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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9화 〉잠깐의 휴식, 그리고...(3) (69/107)



〈 69화 〉잠깐의 휴식, 그리고...(3)

나와 세라는  아름다운 경치에 금방  빠져버렸다.
세피리아의 안내에 따라 갖가지 속성을 지닌 정령과 만났고 세라는 그들과 금방 친구가 되었다.
이 안에서만 난다는 굉장히 맛있는 과일이나 꽃 꿀 같은 것도 먹으면서 호수의 맑은 물도 마셔본다.


“허...잠깐. 이거 진짜  맞아?”


 모금 마시고 나면 저절로 감탄이 나온다.
맛 자체는 일반적인 깨끗한 물과 똑같다. 그렇지만 목으로 넘기는 순간 온몸에 활력이 솟아나고 몸이 가벼워진다.
몸 안에 있는 탁기가 사라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냥 물이 아니고 생명의 물이에요. 이건 비밀인데 저희 엘프가 장수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물 덕분이거든요.”

비밀인데 말해도 돼? 라는 의문은 접어두고 단순히 마시는 것만으로 수명이 늘어난다는 건가?
그 어떤 아이템보다 사기 같은데?

“혹시 엘프 이외의 종족이 마셔도 그런 효과가 있는 거야?”

“있죠. 엘프보다는 못하지만, 드워프가 500년 정도 사는 것도   덕분이고 단명하는 수인이 100년 가까이 살 수 있는 것도  물 덕분이에요.”

“그, 그러면 인간이 마시면?”

“그건 잘 모르겠는데 못해도 150년 이상은   있지 않을까요?”


“.....”

그것만으로도 이곳은 꼭꼭 숨겨져서 지켜져야 하는 곳이 맞았다.
이 세계 인간은 정말 길게 살아봐야 60년 정도.
평균으로 치면 50년이 조금 넘는다고 했던가.


그것이 100년 가까이 늘어나는 것이다.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이곳은 전 세계의 인간에게 노려질 것이다.

안 그래도 ‘상품’으로서는 최상급의 이종족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이곳은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드래곤 레어보다도 귀중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면 이제 나도 수명이 늘어난 건가...?”


“아마 조금 늘어나셨을 거예요. 용인이 얼마나 사는지는 모르지만 드래곤에게도 효과는 있다고 하는 것 같으니까요.”

“오랫동안 사는 드래곤이 이런 거에 집착할  같진 않은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선대께서 옛날에 이곳에 자주 들러서 물을 마신 드래곤이 있으셨고 효과를 보셨다고 했어요. 전에 제가 말씀드렸던 선대가 도왔다던 드래곤 있잖아요.”

“아아,  드래곤 말인가.”


도대체 얼마나 생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남은 수명이 얼마 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은 수명이 얼마 안 남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꺄아~ 간지러!”


「놀자~ 놀자~」
「노는 거야. 노는 거야!」

“아라써! 아라쓰니까 간지러 피지마~!”

시야 끝에는 활기차게 웃으며 어린 정령들과 노는 세라의 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정말로 기운을 차린 것이 느껴졌으니까.


“고마워. 세피리아. 이곳에 데리고 와줘서.”

“아니에요. 저도 이곳에 두 분을 모시고 올  있어서 기쁜 걸요.”


만약 세피리아가 이곳에 데리고 와주지 않았다면 세라는 며칠은 더 침울한 상태로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계속 보는 것은 아무리 그래도 좀 그랬기 때문에 마음이 놓였다.

‘나도 힐링이나 하고 가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탐이 나긴 했지만, 여기서는 욕심을 부리면 안 될 것 같다.
여기는 신역. 세계수라 불리고는 있지만, 나는 그것이 하나의 신으로 보였다.
이 세계를 지키는 수호신 중 하나로.

어째서 그렇게 보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 느꼈다.

먹을 것은 여기서 먹고 즐길 것은 이곳에서 즐기고 가야지.


그렇게 내가 마음을 먹고 신발을 벗고 호수에 발을 담그고 있을 때였다.

