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7화 〉다크엘프 (2) (87/107)



〈 87화 〉다크엘프 (2)

그 뒤로 우리는 아주 쉽게 다크엘프 마을에 들어올  있게 되었다.
엘프 때도 그랬지만, 이쪽에 드래곤이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너무 고분고분해진다.

완벽하게 DNA에 박혀 있는 거라고 하던데, 어떻게 보면 불쌍한 일이지 않나? 이거.
…아니, 불쌍한  맞지.

그런 거로 보면 이제는 완벽하게 적응한 시크리프와 그 부하들은 행복한 거라 봐야 하나?

“이, 이런 누추한 곳에는 어인 일이십니까. 위대하신 드래곤이시여…!”


다크엘프의 장로들이 총동원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광경.
이것도  엘프 쪽에서 본 장면이지.

“너희에게 용건이 있는 건 내가 아니고 이쪽이다.”

“안녕하세요. 다크엘프 여러분. 저는 리제라고 합니다.”


사전에 어떻게 할지는 이미 상의가 끝난 상태다.
유미네가 협박하는 쪽이라면 나는 살살 달래는 쪽.
어찌 되었든 나는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는 것보다는 친분을 유지하는 쪽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 딱 알맞은 방법일 것이다.


“이, 인간?”

“아니. 인간은 아닙니다.”


용화를 하면 주변에서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만, 강렬한 분위기를 뿜고 있는 유미네가 있기에 상당히 약한 편이었다.

이건 딱히 연출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는 거기 때문에 굉장히 편했다.

“드, 드래곤이 둘. 그러면 혹시 다른 분도….”


“맞아요. 이 애는 내 딸.”

“할아버지, 안녕!”

내 품속에 안겨있던 세라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면 그걸 본 이들이 풀린 표정을 지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세라의 귀여움의 힘.
부모로서 콧대가 높아지는 때가 아닌가 싶다.

“아, 하지만 얘는 아니에요. 좀 애매한데 아무튼.”

내가 가리키는 건 아직도 기절하고 있는 세아.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서 시크리프에게 수발을 맡기고 있다. 다만, 굉장히 조잡하게 다뤄서 계속 맡기긴 힘들 것 같다.
이럴 때 세피리아나 아우리아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 그렇지.


“혹시 제 동생 수발 좀 들어  사람이 없을까요?”


“그, 그런 거라면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로가 그렇게 말하며 주변에 있던 다크엘프 여성  명을 불렀다.
한쪽에 푹신한 것으로 자리를 깔고 거기에 세아를 눕혔다.
수발이라고는 하지만 그다지 할 건 없을 거다. 그냥 놀라 기절해서 쓰러진 것이니.


일단 그렇게 두고 나는 다시 장로를 본다.


“제가 이곳에  것은 단순히 당신들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딱 잘라 말하자면 친하게 지내고 싶다. 그 정도일까요?”

“그, 그게 무슨….”

장로가 당황하며  곁에 있던 시크리프를 바라보았다.
그에게 설명이라도 좀 해달라는 듯한 시선이다.

확실히 뜬금없기는 하지. 응.
분명 나라도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나 친하게 지내자고 했다면 뭔 소리인가 했을 거다.

“이쪽은 지금은  주인이다. 그렇지만 노예가 아닌 단순히 나 개인으로서 말하자면 반드시 손해 보는 말은 아닐 거다. 내가 엘프와 수인, 드워프 나라를 통해 본  통해 말하는 거지, 절대로 명령에 따른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

시크리프가 그렇게 말하면 장로는 침묵하고 주변 다크엘프는 웅성웅성한다.
이 녀석이 다크엘프 사이에서는  끗발이 있다고 하던데 말이지.
부하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신빙성이 있었으며, 지금 이 녀석의 말로 영향을 주는  보면 확실한 것 같다.

“…저희는 숲의 종족이지만, 동시에 마에 살아가는 종족입니다. 무엇을 하러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그들과는 친하게 지낼  없습니다.”


“그것까지 바라진 않아요. 단지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자는 말입니다. 저는 인간과도 연결이 있습니다. 아마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성녀와 용사. 그들과도 친하죠.”

“흠….”


