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모녀(4)
꿈을 꾸었다.
드래곤으로 태어나 드래곤의 삶이 싫었던 젊은 여자의 꿈을.
어려서부터 그녀는 어째서 고리타분한 규율에 묶여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몰랐다.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몇 명뿐.
'안'에서의 생활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답답한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우연히 밖으로 나갈 기회를 잡았다.
옛날 블랙 드래곤이 도와 건국한 제국에 도움을 주는 일.
이는 정기적으로 행하는 일이었으며 그것은 오직 그 후손인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철이 없는 드래곤 여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제국에 가서 명분 있는 일탈(?)을 즐겼다.
보통 마법만 사용하는 드래곤과 다르게 자주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검술을 단련한 그녀는 쉽게 제국에 녹아들 수 있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해 자주 주변을 놀라게 하였지만, 뭐, 사소한 일이다.
여자는 그렇게 인간들 사이에서 유희를 즐겼다.
하지만 곧 그녀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술을 워낙 좋아하던 그녀는 술에 취해 그 당시 알고 지내던 인간의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고 뜻하지 않게 첫 경험을 하게 된다.
단지, 그뿐이라면 괜찮았을 거다.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넘어갔다면 사고라고 할 필요도 없으니까.
문제는 그다음이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인간 여자의 몸이 한 달에 한 번 하는 현상이 오지 않아 편하다고 생각하던 그녀였지만, 곧 뱃속에 작은 생명 두 개가 깃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신은 드래곤. 그리고 뱃속에는 인간 남자의 아기.
폴리모프로 인간으로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임신할 확률도 인간 여자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고작 하룻밤에 임신을 해버렸다.
여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다.
인간의 아이를 갖는 것은 드래곤에게 있어 죄악이라 해야 할 정도로 무거운 일이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을 깨버렸다.
당장에 지워야 한다.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것을 실행하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녀는 모든 용인을 죄악으로 여기는 규율과 더불어 고리타분한 모든 규율에 의문을 갖고 있었다.너무 바뀌려고 하지 않는 드래곤이라는 종족, 그 삶의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런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번 기회에 증명해보고 싶었다.
뱃속에 있는 두 개의 생명이 옛 용인 왕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들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은 어느 의미 명분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녀는 단순히 이 생명을 죽이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거기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반드시 지키거라.]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들어 보는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자신들을 창조한 창조신의 목소리라는 것은 본능에 따라 알 수 있었다.
그래, 이건 신의 선물이야.
그 날로 여자는 급히 일족에게 들키지 않도록 몸을 숨겼다.
시골의, 산골의 작은 마을을 전전하며 지냈고, 곧 건강한 여자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다.
10개월 동안 뱃속에서 키우며 낳은 아이.
어째서 인간들이 아이를 애지중지하는지 그때 깨달았다.
엄마가 반드시 지켜줄게...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다.
이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워 모든 용인이 죄인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시간.
여자는 육아하면서도 틈틈이 올바르게 키우는 법을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마법이나 검술을 수련하는 것과는 다른 진이 빠지게 하는 피곤함을 느꼈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모습만 봐도 몸에 활력이 넘쳐났다.
행복하다.
여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자신이 숨어지내던 마을에 아버지가 찾아온 것이다.
드래곤 로드.
드래곤 일족의 장인 그는 아이들을 보자마자 대노했다.
로드인 자신의 딸이 규율을 어기다니.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여자는 설득했다.
조금만, 못해도 20년 정도는 기다려 달라고.
분명히 모든 용인이 나쁜 것은 아닐 거라고.
그렇지만 그런 설득이 먹힐 리는 없고 드래곤 로드는 분노하며 그녀를 공격. 그 여파로 살고 있던 마을을, 산을, 생명을, 전부 태워버렸다.
마치 생명을 죽이는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모습.
여자는 드래곤의 이런 모습도 굉장히 싫었다.
그 강인함으로 인해 모든 생명의 정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함.
자신들 외의 생명은 하찮게 여기는 그 생각이 너무나도 싫었다.
용인 왕과 전쟁을 할 때도 명분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서였지만, 실상은 그저, 그런 사악한 존재가 자신들 사이에서 나온 것을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용인들을 무조건 부정하기 시작한 것이리라.
여자는 아버지를 막기 위해 아이들을 숨겨놓고 검을 들었다.
아버지의 힘을 이미 뛰어넘은 그녀가 막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압까지 완료했지만, 그는 정말 집요하게도 그녀의 아이를 노렸다.
어마어마한 위력의 브레스 공격이 아이들에게 향하려 하고 있다.
이게 쏘아지면 아무리 자신이라도 다 막을 수 없다.
그런 판단을 한 그녀의 행동은 아주 간결했다.
제압한 아버지의 목을 치는 것.
그것은 자신도 모르게 나온 행동이었다.
아이들을 지켜야만 한다는 본능에서 나온 행동.
그리고 자신의 깊이 뿌리박힌, 지켜야만 한다는 말에 의한 행동.
죽였다. 아버지를 죽였다.
죄인은 자신인데 모든 잘못은 자신에게 있는데 아버지를 죽이고 말았다.
죄악감이 온몸을 짓누른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나는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전부 다 자신의 욕심에 의해 일어난 일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죽이는 일은 할 수 없다.
반드시 지켜야만 했으니까.
