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화 〉 마족(1)
* * *
그때 제국에서 사라진 인물 중에서 리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바로 마족일지는 몰랐다.
다만, 그때 꼽은 인물들의 정체가 다 밝혀지고 그녀의 이름을 생각했을 때 확신이 들었다.
분명 게임에서도 나오는 마족이었다.
당시 게임이 유명해지고 팬덤이 형성될 시기, 적 캐릭터였지만,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몇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였다.
다크엘프 마을에 정식으로 찾아온 것은 아니라고 하기에 그녀는 시크리프의 안내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마을에 들어왔고, 내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리제 님.”
“…역시 제국에 있었을 때의 모습은 가짜였군요? 리리스.”
“어머나? 저에 대한 걸 알고 계셨던 모양이시네요?”
인상에 잘 남지 않는 그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의 모습은 핑크 머리에 뿔과 꼬리, 그리고 날개가 돋보이는 색기가 넘치는 마족, 서큐버스의 모습이었다.
내가 이름을 말하면 붉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근데 왜 지금도 메이드인 거죠?”
“하하, 제가 제국에 있었을 때도 속이지 않았던 게 있는데, 그게 바로 메이드라는 거예요.”
“서큐버스 퀸이요?”
“그, 그것도 알고 계셨어요?”
방금은 조금 놀란 정도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눈을 크게 뜨고 벌어진 입가를 가리며 진심으로 놀란 것이 느껴졌다.
서큐버스 퀸. 리리스. 이렇게만 들으면 아마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게임에서 나왔을 때는 그리 강한 상대는 아니었지만, 다른 적 캐릭터랑 같이 나와 매혹이나 능력치 감소 같은 귀찮은 디버프를 거는 존재였다.
거기에 외모가 너무나도 뛰어났기 때문에 죽이는 게 너무 아쉽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제발 사로잡을 수 있게 해주세요. 라며 게임 회사에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지.
물론 그 항의가 받아들여지는 건 없었지만, 나중에 클리어 후에 자유롭게 적 캐릭터까지 동료로 데리고 다니면서 놀 수 있는 자유 플레이 모드가 나와 작게 환호하는 이들은 있었지.
그러고 보면 그 뒤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볼 수 있는 모드까지 나왔었지 않았나?
그 부분은 기억이 잘 나지 않네. 관심이 별로 없었기에….
아무튼 지금은 리리스다.
“뭐, 저도 우연히 알게 된 거예요.”
“그 우연에 대해 자세하게 알고 싶지만, 가르쳐 주시진 않으실 거죠?”
“…….”
나는 말하지 않고 그저 웃어 보였다. 그러면 리리스는 역시나 하며 쓰게 웃었다.
다른 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지.
그러니 최대한 애매하게 넘어가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생각할 여지는 주는 편이 좋겠지.
“일단 제가 이걸 갖고 있다는 것만은 알려 드릴게요.”
“그, 그건!?”
내가 카르아에게 받았던 옷 중에서 가장 먼저 받았던 서큐버스 퀸 리리스의 드레스.
그것을 보이면 이번에는 그저 굳었고, 곧 손을 덜덜 떨면서 드레스를 가리켰다.
“초대 퀸의 드레스를 어떻게 리제 님이…!?”
“리리스라는 이름은 대대로 계승하는 이름인가 보죠?”
“네…맞아요. 여왕 자리에 앉은 자가 반드시 계승하는 이름이죠. 좀 더 자세히 봐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감사합니다!”
리리스는 환희하며 정말 소중한 것을 다루는 듯한 모습으로 드레스를 만진다.
음. 저 모습을 보니 단순히 생각할 게 아니고 때에 따라서는 교섭에 사용할 수도 있겠군.
“언제까지 딴 길로 샐 생각이지?”
“아, 그, 그렇죠.”
가만히 두면 계속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는 걸 느꼈는지 시크리프가 한마디 한다, 그러면 허둥지둥 나에게 드레스를 넘기고는 헛기침했다.
나는 그걸 다시 인벤토리에 넣지만, 리리스의 시선이 끝까지 드레스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노골적인 욕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알기 쉬웠다.
“그래서? 절 찾아온 목적이 뭐죠?”
“리제 님께 저의 주군을 만나주셨으면 해서요.”
“리리스 씨의 주군이요?”
서큐버스 퀸이 주군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다고?
