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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이종족(1) (64/107)



〈 64화 〉이종족(1)

역시 내가 예상했던 대로 뜬 눈으로 밤을 보낸 나는 새벽부터 떠날 준비를 마쳤다.
아루르펜에서 알아볼 것이 있기는 했지만, 급한 것은 아니기에 그건 시크리프에게 맡기기로 했다. 여러모로 편리한 다크엘프 집단이다.


아무튼, 이번에 경매장에서 구한  명에게는  도시에 있는 것은 괴로우리라 판단하여 식료품이나 간식거리. 그리고 입을 옷만을 적당히 구하고는 우리는 바로 아루르펜을 떠났다.


다음 목적지는 엘프의 나라 포레스티아. 아니, 정확히는 모든 이종족이라 불리는 자들이 사는 곳이라고 해야 할까.

마르티나 왕국의 서쪽에 존재하는 현혹의 숲을 지나야 그들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

현혹의 숲. 그들이 거절하는 존재나 인간은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절대 불가침의 영역.
본래라면 나나 시크리프 같은 다크엘프는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지만, 이쪽에는 세피리아가 있다.
그녀의 허락이 있다면 들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 현혹의 숲에는 내가 찾는 숨겨진 장소가 하나 있다.
세피리아와 보호한 묘인족 아이들을 그들의 나라에 보내고, 사이도 좋아지고, 숨겨진 장소에서 얻을 것도 얻는다. 그야 말로 좋은 일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뭐, 사이가 좋아지는 것은 쉬울 거라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변수가 없다면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친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친해져야만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이라도 더 하이엘프인 세피리아의 신뢰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그녀의 절대적인 신뢰가 있다면 다른 엘프에게도 얻기는 쉽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다.


“저기, 진짜로   입을 거야?”

“네. 저는 이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딱히 사용인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요! 전 주인님의 노.예. 이니까요! 이 정도는 해야지요!”


“......”


음, 그렇지만...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녀에게 충분한 신뢰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내가 옷을 살 때, 그냥 세피리아가 입으면 좋겠구나. 하는 내 욕망을 자극하는 메이드복이 있어 무심코 사버렸다.
반드시 그녀에게 어울릴 거라고.
그저 상상만 하며 입어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10벌 정도 되는 옷 중에서 세피리아는 보통과는 가장 떨어진 메이드복을 선택했고 아주 신이 나서는 시크리프에 의해 지금도 현혹의 숲을 향하고 있는 마차 안에서 그것을 입어 보였다.
그것도 자신이 증오하고 있던 노예라는 것을 앞세울 정도로 긍정적인 기분으로.

도대체 어떤 부분이 그녀를 이렇게나 바꾸어 버린 것일까....나야 좋기는 한데 얼떨떨하네.
어제 곁에서 잠잘 때, 밤시중이라 말한 것도 농담이 아닐지도...아니, 아니,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나아가는 건 좀 그렇지.

“어울리나요?”

“나로서는 너에게 그런 옷을 입힌 게 좀 복잡한 기분이긴 한데, 너무  어울려서 곤란해...”


“후후...”


치맛단이 길지만, 가슴은 좀 과감하게 드러난 디자인의 메이드복이다.
천박하지 않게 세피리아의 예쁜 몸매를 어느 정도 드러내면서 청초함까지 돋보이게 하는 정말 훌륭하다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 디자인이다.
제국에 있었을  본 아우리아가 입고 있던 메이드복과 비슷했지만, 역시 입고 있는 사람이 다르니 느낌도 달랐다.
물론 아우리아가 어울리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저 느낌이 다르다는 것일 뿐.


‘그러고 보니 아우리아는 어디에 있으려나...’


지금쯤이면 제국에 돌아왔을까? 아니면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뭐가 되었든 살아만 있으면 좋겠는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건강하게  살아만 있다면 좋겠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러니저러니 정도 많이 들었었으니까.


“야옹~!”

“안 대! 너무 머그면  아야 해!”

“아웅~!”

“아, 안 대는데...”


그렇게 아우리아를 생각하고 있으면 그녀와 같은 종족은 아니지만, 같은 수인이라는 점에서 같은 아기 고양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짐승화하고 있는 것이 편한지  그 모습인 채로 간식인 말린 과일을 더 먹기 위해서 세라에게 매달려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세라는 세라대로 많이 주면 안 된다는 내 말을 지키려고 노력 중이지만, 그런 아기 고양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는지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모습에 피식하고 저절로 웃음이 나오며 나는 생각한다.


내가 상대해야  종족은 엘프만이 아니다. 수인도 있고 드워프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것은 알지만,  세계의 이종족들의 사정은 정확하게 알고 있지 않다.

 그래도 정보가 굉장히 적으니까 말이야. 게임에서는 세피리아 말고 다른 엘프는 나오지 않고, 다른 종족도 언급으로만 나올 뿐, 등장은 하지 않으니까.

단순히 친해지려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그들에 대해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저기, 두 사람에게 묻고 싶은데 말이야.”

마부석에서 말을 몰고 있는 시크리프와 내 옆에  붙어서 팔짱을 끼고 있는 세피리아에게 말을 걸었다.

“네. 뭔가요?”


“뭐지?”


“엘프라는 종족에 대해서 알려줘.”

역시 그 종족에 대해 잘 알려면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빠르겠지.
그런 내 질문에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한다.


“따분하고 고리타분한 종족일까요?”

“고지식해서 정말 짜증 나는 놈들이다. 그 단단한 머리를 갈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둘의 평가는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다.
그렇지만 둘 다 호감으로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시크리프는 그렇다 치더라도 세피리아는 어째서...?

“아,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아니긴. 특히나 늙은이들을 앞에 둘 때면 전부 다 대가리를 뚫어버리고 싶을 정도인데.”

