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6화 〉다크엘프 (1) (86/107)



〈 86화 〉다크엘프 (1)

하루를 더 쉬고 우리는 도시를 나왔다.
루리아는 몸을 더 추스르는 대로 다크엘프와 함께 레온이 있는 곳에 보내기로 했다.
데리고 다니는 것보다도 그게 훨씬 낫다는 판단에서다. 가족은 함께 있어야지.


어제까지는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친 세아는 하루가 지나니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는지 얌전해졌다.
단순히 시간이 지났다고 안정된 건 아니었다. 세아가 그렇게   있었던 것은 세라의 힘이 컸다.


“아줌마. 이거 먹을래?”

“야…. 아줌마라 부르지 말랬지?  꼬맹이가.”


“아줌마도 세라를 꼬맹이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나도 아줌마라고 하는 거야!”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말 버르장머리야!”


“남에게 버릇없이 구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하라고 엄마가 그랬어! 세라는 나쁘지 않아!”

“나, 나쁘지 않다고? 야! 리제! 너, 딸 교육을 어떻게 한 거야!”


이런 식으로 세라가 세아에게 계속 말을 걸고 말싸움 아닌 말싸움을 벌이고 있다 해야 할까.
어쩜 수준이 어린아이랑 똑같은 건지,  여동생이지만, 굉장히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아니, 아니지. 그러고 보면 세아는 이상할 정도로 어린아이랑 코드가 안 맞았었다.
수준이 어린아이와 똑같이 다운그레이드한다고 해야 하나.


좋게 말하면 맞춰주고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똑같은 수준이라는 거다. 아마도….

“세라의 말이 맞지. 아무리 어린아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줘야지. 그러니 너도 일단 호칭부터 고쳐.”

“하…. 그래. 아주 소중한 따님이라 이거지? 아주 좋으시겠어? 예쁜 딸 낳고 행복하게 지내서 말이야.”

“비아냥거리는  미안하지만, 세라는 내가 낳은 자식 아니거든?”


“…어? 그런 거야?”

“유전자적으로 말하자면 0.1 퍼센트도 같지 않아.”


세아는 정말로 몰랐던 모양인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보았다.
이 애만 모르는 거야? 아니면 저쪽에 있는 놈들 다 모르는 거야?

아니면 그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건가?


“아니, 하지만 모습이…완전 똑같은데?”

“폴리모프야 폴리모프.”

“그건 나도 알아. 내가 직접 봤으니까. 하지만 본래 폴리모프가 모습을 이렇게 정할 수 있었던가?”


세아의 그 말과 함께 말없이 곁을 걷고 있던 유미네에게 시선이 몰린다.
폴리모프를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드래곤 정도만 가능하다 알고 있다.
그러니  원리를 알기 위해서는 드래곤에게 물어봐야 하는 거겠지.


“…폴리모프를 단순한 상상만의 변신 마법으로 아는 이들이 많은데, 말하자면 다른 모습의 자신을 만드는 마법이라고도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모습도 어느 정도 반영이 되긴 하지만, 대개 자신의 근원에 따른다고도 하지.”


“근원이요?”


“그래. 근원.”


나나 세아는 지금의 유미네에게서 태어났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세라의 근원은?
알을 낳은 건 용신 카르아. 그렇다면 그녀가 세라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라의 모습을 나를 따르고 있다.
그렇게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유미네가 나에게 말한다.

“네가 낳지 않았어도 세라를 부화시키고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너다. 그 증거로 너와 세라는 아직도 이어져 있지.  말뜻이 뭔지 알겠지?”


“아….”

 말은 세라는 카르아가 아니고 내가 근원이라는 말이 된다.

“낳은  아니지만, 넌 훌륭히 엄마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다.”


“…….”

그 말에 아주 약간 복잡한 마음은 들었지만, 금방 사라졌다.
나는 말없이 세라를 바라본다.


“엄마~!”

그러면 활짝 웃으며 나에게 달려와 안겼다.
나는 그 작은 몸을 안아 올려 눈높이를 맞췄다.