아니, 하지만 리리스 스스로가 메이드라고 하고 있으니 없다고 할 수는 없겠군.
어쩌면 그 사람을 모시고 있기에 메이드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 마계에서 마왕 후보 1위…아니, 2위이신 분입니다….”
그 말을 하는 리리스에게서는 굉장히 분함을 느꼈다.
…마왕이라는 게 후보에서 정해지는 거였구나.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나로서는 그저 그런 생각만 날 뿐이었다.
“리리스 씨의 주군이라는 사람은 어째서 절 만나고 싶어 하는 거죠?”
나도 어차피 마족은 만나고 싶었기에 다크엘프를 통해 한 번 연결고리를 가져 볼까 했던 차다. 이 제안은 굉장히 형편상 좋았지만, 그래도 일단 덥석 무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확실히 궁금하실 테죠. 저의 주군이신 헬레나 님은 마족과 인간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 하십니다.”
“뭐라고…!?”
리리스의 그 말에는 나도 놀랐지만,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시크리프였다.
나보다 마족에 대해 잘 아는 그로서는 어지간히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던 모양이다.
“마족에 그런 생각을 하는 자가 있다고?”
“네. 헬레나 님을 모시는 자들은 모두 그 생각에 찬동하여 행동하고 있습니다.”
“허….”
시크리프는 말이 나오지 않는지 그저 입만 뻐끔뻐끔했다.
녀석의 그런 모습을 봐서 그런지 나는 오히려 냉정하게 되어서 그녀에게 묻는다.
“저를 찾는 이유는 그것을 도와달라는 것이겠군요.”
“네. 맞습니다. 제국에서 당신을 지켜본 결과 반드시 힘이 되어주실 거로 생각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 헬레나 님께 말씀드리니 반드시 만나고 싶다 하셨지요. 그리고 지금 그 기회가 온 것이고요.”
“음.”
리리스가 제국에서 평범하게 메이드를 하고 있었던 건 인간에 대해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에게 협력해줄 존재를 찾고 있었던 건가.
어쩌면 리리스 말고도 인간 속에 섞여 있는 마족이 있을 수도 있겠네.
“좋습니다. 저도 어차피 마족과 연결이 필요했던 참이니까요.”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어쩌면 내가 거절할 가능성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리리스는 진심으로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성녀인 시스티아와 절친 사이니까 뭐 어쩔 수 없나.
“다만, 저희 쪽도 지금은 예전 같지 않아서 조금 복잡합니다. 그래서 조금 준비가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 있나요?”
“현재 헬레나 님을 제치고 세력이 가장 많은 인물이 존재합니다. 그는 인간과는 철저하게 싸워야 한다는 쪽이어서 말이죠….”
그 말에 조금 짐작이 가는 것은 게임에서 나온 마왕.
헬레나라고 하는 건 여자란 이야기니까 아마 마왕이 되는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는 건 아마 그 인물이 다음 마왕이 된다는 이야기인데….
…일단은 헬레나라는 인물부터 만나고 생각할까.
“어쨌든 만날 수는 있는 거죠?”
“네. 제가 헬레나 님을 모시고 이곳으로 오겠습니다.”
마족과 다크엘프는 일단 교류는 하는 사이다. 나쁜 것도 아니고 좋은 것도 아닌 사이라 해야 할까.
그렇지만 어쨌든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건 그리 어려울 게 없는 사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하죠. 연락은 이쪽에 시크리프를 통해주세요.”
“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리리스 씨. 혹시 세뇌에 대해 잘 아시나요?”
“세뇌요? 일단 정신계로는 제법 아는 편이긴 한데…. 누가 세뇌에 걸렸나요? 아니면 걸 예정?”
“걸린 쪽이요.”
서큐버스는 디버프 전반 특히 정신계 마법에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세아의 세뇌를 풀 수 있을 만한 힌트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자세한 내용은 숨기고 어떤 상황인지 이야기했다.
“어, 그러니까 마법적인 게 아니고 오랜 기간에 걸친 세뇌라는 거죠? 그것도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거요.”
“네. 시간만이 답인가 싶어서 놔둘까도 생각했는데 좀 답답해서요….”
내가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려 해도 지금의 세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단지 옛 가족이 아닌 현재 가족에 점점 끌리는 모습은 보이고 있지만, 너무 더디다.
