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드래곤(2)
-쉬익!
섬뜩한 소리가 지나갈 때마다 벌레가 터져나가는 것이 아니고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저거, 도대체 얼마나 힘을 담으면 가능한 일일까?
“후욱...후욱...”
내가 조금 억지로 끌고 오면 유미네는 완전히 반 광란 상태로 검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마치 SF 영화에 나오는 광선검 같은 것을 현란하게 휘두르는 모습은 감탄이 절로 튀어나온다.
유미네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며 식은땀을 흘린다.
육체적으로 지쳤다기보다는 정신적으로 한계가 되었다는 느낌이다.
“괜찮아요?”
“그, 그럼. 괜찮고말고오옷!?”
마치 굉장히 무서운 귀신의 집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달려드는 벌레를 처리한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아직도 끔찍하게 주변 천장이나 벽에 들러붙어 이쪽을 노리고 있는 벌레들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이 벌레들. 강한 마나에 반응하는 것 같다.
음, 말하자면 마나를 먹고 자란 벌레들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래도 첫 번째 숨겨진 장소에 있었던 세르니아 같이 이곳에는 마나를 잔뜩 머금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을 벌레들이 먹고 자라 번식하고 이곳을 아예 둥지로 삼았다는 느낌이다.
근데 이곳에는 아마 폰티나가 남긴 가디언이 있었을 텐데...?
“이, 이젠...싫다. 그냥 이곳을 날려버리고 싶다...”
“그래선 안 돼요. 아시잖아요?”
“끄으...”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고 한들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물론 이런 크기의 벌레는 누구나가 싫어하겠지만, 이 반응은 유미네가 특히나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벌레가 약점이라니, 귀여운 부분도 있네.
“너도 놀지 말고 얼른 도와라!”
“음? 하지만 이 녀석들 저보다 유미네가 더 좋은 것 같은데요?”
나도 정리를 돕고 있기는 하지만, 대개 유미네를 향하기에 나는 그다지 움직이지 않아도 되었다.
아, 편해서 좋아.
“적극적으로 해라! 오지 않는다면 네가 다가가면 되지 않나!”
“안 그래도 싫은데 굳이 다가가서 처리해야 해요? 그렇게 말하면 유미네가 해요.”
“비, 비겁...헉!?”
나에게 따지다가 다시 달려드는 벌레에 기겁하며 처리하는 유미네.
이거 며칠이든 볼 수 있을 거 같아.
보면 아주 기분이 좋아지거든.
그렇게 다시 유미네는 벌레 퇴치에 집중하고 나는 가볍게 몇 번씩만 검을 털며 진행한다.
초반, 중반까지는 겁에 질린 유미네를 보며 기분 좋게 진행하고 있었지만, 후반에 가서는 그럴 수도 없었다.
“우욱...”
우글우글, 그런 말이 어울릴 정도로 벌레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안쪽으로 갈수록 진짜 둥지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제 못 참는다!!!!”
유미네가 더 강대한 드래곤 피어를 날리며 검 한 자루를 더 손에 들고는 주변 벌레들을 말 그대로 소멸시키고 있다.
이성을 잃었다고는 볼 수 없는 정확한 검의 궤적.
그것에 감탄하면서 나도 이제는 안전할 수 없기에 열심히 검을 털었다.
그렇지만 나는 소멸까지는 가지 못해서 어떻게든 잔해가 남게 된다.
자세한 묘사는 생략...
그리고 얼마 뒤, 놈들의 보스로 보이는 거대한 벌레가 나왔고 그것도 유미네가 단숨에 소멸시켰다.
주변에는 산란했는지 알이 잔뜩 있었고, 그것도 유미네가 깔끔하게 처리했다.
박수라도 쳐주고 싶군.
“후욱...! 후욱...! 후욱...!”
“고생 많았어요. 아직 그래도 좀 남은 것 같지만, 처리하는 건 시간문제겠죠.”
“더는...싫다...벌레...싫다...”
