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저주받은 땅으로(3) (81/107)



〈 81화 〉저주받은 땅으로(3)

성녀가 나타났다.

이제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든 나라에 퍼져 그들에게 불행을 그리고 희망을 주고 있다.


성녀가 나타났다는 말은 이제 대대적인 마왕과 마족들의 침공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성녀가 있으니  용사도 나타날 것이고, 그들이 있으면 분명 문제없이 끝날 것이다.
그게 대부분 인간이 가진 생각이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니까.


그리고 얼마  있어 용사도 선정되었다.
교단 본부 신전에 있는 성검을 뽑은 이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성녀와 용사는 이번에 피해를 많이 입은 제국에 지내며  활동을 시작한다.
본래 그들은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었지만,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공식적이었다.

“아~!! 너무 힘들어!!”

그리고 그 일이 끝나고, 성녀 시스티아는 자신의 숙소의 침대에 뛰어들며 그렇게 외쳤다.
일이 어느 정도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상상 이상이었다.

차라리 아직 알려지지 않은 초기 때는 적당히 하면 되었기에 편했지만, 지금은 많은 이들에게 성녀다운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힘들고 피곤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아무도 안 본다고 성녀가 그런 모습 보여도 되는 거야?”


“테이블에 다리 올려놓고 늘어진 용사에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시스티아의 시선 끝에는 이번에 성검을 뽑아 용사가 된 레온이 보인다.
그도 상당히 힘든지 늘어져서 참으로 안쓰럽게 보인다.

“아, 리제...리제 보고 싶어. 리제를 안고 그  가슴에 얼굴을 부비부비 하고 싶어...”


너무 피곤하고 리제를 못 본 지가 오래되어 정신이  이상해지고 있는 시스티아였다.
물론, 이게 어느 정도 본성이라고 할 수 있지만, 너무 풀려버린 상태라 할 수 있다.

“아저씨냐...”

“풋.  번도 그 엄청난 가슴을 만져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겠지.”


“다, 당연히 내가 만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동성인 시스티아는 틈만 나면 급격하게 자란 리제의 가슴을 만져댔다.
물론 세라가 있어서 자제하게 된 감이 있지만, 그래도 많이 만진 편이다.


리제의 가슴이 커진 것은 자신이 만져서 그랬다는 자부심조차 있을 정도. 어디까지나 본인 주장이지만 말이다.

귀찮을 법한데도 리제가 워낙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서 그냥 넘어간 것이다.  만진 상대가 시스티아라는 것도 컸지만 말이지.

그 반면 레온은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자극이 커서 눈을 돌린다.

레온은 어디까지나 리제를 친누나같이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생물학적으로 남남.
성에 눈을 떠가는 시기인 지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남자로 태어난  안타깝게 생각해.”


“아니, 오히려 그거 반대 아니야? 만약에 누나랑 결혼하게 되면....”

“야! 무슨 그런 말을 해!”

리제가 누군가와, 그것도 남자와 결혼을 한다.
아니, 사귀는 것조차 끔찍한데 그런 말을 지껄이다니!

시스티아는 분노했다.
그것에 레온이 당황한다.

“아니!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솔직히 누나가 좀 예뻐? 누군가 꼬일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다가 인연이 닿을 수도 있는 거고...솔직히 나도 상상하고 나니 엄청 짜증 나긴 하지만...”


그렇게 말을 하다가 무심코 상상하니 살의가 솟았다.
어디서 말 뼈다귀 같은 놈과 누나가 같이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성검으로 갈아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레온은 본래부터 엄청난 시스콘이었다.
 누이에게도 그랬으니 그리 이상할 건 아니었다.


용사가 되어 빠르게 강해지고 있는 지금, 만약 그런 놈(?)이 나타난다면 정말로 성검에 갈려버릴지도 모른다.


“됐어. 그런 상상은 하지 말자. 우리에게 좋을 게 하나도 못 돼.”


“그건 그렇지...”


“그보다 리제가 보냈다던 그 다크엘프는 확인이 끝난 거지?”


“어. 예전에 누나가 잡았던 시크리프라는 다크엘프의 부하가 맞아.”


며칠 전.
리제가 보냈다며 다크엘프가 두 사람을 찾아왔다.
그는 여러 가지를 이야기했는데 그중에서는...


“설마 마족을 찾아간다는 말을 하다니...”