“저기, 주인님. 제가 이곳에 주인님을 모시고 온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요.”

“이유? 뭔데?”

“이걸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그렇게 세피리아가 나에게 내민 것은 오래된 책이었다.
그럼에도 손상은 거의 보이지 않아 딱 봐도 보관이 잘 되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건 뭔데?”

“선대가 남긴 책이에요. 이곳에 제가 진심으로 초대할 사람이 생긴다면 보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내용은 뭔데?”

“그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모르는 글자여서.”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세피리아에게 건네받은 책을 대수롭지 않게 펼쳤다.

“!?”


그리고 하마터면 책을 호수에 빠트릴 뻔했다.
첫 장부터 그 정도로 놀랄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건...”


[이 글을 보고 있을 다른 세계에서  이, 리제라 불리는 그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문자일 터인 한글이 적혀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쓴 것인지 비뚤거리는 글자였지만, 그것은 분명히 한글이었다.
전생에 내가 사용하던 나라의 글자.

그리고 그  줄에 적힌 글에는 내가 다른 세계에서 온 것과 분명하게 지금의 내 이름이 있었다.

“세피리아. 선대는 어떤 사람이야?”


“선대는 역대 하이엘프 중에서도 가장 우수했다고 전해지는 분이셨어요. 미래를 보고 예언하는 것도 남달랐다든가.”

그 말을 듣고 나는 선대 하이엘프가 어떻게 이런 내용을 쓸 수 있었는지 이해했다.

거기에는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는 듯이 나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 적혀있었다.


[저는 어느 정도 미래를 보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렇기에 당신께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이곳에 적어두었습니다. 갑자기 이런 글을 보시더라도 믿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기에 당신께서 이 세계에 오고  뒤의 일을 써내려가 볼까 합니다.]


내가 보육원에서 깨어나 시스티아를 만나고 란델을 만나 레온을 만나 모험가가 되는 일까지 적혀 있었다.
전부 자세하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니고 빼먹은 것도 있고 약간 틀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맞았다.

소름이 돋았다.

미래를 보는 힘이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렇게 나를 콕 집어서 볼  있다니.


[분명 빠진 내용도 있을 것이고 틀린 부분도 있겠지요. 미래를 보는 힘은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전부 보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일부를 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께서는  세계에 드리운 어둠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금도 정체를 모르는 적에 답답해하고 계실 무렵이시겠지요. 그러니 제가 이제부터 말할 내용이 당신께 큰 도움이 되기를 빕니다.]
[지금부터 말할 내용은 제힘과 그린 드래곤인 폰티나 님에게 들은 내용을 정리해 기록해둔 것입니다.]

반절 정도 읽고 나면  내용으로 페이지가 마무리된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페이지로 넘긴다.


[일단은 처음으로 당신께 위협이 되고  세계를 위해 반드시 쓰러트려야만 하는 존재.]
[먼 옛날. 드래곤이 저지른 죄악. 금기.]


[최초이자 최악의 용인 아디스만 카르아.]

[그가 이 세계에 존재하는 한  세계에 진정한 행복은 찾아올 수 없습니다.]






*



선대 하이엘프가 나에게 남긴 듯한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악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내가 겪은 내용이 적혀 있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아직 모르는 미래의 내용은 완벽하게 믿기에는 예언과 비슷하게 모호한 내용이 많았다. 그리고 단편적이었고 끝까지 쓰여있지도 않았다.
아무래도 같은 미래라고 해도 더 먼 미래나 큰일이 벌어지는 미래는 애매하게 밖에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적혀 있는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내 마음을 뒤흔들기에는 충분했다.

선대는 내가 경매장에서 세피리아를 사고 그녀의 신뢰를 얻고 엘프의 나라에 와서  책을 받을 것까지도 알고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미리 알고 이 책을 준비한 것이다.

하이엘프가 같은 엘프에게도 그저 세계수를 관리하는 무녀로만 통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미래를 보는 힘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그것을 분명히 이용하려 드는 이들이 있을 테니까.
아니면 그 힘을 자신이 취하려고 들거나 말이다.

