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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화 〉저주받은 땅으로(6) (84/107)



〈 84화 〉저주받은 땅으로(6)

여러모로 불만이긴 했지만, 일은 진행 시켜야 하겠지.

일단은 멋대로 미끼로 사용한 루리아부터 다시 만났다.
무슨 반응이라도 보일까 했는데. 자초지종을 설명하면 그녀는 매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아마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하긴, 얼굴이 똑같은데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하긴  것 같다.
나는 루리아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설명하기 전에…이거부터 보이는 게 낫겠네요.”

루리아는 붕대를 풀었다.
그러면 새까맣게 물들어 죽은 듯한 피부가 보였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보면 바로 실신할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그거 혹시 셀비움인가요?”


“네? 아니, 병명은 모르는데  4년 전부터 앓기 시작한 거였어요.”


내 말에 루리아가 모른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다.
아, 그러고 보니 이때는 아직 병명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때였나.


“리제. 넌 알고 있는 건가?”

“정확한 건 모르지만, 대충은요.”

게임에서도 심도 있게 나온 것이 아니다.
단지  병은 마나 감응이 뛰어난 자가 걸리기 쉽다는 것. 그리고 한 번 걸리면 몸이 썩어가며 죽는 끔찍한 병이라는 것.
본래 한  걸리면 꼼짝없이 죽는 병이었지만, 세르니아가 효과가 있다는 점이 밝혀져 사는 사람이 있다.

“저는 이 병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가 어느 날 어떤 사람에게 제안을 받았어요…. 자신들을 따라오면 병을 치료해주겠다고….”


수상쩍은 사람이었지만, 그때는 너무나 괴로워서 선택지가 없었다고 한다.


“동생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저는 그 뒤를 따라갔죠. 그리고 잡혀서는 세르니아로 연명 되면서 제게 소질이 있다며 어떤 것을 맡기더라고요….”

“어떤 것?”

“모든 것을 먹는 용….”

“그라니토!”

“알고 계셨나요?”

이게  이렇게 이어지나.
잠깐? 근데 맡겼다고?


“지금 그라니토를 조종하고 있다는, 그런 말인가요?”


“그랬었죠.”


“그랬다고요?”


“지금은  제어를 떠났어요.”


“아….”

그 부분은 굉장히 아쉬웠다.
만약 아직 제어권이 있었다면 놈에게 빅엿을 먹일 수 있었는데.


“근데 어떻게 그런 놈을 제어할 수 있었던 거죠?”


“그건 저도 잘…그저 재능이 있다는 말만 들었거든요.”

놈이 사역마랍시고 하르마나를 조종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일까?
어쩌면 유미네가 느낀다는 기묘한 느낌과 연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라니토라는 건 자신의 영혼을 판 일족의 배신자를 말하는 건가?”


“알고 있어요?”


“지식으로선 말이지. 먼 옛날 용인 왕에게 영혼을 판 일족의 배신자가 있었다고 하지.  이름이 그라니토라는 기록이 있다.”


“하긴 그라니토도 드래곤이니….”


그쪽에 기록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것은 좀 걸리는 말인데?


“그 제어가 떠나서 겨우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기에 도망을 쳤던 것인데 거기서 여러분과 딱 만날 줄은 몰랐죠….”


“역시 알고 있었던 거군요.”


“네. 이야기도 들었고, 본적도 있으니까요….”

역시 그런가.


“폐를 끼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어떻게든 혼자 도망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네요….”


“딱히 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남남 할 사이도 아니고요.”


“네?”


“루리아 씨. 레온의 누나 맞죠?”


“!”

혹시나 했는데 이 반응을 보고 확신한다.
그녀도 나에 대해서는 알아도 내 주변에 레온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몰랐던 거겠지.

“레, 레온을 아시는 건가요!?”


“안다고 해야 할까, 누나, 동생 하는 사이에요.”

