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마족(4)
* * *
이래저래 기묘한 일(?)은 있었지만, 이야기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끝날 수 있었다.
당장에 해야 할 일은 이야기했듯이 헬레나를 지키는 일과 다른 세력의 수장을 배제하는 일.
그 이야기를 하다가 제법 놀란 일이 있었는데 제국에서 사라졌던 커티스가 무려 뱀파이어 로드로 현재 마계의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찝찝하지 않은 상황이 아닐 수가 없다.
녀석은 분명 아디스만의 끄나풀.
…음. 그렇다는 건 이제부터 일어날 일에 녀석이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다.
놈들의 목적은 이걸로 확실해졌다.
마왕의 자리. 그리고 마신.
하이엘프의 수기로 인해서 내가 어느 정도 미래를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 단편적이고 또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다만, 정보로 이용은 가능하니 필요는 하지만, 너무 내 머리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서 힘이 부칠 때가 있다.
머리 쓰는 건 본래 특기가 아닌데 말이야….
아무튼, 느긋하게 있을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일을 좀 빨리 진행하기로 했다.
솔직히 다크엘프 마을은 이제 문제없다고 해야 하나.
또 며칠 사이에 세라가 마음을 꽉 잡았다고 해야 할까.
현대식으로 말하자면 인기 아이돌을 보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우리 딸이 그런 쪽에 재능이 있는 걸까. 요즘 세아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부쩍 그런 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대에 있었으면 분명 집에서도 TV로 세라를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음. 나쁘진 않은데?
다만, 나로서는 그런 쪽에는 트라우마도 있었기에 세라를 그런 걸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지만….
아니, 이곳이 현대도 아닌데 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흠흠. 그렇게 다크엘프에 관한 일은 문제없이 끝났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마족에 관한 일이 진행된다.
우리는 리리스와 일을 어떻게 진행 시킬지 의논했다.
세력이 많이 밀렸다고는 하지만, 헬레나 측은 본래 마계 1위 세력. 그렇기에 마계에는 아직 헬레나를 따르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것을 이용해 일단 마계에 잠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물론 마족으로 변장해서.
방법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리리스에게 맡기고 있고 다들 그 때문에 정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어쩐지 나만 제외하고 말이지.
“우…. 리, 리제여. 눈이 따갑다….”
물로 씻겨 내려간 비누가 눈에 들어갔는지 비비려고 하는 것을 제지한다.
“눈 꼭 감고 있으라고 했잖아. 세라를 봐. 잘하잖아.”
“흐흥~ 세라는 경험이 풍부하니까!”
“너, 그런 말 어디서 배웠어.”
“웅? 이모가 가르쳐 줬는데….”
“그 녀석이 진짜….”
이상한 거 세라에게 가르치지 마라니까.
“따갑다…! 따가워!”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봐.”
어쩐지 울 것 같은 기세였기에 나는 얼른 맑은 물로 눈을 살살 씻겨주었다.
뭐, 이런 식으로 내 역할은 헬레나를 돌보는 것에 굳혀져서 정말 온종일 같이 있다.
그러면 세라도 마치 경쟁을 하듯이 붙어서 두 아이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나쁜 건 아니다. 나쁜 건 아닌데 뭔가 기운이 빠진다고 해야 하나….
진짜로 딸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러다 진짜로 보모로 전직하는 거 아닌가 싶네.
“후아. 이제야 좀 살 것 같구나.”
“잘 참았어. 장해.”
“벼, 별로 칭찬받을 만한 일은 아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칭찬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면 얼굴을 살짝 상기시키며 종족 특유의 얇은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인다.
아이는 일단 혼을 내는 것보단 칭찬하라고 하니까 말이지.
솔직히 지금의 헬레나는 아이가 맞지만, 본래는 아이가 아니라서 애매하긴 하지만 말이지.
몸이 줄어드는 것에 따라 정신까지 어려져 버려서 지금 같은 상태라고 하니까.
기억은 있지만, 정신이 몸에 맞춰져 버리는 것이다.
리리스가 말하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아이였을 때 자신의 기억에 한동안 밤마다 이불킥을 시전할 거라 한다.
아무래도 헬레나와 리리스는 주종관계이긴 하지만 보통은 리리스가 위에 있는 것 같다.
헬레나를 놀리는 걸 굉장히 즐기는 것을 보면….
“후우…. 기분 좋다~”
“하나…둘…셋….”
“들어오기 싫으면 같이 안 들어와도 되는데?”
