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화 〉저주받은 땅으로(7)
살면서 이렇게 울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울었다.
마치 서서히 금이 가 결국에는 터져버린 댐과 같이 멈추지 않는다.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이건 아마도 지금 이 몸이 여자의 몸이라는 것도 있겠지.
리제라는 작은 여자아이의 몸이 되어, 성장하며 남자와 다른 점에 당황할 때도 많았지만, 지금이 가장 당황스러운 것 같다.
복받쳐 오르는 여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겠다.
“하아…….”
정리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나는, 창문 밖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눈에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한 방울씩 맺힌다.
귀찮다고 생각하며 손바닥으로 닦아낸다.
닦아도.
또 닦아도.
짜증이 나게 자꾸 맺힌다.
“아, 이런…씨.”
그렇게 짜증을 넘어서 분노가 끓어오르면,
“받아라.”
어느새 방에 들어온 건지 유미네가 나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필요 없어요.”
“…….”
내가 그렇게 말하면 유미네는 아무런 말 없이 의자를 끌고 와 내 옆에 앉았다.
그러더니 내밀었던 손수건으로 내 눈물을 닦기 시작했다.
“필요 없다고요.”
“…….”
그렇게 말해도 유미네는 그저 손만 움직인다.
나는 더 뭐라고 하기도 귀찮아서 그냥 두기로 했다.
아무리 복받치고 조절이 안 된다고 해도 그 감정을 그녀에게 부딪치는 건 잘못된 일이다.
그 정도 분별은 있었다.
“…….”
유미네는 끝까지 말이 없었다.
그저 옆을 지키며 눈물을 닦아주었다.
뭐라고 옆에서 말해주는 것보다도 그게 더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신기한 감각이었다.
그렇기에 나도 자연스럽게 입이 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미네는 전생이라는 것을 믿나요.”
“소설 이야기를 하자는 건가?”
“아니요. 진짜 현실로요.”
“안 믿는다.”
“하하, 단호하네요.”
솔직히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뭐라고 지껄이는가 싶겠지.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렇게 쓰게 웃고 있으면 유미네가 하지만…이라고 덧붙인다.
“네가 있다고 한다면 믿는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그게 왠지 웃겨서 키득키득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니, 유미네. 굉장히 웃긴 거 알아요? 처음에는 저 보고 죄인이라느니, 죽어야 한다느니 그러고, 그다음에는 강해지라더니,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건가요.”
“마음이라는 것은 어떤 계기로 바뀔지 모르는 법이지.”
그 말을 할 때도 너무 진지해서 오히려 재밌다.
“근데 유미네는 왜 온 거예요? 세라는요?”
“이제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게 됐군. 다른 방에서 푹 자고 있다.”
“…죄송해요.”
세아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세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래서는 부모 실격이다….
“아니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그래, 이제 어디 한번 말해 보거라. 갑작스럽게 전생의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은, 너와 이번에 잡힌 아이는 그것과 연관이 있다는 거겠지?”
“맞아요. 저와 세아는 본래 다른 세계 사람이에요. 이곳과는 다른 곳에서 살았던 사람.”
“…….”
유미네는 계속 말하라는 듯이 아무 말이 없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곳에서 굉장히 사이가 좋았던 남매였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의지할 것은 서로밖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의지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났다.
“다만, 둘이 나이 차이가 상당히 났기 때문에 오빠 쪽은 일찌감치 사회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죠. 오로지 여동생 하나만 바라보고 정말 열심히 했어요.”
공부, 친구, 노는 것 등등.
학생이라면 본디 누려야 할 것에 쓰는 시간은 나에게는 낭비나 다름이 없었다.
그나마 공부는 수업이라도 있었기에 약간은 할 수 있었지만, 그것뿐.
“잘 나가는가 싶다가도 힘든 일도 엄청 많았어요. 조용히 그냥 살고 싶은데 그냥 두지 않는 놈들이 많았거든요.”
약간 특수한 상황에 있다는 것은 주변에서 보면 ‘이상한 것’이다.
빌어먹게도 흔히 일진이라 불리는 놈이 나에게 관심을 뒀고, 나는 그놈에게 얕보이지 않으려 몸을 지키는 법, 싸우는 법까지 알아야 했다.
그런 놈과 한 번 엮이면 또 비슷한 놈들과 차례차례로 엮이게 되는 이상한 법칙까지 나를 괴롭혀서는 정말이지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가장 괴로웠던 시기였다.
“그런 일까지 다 겪어가면서 여동생을 열심히 키웠죠. 부모님이 없다고 손가락질을 받지 않게 정말 열심히…. 그러다가 여동생이 자신이 아이돌이 되고 싶다고 말한 거예요. 벌써 오디션도 봐놓고 나중에 그걸 저에게 알렸죠.”