인류의 적이라 할 수 있는 마족을 찾아간다고  것이다.
 세계를 위협하는 진정한 적은 제국을 습격한 인물이고 그는 용인.


마족과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싸워서는 안 될 것이라고.

이것은 인류의 역사를 완벽히 부정하는 말.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믿지 못했겠지만, 그들은 믿었다.
당연했다. 그들이 믿는 것은 역사가 아니고 리제였으니까.


“여신님은 뭐라고 해?”


“마족과 사이좋게 지내는 일은 안 된다고, 그 말밖에는 안 해.”


“그래? 어째서 안 된다는데?”

“몰라. 삐졌는지 제대로 말을 안 해줘.”


성녀인 시스티아는 여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때문에 가끔 진지한 이야기도 하고 잡담도 나누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삐져서 말을 제대로  할 때가 있다.

“하여간, 리제랑 연관되면 꼭 이래.”

흥. 하고 시스티아가 기분이 나쁜지 인상을 찡그린다.
아무래도 여신은 리제에게 질투를 하는 모양.

하도 시스티아가 리제, 리제, 노래를 부르니까 그게 싫은 모양이다.
이럴  보면 여신이 아니고 완전 떼쟁이 어린애다.


“너도 참 어지간히 사랑받나 보네.”


“용사인 너도 만만치 않은데.”


“난 목소리는 안 들리니 모르겠다.”


순위로 치면 레온이  번째로 여신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지만, 레온은 여신과의 연결이 전혀 없다.
그래서 어디까지나 그러려니 하고 있다.


“난 어디까지나 리제 건데 말이야.”


“그런 말을 하니까 여신이 삐지지...”


“사실인  어떻게 해?”

자신도 만만치 않지만, 역시 시스티아가 더 만만치 않다.
불쌍한 여신. 쯧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레온.
아무래도 여신으로서는 성녀로 고를 사람을 잘못 고른 것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혹시라도 리제의 방해가 된다면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그건 나도 동감.”

여신에 편에 서야 하는 자들이 순식간에 여신의 적이  판이었다.
아마도 지금 여신이  장면을 보고 있었다면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아무튼 누나는 그렇게 행동하신다고 하고, 우리는 우리대로 준비해야지.”


“당장에 필요한 건 다른 나라의 왕들을 구워삶는 일인가?”

“맞아. 적어도 무슨 일이 있을 때 협력을 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하겠지.”

“영 내키지는 않지만, 리제를 위해서라면 해야겠지.”

“그래.”


이것이 정녕 성녀와 용사의 대화란 말인가.
다른 이가 들었다면 분명 귀를 의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이 그 무엇보다도 믿는 것은 리제이며, 그 리제에게 영향을 받은 그들은 이미 평범하다 할 수 없으니까.

“으...이번 일이 끝나면 리제를 만날 수 있을까?”

“누나 쪽이 어떻게 끝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

레온도 리제는 얼른 만나고 싶다.
처음에는  누이를 대신한 존재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또 다른 소중한 누이.
보고 싶지 않을 리가 없다.


“리제의 가슴에 얼굴을 부비고 싶어...리제의 그 듬직한 꼬리를 만지고 싶어...내가 소중한 곳을 만지면 쾌락에 물들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보고 싶어...후후후...”

“너, 정말...”

쓰레기구나.
리제가 자신에게 아무것도  한다는 것을 빌미로 하고 싶은  다 하고 있다.
그냥 이대로 시스티아와는 만나지 않는 것이 리제를 위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저러다가는 소중한 누나의 정조마저 뺏을 기세다.

“아으~ 리제에~”


베개를 끌어안고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는 시스티아.
리제와 만나지 못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소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질척한 마음이  강해져 간다.

‘누나. 보고는 싶지만, 도망치세요. 그게 나을 거 같아요...’


레온은 진심으로 걱정했다.



*




“!?”


갑자기 등줄기를 훑는 한기.
그것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뭔가 확실하게 말하기는 힘든 공포가 느껴졌다.
그것은 지금의 나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것.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정말로 위험하다는 것만은 알 것 같다.

“엄마,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좀 더 조심하라는 거겠지.
음. 그런  아니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제 곧 우리 차례다.”


“알고 있어요.”

포레스티아에서 한  전이하고 이동을 시작하기를 2주 정도가 지나갔다.
우리는 드디어 죽음의 땅에서 가장 가까운 공국의 도시 관문을 지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솔직히 관문 같은 건 그냥 다른 곳으로 지나가도 되긴 하지만, 긴 여행으로 계속 노숙만 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시설에서 하루 정도는 쉬고 싶었다.

