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저주받은 땅으로(2)
우리는 일단 이곳에서 하루 지내고 다음 날 출발하기로 했다.
세라의 상태가 가장 큰 이유.
그 뒤로는 내가 끌려가고 난 뒤의 일을 세피리아가 이야기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세라는 어때?”
“많이 좋아지셨어요.”
나는 이제는 편안한 숨소리를 내는 세라를 살펴본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아 보이던 세라는 세피리아와 아우리아, 둘과 함께 세계수에 다녀오고 나서 많이 좋아진 모습을 보였다.
생명의 물. 단순히 수명을 늘리는 것이 아니고 몸을 튼튼하게 만들어 주는 거겠지.
이제는 내 마나에 많이 버티는 것이 느껴진다.
이거라면 금방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제가 시중들고 있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부탁해.”
아우리아의 말에 따르기로 하고 나는 세라에게서 멀어진다.
그 뒤를 세피리아가 따랐다.
지금 있는 곳은 세피리아의 집.
세라가 있는 방을 나와 거실로 나온 우리는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세피리아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장로와 니나는...규칙대로 처리했어요. 대장로는 사형. 니나는 지하 감옥에 500년 동안 살게 될 거에요.”
하이엘프를 기만하고 위협하고 함정에 빠트린 벌은 생각한 것보다도 무거웠다.
대장로는 바로 사형이지만, 니나는 500년의 감옥생활.
하지만 니나의 남은 수명을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
어쩌면 대장로보다도 더 끔찍한 벌.
“괜찮은 거야...?”
“솔직히, 지금도 믿기지 않아요. 니나가 그런 일을 꾸몄다니....”
니나는 그녀에게 있어 그 누구보다도 믿었던 자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도 컸다.
그리고 그 마음의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선대는 이미 알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네요. 은근히 저와 니나를 떨어트려 놓으려 하셨으니까요.”
“.......”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 이야기에 대해서는 수기에 나와 있었다.
미래의 장면을 알고 있으면서도, 미래는 반드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니 아니길 바란다는 내용의 글이 있었으니까.
나는 그것을 굳이 세피리아에게 말하지 않았다.
수기에도 말하지 말아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어쩌면 한 줌의 가능성을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나쁜 미래가 일어나지 않기를.
“아무튼, 일단 일은 그렇게 마무리되었고, 원로회의 다른 장로들은 불문에 부치기로 했어요. 그들도 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나라는 그들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세피리아는 상징적인 리더일 뿐.
나라에 연관된 것은 전부 장로들이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다른 마음은 품지 못할 거예요. 그리고 주인님이 하시려는 일에 적극 동참해주겠죠.”
그들을 모두 처분한다면 혼란이 올 것은 자명한 일.
어느 정도 자비를 베풀어주면서 써먹는 방법을 택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아군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인간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면 정말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기다릴 시간은 없다.
그렇다면 ‘나’라는 매개체를 이용해 하나로 묶어보자.
그런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고 있다.
“저희 쪽도 문제는 없고 수인왕과 드워프왕도 도와준다고 말했어요. 그들도 인간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싫지만, 주인님을 돕는 거라면 기꺼이 따르겠다고요.”
“그래...”
고마운 일이다.
역시 위압적으로 나가는 것보다 친해지려 노력한 것이 정답이었다.
엘프는 어떻게 파고들 틈이 없어서 걱정이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협력은 얻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드래곤, 다크엘프, 마족인가.”
드래곤은 유미네가 있기는 하지만, 드래곤 전체에 협력을 받을 수 있는가로 말하자면 애매하다.
내가 용인이라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고, 그게 아니더라도 같은 드래곤이 아닌 이상 무시하는 경향이 크기에 나 자신이 그들보다 훨씬 강해지고, 그 망할 용인왕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건 난이도가 너무 높다.
‘그러니 역시 카르아의 도움이 필요해.’
그녀의 도움을 받는다면 모든 드래곤을 같은 편으로, 그것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된다.
“다크엘프는 시크리프가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지?”
