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저주받은 땅으로(5)
본래 하루만 지내고 바로 떠나려고 했지만, 그 녀석이 있다는 말에 일단 바로 떠나는 것은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느긋하게 지낼 생각은 아니었기에 빠르게 해결은 해야만 했다.
물론 고위 뱀파이어가 뒤에 있는 이상 쉽게 끝날 일은 아니다.
녀석들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할 수 있는 존재도 없다.
다만, 유미네가 있으니 힘으로 찍어 누를 수는 있겠지.
규모가 얼마나 되고 뭘 찾는지만 알아낸다면 바로 급습을 가할 예정이다.
저쪽도 우리를 알아차리고는 있지만, 공격하려는 낌새는 없어 보이니까, 이럴 때는 선빵필승이다.
“엄마, 나 저것도 먹을래!”
“그래. 유미네도 먹을 거죠?”
“음…”
뭐, 이래저래 말하기는 했지만, 결국 시크리프의 조사가 끝나야 시작할 일이다.
그때까지 멍하니 있는 것도 시간 낭비고 우리는 관광을 즐겼다.
세라는 연신 신이 난 기색이다. 이곳은 먹거리가 꽤 발전된 곳이라 그런지 종류가 다양했다.
물론 종류만 다양한 것이 아니고 맛도 좋았다.
이러니 신 나지 않을 수 없겠지.
“어? 그 언니다.”
카스테라 같은 빵을 입안 가득 넣어 마치 다람쥐 같은 모습을 보이던 세라가 그것을 삼키더니 어떤 한 곳을 보았다.
길거리 음식들을 보며 배를 부여잡고 있는 여자가 있다.
데자뷔?
“언니! 안녕!”
“아…너는…그리고…”
우리가 다가가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꾸벅 고개를 숙인다.
오늘도 이렇게 만났다는 것은 분명 인연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유미네가 말했던 것도 신경이 쓰였다.
“언니! 이거 먹어!”
“어? 아니, 하지만…”
-꼬르륵
“아…”
세라가 빵 하나를 건네면 사양하지만, 몸은 얼른 먹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우리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세라가 먹으라고 건네도 그걸 그냥 받지 않는 것을 보면 단순히 골목길을 떠도는 거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 부잣집 딸이었거나 아니면 귀족이었거나. 그런 것이 아닐까.
“괜찮아요. 먹어요.”
“감사합니다. 고마워.”
세라에게 고마워하는 것도 잊지 않고 빵을 받으면 허겁지겁 먹는다.
그런 모습을 세라가 기쁘게 바라보는 것이, 가지고 있던 먹거리도 하나씩 건넬 기세였다.
어휴. 우리 딸, 너무 착하다니까.
그렇게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 나는 유미네에게 묻는다.
“어제 느꼈던 거 오늘도 느껴져요?”
“그래. 어제보다 더 조금이지만, 강하게 느껴진다.”
“음…”
나는 왜 느껴지지 않는 것일까?
도대체 뭐길래.
“흠흠. 아무튼, 어떻게 생각해요?”
“이대로 우리 쪽에 가까이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나는 느껴지지 않지만, 유미네가 느낀다는 심상치 않은 느낌.
그것만 생각해도 곁에 둘 이유가 되는데, 연속으로 두 번이나 만났다.
여자 쪽에서 우리를 따라온 것이 아니라면 확률적으로는 꽤 낮은 것이 아닐까.
“저기, 이름이 뭐예요?”
“…루리아, 요.”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데 조금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반응은 어쩌면, 쫓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충분히 가능성은 있을 것 같다.
“그럼, 루리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제대로 밥이라도 같이 먹을래요?”
“아, 아니…그건…”
당연히 그 말에는 머뭇거린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당연히 경계하겠지.
분명히 몸이 안 좋은 거지 같은 모습이고 그런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건 정말로 선함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면, 뭔가 꿍꿍이가 있는 사람이다.
나도 그건 알고 말한 것이다. 다만 내가 믿고 있는 것은…
“그러자! 루리아, 언니! 여기 맛있는 거 많아!”
“하지만 나는…”
“아, 맞다! 세라야! 세라 이름!”
“세, 세라. 알았어. 알았으니까 이 손 좀…!”
세라다. 우리 딸의 행동력을 믿고 말을 한 번 건넸을 뿐인데 내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저 귀여운 행동력에 휘말리지 않을 사람은 없지.
