귀족들이나 탈법한 굉장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마차가.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이 정도면 수수한 편이다.”

“준비한  어느 정도야? 남작?”


아루르펜에 들어가기에 앞서 준비를 시킨 것에는 적당한 신분도 있었다.
아직 왕국 내에는 그리 퍼지지 않았을 테지만 용희라는 것도 있다.
이종족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왕국에서는 그 신분은 오히려 독이니까.


“그곳에 들어갈  있는 것은 자작 이상의 귀족뿐이다. 그러니 불평은 그만 하고 이걸로 갈아입어라. 사이즈는 맞을 거다.”


그렇게 시크리프가 넘긴 것은 큰 사이즈와 작은 사이즈의 드레스.
귀족 영애나 귀부인이 입을 것 같은 그런 옷이다.

제국에서 있을 때도 많이 입기는 했지만, 여전히 거북하군...

“세라야. 옷 갈아입자.”

“응~!”

불평만 할 수는 없기에 나는 세라와 옷을 갈아입는다.
한두 번 입는 것도 아니고 몇 번이고 입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다 입었어.”

“늦어.”

“여자애는 꾸미는데 시간이 걸리는 법이야.”


“...네가 말이냐?”

시크리프가 그런 내 말에 눈을 부릅떴다.
마치 내가 그런 말을 할지 몰랐다는 듯한 반응.
그리고 당연히 그건 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 말고 세라.”


“에헤헤~”


“아...그렇군.”

나는 대충 정리해서 입어버렸지만, 세라는 최고로 예쁘게 꾸며줘야지.
머리 모양도 이것저것 바꿔보고 하느라 늦은 거다.


“아무튼  입었으면 이제 변장을 해야지.”


“어떻게  건데?”


“이렇게 말이다.”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면 흑마법의 특유의 마기가 나와 세라를 감쌌다.
그것은 해를 끼치는 종류의 것이 아닌 보조하기 위한 수단.
세라의 검은 머리는 갈색으로 눈동자는 푸르러졌다. 단순히 그것만이 아니고 전체적인 인상도 바뀌었다.
그리고 시크리프도 그다지 특징은 없어 보이는 중년 남자의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나도 바뀌었겠지.

“엄마, 달라!”

“세라도 달라졌어.”


“어?”

자신도 달라졌다는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뜬다.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지만, 거울이 없어서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보는 걸로 하고 우리는 마차에 올라탄다.

“나는 이제부터 알테일 공국 자작가의 집사. 너희는 일찍 남편과 사별해 그대로 자작 자리에 앉은 여자와 그 딸이다.”


“그, 그런 설정이었어?”

너무 무겁지 않냐...? 그 설정.




*





실제로는 처음으로 와 보는 아루르펜이었지만, 그래도 게임에서 보던 것이 있어서 굉장히 눈에 익었다.
그 구조 자체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제국의 수도에 갔을 때는 축제 시기였기에 비교 대상으로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중에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의 비율이  높고 모험가로 보이는 이들도 상당히 많았다.

아루르펜은 모험가의 도시, 환락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그렇게 불릴 뿐이고 이곳을 깊게 들여다보면 그렇게 단순하게 불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르티나 왕국은 인간제일주의가 뿌리 깊게 있는 것과 동시에 귀족제일주의도 아주 뿌리가 깊다. 왕국의 어둠이라고 말할  있을 정도로.
왕족이나 귀족 이외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생각하는 귀족들이 득실득실하다.
그에 무고한 사람이나 이종족은 귀족의 쾌락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입에 담지도 못할 짓을 당하고 죽거나 망가지는 일은 굉장히 많다.

그러니 이곳에서 그나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귀족이라는 이야기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것도 있지만, 시크리프가 귀족의, 그것도 적당한 자작의 신분을 준비한 것은 그 때문이다.


너무 낮지도 않고 높지도 않고 그래도 귀족으로서는 확실하게 인정되는 범위에 들어가는 정도니까.

마차로 아루르펜에 무사히 진입한 우리는 최고급 여관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 되어서는 다시 마차를 타고 어느 한 곳으로 향했다.


겉으로  때는 그저 고급스러운 거대한 건물.
하지만 안에서는 귀족들의 광기 어린 충동을 해결하기 위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주인님.”


“고마워요.”

시크리프, 아니 집사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린다.
그 행동은 격식이 있는 귀부인같이, 차분하고 우아하게.
여관에서 쉬지 않고 시크리프에게서 배운 것 중 하나다.
설마 하니 이런 것까지 배울 줄은 몰랐지만, 연기하는 것이니 철저하게 해야지.

“오오...”

“이, 무슨...”


그렇게 마차에서 내리니 건물 근처에 있던 많은 이들이 나를 평가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왔다.
이런 것도 제국의 파티에서 많이 경험해본 것이다.
단지 ‘변장’을 했는데도 왜 이런 반응인지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제국 때와 같은 용희라는 거창한 이명도 없고 너무 과하지 않은 적당한 모습으로 한 것 같은데.

