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잠깐의 휴식, 그리고...(1)
아우리아의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우선순위를 다시 정했다.
하는 일에는 변함이 없지만, 중요도에서 유미네라는 블랙드래곤을 찾는 것이 최상위에 있게 된 것이다.
드래곤. 이 세계에서는 최강자 반열에 있는 존재.
한 개체, 한 개체가 한 나라에 필적하거나 그것을 가볍게 짓누를 수 있는 존재.
그렇지만 드래곤이라는 존재는 상당히 오랫동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모든 것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 모습을 감춘 것이다.
그들이 멸종한 것은 아닐 것이다. 유미네라는 드래곤이 15년 전에는 제국에 존재했으니까.
어쩌면 다른 존재로 변해 어딘가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드래곤이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은 상당히 까마득한 옛날.
그래서 장수족인 엘프조차 현재 드래곤을 본 존재는 없기에 나를 드래곤이라 쉽게 착각한 것이다.
세피리아의 말에 의하면 선대 하이엘프는 드래곤과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지만, 몇몇의 미래에 대해 알려주었으며 하는 일을 같이 도왔다고.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굉장히 아쉽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지.
아무튼 드래곤이라는 존재가 그런 상태이기에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행히도 일단 단서는 있다.
첫 번째는 아우리아가 독자적으로 가진 정보.
두 번째는 숨겨진 장소에 있는 그린 드래곤 폰티나의 흔적.
첫 번째는 아직 듣지 못했으니 넘어가고, 가디언 전대 그린이 있는 숨겨진 장소에서 폰티나가 살아 있을 거라는 가능성을 얻은 상태다.
나머지 장소에 가면 분명히 좀 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폰티나를 만나 유미네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겠지.
아무튼, 이번 내 여정에 변경은 없는 것이다.
이곳에서도 할 일은 있다. 이종족들과 친분을 쌓는 것. 되도록 신뢰를 얻는 정도까지는 하고 싶다.
그 가능성은 오늘의 일로 인해서 희박해지긴 했지만, 하이엘프인 세피리아와 수인 공주인 아우리아가 같은 편이니 좀 더 긍정적이게 생각하도록 하자.
오늘은 좀 쉬자.
그리하여 시작된 목욕 타임.
오랜만에 느긋하게 목욕을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가려운 곳은 없으신가요~?”
“불편하신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리제 님.”
“어어. 그래...”
전혀 느긋하게 지낼 수가 없게 되었다.
선대 하이엘프가 목욕을 좋아해서 세피리아의 집에는 훌륭한 목욕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현재 나, 세피리아, 아우리아, 세라가 들어와 있는 상태.
세라는 들어오자마자 내가 씻기고 나니 탕에서 헤엄을 치거나 내가 장난감으로 쥐어 준 보석으로 놀거나 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어째서인지 두 사람에게 씻겨지고 있었다.
세피리아는 머리를 감겨주고 몸을 구석구석 깨끗하게 해준다는 말을 잊지 않고 실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그것에 아우리아까지 동참.
여태까지 남에게 몸을 씻겨진다는 것은 처음이 아니고 꽤 많았기에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렇지만 그 상대가 똑같이 알몸에 엄청난 미인들에 어쩐지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질 정도로 거리가 가까운 상태라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많았다.
“응~!”
“뭐, 뭐야!?”
“아, 끝 쪽이 닿아서 좀 찌릿했어요...”
뭐가...? 저기, 세피리아. 도대체 뭐가!?
“이 향초 비누 향은 리제 님께 잘 어울리는 것 같군요. 하아...하아...정말로 좋은 냄새입니다...”
“자, 잠깐!?어디에 코를...!”
“...??단순히 겨드랑이입니다만?”
아니, 내가 이상하다는 듯이 보지 마!?지금 명백하게 네가 이상하니까!
뭐랄까. 정말 엉망진창이다.
물론 힘으로 한다면 이 둘을 뿌리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싫어했을 때의 일.
솔직히 이런 엘프와 수인 미녀 콤비에게 이런 일을 당하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알고 있어도 걸리는 함정이야. 이런 거...
“리제 님. 뿔과 날개, 꼬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 귀와 꼬리 같이 하면 되겠습니까?”
“아, 아니, 그건 내가 할 테니까 안 해도 돼!”
