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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해야 하는 것(3) (61/107)



〈 61화 〉해야 하는 것(3)

세피리아는 이종족의 인간증오에 대한 대표적인 캐릭터로 통한다.
끝까지 주인공 일행을 방해하다가 마지막쯤 죽는데 그 죽음도 상당히 비참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어째서 그렇게 인간을 증오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오는데 그것은 엘프의 나라를 나와 인간에게 잡혀서 성노예로 팔려 끔찍한 일을 당한 것에 기인한다.


다만 이것은 인간에게 잡힌 엘프 노예라면 거의 공통으로 일어나는 일이긴 한데, 그녀는 본래 인간을 동경하고 좋아했고, 나라에서 나와 자신이 엘프인 것을 알아도 차별하지 않고 동료로 받아 준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게임에서 유일한 엘프 캐릭터로 등장했지만, 적으로 나와서 굉장히 아쉬움을 샀다.
그녀의 사연을 듣고 더더욱.

"이 세계는 다른 종족에 대한 박해가 너무 심한 거 같아."

경매장 내부와 손님석이 한눈에 보이는 2층의 개인 귀빈석으로 안내된 나는 다시 한 번 그때의 내용을 떠올리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너무나도 인간우월주의가 뿌리가 깊다고 해야 할까.
그나마 제국은 나은 편이었는데 왕국이나 다른 나라는 그 정도가 심하다.

언제 한  이 세계에 역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볼 시간이 있었지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았다.
란델이나 후작같이 차별이 전혀 없는 사람도  이유까지는 모르고 그저 옛날부터 그렇게 내려왔으니까. 라는 쓴웃음 섞인 말로 끝나고 만다.


"흥. 인간이란 놈들은 악마가 그럴싸한 가죽을 뒤집어쓴 놈들이다. 먼 옛날부터 인간이 아닌 종족들을 차별하고 핍박해왔지. 그게 정말로 당연한 일과 같이."


주변좌석과는 거리가 있고 이곳에는 우리밖에 없기에 시크리프도 본 모습으로 그렇게 말한다.
그 말에는 엄청난 혐오감이 배어 나왔는데, 솔직히 이런 일을 공공연하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생각이 들 것 같다.

“근데 네가 악마라고 하니까 뭔가 이상하다. 마신을 믿고 있는 다크엘프가.”

“웃기는 소리. 마신을 악하게 보는 것은 인간의 제멋대로 하는 생각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여신이 사악하다 생각하고 있지.”


“뭐, 견해차야 있겠지...”


마족, 마왕, 마신 = 쓰러트려야 할 존재.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 측이고 그 반대편에 있는 이들은 또 그들만의 생각이 있는 것이다.
나도 일단은 인간 측이긴 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전부 다 사악한 존재일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고 있다.

시크리프가 나와 세라에게 마법을  때도 싫은 느낌은 전혀 없었고 말이다.
아니, 오히려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다만, 이 세계에서 가장 사악했던 존재는 따로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의 인간 놈들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로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악마 말이다. 먼 옛날에는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 기록에서조차 싹 사라진 존재들이다.”


“악마가 실존했었단 말이야?”


보통 마족과 악마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만약에 시크리프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나보고 악마 같다는 말은 하지 않았겠지.

“진짜 실존했는지는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기록으로 남아 있었을 뿐이지. 그들이 행한 끔찍한 일들이 말이다.”

“그 기록 나도 볼 수 있어?”

“엘프의 마을에는 아마 있을 거다. 거기에 아마 드래곤도 가지고 있을 테지. 아무튼, 지금 나에게는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엘프의 마을에 가보는 건가...”

조금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악마라는 존재에 대해 알면 뭔가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세계를 알면서도 너무나도 모른다.
아마도 내 적인 존재들은 나보다  세계에 대해 잘 아는 이들일 것이다.
조금이라도 따라가야지.

“너랑 차분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네. 그때 너를 살려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어.”


“뭐냐...기분 나쁘게. 그리고 난   죽는 게 더 나았다. 젠장...”


“아들도 무사한데 꼭 죽을 필요 있어?”

“그, 그게 문제가 아니다! 지금  같은 악마에게 부려 먹히고 있는 것이 굴욕적이고 힘들단 말이다!”


“호호호, 운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세바스챤.”