“엄마! 할머니! 빨리! 빨리!”
“저희도 가죠.”
“음.”
그렇게 세라와 루리아가 앞서 가고 우리는 그 뒤를 따른다.
내가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식사는 아니었지만, 정말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많은 먹거리에 손을 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라와 루리아, 둘이서지만.
정말, 저 작은 몸에 저게 다 들어가는지 모르겠네.
거기에 루리아도 만만치 않아. 분명 체구는 작은 편인데, 미스터리다.
둘이서 약 30분 동안 먹은 양만으로도 우리가 먹을 일주일 치 식량은 되지 않을까.
그보다 더할 수도 있겠다.
“아, 그…죄, 죄송해요. 너무 사양 없이 먹는 것 같...콜록!”
“괜찮으니까 천천히 먹어요. 우리 딸도 좋아하는 것 같아서 기쁘니까요.”
“가, 감사합…니다. 콜록!”
방금 시킨 과일주스로 급히 목을 적신다.
나도 세라에 맞춰주고 싶은데 이상하게도 술은 계속 들어가도 음식은 잘 안 되겠단 말이지.
그런 걸로 치면 루리아는 세라의 최고의 파트너인지도 모르겠다.
“언니, 괜찮아?”
“아, 괜찮아. 그보다 식기 전에 얼른 먹자.”
“응! 이것도 맛있다. 그치?”
“그러네. 정말 맛있어.”
그렇게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그림자가 살짝 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주인. 놈들이다. 능숙하게 일반인인 척하고 있지만, 약간 티가 나는군.]
“……”
시크리프였다.
놈들이라는 것은 그 녀석이 고용했다던 해결사 집단.
[아무래도 저 여자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과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굉장히 당황하는 모습이 보인다.]
빙고.
그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진짜로 이렇게 되네?
똥줄 좀 타겠어.
그것을 안 이상, 난 루리아를 놓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서 다시 찾을 기회는 없을 테니까.
솔직히 유미네 한 명만 있어도 난이도는 지옥급이다.
그런데 조금 모자라도 나까지 있으니, 지옥급을 넘어선 것이 된다.
“감시를 계속해.”
[알았다.]
내가 지시하면 시크리프는 별다른 말은 하지 않고 그대로 따른다.
애초에 내가 어떤 식으로 할지는 딱히 지시하지 않는다.
뭘 해. 라는 명령만 내리면 녀석이 전문가이니 전문가답게 알아서 하는 것이다.
몇 번이고 말하지만, 편해도 이렇게 편한 장기말은 없을 거다.
“아무래도 쉽게 끝날 것 같은데요?”
“그래도 뱀파이어가 있으니 방심은 금물이지.”
“그렇긴 하지만, 그 정도로 신경 써야 해요?”
“이기는 건 당연히 내가 될 테지만, 그렇게 되면 이 도시가 날아갈지도 모른다.”
“아, 그건 생각 못 했네요.”
어느 정도 제어는 할 테지만, 전투라는 게 생각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도시의 사정을 생각하면 유미네는 힘을 발휘하는 게 제한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놈들은 교활하니 말이지. 필요하다면 인간들을 ‘사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을 거다.”
“그렇다면….”
방법이야 많지.
어차피 녀석이 원하는 건 여기에 있는데.
거기에 이쪽에서 그 사실을 알아챘다는 건 모르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유미네. 우리 낚시 한 번 할까요?”
“나쁘진 않겠군.”
그렇게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
낚시하기 위한 장소의 선정이 가장 중요하다.
다행히 시크리프가 이 도시에 관해서 파악이 끝났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도시 외곽에는 빈민들도 살지 않는 버려진 곳이 있어서 이번 일에 딱 맞았다.
녀석을 그쪽으로 유인할 생각이다.
물론 직접 오지 않고 고용한 해결사 놈들만 올지도 모르지만, 아마 확률은 낮을 거다.
다크엘프들이 설명한 다급한 모습을 생각하면 직접 오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그렇게 루리아를 데리고 돌아다니다 외곽 근처에서 저녁까지 기다렸다.
“저,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괜찮아요. 세라도 기뻐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합니다.”
“흐암…배불러….”
정말 원 없이 먹고 내 품에서 잠든 세라의 등을 토닥인다.
