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화 〉이종족(2)
현혹의 숲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굉장히 힘든 곳이었다.
게임에서도 숨겨진 곳에 가려면들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게임의 영역이었기에 그냥 단순히 이동하기가 어렵다는 수준에 끝났지만, 실제로는 그 정도가 아니다.
그런 귀여운 수준이 아니다.
“우욱...머리가 어질어질해...”
머릿속이 빙글빙글 도는 것만 같은착각이 든다.
그 때문인지 시야도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아서 멀미까지난다.
“엄마...갠차나?”
“으, 응. 괜찮아. 세라는 괜찮아?”
“응. 세라는 갠차는데...”
“그래? 다행이네.”
나는 식은땀이 나는 것을 숨기면서 태연한 척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까지 해도 나와 연결된 세라는 어느 정도 느끼긴 하겠지만, 그래도 여기선 부모로서 아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지.
그나저나 세라가 괜찮은 이유는 전혀 위협으로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하긴. 내가 현혹의 숲이었다고 해도 그랬을 것 같다.
우리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위협을 느끼는 존재가 있을 리 없잖아.
“주인님. 괜찮으세요?”
“괜찮아. 아직 버틸 만해.”
“아직 좀 남았는데, 속도를 더 높일까요?”
“아니야. 애들도 있는데 지금 이 속도면 괜찮아.”
“알겠습니다.”
이곳은 서둘러서 간다고 해서 지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숲의 완전한 인정을 받으면 그저 아름다운 숲에 지나지 않는 곳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반드시 숲의 가호를 받는 자의 안내가 필요하다.
정해진 곳만을 밟으며 지나가야 하는 것이 그 첫 번째 조건.
그리고 무조건 숲과 숲의 주민에게 적대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 두 번째 조건.
숲을 망가트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 세 번째 조건.
일단 힘에 영향을 받아 괴로워하든 말든 이방인으로서는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절대적 조건이다.
“근데 나보다도 이 녀석이 먼저 죽게 생겼는데?”
“크윽...젠장...이래서...이 숲은...우웩...!”
겨우겨우 버티다가도 안에 있는 것을 게워내는 시크리프는 굉장히 괴로워보였다.
검은 피부가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얼굴색도 변해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다.
“아저찌...갠차나?”
“그래. 괜찮...우우웩...!”
세라의 걱정에도 시크리프는 어김없이 게워낸다.
이미 안에 있는 것을 전부 비웠는지 이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지만, 상태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저 상태가 호전되려면 이숲을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숲에 힘에 당하는 모습은 저런 거로군요. 처음 봤어요.”
“기본적으로 숲의 보호를 받는 이들에게는 인연이 없을 괴로움이니까.”
솔직히 말해서 태연하게 있는 아기 고양이들을 포함한 네 명이 너무 부러웠다.
나도 계속 이 힘에 노출된다면 언젠가는 시크리프와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되겠지.
“나가고 싶다...진심으로...”
“그러지 못한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얼른 일어나서 걸어. 그게 제일 나은 방법이야.”
“끄윽...”
시크리프는 이를 악물며 일어섰고 우리는 다시 진행한다.
그렇게 30분, 1시간이 지난 후였을까?
시크리프가 가다가 몇 번 더 토하고, 이제 슬슬 나도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닌지 싶었을 때.
“다 왔어요.”
그런 희망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숲에 끝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주변은 똑같은 숲일 뿐이었는데, 세피리아가 다 왔다고 하는 곳에서 서 있는 앞 공간이 아주 미세하게 일렁이고 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다면 분명 모를 미세한 차이.
그곳에입구가 있는 것이다.
"다 왔으면 빨리 들어가!"
시크리프가 참지 못하고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면 시크리프의 모습이 슥 하고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얼마나 급했으면...
"우리도 빨리 가자."
솔직히 나도 이제 한계였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도 화면이 일렁이며 멀미를 재촉했기 때문에 꽤 위험했지만, 어떻게든 버텼다.
"어서 오세요. 저희 엘프의 나라 포레스티아에."
현혹의 숲과는 또 다른 거대한 숲. 거대한 나무 위에 지어진 나무집.
수 많은 엘프.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는 수인으로 보이는 이들과 드워프로 보이는 이들도 보였다.
"와~ 머찌다! 그치?"
"야옹!"
"냐~"
아이들은 이미 저 웅장한 광경에 눈을 빛내고 있었다.묘인족 아이들도 수인이라고는 하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다.
본래라면 이곳에서 평범하게 태어났어야 했을 아이들.
지금이라도 이곳에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떨까...
"하아...하아...젠장. 이제야 좀 살겠군."
"괜찮냐."
"이게 괜찮아 보이나?"