 말이 어떤 뜻인지 장로는 이해한 듯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보였다.
다크엘프의 장로도 엘프와 비슷하게 꼰대기질이 있다고 들었지만, 역시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밑에 깔고 들어가니 대화하기가 참 편한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장로의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으면 그 눈이 천천히 열렸다.


“몇 가지 질문해도 괜찮겠습니까?”


“네.”


“첫째로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최종적으로 죽여야 하는 인물이 있는데 힘은 많이 있으면 좋으니까요. 거기에 이건 당신들 다크엘프의 멸족에도 연관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미래에 당신들은 전부 죽을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것은 내가 하이엘프의 수기에서  글이다.
많은 종족 중에서 가장 먼저 멸족당하는 것은 다크엘프였다.
그것을 행하는 것은 딱히 내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다만, 왜 다크엘프인가 하는 설명은 없어 의문이 드는데, 아마도 가장 규모가 작고 폐쇄적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일부 마족과의 교류를 빼면 다크엘프는 정말 자신들끼리만 지내니까.
없애기에는 가장 쉽겠지.

시크리프 같이 인간 세계에서 암살자로서 지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돈을 위한 일이고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다.
딱히 인간이 좋아서 지내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건 어디에서 얻은 정보입니까?”


“그건 말해줄 수는 없고요. 딱히 지금 믿어달라고 하는  아닙니다. 단지 머릿속 한구석에 넣어두시기만 하면 돼요.”

“음.”


이들은 엘프보다도 폐쇄적인 만큼 남을 더  믿지 못할 것이다.
시크리프의 존재가 크기는 해도 진심으로 믿게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그러면  죽여야 한다는 인물은?”

“용인왕 이라고 들어보신 적은?”


“먼 옛날 역사에 존재했던 그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다크엘프 장로는 놈의 존재를 알고 있는 듯하다. 다른 종족은  존재 자체도 몰랐던 모양인데.


“어떻게 알고 있죠?”

“…그 부분에 관해서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이 자리에서는 말할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예전에 시크리프가 말한 기록에 연관된 것이 아닐까?

다른 것도 다른 것이지만 악마라는 키워드도 너무 걸린다.
그것에 대한 실마리도 나온다면 좋겠는데.


“마지막으로 저희 다크엘프가 마족과 친밀을 유지하고 있다는 건 아시고 계시겠지요? 그리고 저희 또한 마족과 똑같이 마신을 숭배하는 중족입니다. 이 의미를 아시고 저희를 찾아오신 겁니까?”


여신과 마신은 철천지원수라 봐야 하겠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그들을 따르는 다른 종족들도 사이가 굉장히  좋다.
주로 인간과 마족이고 그 중간마다 다른 종족들이 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떻게든 인간들을 죽이려 하는 마족. 그것을 저지하고 마족을 증오하는 인간.


이들의 그런 역사는 하루 이틀 된 것이 아니다.
용사와 마왕. 그 싸움은 이대로 두었다가는 반드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싸움에는 마족과 친밀한 다크엘프도 반드시 낄 것이다.


어쩌면 지금은 그 싸움에 끼기도 전에 전부 다 죽을 수도 있지만, 일단 시기까지는 잘 모르니 말이다.

“저는 딱히 인간과 친하게 지내라 하지 않습니다. 마족과도 척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랑 친하게 지내자고 하는 겁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몇 번이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나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관계라는 것이 핵심이다.
이들의 사이에 있는 도랑을 단기간에 메꾸기는 불가능하다. 시간도 없다.
그러면 억지로 나를 중심에 두고 이으는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정말 엉망인 세계라 힘겨울 따름이다.




*


다크엘프는 결과적으로 환영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대하지도 않았다.
상대가 드래곤이니 못한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보다는 일단 천천히 지켜보자는 생각인 듯 보였다.
시크리프도 있고 내가 저자세로 나온 것이 효과를 봤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근데 다크엘프와 친해지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해?”

장로와 이야기가 끝나고 일단 휴식을 위해 시크리프가 살았다던 집으로 왔다.
그리 큰집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지내기에는 넉넉한 크기였기에 딱 알맞았다.

“그걸 왜 나에게 물어보는 거지?”

“아니, 다크엘프에 관한 걸 다크엘프에게 물어봐야지 누구한테 물어보는데?”