당연하지만 이 세 부위는 장식이 아니다.
뿔은 대기의 마나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부위.
날개는 마나가 없이도 하늘을 날게 해주는 부위.
꼬리는 몸 전체의 중심을 책임지며 여차할 때는 공격에도 쓸 수 있는 부위.
그리고 이 세 부위는 모두 민감하다는 단점이 있다.
수인이 귀와 꼬리가 민감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수인도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고 개인차가 있는데 그런 것으로 따지면 나는 굉장히 민감한 편에 속한다.
특히 살살, 상냥하게 만져지면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이것은 시스티아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그때만 생각하면 몸이...으으...
“에이~ 사양하지 마세요!”
“상냥하게 하겠습니다.”
“자, 잠깐...!?힉!?”
내 제지에도 두 사람은 뿔, 날개, 꼬리를 나눠 씻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굉장히 섬세하고 상냥한 손길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입을 틀어막으며 이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릴 뿐.
“어머, 몸이 계속 움찔움찔 떨리시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으신가 보네요.”
“...그럼 좀 더 강하게 가겠습니다.”
“!?”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그녀들은 그런 것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손길을 좀 더 빨리한다.
비누의 미끈거리는 것을 이용해 뿔을 쓰다듬듯이 손바닥을 미끄러트리고, 날개의 뿌리 부분부터 끝 부분까지 약간 힘을 주며 왕복을 반복한다.
“~~~!!!”
그리고 꼬리...꼬리...
이 미친 듯한 기시감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자꾸 시스티아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윽...!?이래선 안 되는데! 젠장!
“자, 끝났어요.?리제 님. 기분 좋으셨나요?”
“...귀중한 장면을 감사합니다.”
“하아.......하아........하아.......”
나는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며 굉장히 기분이 좋은 두 사람에게 이끌려 탕에 들어간다.
지금 상태에서 적당히 뜨거운 탕에 들어가는 것은 어쩐지 독탕에 들어간다는 느낌이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흐아.....”
완전히 풀린 몸이 탕에 들어가니 처음에는 조금 괴롭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금방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뭔가 과격한 운동을 하고 나서 괴로운 몸을 푼다는 느낌이지 않을까...
“엄마. 뭐해써?”
“응!? 어, 엄마는 언니들이 씻겨줬어."
“세라도 엄마가 이케이케 햇는데. 세라랑 또까타!”
“그, 그래. 그러네. 똑같네.”
“에헤헤~”
사랑스럽게 웃는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짐한다.
‘뭘 하는 거야. 난. 그저 조~금 민감한 부분을 씻겨진 것뿐이잖아? 쿨하게 가자고. 쿨하게.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말이야.’
정신만 바짝 차린다면 못 할 일은 없다. 암, 그렇고말고.
“그건 그렇고 리제 님이 용화하신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깜짝 놀랐습니다.”
“!?”
그렇게 다짐했건만 두 사람이 내 바로 근처에 들어왔을 때 무심코 몸이 움찔 떨리고 만다.
이건....중증이다. 고칠 수 있을까.
“유미네 님이 블랙 드래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실제로 보는 건 다르군요. 무심코 속으로 감동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난 처음 봤을 때 너무 무섭고 놀라서 바닥에 바싹 엎드렸었어. 물론 그때뿐이지만.”
다행히도 두 사람의 모습에는 아까 같은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것에 안도하며 다시 몸의 긴장을 풀고 탕을 즐기기로 했다.
“그런데 리제 님. 유미네 님을 정말로 찾으실 생각이십니까?”
“...왜, 그런 질문을 하는 거야? 찾아야 한다고 했던 건 너잖아.”
그리고 황제가 찾아야 한다고 했다.
반드시 그 사람이 있어야 이 혼란스러운 상황이 나아지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듯이.
“아니, 그건 맞습니다만. 리제 님은 유미네 님을 찾는 것을 그다지 내키지 않아 하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
그 말이 맞다.
최우선 사항으로 넣기는 했지만, 기분으로만 말하자면 그다지 보고 싶지 않았다.
이유가 어쨌든 자신이 낳은 자식을 버린 여자다.
내가 빙의하기 전, 리제가 죽어 갈 때도 곁에 없던 존재다.
전혀 찾아보려 하지 않았던 엄마다.
거기에 리제의 기억을 보면 더더욱 용서되지 않는다.