시크리프는 진작에 땅바닥에 뒹굴며 녹다운.
숨을 몰아쉬지만 않았다면 시체로 착각했을 몰골이다.
"주인님이야말로 괜찮으세요? 어머, 땀 좀 봐..."
"아, 아니. 괜찮아."
"괜찮긴요. 이렇게 땀을 흘리시는데."
나도 긴장의 끈이 풀려서 그런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것을 보고 세피리아가 서둘러 자신의 소매로 정성스럽게 내 땀을 닦아주었다.
마치 거의 안기듯이 밀착해서 말이다.
이, 이렇게 가까이 올 필요가 있나...?
"나중에 미역이라도 감는 것이 좋겠어요."
"아, 그래..."
그건 나도 생각했다. 식은땀이 몸에 들러붙어서 기분 나빠...
"제가 머리를 감겨 드릴게요. 몸도 구석구석 정성스럽게 시중을 들게요."
"아, 아니, 혼자서 할 수 있는데...?"
"전 주인님의 메이드니까이 정도는 당연한 거예요~"
"어, 음..."
딱히 메이드를 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어느새 그것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이건옷을 사온 내가 잘못한 것일까...?
그렇게 내가 당황하고 있으면.
"세, 세피리아 님!?"
주변에 있던 나무 위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로 세피리아 님이시다!"
"세피리아 님께서 돌아오셨어!"
그곳에는 활을 무장한 엘프가 수 명 존재했다.
"숲을 지키는 가디언이예요!"
세피리아도 그들을 보자 표정이 밝아지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면 그들은 나무에서 내려와 세피리아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세피리아 님! 정말로 걱정했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저희는 세피리아 님이 어떻게 되신 줄 알고...!"
"본래라면 저희의 목숨을 걸고 찾으러 갔어야 했는데...정말로 죄송합니다!"
"그,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사죄하고는 머리를 땅에 박는 가디언들을 보며 세피리아는 당황했다.
이들은 아마 세피리아가 어떤 이유로 몰래 혼자 밖에 나간 것인지 모르겠지.
인간의 모험 이야기를 듣고 책을 읽으며 '밖'에 대한 동경을 안으며 인간에 대한 동경을 안았다.
자신이 처한 환경은 너무나도 따분하기 그지없는 일상. 자신의 행동에 무조건 간섭하는 주변의 엘프들.
그런 것에 싫증이 나서 숲을 나온 것이다.
200년을 살았다지만, 인간으로 치면 아직 어린 나이고 쭉 관리 받는 새장 안에서 지낸 세피리아에게는 그런 생활이 너무나도 싫었던 거겠지.
그 행동이 좋은 일로 이어졌다면 좋았겠지만, 가장 최악의 일로 이어져 세피리아는 위기를 겪었다.
세피리아의 자업자득이라면 자업자득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애초에 엘프들이 이렇게 폐쇄적으로 지내야 하는 상황을 만든 것은 인간이니까.
"아, 그, 그렇지. 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구해주신 분들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초대하고 싶은데 괜찮겠죠?"
"네...?"
얼버무리듯이 빨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세피리아의 말에 그들은 모두 우리 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놀람에 가득 차 크게 열린다.
"이, 인간!? 거기에 다크엘프도...!"
"세, 세피리아 님! 어째서 인간과 다크엘프 따위를...!"
"말했잖아요. 저를 구해주신 분들이라고. 숲을 빠져나온 것만 봐도 나쁜 분들이 아니라는 건 잘 아시겠죠? 숲과 숲의 주민에게 악의를 가진 이들은 아무리 안내가 있다고 해도 통과할 수 없으니까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세피리아의 설득에 긴장을 푸는 것이 보였다.
그만큼 숲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쉬이 결정은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일단 안으로 들이고 상의하도록..."
"안 됩니다."
그렇게 가디언들을 보고 세피리아가 결정을 내리려하고 있을 때 갑자기 그런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아무도 없던 장소에 갑자기 몇 명의 엘프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반적인 마법이 아닌 다른 마법술식. 아마도 정령술.
"나타났군. 늙은이들..."
시크리프의 질린 듯한 목소리와 함께 나는 그들을 보았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엘프들. 그럼에도 그 몸에서 느껴지는 힘은 아직 건재한 듯이 보인다.
"대장로. 어째서 안 된다는 거죠? 저를 구해주신분들이라고요?"
"그것은 확실히 고마운 일이나 외부인을 들일 수는 없습니다. 이건 저희 숲의 규칙. 그것을 어길 수는 없지요. 하물며 그것이 더러운 인간과 다크엘프라면 더더욱."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고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장로들을 대표하는 대장로를 포함한 늙은 엘프들은 우리 쪽을 거의 증오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대장로! 말을 조심하세요! 저를 구해주시고 저의 주인님이 되신 분이에요!"
