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다크엘프 (4) (89/107)



〈 89화 〉다크엘프 (4)

아마도 전투능력이 있는 이라면 누구든 움직이는 것일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신들만의 무기를 들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 몰라 은신처로 피하는 행렬에 세라를 맡기고 나는 전선 부근에 나왔다.
다크엘프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나무 위에 있거나 그림자로 변해 주변에 포진했다.

근데 생각보다 긴박한 상황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크리프가 나타났다.

“시크리프. 이건 도대체….”

“별거 아니다.”

“몬스터 대군이 쳐들어오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곳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

너무 담담하게 하는 말에 당황했지만, 마지막 말에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저주받은 땅. 인간들은 근처에 오려고 하지도 않는 정말 가혹한 환경이다.

우리가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는 몬스터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에 몬스터도 이런 땅에서는 살지 않나 싶었지만, 크나큰 착각이었다.

“우리는 엘프녀석들 같이 숲의 보호를 받지 못하지. 그 대신 강인하게 살아왔다. 이런 일은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지.”

오히려 그 숲에 공격을 받으며 살아가는 상황.
살아갈 장소가 없어 이런 곳에서 살아야만 했던 다크엘프의 삶의 방식이었다.

…전혀 긴장이 느껴지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익숙한 일이라 해도 돕지 않아도 되는  아니지?”

“마음대로 해라. 다만, 드래곤 피어로 놈들을 겁먹게 하는 일은 소용없는 일일 테니 그만두는 게 좋다.”

“그게 소용이 없다고?”

드래곤은 생명체로서는 최상위 종족이다.
피어는  존재감을  배로 증폭시키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드래곤보다 약한 생명체는 겁에 질릴 수밖에 없다.

이곳의 몬스터가 아무리 강인하다고 해도 드래곤보다 강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직접 드래곤과 부딪치는 걸 본 적은 없지만, 이놈들은 그 어떤 일이 있어도 겁먹지 않는다. 말 그대로 미친 상태. 자신들 외의 생명체를 공격해서 먹는 것밖에는 머릿속에 없는 녀석들이다.”

“몬스터의 광화 버전이냐….”

쉽게 말하자면 그냥 겁대가리를 상실해 그저 자신이 어떻게 되든 공격만 하는 놈들이라는 거다.
존재 자체가 돌은 놈들인데 이거?

-키이익!

곧 몬스터 대군이 나타났다. 샤샤샥 소리를 내며 나타난 그것들은 낯이 익은 모습이었다.

“으엑. 여기서도 벌레냐.”

죽음의 숲에도 벌레로 고생했는데 여기서도 벌레다.
전체적으로 콩벌레 같이 생겨서는 맨 앞에 이빨이 잔뜩 달린 입이 있는 구조라 해야 할까. 크기는 성인 정도다.
검은빛의 갑각은 상당히 단단하게 보였다.

…음? 그런데 저놈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뭔가 낯이 익은데?

그게 뭔지는 너무 미약해서 잘 모르겠다. 내 기분 탓일지도 모르고.

“그나저나 뭔가 장비 재료가 될  같은 놈들이네.”

“잘 맞혔군. 저놈들은 웃기게도 우리들의 자원이 되기도 하지.”

“헐?”

이런 농담은 안 하는 시크리프의 말이니 확실하겠지.
오히려 어떻게 재료로 될지 굉장히 궁금한 말이었다.

“그런데 유미네는?”

“저쪽에 있다만, 영 상태가 이상하군.”

“아….”

유미네는 검을 들고 다크엘프와 같이 포진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몸이 굳었다고 해야 할지. 잔뜩 긴장한 상태여서 제대로 움직일지 누가 봐도 걱정될 상태였다.

벌레 싫어하니 말이지. 유미네…. 멀리서 공격하는 건 어느 정도 되는 거 같은데 가까이서 상대하는 건 안 된단 말이지.

“마법으로 쓸어버리면 편하지 않나?”

“방금 말하지 않았나. 재료라고. 우리 쪽에는 생존도 걸린 문제라 최대한 상처가 없이 잡는 게 중요하다.”

“으음….”

뭔가 그렇게 들으면 그다지 심각하게 안 들리는데.
하긴 흔한 일이라고 하긴 했지. 그러니 내가 걱정하는 것도 좀 이상하군.