“도, 도대체 어디 귀족이신 거지?”


“처음 보는데 말이야...”

그렇게 사람들이 웅성웅성하는 사이 나는 마차 안을 향해 말한다.


“세이라. 이리 나오렴.”


“네! 엄마!”

신이 난 세라가 마차 안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그것에 귀부인 풍으로 눈을 살짝 찌푸리며 주의를 시키면 그저 해맑게 웃는 세라.
다른 사람으로 변해서 노는 놀이라고 일단 이해시키면 아주 신이 났다.


“실례합니다. 처음 뵙는 분 같은데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겠습니까?”

이곳의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바로 나타나 긴장한 듯이 정중하게 물었다.
귀족이야 널리고 널려서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데 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는 것인지...

“알테일 공국의 자작 리아제 켈리아라고 합니다. 이곳에는 처음 와 보는데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내가 정중하게 싱긋 웃으며 말하면 직원 남자는 얼굴을 발그레 물들인다.
어우...내가 하는 거지만 너무 소름 돋는다. 양팔을 마음껏 비비고 싶네. 닭살...


“그, 그런 거라면 기꺼이 해드리겠습니다! 그게 저의 일이니까요!”

“고마워요. 자, 가죠. 세이라. 세바스챤.”

그렇게 우리는 수월하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밖에도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안은 그보다도 많았다.
그리고 밖과는 다른 것은 척 보기에도 노예로 보이는 이들이 귀족들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희망이라는 것조차 잃어 그 눈에는 그저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귀족들에게 예속되는 노예의 말로는 너무나도 비참하다.
인간조차 아니게 되니까.

...이쯤 되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알 것으로 생각한다.
노예 경매장. 그것도 단순한 노예 경매장이 아닌 귀족들의 오락거리도 겸한 특수한 경매장이다.


“엄마...부쌍해...”

“......”


나에게만 들리게 살짝 말하는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곳에 데리고 오고 싶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놓고 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데리고 온 것이다.
아기용의 모습으로 품속에 들어가 있으라고도 해봤지만, 싫다고 말했다.

아마도 세라 나름대로 이번 일이 중요한 일이니 반드시 자신도 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세라에게서는 굳은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세라에게서 느낄 수 있듯이 세라도 나에게서 느낄 수 있으니까.


“내 노예가 더 앉기 좋거든!”

“아니야 내 노예가 더 편해!”


세라만한 정말로 작은 아이들이 자신의 노예가 더 앉기에 좋다며 자랑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것은 하나의 광기였다. 정말로 미쳤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진짜 돌았구만....여기에 있는 새끼들.”

“험험! 주인님?”


“네?  그러지요? 세바스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직원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어요.”

오호호. 본 모습이 나온 나에게 주의를 주는 시크리프에게 그리 어색하게 웃으며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직원은 여전히 긴장한 모습으로 이곳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그러면 안내에 앞서 입장료가 있다는 건 아시는지요?”


“네. 그럼요.”

“여기 있습니다.”

시크리프가 금화  자루를 꺼내 직원에게 건넨다.
직원은 그것을 받아 몇 번을 흔들어 보더니 맞는다며 그것을 거두었다.
정말로 익숙한 행동.  없이 해 본 것이라는 걸 거다.
단지 흔드는 것만으로도 맞는지  맞는지  수 있을 정도로.

“오늘의 상품 목록입니다. 미리 확인해 두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고마워요.”

직원은 곧바로 종이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오늘의 상품. 즉 경매로 나올 노예의 리스트였다.
오늘 내가 반드시 사야만 하는 ‘상품’이 오늘 나온다는 것은 시크리프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오늘은 이종족이 셋이나 나옵니다. 그  하나는 정말로 특별한데요. 그 덕분에 오늘은 손님이 평소보다 배는  방문해주셨습니다.”

뭔가 자랑스러워하는 역겨운 직원의 말을 대충 흘려들으면서 리스트를 빠르게 확인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충 30개의 목록이 적혀 있었고, 그 마지막에 확인할 수 있었다.

‘하긴, 먼저 내보내는 것보다 마지막에 내보내는 것이 경매장 입장에서는 좋겠지.’


쯧, 하고 혀를 차는 것을 꾸욱 참고 다시 한 번 그것을 확인한다.


하이 엘프(여) - 시작가 100성화.
성노예, 처녀, 조교 상태(중), 각인 완료.


가격부터 시작해서 굉장히 치열한 싸움이 될 것 같다.
다만, 걱정은 전혀되지 않지만.

반드시 사야 하는, 아니 구해야만 하는, 앞으로의 일이 수월해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인물.
게임에서는 상당히 강한 적으로서 방해해왔던 하이 엘프. 세피리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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