“그건 그렇지만, 그쪽도 장로들이 만만치 않다고 해요.”
“아, 그랬나....”
하여간 쉬운 일이 없어.
“그렇지만 이번에는 유미네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지.”
“아하하...일반 드래곤도 아니고 무려 로드이시니...”
어떻게 될지 예상이 가는지 세피리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어떤 장면이 나올지 쉽게 예상이 된다.
나에게는 팝콘각 일지도?
“그럼 마지막은 마족.”
“정말로 마족과도 관계를 맺으실 생각이세요?”
“응.”
마족은 게임에서는 인류에 해를 끼치는 존재들로만 나온다.
마왕은 인간을 모두 죽이려는 목적으로 나오고 말이지.
그렇기에 나는 어디까지나 이 세계가 용사와 마왕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 속이라 생각했다.
게임에서처럼 마왕을 쓰러트리는 용사와 그 파티의 이야기라고.
그렇지만, 이 세계는 그런 단순한 세계가 아니었다.
어쩌면 마왕과 용사가 싸우게 된 것도 원인이 따로 있지 않을까?
왜냐면 인간과 마족은 먼 옛날에는 사이좋게 지냈다고 하니 말이다.
거기에 3 대 신 중 두 신이 각각 인간과 마족에 있다.
여신과 마신.
그것은 분명 인간과 마족 또한 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말이다.
분명히 무언가가 있다.
“제가 볼 때 마족이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쉽지는 않겠지. 그렇지만, 이미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마족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면 일단 몇 단계는 쉬워지겠지.”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분명 마족과 만난 적이 있다.
제국에서 말이지.
아마도 내 예상대로라면 이번 목적지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미 저쪽에서도 나와 접촉할 기회를 엿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 여정의 목적은 숨겨진 장소도 있지만, 어쩌면 마족의 존재가 가장 클지도 모르겠다.
“그럼, 이제 정리는 끝난 건가?”
“일단은요.”
“이곳은 맡길게. 세피리아.”
“네. 맡겨주세요.”
그렇게 세피리아와 대화를 나누며 정리를 끝낸다.
그녀는 이곳에 남아 내 지시에 따라 여러 가지를 준비해야만 한다.
세계수도 지켜야 하고 말이지.
본인은 나를 따라오고 싶은 눈치지만 말이지.
“리제 님! 세피리아 언니!”
“아우리아? 왜 그래?”
그렇게 정리가 끝나고 나면 아우리아가 방에서 나오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그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명백하게 무슨 일이 벌어진 상황이다.
“세라 님이...!”
“세라가 왜!?”
나는 아우리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으로 향했다.
“뀨, 뀨우...”
그러면 거기에는 폴리모프가 풀려 드래곤의 모습으로 돌아 온 세라가 보였고, 그 작은 몸을 떠는 광경은 누가 봐도 고통에 떠는 모습이었다.
“세, 세라야...?”
나는 만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내가 만지면 여기서 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으니까.
“뀨......뀨웅......”
엄마....엄마..... 하고 세라가 나를 부른다.
머리가 혼란스러워 죽을 것 같다.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발기발기 찢기는 것만 같다.
나를 애타게 찾는데 만지지도 못하다니....
“이, 이게 도대체...이럴 리가 없는데. 분명 안정을 찾으셨는데 어째서...!?”
세피리아가 다급히 세라를 만지며 진단한다.
나는 몇 번이고 뻗으려 하는 손을 붙잡고 그 광경을 바라본다.
너무나도 불안하다.
그리고 자꾸 내 탓을 하게 된다.
조심성 없게 한 행동 때문에 세라가, 자식이 저렇게 아프다는 사실에 나 자신을 원망하게 된다.
이럴 수는 없어...
아마, 지금 세라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난 분명히 망가질 것이다.
그렇게 내가 입술을 깨물며 절망에 빠져 있으면,
“정신 차려라.”
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유미네가 그렇게 말했다.
굉장히 불안정한 나와는 대비되는 침착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에 나까지 약간 침착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유미네...나 때문에...”