“아, 장로들은 인정할게요.”


“으, 으음...”


뭔가 내 안에 있던 엘프에 대한 환상이 깨져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피리아를 봤을 때의 감동은 느끼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이 아니지 않을까?


“그, 그 정도야?”

“그 늙은이들...아니, 장로들은 정말로 말이 통하지 않아요. 안하무인이라고 해야 할까. 자신들의 말이 무조건 바르다는 그런 느낌으로 말한다니까요.  어떻게든 장로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 다녔어요.”


“우리 다크엘프 쪽도 늙은이들은 문제가 많긴 하지만, 엘프 쪽은 정말로 답이 없다. 놈들과 대면해야만 한다면  전력을 다해 도망칠 거다.”

“......”

그러니까, 엘프라는 종족 자체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문제가 있는 것이 장로들이라는 말이지?
연세가 있으신 노인분들은 공경해야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두 사람의 말이 사실이라면 난 자신이 없다.


“아, 그, 그래도 장로들을 제외하면 다른 분들은 괜찮은 편이세요!”

“내가 볼 때는 도긴개긴이다만.”


“그 정도까지는 아니에요!”

“네가 그리 믿는다면 그런 거겠지. 난 강요는 하지 않는다.”

“저도 딱히 강요하는 거 아닌 데요!”

씩씩거리는 세피리아를 콧방귀를 끼며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시크리프.
그때 자신을 충격에 빠트린 것에 대한 복수일까? 시크리프의 말투는 꽤 날카로웠다.
속이 좁은 녀석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뭐, 그렇지만 싸움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관계가 개선된 것은 정말로 다행이다.

세피리아도 더는 시크리프에게 두려움은 느끼지 않고 시크리프는 세피리아에게서 거리는 두고 있지만, 무시는 하지 않는다.


아마도 엘프와 다크엘프인  사람에게는 이것이 본래의 적절한 거리인 거겠지.

“그만! 거기까지만 하고 다음 질문!”


“칫.”

“흥.”

둘 다 감정이 상했는지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쓰게 웃으면서 다음 질문을 한다.

“그럼 수인은 어떤 종족이야?”

그 질문에도 역시 두 사람은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

“뇌근육.”

“전투민족이요.”

그것은 단어는 다르긴 했지만, 의미는 똑같은 말이었다.
마치 이것 이상의 표현법은 없다는  두 사람은 그 말뿐이었다.


“그놈들은 모든 일을 힘으로 해결하려 들지.”

“아, 물론 모든 수인이 그런 건 아니에요. 똑똑하고 지혜로운 분들도 많이 있지만, 대개 힘과 싸움으로 끝내려는 경향이 강한 것뿐이에요.”

“어, 음. 그래. 설명 고마워.”

엉망진창이긴 했지만, 그런 것이라면 엘프보다는 쉬울 것 같다.
힘이나 싸움에 관해서는 자신이 있으니까.
싸우면서 친해진다는 말도 있으니 말이지.

“그러면 마지막으로 드워프는?”

과연 드워프는 뭐라고  것인가.


“알코올 중독자.”

“더러운 술고래요.”


수인 때와는 다르고  엘프 때와는 조금 다르게 노골적으로 싫은 것이 드러났다.
보통 판타지에서는 엘프와 드워프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나오는데 여기서도 그런 것일까?


“아무튼 냄새를 맡기만 해도 힘들어 질 정도의 독주를 매일 마시지 않으면  되는 놈들이니까. 그것은 이미 중독의 영역이라 할 수 있지.”

“씻지도 않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매일 같이 술만 퍼마시는 그런 종족이라 할 수 있어요. 솔직히 가까이 가고 싶지는 않네요. 냄새가 심하게 나서...”


“신랄하네...”


물론 이것은 엘프, 다크엘프인  사람의 관점에서 말하는 것들이다.
이들의 말만 믿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일단 참고만 하는 것으로 하자.


그래. 참고만...


그렇게 유용한(?) 정보를 얻고 계속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꽤 거리가 있는 곳이기에 마차로 간다고 해도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는 안전을 위해서라도 인간의 마을은 되도록 피하면서 진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혹의 숲의 바로 앞까지 올 수 있었다.

“결국에는 아무 일도 없이 도착했네.”

여기까지 오면서 의외였던 것은 아루르펜에서 습격한 이들이 금방 포기한 것일까.
뭐라도 해올 줄 알았는데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어쩌면 시크리프의 경고가 통했거나 자신의 주변을 캐고 다니는 정체불명의 인물 때문에 정신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일 수도 있고.

그 영주 아들놈이 어떤 놈인지 빨리 알고 싶었지만, 암살자 길드의 힘으로도 그 꼬리를 쉽게 밟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든 뭔가 정보를 얻을 것 같으면  직전에 마치 사전에 누군가에게 지워진 듯 찾기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아쉽기는 하지만 상대방이  수 위인 것 같다.
정보에 관해서도 일류인 암살자 길드를 이렇게나 따돌리다니.


“가는 길은 저에게 맡겨주세요. 가장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 알았어.”

“주인...나도 가야만 하나?”

“다른 애들은 모르지만, 너는 반드시 가야 해.”


“후우.....”


정말로 깊은 한숨이었다.
그에 비해 주변에 대기하고 있던 부하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자, 그러면 가자.”

“가장~”

“야옹!”


“냐~”

“이쪽으로.”


“.......”

이제는 일심동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까워진 아이들을 데리고 출발한다.


시크리프는 자신의 부하들을  번 노려보고는  뒤를 쫓아온다.


너무 그러지 마라...

처음으로 보는 이종족들의 나라.
두 사람의 말에 그들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지긴 했지만, 그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나는 세피리아의 안내를 받으며 나아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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