자신이 못나고 태어나선 안 되는 아이였다며 자기자신을 탓하며 누군지도 모르는 엄마에게 사죄하는 정말로 착한 아이.
마음껏 우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맏언니라는 이유로 눈물을 꾹 참고, 밤늦게 혼자 구석에서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
그것을 보면 용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내가 너무 감정을 담는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절이 잘 안 된다.
그것은 어째서일까.
답은 아마도...
“그래도 찾아야지. 솔직히 만나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찾아야 하는 사람이라면 찾아야지.”
“그러시군요...”
그렇게 대답하는 아우리아의 표정은 굉장히 복잡했다.
당연 그녀로서는 그럴 것이다.
과거에 모셨던 사람과 지금 모시는 사람이 있고, 그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나도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막상 만나면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
“세라 님의 할머니 이야기에요.”
“하모니?”
세피리아의 설명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라.
이제 가족에 대한 개념은 거의 이해한 세라다. 그렇지만 할머니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보는 거다.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세라 님 엄마의 엄마라는 뜻이에요.”
“엄마의 엄마?”
그게 무슨 말인지 세라는 곰곰이 생각하는 듯싶더니.
"엄마! 엄마!"
자신을 가리키고 나를 가리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이해가 되었고 반드시 만나고 싶다는 기분이 전해졌다.
“할모니!”
그렇게 연신 할머니라 말하는 세라를 보고 나는 굉장히 복잡한 감정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 왔을 때도 이런 감정과 혼란은 느끼지 않았는데...
그만큼 엄마라는 이름은 무거운 것이라는 걸까...
*
목욕이 끝이 나고 나는 복잡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털어내고자 산책을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이런다고 뭔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시크리프 님! 저녁은 이쪽에다 둘게요~!"
"........"
그렇게 밖으로 나와 얼마 안 되었을 때 나무 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시크리프와 그를 향해 말을 걸고 있는 니나의 모습이 보였다.
"니나. 왜 그러지?"
"아, 리제 님!"
내가 아우리아의 조언 대로 다른 이가 있을 때 하는 위엄있는 말투(?)로 말하면 니나는 활짝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시크리프 님이 저녁을 아직 안 드셨잖아요. 그래서 챙겨왔어요."
"그렇군."
나무 밑에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스튜가 있었다. 저녁으로 먹은 메뉴 중 하나였다.
그런 우리의 대화에도 시크리프는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있다.
진짜 저 녀석 왜 저래?
"그럼 전 아직 할 일이 남았으니 가보겠습니다~!"
니나는 활기찬 미소로 나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더니 집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나는 그 뒷모습을 조금 바라보다가 나무 위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시크리프에게 말을 걸었다.
"너, 도대체 니나에게 왜 그러냐."
"......"
다크엘프인 그가 엘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알지만, 저 태도는 명백하게 이상했다.
마치 없는 사람 취급하는 듯한 행동.
그렇게 내가 질문하고 얼마 안 있으면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거짓말쟁이가 가장 싫다."
"네가 그걸 말해?"
암살자로 살면서 온갖 거짓말은 다하고 다니던 녀석이?
"나도 거짓말쟁이지만, 적어도 동족에게만큼은 거짓말은 하지 않아. 하지만 저 여자는 동족들도 철저하게 속이는 거짓말 덩어리다."
"니나가?"
"....."
그런 내 반문에 시크리프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 나름대로 느끼는 것이 있는 걸로 보인다.
"저 여자는 조심하는 편이 좋다. 언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니까. 뭐, 네가 이런 두루뭉술한 말을 믿을지는 모르겠다만."
"음..."
이 녀석은 나를 싫어하지만, 여태까지 나에게 손해가 될 만한 일은 한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이 나에게 신뢰를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지금 저 말은 그런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애당초 저런 거짓말을 해서 얻는 것이 없다.
거기에 솔직하게 말하면 니나에게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그게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지만...온몸을 끈적하게 만드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수상하면 의심이라도 사지 않게 평소대로 행동하라고."
"...믿는 건가?"
"그럼 믿어야지. 내 노예 1호의 말인데."
"칫. 짜증 나는 녀석."
나는 그렇게 시크리프의 짜증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집으로 향한다.
그래, 지금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어디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까.
나중의 일은 그때 생각하자.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