“젠장...!”


예속되어  노예로 있는 이상 절대로 풀어 줄 생각은 없단다.
뼛속까지 쪽쪽 빨아먹어 줄게.
역시 죽이는 것보다 이런 식으로 부려 먹는 것이 좋단 말이지. 능력이 있을 경우에는.

“엄마! 조기, 사람!”

“응? 아. 시작하려나 보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밑을 계속 구경하던 세라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면 깔끔하게 잘 차려입은 남자 한 명이 무대 같은 곳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곧 그는 아마 소리 증폭 마법이 걸린 마이크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입을 열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오늘은 저희 경매장에 와주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자, 그러면 기다리다 지치셨을 테니 바로 오늘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첫 번째 노예!]

수많은 시선을 받으며 인사말을 건넨 사회자는 활기차게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사회자가 나왔던 무대의 뒤편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한 명의 건장한 남자 한 명을 데리고 나왔다.
누더기를 입고 쇠사슬로 칭칭 묶여 있는 절망감이 물씬 풍기는 남자였다.

“내 아들도 살리지 못하고 이렇게 노예가 되다니...이럴 수 없어...이럴 수 없어...”


‘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같은데...’

[첫 번째는 전투노예. 전 C급 모험가였던 남자입니다. 하지만 강등되기 이전에는 B급이었던 듯합니다. 어떤 치료를 위해 거액의 빚을 지고 그것을 갚지 못해 노예가 된 자입니다. 그럼 금화 10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1개!”

“14개!”


저런 노예라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있구나.
하긴 전투노예라고 하니 여차하면 호위로 써도 되겠군.


‘근데 진짜 어딘가 낯이 익은데...음. 뭐, 됐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중요한 인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운동이라는 듯이 가장 싼 전투노예가 낙찰되어 사라지고 경매는 계속된다.

사회자가 간단하게 노예의 전문적인 용도와 가진 특기, 그리고 사연을 간단히 설명하고 경매가 시작되기에 단순히 리스트에서 보는 것과는 달랐다.
정말로 각자 다양한 사연이 있었다. 걔 중에는 빚을  사람이 가장 많았는데, 왜 빚을 졌는지도  다르다. 아마, 저들 중에서는 억울하게 빚을 진 사람도 있겠지.


[네 금화 120개! 낙찰되셨습니다!]

“......”

다만, 그들에게서 공통으로 느껴지는 것도 있었다.
절망. 앞으로 어떤 일이 자신에게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죽기 전까지 편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방금 낙찰된 성노예 여성은 기름이 가득한 돼지 귀족에게 전신을 핥는 듯한 시선을 받아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보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역시 보고 있어서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세라야. 괜찮아?”


“응...”

경매가 진행됨에 따라 세라의 기분도 떨어져 간다.
나도 기분이 나쁜데 세라는 어떨까.
다만, 다행인 것은 세라 또래의 어린아이는 없었다는 점일까.
어린아이는  곳이 한정되어 있어서 경매에는 올라오는 일이  없다는 것 같다.
잘 없다는 것은 분명히 나오기는 한다는 것인데...다른  몰라도 이 부분에서는 좀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리로 와. 엄마가 안아 줄게.”


“......”


세라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나에게 다가와 품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그런 세라를 안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면 조금이지만, 안정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후우...역시 데리고 오는 게 아니었는데.

“정말이지 언제 봐도 야만스럽기 짝이 없군. 같은 인간끼리 저게 뭐하는 짓이지.”

시크리프가 정말로 불쾌하다는 듯이 혀를 찬다.
 녀석의 반응만 보더라도 흔히 이종족이라 불리는 존재들은 같은 종족을 끔찍이 여기는  같다.
시크리프는 기본 다른 이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느낌이지만, 같은 다크엘프나 엘프에 연관된 일이면 꽤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기본 자신의 친족이나 지인이라면 소중히 여기려 하지만,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소중히 하려고 하지는 않다.


나만 봐도 불쾌하고 저들이 딱하게 여겨지긴 하지만, 어떻게 하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역시 시스티아나 세라. 그리고 주변인들만 무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들과 평화롭게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좋은 해피엔딩이니까.


[자, 그러면 이쯤에서 특별한 상품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아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5살, 6살의 묘인족 자매!]

“!?”