내 말은 들리지 않는지 작게 중얼거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래, 고생이 많았으니 좀 쉬어야지.
그런 유미네를 놔두고 나는 주변에 굴러다니던 검은 구슬을 집어 들었다.
아까 전, 벌레 보스를 잡았을 때 같이 소멸하지 않고 떨어진 것이다.
“이건 대체 뭘까.”
분명히 무언가 의미가 있는 물건이리라.
나는 그것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러면 구슬이 반응하며 내 마나를 힘껏 빨아들였다.
그러면 곧 그 구슬을 중심으로 투명함이 있는 검은색 슬라임 같은 것이 퍼지고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했다.
폰티나가 만든 가디언이었다.
여기는 블랙인가.
이제 전대의 레드와 핑크가 남았다.
『우욱...! 사, 살았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위대하신 분이여!』
“아, 응. 널 도와준 건 내가 아니고 저 사람이지만...”
“이제 싫다...이제 싫다...”
현재 트라우마에 빠져 절망에 빠진 상태이니 그냥 넘어가자.
“근데 너 여기 가디언 아니야?”
『며, 면목없습니다. 더러운 벌레들의 공세가 너무 강하여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건방지게 마나를 먹더군요.』
온몸이 마나로 구성되어있는 가디언의 특성상 그건 최악의 상성이었다.
장난 아니네, 진짜...
“됐고, 도와줬으니까 뒤는 알지?”
『그럼요.』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블랙은 허공을 뒤지는 것 같은 흉내를 내더니 나에게 구슬을 건넸다.
드래곤하트였다.
<키르샤의 드래곤하트>
등급 : 전설(소모품)
설명 : 레드 드래곤 키르샤의 드래곤하트.
효과 : 온전히 기운을 다 받을 시 마력+400(영구) 레드 드래곤의 속성 획득.
...어? 뭔가 설명이 굉장히 간략하지 않아?
요즘 들어 시스템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데 그것 때문일까?
“이것 말고도 더 있잖아? 여기에 본래 있던 건 어디에 있어?”
『아, 아아...그게...』
그런 내 질문에 당황한 기색을 보인다.
설마...?
“벌레들한테 당한 거야?”
『네...이미 싹 다 먹혔습니다.』
“.....”
분노로 말문이 막힌다.
다른 곳보다 중요도가 낮긴 했다.
이곳에 있던 것은 재료다.
연금술이나 무구 제작에 사용되는 각종 재료가 이곳에 있었다.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니 회수하고 싶었는데.
“벌레가 들어 온 지 얼마나 되었어?”
『음, 그게...』
블랙은 더듬더듬 벌레들이 처음 들어오게 된 시기를 나에게 설명했다.
애매하긴 했지만, 어느 정도 날을 특정할 수 있었는데...
‘어쩐지 내가 그라니토의 활동을 알아챈 시기랑 비슷하지 않나?’
용의 계곡에서 일어난 참사.
그것은 전부 그라니토가 벌인 짓이다.
모든 것을 먹고 흡수하는 그라니토.
마나가 담긴 것을 먹어치우는 벌레.
이거, 우연인가?
뭔가 인과관계가 있을 거로 생각하는 것은 너무 앞서나간 생각일까?
“잠깐, 마나를 먹는다고?”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벌레라는 것에 너무 신경 써서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그라니토.
아두크.
하르마나.
스토리에서 가장 비중을 많이 차지한 네임드들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르마나.
마나를 먹으며 끝도 없이 분열한다는 설정을 한 보스다.
유저를 가장 끔찍한 고통에 내몬 장본인.
제한 시간 내에 잡지 못하면 똑같은 능력치를 가진 하르마나가 또 생겨난다.
능력이 부족하면 끝도 없이 불어나는 하르마나를 볼 수 있다.
어떤 유저는 도대체 얼마나 늘어날지 실험한다고 계속 늘려봤다가 50마리 언저리에서 다구리 맞고 죽어서 실패했다.