아무튼 나도 참전해볼까.

“어디 솜씨를 보여봐라. 한 번에 죽이지 못하면 비웃음당할 거다.”

“허…그렇게까지 하는 거냐.”

아무래도 이 녀석들도 근본적으로는 전투 민족인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건 쳐들어온  아니고 사냥 시간인  아니야?

“왔다…! 준비!”

그렇게 다크엘프의 사냥은 시작되었다.

*

다크엘프의 사냥은 정말로 훌륭하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숨어서 혹은 정면에서도 정확하게 급소로 보이는 곳을 공격해 단번에 처리한다.

깔끔하다는 것은 정말 이런  말하는 거겠지.

시크리프나  부하들이 싸우는 모습을 봐왔기에 알고는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집중해서 본 건 처음이다.

벌레의 약점은 가운데에 있는 핵.
하지만 위로는 단단한 갑각으로 보호되어 있어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아 밑으로 공격하는 것이 쉬운 방법인데, 이들은 그러지 않고 자신의 무기에 마기와 오러를 동시에 사용한 공격으로 갑각을 뚫어 핵을 깨트린다.

정말 미세한 손상이라 최소한의 힘과 동작으로 죽였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어떠냐?

“뭐,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사람이 할  있는 일도 있고 없는 일도 있는 거지.”

“너에게 그런 말 들으면 괜히 더 신경 쓰인다….”

어떻게든 그들을 따라 하려 노력했지만, 아무래도 힘으로 찢어발겼다고 해야 하려나…짓눌렀다고 해야 하려나….
다들 웃지는 않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까. 무식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들의 마음에서 한층 더 멀어졌다 해야 할까.
으음, 역시 쉽지 않네. 시크리프 말대로 세라를 중심으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유미네는 유미네 대로 눈을 감고서도 아주 반듯하게 등분을 하셨고….”

“당연한 일이다.”

“아, 예. 그러시겠죠….”

내 말에 조금 어깨가 으쓱 올라가는 유미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세라에게 칭찬을 받기 시작하더니 점점 이렇게 되어갔다.

…어쩌면 유미네도 용신의 딸인 세라에게 영향을 받는 걸까?

아니면 그저 팔불출인가. 판단하기가 어렵군.

“근데 이렇게 금방 끝날 거면 아이나 전투를 못 하는 이는 어째서 그렇게 급하게 피신은 왜 시킨 거야?”

“만일을 위한 게 가장 크다. 아이들은 미래이니까. 우리가 다 죽는다고 해도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일족은 다시 일으킬  있으니 말이지. 그를 위한 대비도 다 해놓았고.”

“이래저래 생각하고 있구나.”

“이런 곳이니까.”

시크리프의 말에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 녀석 말로는 나가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것도  마을을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암살자 일을 하는 건 그다지 칭찬할 일은 아니지만 말이야. 나도 그 대상에 있었고 말이지.

“그보다 해체하는 거 보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저쪽에 가면 볼  있을 거다.”

“어, 그래. 알았어.”

벌레 같은 거 해체하는 걸 뭘 보고 싶겠냐 생각하겠지만, 어떤 식으로 이용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거기에 녀석들을 봤을  느꼈던 작은 위화감을 해결하려면 천천히 관찰해야 할 것 같다.

“잠시 옆에서 지켜봐도 될까요?”

“네. 상관없습니다.”

능숙하게 벌레를 해체하고 있던 다크엘프 여성에게 다가가 지켜보기로 했다.
몸을 쫙 펴서 뒤집은 다음 단단한 갑각이 아닌 부드러운 속살(?)을 천천히 칼로 도려내어 필요한 갑각 부분과 이 마을에서 특식으로 먹는다는 중앙의 살 부분을 제외하고 버린다.
알고는 있었지만, 역시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다. 그러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

“음? 이건.”

“아, 그건 녀석들의 핵이에요.”

“이걸 공격해야 했던 거죠?”

“네. 맞아요.”

본래는 구슬 같은 모양이었던 것이 공격받아 깨졌거나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자세히 관찰했다.
망가져 있기에 집중하지 않으면 단순한 구슬로밖에는 보이지 않지만, 정말 집중해서 보면 아주 미약하게 느껴졌다.