“확실히 처음 시작은 그것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네 탓이 아니다.”
“네...?”
그 말을 하며 유미네는 웃고 있었다.
마치 좋은 일이 벌어진 것 마냥, 아주 기쁘게.
그리고 말한다.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보는 거다. 우리 아이가 처음 제 일을 스스로 해내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빨리할 줄은 몰랐지만, 세라는 여러모로 특수하니 말이지.”
“그럼, 이건 걱정할 일이 아니고...”
“그래. 해츨링이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하아...”
확실하게 말하는 그 말에 나는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나는 드래곤에 대해 잘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아픈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뭘까?
“근데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 도대체 뭐길래 이러는 거예요?”
“처음은 누구나가 힘들고 고통스러운 법이지. 그게 드래곤에게는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탈피라고 해도 말이야.”
“탈...피...?”
“뀨......뀨우우.....!”
그렇게 내가 그 단어를 말하는 것과 동시에 세라의 몸이 번쩍 빛이 났다.
*
“세라야. 정말로 괜찮은 거 맞지?”
“엄마! 세라 이제 하나도 안 아파! 오히려 몸이 가볍다?”
다음날.
눈을 뜬 세라는 평소보다 훨씬 더 활기찬 모습으로 나에게 안겼다.
그리고 그 모습도 평소보다 달랐다.
완전 애기였던 세라가 약간 자라나서 어린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랐으니까.
물론 그렇게까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몸이 아주 살짝 자라고 억양이 상당히 똑발라졌다.
그리고 몸이 엄청 튼튼해졌고, 드래곤하트의 용량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첫 탈피.
내가 있던 세계의 첫 돌 같은 느낌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돌과는 다르게 당사자가 굉장히 괴롭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런 것에 비하면 위험은 없다고 한다.
본래라면 알에서 나와 500년은 지나야 한다고 하는데, 강한 힘을 받아서 급격히 성장하게 된 것 같다고 한다.
성장. 성장이라...
뭔가 기쁘기도 하면서 쓸쓸함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일까.
본래는 품에 쏙 들어오던 몸이 조금은 꽉 차게 느껴지는 것이 이상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계속 자란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거기까지만 하고 이제 출발하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방금 전까지 세라를 놓지 않고 있던 사람에게 듣고 싶지 않은 말이네요."
"흠흠..."
다들 세라의 첫 탈피를 기뻐했지만, 나만큼이나 기뻐한 것이 유미네다.
본인은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제어가 어려운지 전부 드러난다.
"그럼, 뒷일은 부탁할게."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했다.
마중을 나온 것은 세피리아와 아우리아.
두 사람 모두 아쉬운 기색이 역력하다.
이번은 나와 세라. 유미네와 시크리프와 부하.
이렇게만 가게 되니까.
"세피리아 언니, 아우리아 언니. 다녀올게!"
"네. 무사히 잘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까르르 웃으면서 세라가 팔을 뻗어 두 사람을 번갈아 안는다.
두 사람이 이제야 진심으로 웃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 이제 가자."
유미네의 그 말에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크리프와 부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유미네의 전이로 최대한 갈 수 있는 곳까지 갈 예정이다.
전이는 자신이 보고 제대로 기억할 수 있어야 정확히 사용할 수 있는 마법.
시크리프의 말에 의하면 유미네가 전이로 갈 수 있는 거리로 딱 4분의 1 정도 단축이 된다나?
그러면 결국 공국은 직접 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죽음의땅으로 가는 길목에 공국이 존재하니까.
"[전이]"
그런 유미네의 말과 함께 방대한 마력이 펼쳐진다.
이번에는 거리와 인원수가 좀 되기에 규모가 꽤 크다.
"........"
문득, 전이가 되기 직전 이곳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보니 문득 시스티아와 보육원에서 지낼 때가 생각났다.
그나마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던 것은 그때뿐이지 않았을까.
'시스티아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큰 위험이 없다는 것은 '지금도' 알고 있기에 걱정은 하고 있지 않지만, 그립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스티아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