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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화 〉저주받은 땅으로(4) (82/107)



〈 82화 〉저주받은 땅으로(4)

“아직도 못 찾았다니! 그게 말이 돼!?”

인적이 없는 어두운 골목길. 약간의 달빛만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그곳에서 그런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곳에는 3명의 사람이 있었다.
한 명은 리제가 지금 찾고 있는 세아. 나머지 둘은 복면을 쓰고 있는 남자들이었다.

“죄송합니다...저희가 워낙 이곳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그 여자가 숨기를 너무 잘해서...”

그녀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남자 중에서  명이 말한다.
그들은 이곳에 와서 며칠도 안 되어 발에 땀이 나도록 뛰고 또 뛰었다.
그것은 어떤 인물을 잡기 위해서다.
조금 전까지는 자신들이 보호하고 있었던 인물.
...아니, 정확히는 감금, 감시하고 있었던 인물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너희한테 드는 돈이 얼만데!”

세아가 분을 삭이지 못하겠는지 벽을 발로 찼다.
시원스럽게 부서지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퍽! 하는 소리만 날뿐 벽은 멀쩡했다.
그녀의 발에 찌르르 고통이 퍼져 나갔다.

“으아...!”


세아는 주저앉아 어쩔  모르며 급히 아픈 발을 신발 위로 주물러 댔다.
이래저래 많이 어설픈 모습.
그녀는 리제와 같이 용인이긴 하지만 모든 것이 어중간하다.


리제가 옛 용인의 강인함을 체현하고 있는 존재라면 세아는 그 반대.


‘오빠’를 위해서 뭐든지 하려고 하지만, 능력 부족으로  할 때가 많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전부 공개된 상황이다.

그렇다면 이제 도움이 될 것은 오빠가 시키는 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큰 사고를 저지르고 말았다.

“안 돼....”


이것은 만회할 수 있을지 없을지 가늠할  없는 실수.
이대로라면 정말 자신에게 실망해서 버릴 수도 있다.

그것만은 싫다. 그럴 수 없다.

어떻게 다시 재회한 소중한 오빠인데.
자신의 죄를 용서해주고 다시 여동생으로 받아  상냥한 오빠인데

“하아...하아...”

버림 받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다. 무언가 꽉 막혀 금방이라도 숨을 못 쉬게 될 것 같다.
머릿속이 새까맣게 물든다.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무언가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우리 세아는 오빠를 배신하지 않을 거지? 오빠를 위해서 뭐든 해줄 수 있지?]

그것은 그녀가 지키고 있던 일선을 넘게 하는 방아쇠가 되었다.


최소한 스스로 절대 악은 되지 않겠다는 그녀의 생각을 바꾸게 한 것이다.


“무슨 짓을 해서든 찾아내...!”

“네? 하지만 죄가 없는 인간은 죽이지 말고 최대한 주변에 피해가 없게 하라고...”

“이제 됐으니까! 뭔 짓을 해서든 찾아내라고!”

“!?”


복면의 남자들은 희미한 달빛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조금 전까지의 어수룩한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공허한 눈빛은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자신들을 죽일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게 했다.

남자들은 서로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인다. 동의한 것이다.

자신들은 돈만 주면 뭐든 하는 해결사.
거액의 돈을 받고 있는 이상 고용주의 명령에는 반드시 따라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명령에 따르지요.”


“그렇다면 아마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내일까지는 반드시 찾아내!”

세아의 그 마지막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은 어둠에 녹아들었다.


“이제 슬슬 리제도 이곳에 왔을 거야...거기에 유미네...”


자신의, 이 몸의 쌍둥이 언니와 엄마.

그녀는 현재보다는 과거를 선택했다.
기억에도 없는 현재를 선택하는 것보다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과거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했다.


세아, 그녀는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전생자.
영문도 모르고 넘어온 이 세계는 자신이 옛날에 했던 게임의 세계와 똑같았다.
소중한 오빠와 추억이 있는 게임.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영문도 모르고 죽어갈 때 구해준 것은, 다름 아닌 전생의 오빠였다.

[세아야. 정말 다행이야! 이번에는 지켜줄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오빠...? 오빠...!]

자신은 주변의 압박에 이기지 못해 자살이라는 선택을 해서 오빠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죄가 있다.
그럼에도 오빠는 너무나도 상냥했다. 자신을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세아의 새로운 인생은 시작되었다.


 몸의 기억?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오로지 오빠를 위해 사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신이 할  있는 일이니까.


“방해야...방해야...방해야...방해야...”


세아가 불안한 듯이 딱딱, 손톱을 깨문다.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리제의 모습.
아마도 이 세계에서 가장 성가신 적.


그리고 자신이 가장 미워하고 질투하고 있는 존재.

소중한 오빠가 자신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표정을 보인다.
어떤 방해를 받아도 웃어넘기며 상냥하다.
신부라고 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짜증 나...”