“세라야.”

“웅?”


“엄마 뽀뽀해줘.”

“히힛. 뽀!”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내 입술에 쪽! 하고 뽀뽀를 해주는 세라.
자주 하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저런 말을 듣고 나니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하…. 아주 꼴값을 떠네.”

“왜? 부러워?”


“부, 부럽긴 누가 부럽다는 거야!”

흥! 하고 고개를 홱 돌리는 세아였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부럽다.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너무 부럽다.
분명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건 연기가 아니긴 했지만, 하나의 작전이기도 했다.

세아는 세뇌로 그놈이 자신의 소중한 오빠라 생각하고 무조건 따라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세아는 자신의 오빠라 따르는 그놈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아  적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연하다. 그놈에게는 그저 이용할 말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니 과거의 인연이 아닌, 현재의 관계로 더 강하게 묶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본래 가족이라는 것으로 묶여 있어야만 했다. 아무 일도 없었으면 분명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것을 지금이라도 조금씩 되찾아 가겠다는 거다.


세아가 이쪽이 더 좋은 곳이라 깊게 생각할  있도록.

물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분명 쉬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것 이외에  좋은 방법은 없었다.


세뇌라는 것도 마법이었다면 그 술자를 찾아 처리하면 되는 것이지만, 지금의 세아는 오랜 기간 길들인 정신적인 세뇌다.
그러니 우리 쪽도 여러 면을 각오하고 임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라. 이런 거라고 해도 일단은 내 동생이니까 아줌마보다는 이모라고 불러주자.”


“이런 거라니…!”

“우웅…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세라가 봐줄게!”

“봐, 봐줘?  꼬맹이가 진짜!”


흐흥! 하고 콧김을 난폭하게 내뿜으며 으스대는 몸짓을 한 세라를 보고  흥분하는 세아였다.
뭐랄까. 내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도발을 할  안단 말이지.
참고로 세라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진짜 이건 세라가 혼자 생각하며 세아를 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제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

당시에 들었던 그때의 상황을 생각하면 세라에게 세아는 만만한 상대라는 인식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 사이가 좋다(?)는 건 좋은 일이다.

“사이좋게 담소하는 도중 미안하지만, 곧 다크엘프 영역에 도착한다.”

“누가 사이가 좋아!”

“……아니면 아니지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지?”


“헐….”

명백하게 무시하는 말.
뭐, 시크리프 입장에서는 전혀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는 존재긴 하다.
본래 적이었고, 지금은 같은 노예이고, 덧붙여 세라에게도 만만하게 보인다.

음…이건 좋게 작용하지는…않겠지? 역시. 어디까지나 화목한 느낌을 연출해야 하는데, 이래서는 엉망이다.

“시크리프. 아무리 그래도 지랄은 아니다. 지랄은.”


“…조심하지. 아무튼, 곧 다크엘프 영역이니 준비하는  좋다. 현혹의 숲과는 다르게 우리는 아무런 방비도 없지. 그래서 온종일 파수꾼이 지키고 있다.”

내 말뜻을 알아들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는 시크리프.
 녀석은 빠르게 알아들어서 정말 유능하다니까.


어쨌든 이제 다크엘프의 영역이구나.
수기에는 무사히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큰 걱정은 하지 않지만, 그녀가 계속 말했던 것처럼 미래는 확정된 것이 아니다. 거기에 변수도 많고.
조심스럽게 진행하도록 하자.

“이모. 기운 내. 아저씨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짜증부터 나지?”


이제는 세라가 말하는 것을 모든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그나저나 이모라는 말에 뭐라고 하지 않은 것을 보니 일단 한 발자국 나아간 것이 되나?
뭐, 아줌마보다는 낫겠다 싶은 것도 있을 테지만, 나로서는 좋은 징조로 보였다.

[멈춰라!]

그렇게  사람의 훈훈한(?) 대화를 들으며 걷고 있으면 갑자기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주변은 둘러싸였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간다면 금방 공격이 날아오겠지.