몸을 다 씻고 내가 반신욕을 하려고 욕조에 들어가면 헬레나도 따라 들어온다.
그리고는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이런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꼭 따라 들어 온단 말이지.
“언니는 이거 싫어하니까 같이 안 들어와도 되는데!”
“세라. 너도 엄마 말 따라 하지 말고.”
같이 들어와 찰싹 달라붙은 세라에게 한마디 해주고 헬레나를 본다.
욕조의 끝쪽에 혼자 앉아서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이편이 좋다….”
“그럼 좀 더 이쪽으로 와.”
“아, 으…!”
그렇게 이끌고 와서는 헬레나도 가까이 둔다.
양옆에 귀여운 꼬꼬마 둘을 끼고 하는 목욕은 마지막은 평화롭다.
“흐야아…….”
그렇게 가까이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헬레나는 굉장히 기분이 좋다는 듯한 소리를 낸다.
굳이 지금만이 아니고 헬레나는 곧잘 나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단 말이지.
듣기로는 나와 붙어 있을 때 가장 안심을 느끼고 힘이 조금이지만 회복된다고 한다.
무슨 원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로서도 딱히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신기한 일이로군…. 마족인 내가 만난 지도 얼마 안 된 용족인 너에게 이런 기분을 느끼다니. 마신님과 무슨 연관이 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니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이곳 다크엘프 마을에서 3신이 삼각관계였다는 말을 책에서 봤는데 진짜야?”
마신 이야기가 나와 좀 더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마족 서열 1위였으니 뭔가 다양하게 알고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음…. 진짜라고는 듣긴 했었다. 뭐, 마신님이 확실하게 말씀해주시지 않아서 진짜인지는 모르겠다만.”
“……? 그 말은 마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래.”
그런 내 질문에 담담하게 대답하는 헬레나.
어? 잠깐만?
“마족은 누구나 마신과 대화를 할 수 있다거나 그런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않으냐. 지금으로선 내가 유일하다. 다음 마왕이 정해진다면 유일은 아니게 되겠지만 말이지.”
그 말을 들으니 헬레나는 단순히 마계 서열 1위였던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라니.
그런 거 용신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것 중에서는 시스티아 밖에 없는데?
“혹시 인간 측의 성녀와 비슷한 거라든가…?”
“음….”
헬레나는 그렇게 잠시 뜸을 들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어 나에게 말한다.
“비슷한 거라…. 그런 표현은 맞지 않는다. 똑같다고 해야 올바른 표현이겠지. 나 또한 성녀이니까.”
그렇게 자신의 정체에 대해 아주 시원스럽게 밝혀버린다.
헬레나가 성녀라고?
“아니, 하지만 성녀라는 건 마왕이 깨어날 시기에 여신에게 선택받은 소녀를 말하는 게 아니었어?”
“바보 같은 소리 마라. 애초에 성녀라는 직책은 각 신과 연결되어 그 힘을 나눠 받고 그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뜻하는 것이다.”
아니, 그런 말 처음 듣는다고요!
애초에 성녀라는 개념 자체를 인간 측에서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고!
“여신에게 선택받은 건 너의 동료이기도 한 시스티아라는 계집이었지. 그리고 마신님께 선택받은 것은 나다. 용신은 존재하지 않기에 용의 성녀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 모습을 보면 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여신의 시스티아. 마신의 헬레나. 만약에 용신도 있었다면 분명히 그녀가 선택한 성녀도 있었을 것이라 했다.
다들 용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그 육체는 먹혀서 현재 없다고 해도 그 영혼, 정신은 아직 살아 있다.
그렇다는 건 카르아도 누군가 정했던 걸까?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나인데…나에게는 둘과 같은 능력은 없다.
그럼 난 아닐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딱히 누구라고 추측할 만한 존재도 없는데….
아마도 카르아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누군가가 활동하고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은 굉장히 특수하니까 말이지.
추측할 수 있을 만한 정보조차 없다.
“응? 엄마, 왜 그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설마 세라일리도 없고 말이야.
어디까지나 세라는 카르아가 나에게 맡긴 자신의 딸.
그리고 지금의 세라도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약간 특수하기는 해도 보통의 드래곤과 그리 다를 게 없었으니까.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별생각이 다 드는군….
“그런데 너 성녀라면서 왜 마왕 자리를 노리고 있는 거야?”
“성녀가 마왕이 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하고 싶으면 둘 다 하는 거지.”
“아…응. 그렇구나.”
마족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이가 많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느끼는 것 같군….