딱! 하고 강하게 물어뜯어 손톱이 부러진다.
붉은 피가 주르륵 흐른다. 분명히 고통이 느껴질 텐데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물어뜯을 손톱이 사라져 다른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너무나도 병적이었다.

“세아 님. 자신의 몸은 소중히 해야지요.”

“시끄러워...내 마음이잖아.”


그런 세아 곁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은 한때 제국의 후작이었던 커티스였다.
자신의 말에도 계속 손톱을 물어뜯는 세아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이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한 사람도 없는 느낌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랬다.

자신이 모시는 이는 분명 머리가 좋기는 한데 그것을 상쇄해버릴 정도로 기분파다.
그 때문에 접어야 했던 계획이 몇 개인지 모르겠다.

제국에서 겨우 수도 하나를 망가트리는데 아두크라는 소중한 패를 써버리고 말았고 말이다.
거기에 자신도 바쁜 이 시기에 메신저로 쓰거나 하고 있으니 말이지.


그리고 눈앞의 여자, 세아.
주인의 여동생이라는 처지에 있는 이도 마찬가지.
그 입장을 이용해 어쨌든 이인자 위치에 있는 그녀도 자신의 말은 무시하기 일쑤였다.

정말이지, 능력은 쥐뿔도 없는 여자를  이렇게 살려두고 있는 건지 커티스로서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분명히 가족애는 아닐 것이다. 이 여자에게 주인이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거기에 그런 감정이 그에게 있었다면 분명 자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거다.


“뭐 하러 온 거야? 너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몰라?”


“주군께서 세아 님께 전하라는 메시지가 있어 찾아왔습니다.”

“뭐, 뭔데!?”

불쾌하게 물들어 있던 그 얼굴이 금방 기쁨으로 물든다. 겨우 1초도  되는 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오빠라는 존재에 의존하고 매달리는지를  수 있었다.


커티스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다.
아마도 이 말을 전하면 저 표정은 단숨에 바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당겨지는 입가를 수습하는  힘들어진다.


커티스는 얼른 말을 전하기로 했다.

“세아야. 이번에도 실수를 저지르면 더는 돌아오지 않아도 돼. 짜증 나니까 더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

“다시 한번 말씀 드릴까요?”


“.........”


커티스의 반응으로 자신이 잘못들은 것이 아니라는  깨달았다.
돌아오지 마. 나타나지 마.  말은 즉, 자신은 필요 없다는 말이다.

“아...”

휘청거리다 벽에 기댔다.
하지만 그래도  있기가 힘든지 그대로 주르륵 미끄러진다.
푹 숙인 그 얼굴에는 절망이 담겨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자신의 생사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 드디어 터지고 말았다.

“이번 일은...오빠는 알고 있어?”


“아직 모르고 계십니다. 만회할 기회는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알았어...”


“그럼,  이만.”


할 말도 끝났고 재밌는 장면도 보았으니 커티스는 얼른 돌아가기로 했다.
마계에서는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방해가 들어오기 전에 정리해야 할 것이다.

“......”


마계로 돌아가려던 그는 문득 한 건물 지붕을 바라보았다.
가림막이 있어 달빛도 비추지 못하는 곳.
그곳에는 방금까지 누군가가 있었다.

숫자는 둘. 그리고 정체는 아마도...

‘상관없겠지.’

무릎을 끌어안으며 훌쩍거리는 그녀에게 알려 줄 필요는 없겠지.
솔직히 아무래도 좋으니까.
거기에 자신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에는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답.


그렇게 판단하며 커티스는 마계로 돌아갔다.

“오빠...미안해...내가...내가...쓸모없어서...”


그리고 남은 것은 사죄의 흐느낌.

그녀는 묶여있다. 과거에 그리고 현재도.
과연 그것에서 풀리는 날은 올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


곤란하다.
뭐가, 곤란하냐고 말하면 조금 민망한 이야기가 되긴 하는데...

“엄마~! 한 번만...!”


세라를 한  살펴보자.
내 품에서 가슴을 만지면서 흔한 조르기를 하고 있다.
이 자체는 그리 이상한 것이 아니다. 평소에도 자주 있는 장면이니까.

하지만  내용이 좀...

“맘마! 세라도 맛있는 맘마 먹을래!”

그냥 뒷목을 잡고 쓰러질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할까.

 도시에 들어와서 자그마한 관광을 끝내고 무사히 여관을 잡은 것은 좋다.
근데  과정 중에 세라의 눈에 들어와서는 안 되는 장면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


흔히 말하는 맘마를 먹는 아기.


[엄마,  아기는 뭐 하는 거야?]


[맘마 먹는 중이야.]

[맘마? 맛있는 거야?]

[으음...아마도?]

그 대화 이후 세라의 시선이 조용히 내 가슴으로 향한다.
맛있겠다는 듯이 눈을 빛내며 손가락을 입에 넣는 것은 덤이었다.