나는 간략하게 레온과 처음 만나 지냈던 날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으며 루리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렇…구나. 레온…. 다행이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나…요?”

“잘 지낸다고 해야겠죠? 요즘은 용사의 일을 하느라 죽어나는 것 같지만요.”


“요, 용사요!?”


그 말에는 반대로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동생이 갑자기 용사가 되었다고 하면 놀라긴 하겠지. 거기에 레온의 나이를 생각하면  그렇다.


“제가 반드시 만나게 해드릴게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루리아는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달래며 그녀의 병 증세를 보고 있었다.
놈들이 이것 때문에 세르니아를  다 가져간 거였군.


거기에  완치가 될지 말지,  경계선에서 장난질했던 거고 말이야.

나도 세르니아는 가지고 있다. 그것도 품질이 훨씬 더 좋은 걸로.


레온과 만나기 전에 병을 완치시키는 것이 좋겠지.

그건 그렇고….

“언제까지 기절한 척을 할 거냐?”


“윽…!?”


조금 전부터 깨어나 대화를 엿듣고 있었던 것은 알고 있었다.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이제는 이 녀석과 대화를  차례다.

“유미네. 세라랑 루리아 데리고 좀 떨어져 주세요. 둘이서만 좀 대화하게요.”


“……알았다.”


유미네는 잔뜩 복잡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울고 있는 루리아와 아주 세상모르고 잠든 세라를 안고 떨어진다.
시크리프나 다른 다크엘프는 시체들을 처리하느라 이곳에는 없다.


“[차단해]”

“아으으,  살살해…아직도 머리가….”

나는 용언으로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을 건다.
이미 구속하고 힘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녀석을 일으켰다.

“푸흡…!”

“뭐, 뭐야…! 뭔데 사람 얼굴을 보자마자 웃는 거야…?”

“아니…푸흐흐!”


이미 터져버린 웃음보는 들어갈 기미가 없었다.
내가  녀석의 얼굴을 보자마자 웃은 이유.
이마가 새빨갛게 부어서 큰 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유미네의 공격을 막고 생겼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으로.

“아 씨…! 뭔데! 아야야….”

소리를 지르면 부은 곳이 아픈지 인상을 찡그린다.
아, 진짜. 왜 이렇게 웃기냐? 유미네에게 맞아서 부었을 때는 하나도 안 웃겼는데.
역시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라 그런가?
얼굴은 똑같아도 역시 미묘하게 다르고 말이야.

“뭐, 일단. 내 딸 유괴하려고   이걸로 넘어가 줄게.”

“뭔 소리야?”


“그런 게 있다. 지금  못 보는 거.”


“??”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을 보고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부터 물어볼 것은 진지한 거니까.

“일단 이거부터 물어보자.  전생자, 혹은 빙의자지?”

“겨우 그런 걸 물어보려고 했던 거야? 어차피 이미 알고 있는 거 아니야?”


“그거야 그렇지. 하지만 확실하게 대답을 듣는 것과 아닌 건 차이가 있으니까.”

“그래. 그건 그렇겠지. 대답하자면 맞아.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사람이야.”

어쩌면 고향 사람이라고   있는 사람과 만났지만, 굉장히 복잡한 기분이다.
지금의 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니 어쩔 수 없겠지.

“너도  게임을 하다가 넘어온 건가? 무슨 2회차이니 뭐니 하면서?”


“뭐야 그게? 난 몰라. 그냥…눈을 뜨니까  세계였지. 게임 세계라고 안 것은 좀 지난 후였어.”

약간 뜸을 들인 구간에 무슨 생각을  건지 죄책감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말한 것에 부정하는 걸 보면 다른 걸로 온 것 같다.


“이름은?”

“…세아.”


“뭐?”


“세아라고. 뭐야? 남의 이름 가지고 트집 잡게?”

“…….”

아니, 우연이겠지.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닐 테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을 이름은 아니다.