“다음.”


“마르티나 왕국에서 왔습니다.”


관문에 있는 병사에게 준비한 신분증을 보인다.
어딘가에서 은신하고 지켜보고 있을 시크리프와  부하들을 제외하고 나, 세라, 유미네의 신분증.

“이곳에 온 목적은?”


“관광이요. 이 주변을  한  둘러볼 생각이에요.”


“그런가...”

병사의 눈이 세라를 시작으로 나를 거쳐 유미네에게 향한다.
우리는 가족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의심 가지 않도록 머리나 눈 색만 대강 바꿨을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의심은 받지 않을 터.

“흠흠. 자매들끼리 사이가 좋은가 보군.”

“아하하.”


설마 그런 식으로 생각할 줄은 몰랐다.
확실히 나이 차가 있는 자매라고  수도 있을지도...
우리가 딸, 엄마, 할머니라는 관계라고 한다면 눈앞의 병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 범죄기록도 없어 보이니 통과!”

벌써?
앞서 진행했던 사람들은   철저하게 검사를 받았는데...?
우리는 5분도 안 돼서 그냥 통과를 받았다.

좋은 거긴 한데, 뭔가 얼떨떨하네?

“아저씨. 고마워!”


“하하하, 그래. 하지만 아저씨라는 말은 빼자?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우웅...그럼 오빠?”

“크흐흐. 그래, 고맙다.”

아주 좋아 죽는다.
하긴 우리 딸에게 그런 말을 들으면 그 마음이 녹아내리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매번 엄마라는 말에 녹아내리는데 말이야.

아무튼 통과선언도 받았으니 지나간다.


“후우. 이걸로  제대로 쉴 수 있겠네.”


“음...그렇군.”

제대로 쉬고 싶었던 것은 유미네도 마찬가지라 그런 내 말에 작게 동의했다.


“엄마...! 엄마...! 저거 맛있겠다...”


음. 그렇지만 우리 세라는 역시 식욕이 먼저로구나.
눈을 빛내며 꼬치구이를 가리키는 세라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온다.


“가볍게 요깃거리나 할까요?”

“그래.”

유미네도 이제는 세라가 좋다면 뭐든 좋다는 사람이기에 거절할 이유 같은 건 없겠지.
그렇게 우리는 꼬치가게로 갔고 주문을 한다.

세라는 무슨 욕심이 그렇게 나는지 5개나 시켰다.

탈피를 한 이후로 식욕이 더 왕성해졌단 말이지.


“엄마.”

그렇게 주문한 꼬치구이가 나와 먹고 있으면, 세라가 갑자기 내 옷자락을 당겼다.

“왜 그래?”

“저기...”

잘 먹고 있던 아이가 나를 불러 가리킨 곳에는 한 여자가 있었다.
더러워진 금발은 산발이었고, 허름하고 더러운 옷을 입고, 다쳤는지 얼굴의 절반을 붕대로 감은 여자였다.


이 세계에 흔하다면 흔한, 거지였다.

나는 세라가 뭘 하고 싶은지 알았다.
저쪽도 배가 고픈 모습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으니 모르는 것이 이상하다.


세라의 손을 이끌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언니, 이거 먹어...”

“...주는 거야?”


“응.”


끄덕, 하고 대답하면 여자는 빠르게 세라가 내민 꼬치구이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정말 빠르게 사라지는 꼬치구이.
다 먹기 시작할 때면 세라가 두 번째를 내밀었다.


그러면 아무 말 없이 가져가서 그걸 또 먹었고, 세 개정도 먹고 나면 배가 부른지 이제 괜찮다며 손을 내밀었다.


“고마워....고맙습니다.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그렇게 꼬치구이를 먹고 나면 허둥지둥 골목길로 사라졌다.
뭔가 내가 기억하는 거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저 인간은 뭔가가 있군.”

꼬치구이의 마지막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먹으며 유미네가 말했다.

“뭐가요?”

“나조차도 희미하게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잘 감춰져 있었다.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심상치 않아. 딱히 살기는 없었기에 그냥 놔두었다만...”

유미네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가 있긴 한 모양이다.
저주받은 땅을 앞둔 지금 그런 사람과 만난 것이 과연 우연일까?


뭐, 일단 두고 봐야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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