이 부분에 관해서는 유미네는 모르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딱히 질문은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다 합격한 거예요. 한 소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가 정말 열심히 했죠. 전 그 뒷바라지를 했고요.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데뷔가 결정되었죠.”
그리고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인기가 치솟아 올랐다.
그렇게 지나갈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누구에게나 행복한 시간이 이어졌을 텐데.
“그러다가 일이 터졌죠. 평소 여동생이 다른 동료보다 인기가 굉장히 좋았거든요. 따로 혼자 일을 할 정도로요. 근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었나 봐요. 어느새 여동생은 괴롭힘을 받기 시작했고, 각종 모함을 받기 시작했어요.”
굉장히 괴로웠을 텐데, 여동생은 단지 그게 모두를 위한 길이라며 참았다.
나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서 그 모진 괴롭힘을 견뎌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꾹 참고 오던 세아가 터지게 된 계기는 바로 인터넷 악플.
한 언론사에서 제대로 조사도 하지 않은 기사를 터트렸고, 그것을 시작으로 많은 악플을 받은 것이다.
힘들다. 그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도 그 시기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바쁜 시기였고, 세아에게 조금 소홀했다.
조금 더, 조금만 더 관심을 보였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참지 못한 여동생은 높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서 뛰어내렸어요.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죠. 제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잘 있어. 라는 말만 남기고.”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걸 눈앞에서 목격한 것이 여동생이라니 웃기지 말라며 나는 현실을 부정했다. 하지만 얼마나 부정해도 여동생 세아는 내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때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저 복수심에 불타 세아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리게 하는 일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과 인맥에 도움을 받으며 나는 동료랍시고 있었던 년들을 끌어내고 법의 심판을 받게 했다.
당시에는 크게 이슈가 난 것도 있어서 본래의 규정보다도 훨씬 더 큰 벌을 받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악플을 달았던 놈 중에서 수위가 가장 심한 것을 추려서 조사가 시작되었고, 찾아서 벌을 받게 했다.
정말로 긴 싸움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복수물처럼 하나하나 찾아가 죽이는 게 더 쉽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힘들었다.
솔직히 여동생을 괴롭히는 일 중심에 있던 년은 죽이고 싶었다.
어찌 되었든 모든 일이 그 때문에 시작된 것이니까.
“어차피 세아도 없는 세상, 죽이고 나도 죽을까도 생각했죠.”
그때 내 곁에 있어 주었던 이들이 없었다면 난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결국 마음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지만, 그 위에 뚜껑은 덮을 수 있었다.
그런 것들도 전부 유미네에게 말하고 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하하, 유미네에게는 이해 가지 않는 말들만 한 것 같네요.”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있었다만, 어떤 이야기인지는 이해했다.”
유미네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에 바짝 붙었다. 그리고는 팔 하나를 둘러 내 머리를 끌어안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한 사람의 이야기지 않나.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해도 그것만 알면 됐다….”
“…….”
정말이지, 평소에는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이 오늘은 왜 이리 친절한 걸까.
…아니, 알고는 있지만 말이야. 단지 그렇게 보일 뿐. 언제나 나에 대한 것도 신경 쓰고 있다는 걸.
자신이 지은 죄가 있기에 엄마라고 당당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걸.
언젠가 그녀를 부모라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스스로 부모라 인정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몇 번이고 말했지만, 그게 이루어지려면 적어도 세아가 정신을 차려서 정상적으로 사고할 수 있어야만 한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지?”
“당연히 그놈의 세뇌를 풀어야죠.”
그것밖에는 없다.
지금의 세아는 그놈이 자기의 오빠라고 굳게 믿고 있다.
나로서는 어이없는 일이지만, 이것을 풀기 위해서는 웬만한 노력으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무슨 개소리야! 내 오빠는 한 명이야! 너 같은 년이 내 오빠일 리 없잖아!!]
차근차근 어렸을 때부터 설명을 해줘도 이런 반응뿐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여자여서 그런 것도 좀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어지간한 일로는 그 마음에 금을 내는 거조차 어렵겠지.
“그래. 힘들게 만났는데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아마도 긴 싸움이 될 테지만, 반드시 포기하지 마라. 나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마.”
그래.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제 우울한 파트는 끝.
이를 악문다.
세아는 살아있다.
예전과 같이 손을 쓰지도 못하고 눈앞에서 잃은 것과는 다르게, 살아있다.
해결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하하, 근데 유미네. 오늘은 너무 상냥한 것 같아요.”
“내가 네 딸에게 할머니라 불리는 걸 잊어버린 건 아니겠지? 그러니 가끔은 할머니다운 일을 한다고 해서 벌이 내려지지는 않을 거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굳이 말을 돌려서 하는 것도 유미네답다면 다운 걸까.
