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모녀(1)
아디스만 카르아. 그 이름이 튀어나오니 드래곤들 사이에서 엄청난 살기가 흘러나왔다.
기세만으로 이곳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일 것만 같은 느낌.
그만큼 그들에게 저 이름은 너무나도 특별했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지금 뭐라고 했나!】
“이놈이 저랑 똑같은 용인이고 이름은 아디스만 카르아라고 해요.”
【뭐, 뭐라...!?】
내게 멱살이 잡혀 대롱대롱 매달리고 있는 아디스에게 모든 드래곤의 살기가 넘치는 시선이 집중된다.
우와, 장난 아니네...직접적으로 받는 것도 아닌데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야.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요? 전 그냥 평범한 인간인데요?"
역시나 시치미를 뗀다. 그렇지만 당황한 기색은 숨기지 못한다. 너무 예상외의 일이었기에 그런 거겠지.
나였어도 분명히 저랬을 거다. 정말 하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의 당혹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니까.
어때? 내 기분을 조금이라도 맛봤어?
【죄인이여, 그자에게는 평범한 인간의 기운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그 존재를 언급하면서까지 어떻게든 무마해보려는 수작이라면 통하지 않는다고 미리 말해두지.】
"......"
레드 드래곤의 그 말에 작게 안도하는 아디스는 그거 보라며 나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그 사이에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이것 보세요. 리제 누나. 증거도 없이 사람을 나쁘게 말하면 안 되죠."
야, 너 그거 자기 자신을 나쁘다고 인정하는 말인데 괜찮은 거냐?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뭐, 그건 넘어가자.
아무튼 녀석의 말이 맞다. 증거도 없이 말해봤자 믿지 않는다.
이 녀석은 지금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을 깨부수는 방법은 있다.
"그러니까 이것 좀 놓고 이야기를...컥!?"
내 왼손이 아디스의 왼쪽 가슴을 푹, 하고 관통한다.
눈을 크게 뜨고 경악한 아디스는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자신의 가슴을 본다.
나는 관통시킨 손을 뺐다. 강렬한 피 냄새와 약간 끈적거리는 피가 기분 나쁘다.
하지만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커흑! 서, 설마...!"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는지 주먹을 쥔 왼손에 손을 뻗지만 이제 이 녀석은 아무것도 못 한다.
【죄인이여...죄 없는 인간을 죽여 무엇을 하는 거지? 자신의 죄를 더 무겁게 할 생각인가?】
"증거가 있어야 믿으실 거 아닙니까? 그러니 증거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음?】
나는 손에 쥔 것을 펴서 그들에게 보였다.
손바닥에는 손톱만 한 작은 구슬 같은 것이 있었다.
녀석의 심장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던 저 '인형'의 핵.
드래곤 하트.
그것에는 미약한 마나 밖에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나오는 기운 자체는 달랐다.
뭔가 조금 신성한 기운도 느끼며 동시에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모순이 있는 느낌이다.
"드래곤인 당신들이라면 이게 누구의 드래곤 하트인지 잘 아시지 않나요?"
【......음!?】
레드 드래곤은 가까이 다가와 그것을 관찰하더니 눈을 날카롭게 떴다.
【네놈이 어떻게!】
"이런...젠장..."
당했다는 듯, 곤란하다는 듯, 그렇게 말하는 아디스.
그럼에도 미소는 잃지 않는 것이 당했긴 했지만, 그것이 불쾌하다고 하기보다는 재밌어 하는 것 같다.
"어떻게 알았어...?"
"그걸 알려주면 재미없지. 너도 어디선가 정보를 얻고 내가 모르는 일을 해왔잖아?"
"후후...뭐, 그렇지."
내가 아는 것 이외에도 정말로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다 알아내지 못하는 것은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은 나도 유리하게 일을 진행할 방법을 알고 있다.
"아, 이렇게 되면...계획이 완전히 틀어지는데...어쩔 수 없지. 일단 이곳은 포기하는 걸로..."
【누구 마음대로!】
아디스의 말이 다 떨어지기도 전에 레드 드래곤에게서 엄청난 양의 마력이 느껴졌다.