너무 사달라는 대로 먹이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일단 건강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으니 넘어가자. 물론 조심은 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전부 에너지로 가고 있으니까.
“그럼, 전 이만…가보겠습니다….”
나와 유미네에게 꾸벅, 꾸벅 고개를 숙이는 루리아.
그녀에 관해서도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일단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 지금은 넘어가고 있다.
애초에 녀석이 잡히면 깔끔하게 알 수 있는 문제일 테고.
“네. 나중에 봐요.”
“아……네.”
그런 내 말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지만, 이내 뒤를 돌아 걸어간다.
그녀의 뒤를 거리를 좀 두고 다크엘프들이 따라갔고, 그런 다크엘프의 뒤를 나와 유미네가 쫓아간다.
느낌으로 잡히는 루리아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것을 보면 아마도 이곳이 익숙한 거겠지.
그렇게 계속 나아갔다.
나는 그냥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아디스만, 그놈을 상대할 때와 같은 긴장감이 전혀 없다.
[왔다.]
녀석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이 근처에 있을 다크엘프들을 통해 들어 온 정보로 시크리프가 그렇게 말한다.
내 느낌에도 걸리는 것들이 있었다.
슬금슬금, 루리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 녀석은 있어?”
[있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낚시는 성공이다.
“그럼 다 위치 잡아. 유미네도 준비하세요.”
“요즘은 어째 내가 부하가 된 기분이로군….”
“아니면 세라 안고 계실래요? 제가 갔다 올게요.”
뱀파이어와 한번 싸워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야.
마족과 만나는데 얼마나 강한지는 알아야지.
게임에서는 강하게 나오긴 했는데 이 현실을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잡히질 않으니까.
거기에 한층 안정적인 현재의 드래곤하트를 시험해보고 싶은 참이었다.
“어째 오히려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시선이 느껴진다만?”
“사실이니까 그렇겠죠.”
“그래…. 그럼 그래라.”
좋았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유미네에게 잠든 세라를 넘긴다.
그리고 잠시 몸을 푼 뒤, 주변에 있는 다크엘프들에게 명령했다.
“얘들아. 쳐.”
그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그 뒤를 따라 나도 나아갔다.
“크악!?”
“뭐, 뭐야!?”
“아, 암살자…!”
이미 자리를 잡고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에, 해결사들은 아무것도 못 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목표를 찾는다.
“아니, 이게 도대체…!”
“이 정도에 당황하는 거면 실망스러운데!”
“너, 너! 리제!”
내가 나타나면 녀석은 뭔가 검은색의 마나 같은 것을 사용하려고 한다.
제국에 있었을 때 봤던 그것이다.
아, 저거 보고 그때를 생각하면 괜히 화가 나네.
“너, 일단 한 대만 좀 맞자.”
“오, 오지 마!”
뱀파이어가 문제가 아니었어.
일단 그때의 빚을 청산하는 게 먼저였다.
나는 녀석이 먼저 뭔가를 쓰기 전에 재빠르게 다가가 그 얼굴을 잡아 고정.
“이, 이거 놔! 안 놔!?”
“시끄러워.”
빼액 거리는 녀석의 머리에 있는 힘껏,
-빠악!!
“크헥!?”
박치기를 날렸다.
유미네의 매서운 주먹을 막다 보니, 이제는 단련되어서 그런지 상당한 물건(?)이 된 박치기다.
하, 진짜 속 시원하네.
“주인, 끝났다.”
“수고했어.”
“아무래도 뱀파이어는 없는 모양이다.”
“그런 것 같네….”
녀석을 공격할 때까지도 나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없는 듯하다.
되게 아쉽네.
“뒤처리도 잘해.”
“알겠다…. 그건 그렇고 그 녀석 그대로 두면 죽을 것 같다만….”
“설마 이 정도로 죽겠어?”
내 시선에는 눈을 뒤집어 깐 채로 기절한 모습이 보인다.
근데 확실히 쌍둥이는 쌍둥이네. 나랑 똑같은 얼굴이라 그런지 이런 모습을 보는 게 기분이 묘하다.
“…난 가보겠다.”
작게 고개를 흔들더니 사라지는 시크리프.
그리고 나는 이 묘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서 뒤집어 깐 눈을 감게 했다.
“자, 그러면 이제….”
이 불완전연소를 어떻게 해야만 할까.
영 불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