“다른 쪽으로 세뇌 마법을 강하게 걸어 푸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이건 너무 부담이 커서 최종적으로 폐인이 될 가능성이 커요. 아무래도 마법적인 요인이 아니라면 안전하게 푸는 건 정말 쉽지 않죠.”
“방법이 아예 없을까요?”
“음….”
그녀가 턱에 손을 올리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조금 자신이 없는 듯이 입을 열었다.
“오랜 기간에 걸친 세뇌를 마법의 도움이 없이 푸는 건 정말 힘들어요. 그렇지만 본래 자신과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사람이 대상이라면 분명 서로만 아는 뭔가 강렬한 추억이 있을 거란 말이죠? 세뇌를 건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거요.”
“이거다! 할 정도로 강력한 기억을 자극한다는 건가요?”
“네. 그걸 자극하면 분명 뭔가 반응은 있을 거예요. 그런 세뇌를 푸는 건 작은 의심부터 시작되니까요. 믿음을 서서히 부수는 거죠.”
“…….”
방법이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도대체 어떻게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의 세아의 기억을 강하게 자극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지?
당장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많은 참고가 되었어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닙니다.”
그렇게 세뇌에 관한 이야기를 끝내고 우리는 앞으로의 예정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상의하고 헤어졌다.
시크리프와는 연락 수단이라든지 할 이야기가 있었던 듯싶었지만, 그건 녀석이 알아서 하겠지.
아무튼 이제는 저쪽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마족에게 어떻게 접근할지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간단하게 끝나서 다행이다.
다만, 현재 세력 대부분을 흡수했다는 뱀파이어 로드가 굉장히 신경이 쓰이네.
이 부분도 헬레나를 만나면 제대로 이야기해봐야겠지.
“엄마!”
“어, 그래 우리 딸!”
“일 끝났어?”
“응. 일단은.”
내 품에 쏙 안겨 오는 세라의 통통한 볼에 얼굴을 부비며 힐링한다.
세라는 간지럽다면서도 꺅꺅 웃어댔다. 정말 내가 세라 덕분에 살지.
“야. 세라 꼬맹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해!”
“세라는 엄마랑 만나고 싶었으니까!”
“하. 아주 꼴값을 떨어요.”
세라의 뒤를 이어 세아가 나타났고 금방 세라와 대화하며 얼굴을 구겼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라와의 대화법으로 보였다.
세라도 딱히 불쾌함은 보이지 않고 그저 씨익 웃어 보일 뿐이었다.
“뭐 하고 있었어?”
“노래! 아, 참. 그렇지! 엄마도 같이 노래하자!”
“엄마도?”
“응! 세라랑 같이 부르자!”
아, 이거 그거다. 내가 마음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걸 들킨 거다.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은 거겠지.
“흠흠. 무슨 노래 하고 있었는데?”
“응? 뭐였지? 이런 노래였어.”
~♪
세라가 눈을 슬쩍 감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듣고 깜짝 놀랐는데 내 딸이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너무 잘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아가 좋아하는 노래로 나도 잘 아는 노래였던 것도 있다.
지금은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걸 떠올리며 나도 세라에 맞춰 조금 불러보기로 했다.
■■■~!!!!
“끄아악!?”
어?
갑자기 세아가 귀를 틀어막고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노래하는 것을 멈추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세아를 보았다.
“뭐야? 왜 그래?”
“이모. 어디 아파?”
“벤시 100마리가 동시에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저주 음파를 듣고 용케 멀쩡하네!!”
“응?”
“응?”
나와 세라는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모녀 아니랄까 봐 열 받게 하는 건 진짜 똑같네! 야! 리제는 본인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넌 왜 그렇게 멀쩡한 거야!”
“엄마한테 왜 그래 이모. 우리 엄마 잘만 부르는데…?”
“헐. 미쳤다. 미쳤어. 혹시 이거 유전이니? 아니, 넌 부르긴 잘 부르니까 그건 아니라고 쳐도 이건 아니지! 으윽!?”
그렇게 갑자기 노발대발하던 세아가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식은땀까지 흘리는 게 그냥 아픈 게 아닌 듯 보였다.
“괜찮은 거야?”
“아, 씨. 몰라…. 왜 이렇게 머리가…아…으…. 분명 오빠도 이런 괴상한 음치박치…였던 것 같…….”
“세아야!”
그렇게 뭐라고 중얼거리던 세아는 눈을 뒤집어 까며 기절해버렸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