“이거….”

확정 짓기가 너무 곤란하지만, 이거랑 비슷한 걸 최근에 느낀  드래곤의 둥지에 있었을 때다.
하르마나를 조종하는 놈과 싸울 때 느꼈던 것.

다크엘프에게서 느껴지는 마기와 아주 약간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기운.

‘이거 어쩌면 몬스터가 벌레인 것도 우연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부분도 아직 확정 지을 수 없지만, 가능성은 있어.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는 이 녀석들뿐이에요?”

“아니요. 종류로서는 앞으로 3종류는 있어요.”

“혹시 다 벌레 종류에요?”

“……어? 듣고 보니 그러네요.”

여태까지 신경 써본 적 없었는데. 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군. 이걸로 가능성이 더 커졌다.

“몬스터 중에서 가장 귀찮은 건 파리의 모양을 한 놈들이에요. 전투 능력도 미묘하게 강하고 비행 능력이 있어서요.”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네요….”

거대 파리라니 소름 끼치게 징그러울 것 같다.
거기에 말로만 듣자면 이곳에서 가장 강한 몬스터라는 거 아닌가?

음. 아무튼, 이것도 좀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데?

“으엑. 이곳도 저곳도 벌레투성이네.”

“세아. 너, 왜 여깄어? 같이 피난   아니었어?”

“끝난 거 같아서 미리 나왔지. 답답하기도 했고. 꼬맹이 아니 세라는 다른 꼬맹이들이랑 같이 있어.”

“그래. 알고 있어.”

세라가 어디에 있는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완전히 파악  했던 적은 딱 한 번이다.
제국의 수도에 있었을 때, 처음으로 세아의 존재를 알았을 때였지.

그러고 보니 그때의 결계 같은 건 세아가 쳤었지.

다크엘프와 똑같이 마기를 사용해서 사용하는 거라고 하던데 본인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잘 모른다고 한다.

그냥 어쩌다 보니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나 뭐라나.
 동생이지만, 참 너무 대충이다. 바뀐  없어요.

“작업하는 거 보여줘서 고마웠어요.”

“천만에요.”

“자, 가자. 네가 여기 있어도 어차피 할  없어.”

“왠지 그렇게 들으면 열받는데….”

정보도 얻었겠다.  있을 필요는 없어 보여 세아를 데리고 마을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요즘은 지낼만해?”

“나에게 무슨 대답을 바라는 거야….”

짧은 기간이었기에 단번에 뭔가 변화하는 것을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이곳이 편하다고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세아는 뭔가  경계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를 보았다.

뭐랄까. 이제는 세라랑 같이 있는 것이 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도 아예 나랑 같이 있으면 경계한다.
최대한 상냥하게 대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솔직하게 말하게 하고 싶으면 ‘명령’을 하면 되잖아.”

“그래서는 네가 괴롭잖냐.”

“…언제는 딸내미랑 같이 실컷 괴롭히면서.”

……? 내가 언제?
귀여워한 것밖에 없는데.

“오빠가 한 거였다면 상관없는데. 흥….”

중얼거리면서  그 말은 나를 참 안타깝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여전히 세뇌에 관해서는 파고들 틈이 없다는 것도 의미했다.

후…아니지. 시간을 들여간다고 했으니까 벌써 실망하면  되지.

“그래. 알았다.”

“…….”

그렇게 나는 세아의 대답은 듣지 않고 다시 조사하러 돌아가기로 했다.
미래 일부분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풀어야 할 문제는 산더미다.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야지.

“주인. 잠깐 괜찮겠나?”

“어? 왜 그래.”

그렇게 서재에 들어가려고 하면 시크리프가 날 붙잡았다.

마을 일은 마을에서 알아서 하고 있으니 그것에 관련된 건 아닐 거다.
무슨 일인가 싶으면 시크리프는 내 귀가 번쩍 뜨일만한 이야기를 한다.

“어떤 마족이 와서 주인을 보자고 한다. ‘리리’라고 하면  거라 하더군.”

그래. 역시나 이곳에서 만나는구나.
거의 높은 확률로 만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역시나.

제국에서 일이 모두 끝난 후에 사라진 후작가의 메이드. 리리.

이미 마족이지 않을까 하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어디에 있지?”

아마도 마족과의 인연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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