“쯧.”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이 녀석 가면 갈수록 나를 대하는 행동이 대담해진다고 해야 하나.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더는 반항이라는  하지 못하게 확 그냥 꺾어버려?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일 잘하는 녀석의 기를 꺾는 것도  그렇단 말이지.


“아저씨. 다크엘프랑 친하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해?”

그런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세라가 시크리프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묻는다.
그러면 시크리프는 여전히 귀찮다는 듯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지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무래도 전투를 좋아하는 녀석들이 많으니 그쪽 위주로 생각하면 될 거다. 아 물론 수인들 같이 힘 위주가 아닌, 스마트하게 싸우는  말이다.”

“그렇구나! 근데 세라는 싸움  해….”

“넌 그냥 그대로 있어도 알아서 친해질  있을 거다.”


“정말~?”

“그래.”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하니 술술 잘도 말하는 시크리프.
세라를 상대로 하면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일인데 살짝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진짜 날 잡아서 한  정신교육을 좀 해야겠어.

“…그나저나 스마트한 싸움이라면 너희 암살자 같은 싸움방식을 말하는 거야?”


“암살자 같은 싸움이라기보다는 그저 일격에 승부가 나는 느낌이지.”


“아하.”

어떤 느낌인지 알겠다. 다크엘프는 역시 그런 식이었군.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 그런 식의 싸움은 그다지 잘하는 편은 아닌데.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서  방에 끝낸다면 가능한데.


“…내가 생각하기에 주인이 나서는 것보다 이 꼬맹이가 나서는 편이 낫지 않나 싶다만.”


“세라가 나선다고?”

“방금 주인도 보지 않았나. 꼬맹이에게 쏟아지는 호의의 시선을.”


어라? 확실히 생각해보니 좋은 생각인지도?
장로도 세라의 미소를 보고 표정이 풀렸었지.

“나쁘진 않겠어. 다만, 이 부분은 내가 뭔가를 하는 것보다 세라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다.”

“보조는 너에게 맡긴다.”

“…….”

왜? 뭔데 그렇게 불만스럽게 바라보는데?
열심히 의견을 냈더니 일 시켜서 삐졌냐?


원래 이런 건 의견  놈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거야.


“아저씨. 힘내….”


“……흠.”


세라의 위로에 나쁘지만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시크리프.
이 녀석도 아니다. 아니다. 말하지만 세라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 중 하나다.
그저 솔직하지 못할 뿐이지.

“세아가 일어났다.”


그렇게 시크리프와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유미네의 그 말이 들려왔다.
구석에 눕혀져 있던 세아에게 다급히 다가가면 이제 막 눈을 뜨고 있던 참이었다.

“으으…여, 여긴.”


“깼어? 지금 여기는 다크엘프 마을이야.”


“다크엘프….”


내 말에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헛!? 하고 뭔가 기억났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역시 기억하나? 혹시 기억 못  거로 생각했는데.

세아가 으득 이를 갈았다.

“그런 일을 할 거면 미리 알려줬어야지!!”


그리고는 샤우팅.
그 녀석 참. 노래를 했기 때문인지 목청 한  좋다.

“야, 리제. 너 솔직히 말해. 나 싫어하지!”

“아니, 좋아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이 아이가 세아가 아니었다면 좋아할 요소는 거의 없다시피 하지만, 역시 내 여동생이라는  하나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

“뻥 치시네! 머리 쓰다듬지 마!”

내가 머리 쓰다듬는 것을 싫어해도 지금은 노예인지라 직접적인 거부는 하지 못한다.
그저 머리를 붕붕 흔드는 일밖에 하지 못한다. 귀여워. 귀여워. 우리 동생.

“동생을 귀여워한다기보다 애완동물을 귀여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내 눈의 착각인가?”

“아니,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


시크리프와 유미네가 우리를 보고 뭐라 대화를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게 기회가 있을 때 마구 귀여워 해줘야 한다고. 그래야 세아 쪽에서도 얼른 정을 붙이지.

“예쁘다~ 이모는 예쁘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세라도 참여.
나랑은 반대편에서 연신 세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것도 거부하지 못해 그저 몸만 부들부들 떨었다.

“에이씨! 그만해! 이 망할 모녀가!!”

정말 고막이 떠나갈 듯한 샤우팅. 하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귀여워한다.


그렇게 가족의 정이 깊어지는 다크엘프 마을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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