내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도 저것에 반이나 따라잡을 수 있을지...정말 엄청나군.
"너희는 정말로 바보로구나. 그렇게 오랜 시간을 살면서 발전이 하나도 없어. 딱 한 녀석만 빼면 말이야."
【뭣...!?】
아디스가 비웃듯이 레드 드래곤을 보고 주변에 있던 모든 드래곤을 쭉 둘러보고 나면 그의 몸이 마지 모래 같이 변하며 후두둑 무너졌다.
【골렘인가! 주변을 샅샅이 뒤져라! 녀석의 흔적이라는 뭐든 좋다! 찾아라!】
레드 드래곤의 그런 호령에 하늘에서 지켜보던 많은 드래곤이 주변에 흩어진다.
그 말을 들어보면 이곳에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흔적만이라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죄인이여. 너는 어떻게 알았지?】
“저도 알게 된 것은 진짜 최근이에요. 그때까지는 저런 놈이 있는지도 몰랐고, 제가 ‘죄인’이라는 것도 몰랐거든요.”
단지 용인이 금기라는 것만 들어서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어제, 어째서 금기인지 선대 하이엘프의 수기에서 알게 되었기에 내 존재가 왜 금기인지 알았다.
나는, 리제는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아이.
저 위에서 이쪽을 계속 내려다보고 있는 가장 거대한 블랙 드래곤이 아마도...
【녀석을 고발하여 죄에서 벗어나겠다는 수작인가?】
“설마요. 당신께서는 어차피 믿지도 않으시잖아요?”
【...너희가 같은 편이고 우리를 속이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지.】
드래곤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어느 쪽이든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다.
솔직히 말해서 어느 쪽이든 상관없을 것이다.
“일단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은 증명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엘프족의 대장로를 조사하면 녀석과 접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연락을 보낸 것도 그 사람일 테니까요.”
“뭣...!?”
그런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장로들이 모여 있던 곳이 시끄러워진다.
그러던 중 누군가가 벌떡 일어났다.
대장로였다.
“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알 것 없고, 네놈이 손녀인 니나를 시켜서 세피리아에게 밖의 다양한 책을 읽게 하거나 다양하게 밖에 대한 환상을 심게 하거나 그런 것을 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어.”
“무슨...!?”
“뭐가 되었든 나가는 것을 선택한 것은 세피리아니까 본인 책임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유도한 것은 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
“......”
대장로는 말을 잃었는지 입을 뻐끔뻐끔 거린다.
세피리아 근처에 있던 니나는 그대로 털썩 주저앉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
“니나...”
세피리아는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편인 줄 알았던 니나가 실은 자신의 편이 아니고 적이었다.
그것도 세피리아가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부정적인 감정을 지닌 적.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나도 세피리아도 알고 있다.
이것은 선대의 수기에 적혀 있었던 것이지만, 니나는 본래 다음 하이엘프 자리에 앉는 것이 유력했었다. 그 때문에 선대의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고 있었고 당연히 그녀의 뒤를 이어 그 자리에 앉을 줄 알았다.
선대가 세피리아의 무녀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기 전까지는.
자신이 앉아야 할 자리에 갑자기 누군가가 앉는다.
그것에 앙심을 품은 니나는 세피리아의 신뢰를 얻으며 어떻게든 그 자리를 뺏으려고 했다.
자신의 할아버지인 대장로의 도움을 받으면서.
뭐, 흔하다면 흔한 그런 이야기다.
“여왕이자 세계수의 무녀로서 명령합니다. 대장로와 니나를 끌고 가 조사를 시작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세피리아의 명령에 무장한 몇 명의 엘프가 대장로와 니나를 끌고 간다.
그들은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얌전히 끌려갔다.
뭐, 당연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반항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까.
절대자들이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데.
【노력하는 것 같다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까지는 수기에 적힌 내용을 조합해서 이끌어낸 결과다.
이 이후에는 모른다고 쓰여 있으니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거야...】
음, 하고 나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하는 듯했다.