나는 긴장에 몸이 굳고 말았다.

생각해보면 폴리모프를 사용할  있게 된 이후로 점점 인간의 생활에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세라였다.
그러니 이것저것 관심을 두는 건 이해가 되었지만, 왜 갑자기 이런 것에 관심을 쏟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거기에 내가 곤란해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을 텐데 떼를 쓰고 있다.


이게 바로 반항기...? 반항기인가?

“히잉...세라도 맘마...”


“몇 번이고 말하지만, 엄마는  나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번째일까. 말할 때마다 민망함이 밀려온다.
그것은 엄연히 생물학적으로 가능하다는 이유만으로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아, 누가 좀 제발 도와줘!


“후우...세라야. 이리로 와라.”


“우웅...”

우리의 모습을 쭉 지켜보던 유미네가 품에 있던 세라를 데려가 안았다.
세라는 조금 입술을 삐죽 내밀더니 얌전히 그녀의 품에 안겼다.

“뭐하게요?”

“세라는 나에게 맡기고 넌 밖에서 기다리는 이나 맞이해라.”


유미네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는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우리의 공방을 보다 못해 억지로 세라를 끌고 간 것 같다.
거기에 그런 우리 때문에 일의 진행도 안 되었고 말이지.

일단은 살았다고 해야 하나...


“뭐 좀 알아냈어?”


나는 작게 한숨을 쉬고 그렇게 말한다.
그러면 그림자 속에서 불쑥 시크리프가 튀어나왔다.

“도대체 얼마나 기다리게 할 생각이지?”

“어쩔  없잖아. 하아...뭐, 됐고. 얼른 보고나 해.”

시크리프의 불평불만을 들어 줄 기력도 없다.
내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면 그는 작게 혀를 차더니 말한다.


“부하가 그 여자를 발견했다. 해결사 집단이랑 누군가를 찾고 있는  같은데, 그건 아직 조사 중이다.”

“이곳에 있었구나.”

 여자라는 것은 여동생을 말하는 거다.
이곳 아니면 저주받은 땅 쪽에 있을  알았는데 역시 맞았군.


“녀석을 잡고 싶은데 방해는 없겠어?”


“...아무래도 곁에 마족이 있는  같다. 부하들 말로는 뱀파이어라고 하더군. 그것도 상당히 고위 계급의.”

“귀찮은 상대가 있네....”

마족은 대개 성속성으로 공격하면 잘 통하지만, 높은 계급으로 넘어가면 잘 통하지 않게 된다.
그나마 뱀파이어라면 불 속성이  통하기는 하는데, 그것도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다.

마족은 용사의 적으로 나오는 존재들인 만큼 하나하나가 장난 아니게 강하다.
마왕급인 존재들이 심심치 않게 있었으니까.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만만치 않은 존재들이 많을 것은 확실하다.

시스티아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투만을 상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내 목적은 어디까지나 대화를 하러 가는 거니까 이럴 때는 시스티아를 데리고 가면  된다.

아무튼 고위 마족이 있다고 한들 목표물 하나가 여기에 있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계속해서 감시해. 그리고 그들이 찾고 있는 게 뭔지 얼른 알아내.”


“알겠다.”


그렇게 말하면 시크리프는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진짜 신출귀몰한 기술이란 말이야...
나도 적성만 있었으면 반드시 배우고 싶은 기술 중 하나였다.

그렇게 내가 암살자의 기술을 부러워하고 있으면 문이 열리며 세라가 뛰어들어왔다.

“엄마!”


“어, 그래. 우리 딸!”


세라는 나갔을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활기찬 모습이었다.
나에게 달려드는 세라를 반갑게 안아 든다.
근데 입가에 뭐가 묻은 것 같은데?

“엄마! 세라 이제 떼 안 쓸게...미안해요.”


“어? 어어...그래.”


도대체  했길래?

입가에 묻은 것을 쓱쓱 닦아주며 당황하고 있으면 뒤따라 유미네가 들어왔다.
어쩐지 나갔을 때와 다르게 상의가 흐트러져 있다.


...설마? 아니, 아니지. 너무 앞서나간 생각이다.


“그 아이가 있다는  같더군.”

“들었어요?”


“그래. 똑똑히 들었다.”

유미네의 눈빛이 당장에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을 베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로워진다.
그것은 드래곤 로드로서의 의무 때문인가. 아니면...

어느 쪽이든 언젠가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일이다.


“이 이상 놈에게 놀아나게 할 수는 없지.”

“그것 저도 동감이에요. 어느 쪽이든 반드시 확보는 해야겠죠.”

여동생이라는 의미에서도 용인이라는 의미에서도 놓칠 수 없는 존재였다.
물론 후자가  크긴 하지만 말이지.
여동생이라고 해도 가족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거기에 내 ‘여동생’은  아이  명뿐이야...


그것은 다른 세계라고 해도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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