“애초에 마신님은 강한 존재를 좋아하신다. 그저 재능에 선택받았을 뿐인 성녀와는 다르게 마왕이 된다는 것은 마신님이 인정하신 최강자라는 뜻이지. 이런 명예는 다신 없을 거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꿈에 가득 찬 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헬레나.
그것에 내가 조용히 쓴웃음을 짓고 있으면 여태까지 가만히 있던 세라가 한마디 한다.
“하지만 언니 약하잖아?”
“윽!?”
그건 세라에게 있어서는 오로지 사실일 뿐이었다.
악의없이 단지 사실을 말할 뿐이었지만, 그것은 헬레나에게 효과가 엄청났다.
“나, 난 약하지…않다….”
“언니는 세라한테도 지는데….”
“크윽…!”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라에게는 악의가 전혀 없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사실로 말할 뿐.
그렇게 다시 팩트 폭격을 맞은 헬레나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다.
“나, 나는 약하지 않…아…흑….”
“뭐 만하면 즙부터 짜는 여자는 최악이라고 이모가 말했는데!”
야이씨. 세아, 너 진짜….
조만간 세아와 진득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더 말이 거침없어지는 딸의 모습을 보고 착잡한 마음이 들며 나는, 세라의 말에 제대로 울지도 못하고 훌쩍거리는 헬레나를 안아 주며 달랬다.
뭔가 충격적인 내용을 들었는데 세라의 모습이 나에게는 더 충격적이어서 그다지 인상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거 참 곤란하네….
*
마계에 잠입할 준비가 끝이 났다.
적대 세력에게 척살 대상 1위에 있는 헬레나를 포함해 리리스까지 본래의 신분을 감추고 들어가는 것으로 되었다.
시크리프를 포함해 가장 우수한 부하 몇 명까지 어떻게든 갈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부분은 참 다행이었다.
부려먹을 애들이 없으면 내가 힘들어지잖아.
이번 임무는 위험하기에 세라와 세아는 마을에 놓고 가기로 했다.
둘만 놓고 가기가 굉장히 마음에 걸리긴 했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돌아오는 수밖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크엘프들이 세라를 지키는 것에는 굉장히 협력적이라는 것이다.
따라가지 못하는 시크리프의 부하도 있으니 정말 큰일이 아니라면 문제없을 것이다.
마계에 잠입하기 위해 마족으로 변장하는 것은 리리스의 마법으로 해결되었다.
역시 다른 이를 속이는 쪽의 마법도 특기인지 바로 용화했을 때의 내 뿔과 날개와 꼬리가 마족의 종족과 비슷하게 바뀌었다.
이걸로 겉으로 볼 때는 마족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것에 감탄하는 것만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엄청 잘 어울리세요! 리제 님!”
“오오…아름답구나. 리제.”
“엄마, 예쁘다!”
“하하…아하하….”
다들 진심으로 극찬을 해주지만 나는 전혀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저 수치심을 느끼기만 할 뿐.
…지금 내 몸에는 평생 인연이 없을 거로 생각한 리리스의 드레스가 입혀져 있으니까.
“내가 왜 이 옷을 입어야 해…?”
“그거야 현재 리제 님은 저와 똑같은 서큐버스이시니까요. 그에 맞는 복장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에요.”
“무, 무슨….”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
“음!?”
시스티아의 머릿속에 갑자기 리제의 어떤 장면이 새겨지게 되었다.
“뭐, 뭐야? 시스티아. 너 또 왜 그러냐. 무섭게….”
“…방금 리제의 야한 모습을 본 것 같아. 눈앞에서 보게 되면 그대로 리제에게 달려들어 이런저런 일을 할 것 같은 수준의 강력한 거.”
“네가 드디어 망가지기 시작하는구나….”
시스티아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지만, 하도 그녀의 곁에서 기행(?行)을 자주 목격하던 레온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의미 시스티아의 업보였지만, 이번에는 진짜로 억울했다.
“아, 아니야! 진짜로 그렇게 느꼈다고!”
“아, 네네. 적당히 해주시죠. 성녀님. 리제 누나와 만나지 못하는 날이 계속될수록 망가져 가는구나….”
“지, 진짠데…. 으, 음. 아무튼, 일단 내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해놓자…. 하아…. 리제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힐링하고 싶다….”
리제의 감촉을 다시 되새김하며 미소를 짓는 시스티아. 그 미소는 평소 그녀가 짓는 성녀 미소와 똑같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누나…. 시스티아가 점점 변태 아저씨가 되어가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레온의 고민은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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