이미 자신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 개입했다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죽인 일에 관해서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그 날로 여자는 쌍둥이 중 동생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언니는 가장 안전한 마을의 보육원 앞에 두었다.
적어도 평범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
부디 앞으로 자신과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자신과 만난다는 것은 이미 큰일에 휩싸여 있다는 것일 테니.
그렇게 여자는 로드가 영면에 들었다고 모든 드래곤에게 선포하며 그 자리에 올랐다.
본래 곧 영면에 들 시기이기도 했기에 큰 반발은 없었다.
그녀로서는 지옥 같은 시간의 시작이었다.
*
잠에서 깬 나는 몸을 일으키고 짜증을 느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남의 삶을 통째로 엿본 찝찝함과 그 삶이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웠을지 상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규율을 바꾼다. 다르다고 증명하겠다는 그 생각은 평가하기 힘들지만, 그것 외에는 모든 것이 공감되었다.
그리고 드래곤도 역시 막장 종족이었다.
어쩌면 먼 옛날에도 사이좋게 지낸 것은 소수이고 지금과 변함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 이유는 잘 판단하라는 건가."
유미네, 그녀에게 있었던 일들을 나에게 보여준 것은 아마도 나를 이 세계에 데리고 온 존재.
이 세계에 존재하는 3명의 신보다 상위에 있는 창조신이다.
이런 짓을 하지 말고 그냥 빠르게 설명을 해주었으면 하지만 창조신은 아마도 이 세계에 직접 손을 댈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창조신에 대한 언급은 어느 역사책에서도 가장 처음에 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물론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대단한 존재가 언급이 적다는 것은 이상하다.
'도대체 날 이곳에 불러서 하고 싶은 게 뭐야...'
설명도 아무것도 없이 오게 된 세계.
그저 진정한 해피 엔딩을 보라는 그 말 외에는 가끔 뜨는 루트 이야기일까?
"엄마!"
"세라야!"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으면 세라가 나타났다. 그 곁에는 유미네와 아우리아가 있었으며, 유미네는 곧바로 철창의 문을 열었다.
그러면 다다닷, 하고 세라가 힘차게 달려와 안겼다.
"이제 안 아파?"
"응! 세라 하나도 안 아파!"
"다행이다."
품에서 얼굴을 비비는 세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이 아이의 웃는 얼굴만 봐도 기운이 생기니 참 신기한 일이다.
"나와라."
그리고 그건 그녀도 그랬었다.
"저 환자인데요?"
"몸은 이제 아무렇지도 않을 텐데?"
"...어?"
듣고 보니 그렇다.
몸을 일으킬 때도 그랬지만, 세라가 안겨왔을 때도 고통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몸이 굉장히 가볍다.
뭐지? 내가 이렇게 회복력이 좋았었나?
“알았으면 얼른 나와라. 너에게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다시 재촉하는 그 말에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세라와 함께 나온다.
그런 일을 알아차린 마당에 눈앞의 이 사람을 어떻게 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유미네의 눈가가 부은 것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 있던 아우리아도.
“울었어요?”
“뭣...!? 가, 갑자기 무슨 소리냐!”
“눈, 부었어요.”
“.....!”
내 지적에 힘차게 눈가를 비비는 유미네.
그래 봤자 소용없을 텐데...오히려 저 힘이라면 더 붓는 거 아니야?
“울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라도 나눈 거야?”
“아, 아니요. 그...”
아우리아까지 울 정도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다고 봐야 하는데, 그것마저 부정하면 뭐가 남았지?
“엄마. 할~무니는...”
“어, 얼른 가자! 시간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의문이 들고 있으면 세라가 무언가 나에게 말하려고 했고 그 사이에 유미네가 끼어들더니 세라를 나에게서 낚아채듯이 뺏더니 그대로 나아갔다.
나는 황당할 지경이었다.
“엄마~ 빠리 와!”
거기에 유미네의 품으로 옮겨간 세라가 굉장히 신이 난 듯하지 않은가?
세라가 친화력이 굉장히 좋기는 하지만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나 친해졌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저희도 가도록 하지요.”
“어, 어...응.”
뭔가 나만 따돌림당하고 있는 상태 같아 좀 이상했다.
“후우...”
그래도 뭐, 세라가 저 사이에서 즐겁게 있는 모습을 보면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가족, 인가...
그러고 보면 ‘리제’는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했던가.
그러면 동생이 있다는 이야기인데, 역시 그 녀석이겠지.
나랑 얼굴이 똑같았다던 그 녀석.
내 생각으로는 그 녀석도 나와 똑같이 다른 세계에서 온 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게임에서의 지식을 그놈에게 가르쳐줬고 말이지.
‘기회가 된다면 잡아서 털어내야지.’
그렇게 다짐하고는 나는 다시 유미네를 바라봤다.
그녀의 과거에 대해 안다고 전해야 할까.
그렇지만 안다고 전해서 뭐가 될까.
지금 그녀가 생각하는 것을 알 수가 없는데.
‘다만, 내 인식이 완벽하게 바뀌었다는 것이 지금으로선 중요한 거겠지.’
무작정 분노하던 마음은 사라졌다.
어쩌면 친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야야야!!!”
“그런 움직임으로는 고블린도 잡지 못한다.”
“죽어! 이거 진짜 죽어!"
“이 정도로 죽진 않는다.”
“흐아아!?”
이것은 훈련을 빙자한 구타.
이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