세피리아가 내 옷자락을 꼭 붙잡으며 그렇게 외친다.
주변에 있던 모든 엘프들이 놀라며 웅성웅성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지금 그건 말하지 않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엘프를 대표하는 하이엘프나 되시는 분이 인간의 노예가 되신 겁니까! 거기에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는 커녕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다니! 선대가 보셨다면 통곡을 하실 일입니다!"
"선대께서 살아계셨다면 분명히 저를 이해해 주셨을 거예요! 당신의 기준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대장로와세피리아. 서로 씩씩거리며 그렇게 분노를 표출한다. 본래부터 서로 악감정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나서는 것이 좋을까.
예상보다도 더 험악한 상황이라 웬만해서는 통하지도 않을 것 같다.
"나, 난...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다. 주인이 알아서 해라."
"......"
장로들을 보고 나서부터끼어들기 싫다는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보이는 시크리프는 이 자리에서 쓸모가 없다.
"갠차나...갠차나...."
"냐...."
"야옹..."
한참 기분이 좋았던 아이들도 이 험악한 분위기에 겁을 먹었다.
아니, 정확히는 세라는 겁을 먹지 않았고 두 아이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는 것뿐이지만.
세라는 내가 주변에 있으면 웬만해서는 절대 겁을 먹지 않는다. 내가 반드시 지켜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는 굉장히 뿌듯한 일이다.
"이이...! 세피리아 님! 아니, 하이엘프 세피리아! 당신은 타락했다! 악에 물들었다! 이건 우리 엘프의 역사상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니 이대로 당신을 '정화'하고 '전생' 해주어야겠다!"
"뭐, 뭣!?"
"대장로! 그게 진심이오!?"
젊은 엘프는 물론이고 늙은 엘프까지 대장로의 발언에 경악한다.
"늙은이가...실성했군."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 안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다크엘프인 시크리프조차 경악하게 만드는 발언.
아무리 엘프에 대해 문외한인 나조차도 그 정화라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모든 엘프들은 들어라! 활을 짓고 정령술을 준비하라! 지금부터 더러운 인간의 손에 떨어져 악에 물든 우리들의 소중한 여왕이자 무녀를 되찾는다!"
그 말에 바로 움직이는 엘프는 없었다. 하지만 장로들이 등장했을 때 주변에 모여 숨어있던 엘프들은 달랐다.
-끼리릭
활의 시위를 당기는 소리, 그리고 마나가 요동을 치는 것이 느껴졌다.
"대장로...! 당신은...!"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는지 세피리아가 이를 악물고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세피리아."
"주인님..."
"나에게 맡겨."
나는 그런 세피리아의 등을 쓰다듬어주며 위로했다.
그러면 조금 표정이 부드러워지는 것이 보인다.
그것에 좀 안도하며 주변을 바라본다.
아무리 그래도 대장로의 저 행동은 너무 도가 지나치다. 화가 난 듯이 하고 있지만, 마치 처음부터 계획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나 느낌이니 단순히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말이지.
아무튼 지금은 이 자리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
솔직히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공포로 지배하는 것만 같았기에.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어쩔 수 없다.
"용화..."
엘프의 숲에 있던 풍부한 마나가 내 안에 흘러들어 온다. 나는 본래 억누르고 있던 기세를 마음껏 펼쳤다.
"이, 이 느낌은 설마..."
"아니, 아닐 거야. 드, 드래곤이라고!? 그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드래곤이 왜...!?"
드래곤 피어. 이곳에 있던 모든 엘프가 땅에 엎드리며 덜덜 떨었다.
"꺄악~♡ 주인님 멋져♡"
"엄마! 머쪄!"
"이쪽도 실성했군. 저게 멋지다니..."
아니, 두 사람만 빼고 인가...?
시크리프도 식은땀을 흘리며 한쪽 무릎을 꿇고 있으니...
흠흠, 뭔가 분위기가 잡히지 않는 듯하지만 일단 이자리는 내가 장악한 것은 분명해 보이니 좋다고 치자.
"큭...어째서 드래곤이...!"
"글쎄? 어째서일까? 엘프의 대장로."
다른 엘프들이 바싹 엎드린 것과는 다르게 대장로만은 무릎은 꿇었지만, 눈빛은 죽지 않았다.
일단 이 기세를 죽여야겠다 생각하며 내가 대장로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려는 그 순간.
"부디 그자를 살려주십시오! 리제 님!"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후우...오랜만에 뵙습니다. 리제 님."
급하게 왔는지 숨을 가다듬는 메이드복을 입은 수인의 여성.
"아우리아...?"
그 인물은 제국에서 갑작스럽게 사라진 아우리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