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 마족(3) (92/107)

〈 92화 〉 마족(3)

* * *

솔직히 나에게는 기습(?)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리리스에게 주군이라 불리며 마계의 세력 2위를 하는 존재이니 그에 상응하는 존재감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그것이 전혀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혼자 온 것이냐 물어본 것이었는데, 리리스의 발치에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어린아이에게서는 그냥 어린아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난 아이가 아니다! 내 사정이 있어 이런 모습이다만, 본래의 내 모습은 리리스에게도 지지 않는 멋진 여성의 모습이다!”

다만, 말투만큼은 존재감이 흘러넘치고 있다.

“어…. 미안?”

“뭐, 뭐하는 짓이냐! 머리를 쓰다듬는 건 그만두거라!”

하지만 모든 모습이 세라와 겹쳐 보여서 훈훈한 미소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세라보다는 조금 더 나이가 있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그 또래이니까.

귀엽네. 귀여워.

“그, 그만두라는 말이 들리지 않…하으…네놈…왜 이렇게 쓰다듬는 걸 잘하는 것이냐….”

“평소에 연습을 많이 했으니까.”

쓰다듬는 것도 무조건 쓰다듬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쓰다듬어지는 쪽이 기분이 좋아야 서로 윈윈이 되는 것이기에 이건 제법 기술이 필요하다.

나로서는 언제나 세라를 쓰다듬어야 하기에 필수적인 기술이다.

“우우…이,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어머나~헬레나 님. 완전히 굴복당하셨네요.”

“그, 그렇지는 않…아으으…”

입가를 가리며 키득키득 웃으며 한 리리스의 말에 아이가 잠시 발끈하지만, 내 손놀림에 다시 흐물흐물 녹아버린다.

응? 근데 방금 리리스가 헬레나라고 하지 않았어?

“이 아이가 헬레나 님이라고요?”

“네. 맞아요. 제가 모시는 주군이신 헬레나 님이세요.”

“…….”

나는 아직도 내가 쓰다듬고 있는 아이를 바라본다.

시스티아를 생각나게 하는 은발에 금빛 눈이 인상적인 아이다.

“아우우…무숭 지슬 하눈 거하…!”

쓰다듬는 것을 멈추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볼을 잡아당기면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저항할 힘은 없는지 약간 울상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깐 관찰을 하고 그 볼을 놓으며 나는 리리스에게 말한다.

“어딜 어떻게 봐도 평범한 마족 아이인데요?”

역시 암만 봐도 힘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아이였다.

어른이 지켜줘야만 하는 연약한 존재.

내가 그렇게 말하면 헬레나는 불만이라는 듯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고, 리리스는 재밌다는 듯이 키득키득 웃었다.

“리리스! 웃을 일이 아니다!”

“아니, 죄송…죄송해요. 하지만 웃긴 걸 어떻게 해요….”

“으으…! 굴욕이다…!”

웃음이 빵 터진 리리스가 진정할 때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그때 동안 헬레나는 리리스에게 삐졌는지 내 뒤에서 바지를 붙잡고 리리스를 노려봤다.

그런 헬레나가 귀여워서 다시 머리를 쓰다듬으면 흐물흐물 표정이 녹았다.

이 애 왜 이렇게 귀엽냐. 우리 세라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교는 할 수 있을 정도로 귀엽네.

“헬레나 님은 지금 힘을 많이 잃은 상태이세요. 저 때 헬레나 님을 제치고 세력 1위를 하는 녀석이 있다고 했지요? 그와 싸우다 겨우 목숨만 건져서 이렇게 된 겁니다.”

“아니, 진짜로 웃을 일이 아니었네요?”

“네…. 하지만 뭐, 결과적으로 사셨으니 이런 농담도 할 수 있는 거죠.”

“뭐, 그건 그렇죠….”

뭐든 목숨이라도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니까.

“흐, 흥! 난 녀석에게 진 것이 아니다! 그놈이 비겁하게 기습을 하니까…!”

“헬레나 님. 인정할 건 인정해야만 합니다. 저희가 아무리 용을 써도 그에게는 이기지 못해요.”

“으으…!”

리리스의 단호한 말에 헬레나가 볼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본래 이런 성격이었나, 아니면 나이가 어려져서 이렇게 된 것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린아이다워서 보기가 좋다는 건 있었다.

세라도 착하기는 굉장히 착한데, 어린아이답게 떼도 쓰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나 강해요?”

“네. 그가 가진 마기도 마기이지만 검술 실력이 워낙 뛰어나서…. 아마 전설적인 경지의 그랜드 마스터가 아닐까….”

“그랜드 마스터요?”

나는 주변에 조용히 있던 유미네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좀 놀랐는지 표정이 약간 변화되어 있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역사적으로 없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확인된 것은 유미네밖에 없었는데, 그게 마족에 있다.

아마 레온도 계속 성장하면 반드시 그랜드 마스터 반열에 올라갈 테지만, 아직 시간은 좀 걸릴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노리고 있는 경지이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이번 이야기에 연관된 것은 주로 그 존재에 관해서겠군요.”

“네. 맞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를 몰아내는데 도와주셨으면 해요.”

듣기만 해도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난이도가 말도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세력은 커도 오합지졸이 많으니까요. 거기에 대부분이 힘으로 굴복시킨 자들이 많아서 그만 어떻게 한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될 겁니다.”

“즉, 그 수장을 죽이거나 제압. 그리고 헬레나를 지키는 것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군요.”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난도는 내려갔군.

뭐, 앞으로 좀 더 상의를 해봐야겠지만 말이다.

“일단은 자리를 옮길까요? 이런 곳에서 할 이야기도 아니고요.”

“네.”