그 말에 나는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특별한 상품이라는 것을 강조하듯 앞서 나왔던 이들과는 깨끗한 복장이었다.
어린 그 자매의 머리에는 고양이 귀가 달려 있었고 허리 부근에서는 꼬리가 나온 것이 보였다.
회색과 갈색의 자매는 서로 의지하듯이 안으며 덜덜 떨고 있었고 귀와 꼬리는 추욱 쳐져 있었다.

수인이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세피리아에만 신경이 쓰여서 정확히 어떤 이들이 나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저런 어린아이들이라니.


[이들은 저희 쪽에서 번식으로 관리하고 있던 수인에게서 태어난 상품입니다. 다만 일반적인 수인이 아닌 짐승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판명이 났기에 이렇게 특별히 경매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짐승화라고...!?”


“무슨...!”

나도 시크리프도 놀라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도 웅성웅성하는 사이, 사회자가 뭐라 신호하면  주변에 있던 직원이 자매에게 다가가 손에 들고 있던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그러면 겁먹은 자매는 눈을 질끈 감았고 얼마 안 있어 빛이 나더니, 그 몸이 줄어 회색과 갈색의 새끼 고양이가 되었다.


“냥...”


“야옹...”

짐승화였다. 수인 중에서도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는 특별한 능력.


[자, 확인은 되셨으리라 봅니다. 그럼  마리 세트로 30 성화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35 성화!”

“40 성화!”


그리고 그 새끼 고양이들을 건 경매가 시작되었다.
30 성화라는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시작했음에도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고 있다.
2분이라는 시간도 안 되어서 200 성화까지 가격이 뛴다.


설마 세피리아의 경매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어떻게 할 거지? 자금에 여유가 있다면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같다만.”


“네가 웬일이야? 수인도 신경 쓰고.”

“신경 쓰는 것이 아니다. 단지 저 재능이 인간놈들 때문에 꽃 피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이 아주 조금 아깝게 느껴질 뿐이지.”


“그게 신경 쓰는 거잖아.”


“아니다.”


이 귀찮은 자식.
거짓말을 어떻게 저리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하는 거냐.
뭔가 반응이라도 있으면 재밌기라도 하지.

“엄마...”

“알고 있어.”


“응....”

세라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지금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지.


나로서도 저 아이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여기서는 사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딸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으로 저 아이들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500 성화.”

그렇게 내가 경매에 참가하려 마음을 먹고 있으면 갑자기 가격이  뛰었다.
나와 같이 2층의 VIP 자리에 앉아 있는 젊은 남자다.
밑에 있던 이들은 그 남자를 보더니 웅성웅성 떠들었다.
나는  모르지만,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아루르펜 영주의 아들이다.”

“아, 그래?”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시크리프가 바로 누구인지 알려준다.
 아루르펜 영주의 아들이라면 그 재력과 권력이 얼마나 강할지 쉽게 예상이 된다.
그래서 다른 이들도 쉬이 경매에 참가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아니, 단순히 가격이 높았을 뿐인 것도 있을 테지만.


아무튼, 그런 건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겠네.


“1000 성화.”


[네, 네! 1000 성화 나오셨습니다!]

“뭣...!?”

놀란 목소리가 들려오며 나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주변도 나를 보고 놀란 듯이 아까보다도  시끌시끌해진다.
 도시의 주인이라고  수 있는 영주의 아들에게 싸움을 건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일지도.

“1, 1500 성화!”

“3000 성화.”

[1500...아니 3000 성화 나왔습니다! ]

“무...!?”

자신이 말하는 금액에 바로 두 배 올라가는 상황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남자는 이를 갈며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더니 입을 열었다.


“3500 성화!”

“7000 성화.”


[7, 7000....]

가격이 거기까지 올라가니 사회자조차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나는 슬쩍 남자를 바라본다.

핏발이 선 눈으로 노려보는 것이 당장에 경매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듯이 보였다.


내가 왜?


꿀릴 것이 전혀 없는데.


네가 얼마나 돈이 많은지는  모르겠는데 말이야.


드래곤이 1만 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은 금은보화보다 많겠어?

포기해.


“....후후.”

“끄으윽...!”

그런 생각을 담아 나는 싱긋 웃어주었다.
물론 그 생각이 제대로 닿았는지는  수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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