흔들리는 건 어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그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


“너 지금 협력하고 있는 놈이 어떤 놈인지는 알고 협력하는 거야?”

“세뇌라도 당하고 있다.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야? 그렇다면 안 됐네요. 나는 자발적으로 오빠를 돕는 거거든.”


“무슨 이유로?”


“내가 뭐 그렇게 다 알려  것 같아?”

“…오냐. 네가 지금 상황 파악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다고 내가……아야야야!!!!”

“뭐라고? 비명만 지르지 말고 대답을 해.”


나는 발로 다리를 고정, 녀석의 이마를 꾸욱 눌러줬다.
그러면 눈물을 찔끔 흘리면서 발버둥을 치는데, 아, 왜 이렇게 재밌지?

“아, 아라써!  하께 말 한다, 꺄아악!? 아파파!”

“말이 너무 짧은 것 같아서  안 들린다. 제대로 말해.”


“말하겠습니다! 말할 테니까 그만해주세요!”


음. 벌써 포기?
좀 더 버틸 줄 알았는데 끈기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지, 지독한 년….”


“뭐?”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한마디씩 말하는 걸 보면 완전히 꼬리를 내린 건 아닌가 보군.
어쨌든, 이유를 들어볼까.


“오, 오빠니까 그냥 돕는 거야…요. 우리 오빠는  전생에서도 친오빠였으니까…요.”

“친오빠라고?”

아니, 그게 무슨…?
분명 먼 옛날에 살았던 놈일 텐데? 그런 놈이 친오빠라고?

나는 확실하게 속고 있다고 생각한다.
방금 세뇌는 당하고 있지 않다고 했는데, 높은 확률로 세뇌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세뇌를 당했으면 그것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너, 속고 있는 거야.”

“아니야! 오빠는 진짜라고! 나랑 오빠밖에 모르는 기억도 확실하게 있었어! 내가 확인도  했을 것 같아!?”


“그건 아마도 네 기억을….”

“시끄러워!! 시끄러워!!! 시끄러워!!!! 나랑 오빠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해도 그렇게는  해! 이 사악한 년아! 차라리 그럴 거면  죽여!  오빠랑 절대로 못 떨어져!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


그렇게 외치는 녀석을 바라본다.
그 눈은 흐리멍덩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확신했다. 이 녀석은 지금 속고 있는 거라고.


“쯧….”


입맛이 썼다. 당장에 단것을 입에 넣고 싶은 기분이다.
아마 우연이겠지만, 내 여동생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망할 새끼….”

하여간 그놈이 연관되어 있으면 제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어.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짜증이 앞서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늘은 이만할까.’

그렇게 생각하고 마법을 거두려고 하려던 때였다.

“오빠, 오빠 도와줘…. 버리지 말아줘…미안해…내가 미안해…평생 죗값을 치르고 살 테니까 제발 곁에 있게 해줘…연우 오빠….”


“…………뭐?”

정신 나간 사람처럼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마지막에 나온 이름.


[연우 오빠!  오디션 합격했다!]
[나 유명한 연예인 됐다고 절대로 오빠 모른 척하지 않을 거니까!]
[돈 많이 벌어서 오빠에게 받은  10배, 100배! 아니, 그 이상으로 갚을 거야!]
[어?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연우 오빠……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왜 자꾸 날 못살게 구는 거야. 사이좋게 지내면 안 돼? 같은 멤버끼리 꼭 그래야겠어? 그리고 악플 다는 사람들도…아니야, 이건 아니잖아. 나 아무것도 안 했다고. 누명이라고! 나한테 진짜 왜 이래!!]


[이젠 다 싫다…….]


[잘 있어. 오빠…]


사람의 머리가 저렇게 터질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목이 저렇게 꺾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의 목숨은 이렇게 쉽게 없어진다는 것을 그때 실감했다.


“…….”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나는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눈앞에는 아예 엉엉 울기 시작한 세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입을 연다.

“윤세아…. 너니?”

그리고 내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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