“…….”
얼굴이 닿은 그 품은 정말 따뜻하다. 계속 쓰다듬는 손길은 너무나도 상냥하다.
엄마, 부모라는 존재라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은 내가 엄마라 불리고는 있지만, 그 답은 잘 모르겠다.
언젠가는 아는 날이 올까. 이해하는 날이 올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와 유미네는 쭉 말없이 붙어 있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것에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
다음날, 정신을 차린 나는 곧바로 세아에게 찾아갔다.
숙소의 다른 방에 묶여있던 세아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짜증이 난다는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소중한 여동생이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 시선을 보내고 있다.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으득
이를 악물었다.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
마음을 다져야 한다.
나는 이제부터 세아를 구하기 위해 심한 짓을 해야만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 어차피 이제 아무런 쓸모도 없는 몸이야. 오빠도 이제 나 같은 건….”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묶어두긴 했지만, 입은 남겨뒀잖아.”
“너어…!”
내 말은 혀를 깨물고 자살하라는 의미였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세아는 자살은 하지 못한다. 전생에 자살로 죽어, 나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기에 절대 하지 못한다.
“자칭 오빠 씨. 그딴 말 하려고 왔으면 꺼져.”
“여긴 내가 빌렸고, 넌 포로야. 좀 제대로 이해하고 그런 말 지껄여.”
“…재수 없어.”
정말 세아라고 알고선 보니 하는 행동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말싸움하다 밀리면 고개를 홱 돌리며 중얼중얼 하는 것도, 짜증 나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것도.
본래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감정표현 해야 하는 아이가 괴롭힘당했을 때는 웃으며 참았다고 한다. 어떻게든 잘해보자고 한 일이었는데, 솔직히 그 판단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그냥 성격대로 나갔다면 오히려 더 잘 됐을지도 모른다.
뭐, 지금 생각해봤자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부터 너에게는 제약을 내릴 거야.”
“?”
“내 노예가 되는 제약.”
“뭐!? 시, 싫어! 누가 네 노예 따위!”
일단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잡아두는 것이 중요하다.
여러 방법을 생각했지만, 결국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강하게 세뇌당한 상태여서 가만히 놔두면 어떻게 튈지 모르니까.
계속 구속해 다니는 것도 그러니까 결국 노예로서 제약을 걸어두는 방법이 제일이다.
“잡아.”
“시, 싫어! 이거 놔! 이거 놔아!!!”
구속당한 상태에서 발버둥을 치는 세아.
그림자 속에서 다크엘프들의 손이 튀어나오며 그 발버둥 치는 몸을 구속했다.
“싫어……! 도와줘…오빠. 도와줘! 오빠아!!!”
“【속박하라】”
애타게 부르는 그 말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며 그 오른팔에 노예인장을 새긴다.
[정말로 괜찮은 건가? 나 때와는 다르다. 귀찮게 불법으로 걸릴 수도 있다.]
노예인은 마력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새길 수 있다.
시크리프는 다크엘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괜찮았지만, 세아는 인간이다. 아니, 정확히는 용인이지만, 나와는 달리 인간과 다를 게 없다.
노예라는 것은 나라에서 주관하는 사업이다.
그렇기에 불법 단속을 한다.
노예를 소유한 사람은 정식적인 노예 문서를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불법으로 걸린다.
재수 없으면 사형이다.
시크리프가 말하는 건 그런 것 때문이다.
“괜찮아. 이쪽에는 드래곤 로드가 있다고.”
이 일은 유미네와 상담한 일이다.
노예인장을 새겨도 그것을 숨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예전 아우리아를 샀을 때 알아낸 방법이라 한다.
정기적으로 걸어줘야 하는 것이 귀찮긴 하지만, 확실한 방법.
그 말에 시크리프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싫어! 싫어어!!”
“싫다고 해도 소용없어. 이미 끝났으니까.”
오른팔에 선명한 노예인장이 새겨졌다.
그리고 나와 연결된 것이 느껴졌다.
고작 이딴 걸로 밖에 연결될 수 없다니, 정말 참혹한 일이었다.
“흑…흐흑…차라리…죽여…. 왜 이런 짓을…하는 거야….”
모든 작업이 끝나면 그 자리에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어제도 생각한 일이지만, 세뇌의 후유증인지 정서불안이 심하다.
그 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당장에라도 끌어안고 달래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하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먼 것 같다.
“아디스만….”
이윽고 내 모든 것은 분노로 가득 찬다.
단순히 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놈은 원수보다도 더한 놈이었다.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놈을 쳐죽여야 하는 이유가 더 생긴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