책에는 이 뒤에 벌어질 일이 적혀 있었다.

대처하기에는 시간이 좀 많이 지났다.

이대로 도망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이것을 기회로 삼는 것이 좋을 거다.

책의 내용대로라면 이제 내가 가게 될 곳에는  번째 숨겨진 장소, 폰티나의 흔적이 있는 곳이 있을 테니까.

그나저나 이대로 당하고만 있는 것도 성미에 맞지 않네.

어디에선가 미소 지으면서 보고 있을, 망할 놈에게 조금이라도 되갚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

“왔나.”


책을 읽은 바로 다음날, 그것은 시작되었다.
아마 이곳에서 사는 모든 이가 느꼈을 것이다.


엄청난 마나의 파동이 주변에 휘몰아치고 있다.

그리고 이 기운은...나에게는 익숙한 기운.

“저, 저게 뭐야...”


“.......”


이곳에 있던 모든 이가 말을 잃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이미 거대한 존재들이 하늘을 점령하고 있다.


나 같이 어중간한 것이 아닌 진짜 드래곤.

명실상부 이 세계의 최강 종족.


【들어라! 숲의 종족들이여!】

거대한 새빨간 드래곤이 앞으로 나섰다.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엄청난 마나와 함께 드래곤의 기운이 담겨 있다.
주위에 있던 이들은 절망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 때와는 비교도 하지 않을 정도로 겁을 먹으며 머리를 조아리고 바닥에 엎드렸다.

“엄마...”


“걱정하지 마.”


세라도 심하게 겁을 먹고는 내 품에 파고들었다.
나도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엄청난 위압감에 무심코 무릎을 꿇을 것만 같았다.

이게 말로만 듣던 드래곤의 힘.


도저히 이길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너희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그저 죄인을 잡으러 온 것일 뿐이니.】


그렇게 말한 레드 드래곤의 날카로운 눈이 나에게 향한다.
용화를 풀지 않고 노골적으로 이곳에 있다고 기운을 발하고 있었으니 당연하다.


“세라야. 세피리아랑 아우리아에게 가 있어.”


“엄마는...?”


“엄마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

세라를 내려놓고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등을 밀었다.
세라는 가기 싫다는 티를 역력히 냈지만, 내 재촉에 두 사람에게 뛰어갔다.


세피리아는 뛰어 온 세라를 안아 들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나를 바라봤다.
아우리아는 레드 드래곤의 위압감에도 굴하지 않고 줄곧 하늘의 어느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식해서 낳은 자식은 아닌 듯하군.】


“맞습니다. 저 아이는 인간의 피는 섞여 있지 않아요.”

【...】


레드 드래곤의 눈이 다시 힐끔 세라를 향하지만 이내 관심 없다는 듯이 다시 나를 향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면 너의 죄를 알렷다?】


“태어난 것이 죄....그렇게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렇다. 너는 태어난 것 그 자체가 죄악 그 자체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사라져야만 한다.】

듣기로는 고지식한 것으로는 엘프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종족이라 한다.
여기서 내가 뭘 말하든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여기서 순순히 따라가는 것은 결정사항이라고 치고, 이제 슬슬 내 빅엿을 먹을 상대가 나타날 때가 되었는데?

“그럼, 이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일까요?”

【이대로 얌전히 따라온다면 유혈사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말이죠...”

“악!?”


내 말이 끝나기 전에 누군가가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망토와 후드로 온몸을 가린 작은 체구의 인물.

“아, 씨! 누구야! 내 엉덩이 걷어찬 놈은!”


녀석이 튀어나온 방향에는 시크리프가 엎드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말한 대로 제대로 선별하고 앞으로 내보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어, 어라...?”

엉덩이를 비비면서 열을 내던 녀석은 자신에게 모인 시선에 당황한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멱살을 잡아 들어 올렸다.


후드가 벗겨지며 얼굴이 드러난다.


“오랜만이네. 아디스 황자. 아니 아디스만 카르아. 이 망할 새끼야.”


“어, 어라...?”

놈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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