그렇지만 시크리프의 설명에 의하면 본래 자신들 영역에 들어오는 이는 누가 되었든 경고 없이 공격부터 한다고 한다.
저렇게 경고를 하는 다크엘프는 정말로 착한 축에 속한다는 거겠지.

[여기는 우리 다크엘프의 영역이다! 인간들이 우리 영역에는 무슨 볼일이지!?]

“인간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있다.”


[너, 너는…! 시크리프!]


“그렇다. 암살자 길드를 맡는 시크리프다.”


다크엘프 쪽에서 시크리프를 알아보았는지 동요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들 쪽에서는 동료가 인간을 영역에 데리고 왔다. 그런 식으로 보이겠지.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고 말이다.


“사정이 있어서 이들과 함께 마을에 들어가야 한다. 허가를 해줬으면 좋겠군.”


[아, 안 된다! 네놈 미친 것인가! 인간을 마을에 들이겠다고!?]

“사정이 있다고, 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말에 따르지 않으면 힘든 건 너희가 될 것이다.”

[허…….]


정말로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잇지 못하는 파수꾼.
내가 저들 입장이었다면 시크리프의 행동에 이해하지 못했겠지.
그리고  그들의 행동도 예상 범위에서 일어난다.

[실성한 것이 틀림없군! 시크리프!]

실성했다는 말을 하는 것은 다크엘프의 종특인가?
그들은 시크리프를 보고 풀었던 공격태세를 다시 짓는다.
금방이라도 공격이 날아올 것이라는 건 찌릿찌릿한 피부를 통해  알려진다.


“자, 그러면 유미네. 부탁할게요.”

“…음. 이런 귀찮은 걸  내가….”

“할머니, 최고! 파이팅!”

“좋아. 해볼까.”

손녀에게는 당하지 못하시는 할머니는 기합을 넣으시고 앞으로 살짝 나아갔다.
나와 세라, 그리고 시크리프는 양손으로 귀를 꽉 막았다.

“어? 뭐야? 뭔데?”


그렇게 세아만 어리둥절하고 있는 사이, 유미네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아, 미리 말해뒀어야 했는데 깜빡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얼른 비키거라. 이 멍청한 것들아!!】

“끼아악!?”

[끄아악!?]

드래곤 피어가 섞인 그 엄청난 음량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다크엘프들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입에 거품을 물고 간헐적으로 몸을 움찔 떨면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당히 하지 그러셨어요.  기절했잖아요.”

“흠흠. 적당히 한다는 것이 조절에 실패한 모양이로군….”


“아니야! 할머니 멋졌어!”

“그, 그런가? 훗. 그렇군. 그래.”


입가가 씰룩쌜룩 움직이다가 쭈욱 올라간다. 큭큭, 아주 그냥 입이 찢어지시겠어요?


“안내야 내가 하면 되지만, 이 녀석은 어떻게 할 거지?”

“아. 맞다!”

시크리프가 발로 톡톡 건드는 것은 다크엘프와 똑같이 거품을 물고 몸을 움찔 떨며 기절하고 있는 모습의 세아였다.
나는 다급히 다가갔다. 미리 말을 해뒀어야 했는데….


“세아야! 괜찮아!?”

“너는…이게…괜찮아……보여…….”

그렇게 바로 기절하는 세아였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기절 외에는 다른 건 없는 듯하다.
나는 일단 가슴을 쓸어내린다.

“휴, 일단 문제는 없어요.”


“리제. 내가 생각하기로 세아가 소중하다는 것치고는 조잡하게 다룬다고 느끼는 건 어째서지?”

“네? 조잡해요?”

“그래.”


“에이, 이번에는 그냥 잊은 거지 그렇진 않은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네.”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는 유미네와 시크리프.

“어? 왜? 내가 뭘 했다고? 이번에는 진짜로 잊은 것뿐인데!”


나는 억울하다는 듯이 항의했지만, 누구도 나를 이해해 주는 이는 없었다.


“엄마, 괜찮아! 이모는 튼튼하니까!”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말하는 세라를 제외하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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