여차하면 마법도 있고 주변에는 시크리프의 부하들이 있지만,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단 안에서 편하게 자리를 잡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리제라 했었지. 나를 아이 취급한 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일단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하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가기에는 그러니 나를 정중하게 옮겨라.”

“아, 네네.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건방진 말투였지만, 짜증은 하나도 나지 않고 오히려 미소만 지어진다.

뭐랄까. 본래라면 귀에 거슬리는 말인데 이 아이가 말하면 그렇게 안 들린다고 해야 하나?

신기한 기분이었다.

“어떠신가요?”

“으, 으음. 그, 그냥 그렇군.”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는 내가 안아 들면 내 품에 얼굴을 폭 묻고는 몸에 힘을 쭉 풀었다.

그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진짜 재밌는 아이다.

아니, 본래 아이는 아니라고 했나.

…뭐, 아무렴 어때. 지금은 아이인데.

“후후, 리제 님이 마음에 드신 모양이네요.”

“그래요?”

“네. 흥미가 없으면 철저하게 무시하는 분이시거든요. 반대로 흥미가 있으면 철저하게 들러붙으시죠.”

“쓰, 쓸데없는 소리 마라. 리리스.”

“네~”

말은 좀 위엄있게 해도 여전히 표정은 그렇지가 못하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으면 눈을 가늘게 뜨고 마치 고양이 같이 그릉그릉 할 것 같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이 녀석과 이렇게 붙어 있으면 힘이 회복되는 것 같다…. 이상한 느낌이다만, 이거 때문에 아마 편안함을 느끼는지도 모르겠군….”

“그래요? 그건 신기한 현상이네요.”

뭔가 충전기 취급당하는 듯한 느낌이…?

그렇게 뭔가 이상한 기분으로 있으면 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어, 그래. 우리 딸.”

“…….”

헐레벌떡 뛰어온 세라는 어쩐지 찡그린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전해지는 감정은 불만과 불안. 그리고 짜증과 질투.

어? 하고 이상함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엄마는! 세라 거야!”

“!?”

빽 소리를 지르는 대상은 내 품에 있던 헬레나였다.

한쪽 볼을 한껏 부풀리고 헬레나를 노려보는 세라.

헬레나는 슬쩍 시선을 내려 세라를 바라봤다.

“이 녀석이 딸이라 했던가. 꽤 시끄러운 꼬맹이지 않은가.”

헬레나는 그러면서 피식 웃더니 보란 듯이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발끈한 세라가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점프를 뛰며 헬레나에게 손을 뻗었다.

“너도 꼬맹이면서!”

“흥! 난 꼬맹이가 아니다. 본래는 훌륭한 레이디다!”

“아니야! 꼬맹이야! 땅꼬마! 바보! 멍청이! 말미잘!”

“무, 무엄하다! 이 바보 녀석이!”

“세라 따라 하지 마! 바보는 너야!”

기어코 말싸움을 시작하는 두 아이.

세라가 여태까지 보인 적이 없던 모습이라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여태까지도 다른 아이와 접할 기회는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세라는 얌전하게 다른 아이들과도 잘 지냈었는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걸까?

말리러 들어가고 싶은데 어쩐지 지금 내가 들어가면 굉장히 복잡해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에게는 당연히 세라가 최우선이었지만, 여기서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 만점이로군.”

“인기 많네요.”

“…….”

“아니, 보고만 있지 말고 좀 도와줘….”

유미네와 리리스가 흐뭇하다는 듯이 히죽 웃으며 바라보고 시크리프는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전혀 도울 생각이 없는 세 명을 보며 그냥 내가 끼어들어야겠다 생각하면 갑자기 세라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우우, 흐아앙…! 거기는 세라 자리야아~!”

“!?”

그 말에 세라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이미 힌트는 있었다. 세라가 엄마는 내 거라고 했을 때.

아, 그렇지. 진짜 형제 사이에도 그런 일은 있다.

언제나 자신에게만 관심을 주던 부모님이 동생이 태어나 그 관심이 나뉘거나 더 관심을 주면 질투하게 되어있다.

세라는 언제나 내 품만은 사수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다른 아이에게는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 자신만의 자리.

그 자리를 다른 아이가 차지하고 있으니 세라로서는 짜증이 날 만했다.

“헬레나. 미안하지만 내려와 줘.”

“으, 으음. 그래. 그러마.”

세라가 울기 시작하자 헬레나도 당황했는지 얌전히 내 품에서 내려왔다.

그래도 굉장히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진심으로 편했던 걸까.

조금 쓴웃음을 지으며 나는 흐느껴 우는 세라를 안아 올렸다.

마치 내 품이 자기 자리라는 듯이 파고드는 세라의 엉덩이를 토닥토닥 두들기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속으로도 전하며 말한다.

“엄마는 평생 세라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알았지?”

“응….”

훌쩍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눈물은 그쳐주었다.

나는 안도하며 계속해서 어르듯이 세라를 토닥거렸다.

“뭐랄까. 이제 완전히 엄마가 다 되셨네요.”

“그, 그래요?”

“네. 제국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이제는 모성이 느껴지는 것이 정말 엄마라는 느낌이라 해야 할까요.”

“아, 아하하….”

뭔가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어쩌면 처음 여자가 되었을 때보다도 복잡한지도 모르겠다.

“리제여. 그 자리는 너의 딸에게 양보하겠다만, 나와의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정중히 모시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아, 이것도 좀 복잡하구나.

“그럼….”

이걸 마음에 들지 모르겠는데….

“목말이라도 할래?”

나는 다른 아이들과의 경험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 우리.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우리였지만….

“엄마….”

“음. 이 자리도 나쁘진 않구나.”

“…….”

세라는 품에 헬레나는 계속 어깨에 탄다는 기묘한 상황을 유지하며 시작되어 버린 것이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