그라니토와 아두크 같이 능력치가 올라가거나 하지는 않지만, 꽤 강한 능력치이고, 계속 분열하니 여간 까다로운 놈이 아니다.
초장에 죽이려고 해도 스토리 상 반드시 한 번은 분열하게 되어 있어서 불가능했다.
아무튼 벌레라는 점만 빼면 마나를 먹는다는 점은 똑같지 않은가.
물론 그런 생물이 본래 있었다고 한다면 모르지만, 적어도 유미네는 생긴 것은 자신이 아는 것과 비슷하지만, 습성마저 똑같다고 느끼진 못한 것 같다.
“블랙아.”
『브, 블랙...? 저 말씀이십니까?』
“그래. 너 말고 다른 애들도 지어줬어. 아무튼, 너 이 근처에 대해 잘 알고 있지?”
『그럼요. 이곳에서 얼마나 살았는데요.』
“그럼 여태까지 살면서 벌레가 들어왔던 적은 있어?”
『그냥 일반적인 벌레는 들어왔던 적이 있었지만, 쉽게 쫓아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대량의 벌레가 마나를 먹으면서 침입했던 것은 처음입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도 하르마나와 확정 지을 만한 정보는 없었지만,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숲에서 분명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
“유미네!”
“벌레 싫다...벌레 싫다...”
“정신 차려요!”
어지간히 후유증이 심한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유미네를 억지로 일으키고는 그대로 탈탈 털었다. 그러면 그녀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정신이 좀 들어요?”
“여, 여긴...”
“거기부터...? 아, 아무튼 유미네가 보고 싶다던 폰티나가 남긴 것이에요.”
『안녕하십니까. 위대하신 로드 시여.』
블랙이 꾸벅 인사를 하면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유미네가 옷매무새를 바로잡고 평소대로 돌아와서는 그 인사를 받는다.
“그래. 네가 폰티나 님께서 남긴 가디언인가?”
『네. 맞습니다. 이곳을 지키도록 명을 받았지요.』
“폰티나 님께서는 어디에 계시는지 아는가?”
『그건 저도 잘...오랫동안 이곳에 혼자 있었기에.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저주받은 땅에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저주받은 땅...
다음 목적지는 그곳인가?
나는 현혹의 숲이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그곳은 마지막이 될 것 같다.
내 멋대로 가고 싶어도 결국에는 폰티나가 지정한 곳으로 향하게 되었으니까.
그나저나 선대 하이엘프의 수기로 대략적인 미래의 일은 알게 되었다지만, 애매한 부분이 많아서 답답하네.
거기에 이걸 완벽하게 믿기에도 좀 그렇다.
수기에도 적혀 있었지만, 미래라는 것은 가능성 중의 하나.
내가 수기를 읽고 미래를 알고 그것을 피하거나 무언가를 바꾸려고 든다면 그 즉시 미래는 다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온전히 믿지 말라고 했다. 어디까지나 참고로만 하라고.
하지만 그 참고할 내용에 지금 내가 알고 싶은 정보가 없다.
그러고 보면 아두크에 관한 내용도, 그라니토에 관한 내용도 없었지.
녀석들은 특별한 건가?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으면,
-쿠궁!!!
마치 큰 지진이 일어난 것만 같이 땅이 흔들리고 주변이 흔들린다.
동굴은 마치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유미네는 무언가를 느꼈는지 다급히 밖으로 뛰어나간다.
나도 그 뒤를 쫓아 달려갔다.
들어 올 때는 그렇게나 괴로웠던 통로를 지나서 입구로.
깨끗하게 정리된 입구를 나가 서 있는 유미네를 따라잡으면 다시 쿠궁!!!하고 땅이 흔들린다.
그것도 아까보다 더 크게.
“둥지가...공격 받고 있다고?”
그리고 그 진원지는 드래곤의 둥지였다.
그 곳을 공격하고 있는 것은 공통점이라고는 찾기 힘든 각종 생물.
아마도 이 죽음의 숲에서 사는 생물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거대해진 그것들은 이미 괴물이라 불려야 하는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