이 레드 드래곤은 내가 사라져야 하는 존재라고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왔다.
그렇다면 가장 최악은 이 자리에서 죽인다고 하는 것.
수기의 적힌 미래에는 내가 살아 있었으니까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싶은데, 굉장히 불안하단 말이지...
【역시 이대로...】
【기다려라.】
【로드.】
그렇게 레드 드래곤을 보며 긴장하고 있으면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계속 이쪽을 내려 보고 있던 블랙 드래곤. 이곳에서 가장 강하고 높은 신분일 거라 생각은 했는데 로드라니.
드래곤 로드는 그대로 천천히 하강하더니 어느 정도 내려왔을 때는 몸 전체가 하얗게 빛이 났다.
그리고 형상이 점점 작게 줄어들더니 인간의 형상을 하게 되었다.
폴리모프를 한 것이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드래곤 로드는 사뿐히 바닥에 착지한다.
“저 모습은...!?”
“......”
나에 대해서 잘 아는 이들은 아우리아를 제외하고는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란다.
20대 중반 정도의 검은 머리의 차가운 인상을 지닌 장신 여성. 그것은 지금의 내 모습과 굉장히 닮았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비슷하긴 하지만 좀 더 성숙한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나에게는 그게 더 불쾌하게 느껴졌다.
“너는 이대로 우리를 따라와 줘야겠다.”
“...싫다면요?”
불쾌감과 함께 나는 하지도 못할 짓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나에게 거부권이라는 것은 없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 자신도 깜짝 놀랐다. 난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거지?
“싫다...? 그렇다면.”
“!?”
반응할 틈 따위는 없었다.
눈이 깜빡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빨랐으리라.
드래곤 로드의 불쾌하다 생각한 모습은 이미 내 앞에 와 있었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야지.”
-퍽!!!
“컥!?”
허옇게 일렁이는 끔찍한 오러를 두른 주먹이 내 명치에 꽂힌다.
이게 명치를 때렸다고 날 소리일까?
충격만으로 주변이 난리가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 친...!’
장난이 아니다.
익스퍼트와 마스터. 마스터와 그랜드 마스터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라 들었는데 그것도 약한 표현이다. 차이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걸 버티나. 그렇다면...”
-퍼어억!!!!!
“....!!!!”
때린 곳을 또 때리기.
그것도 아까보다 더 강력한 공격에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을 뒹군다.
꼴사납게 바닥을 뒹군 일은 많이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아무것도 못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목표로 해야 할 경지.
용화까지 한 나를 완전히 아기 다루듯이 가볍게 제압해버리는 엄청난 경지.
“.....”
흐릿한 시야 속에서 드래곤 로드의 다리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거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강력한 오러가 깃들어 있었다.
마치 마무리라도 짓겠다는 듯이.
저 미친 흉기로 내려찍을 생각인가.
진짜로 죽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개로피지 마!”
“......!”
아무것도 못 하고 그것을 바라만 보는 사이 내 앞을 작은 인영이 가로막았다.
세라였다.
내 쪽에서는 등밖에 보이지 않지만,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고 있다.
연결된 곳을 통해 분노와 두려움과 슬픔이 전해져왔다.
작은 어깨를 덜덜 떨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나를 지키겠다고 막아선 것이다.
그것을 본 드래곤 로드의 차가운 얼굴이 순간 굳는 것이 보였다.
처음으로 본 당황한 표정. 저 표정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는데.
“울 엄마 개로피지 마! 하모니 나빠! 흐어엉!”
“뭣...!?”
뒤 이은 세라의 말에는 놀라서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주, 그냥 세라 앞에서는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시는군.
당신도 손녀에게는 당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
“후...”
어쩐지 내가 한 방 먹여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괴로운 상태임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한계였다.
연이은 최종병기급 펀치 두 방은 내 정신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엄마...? 엄마...!”
“.....”
사라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세라의 목소리가,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울지 말라고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데...
그것을 하지 못해 가슴이 아팠다.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다니...
나도 이제 진짜 엄마인 걸까?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