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마신(1)
* * *
헬레나와 리리스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
아스타가 만약 정말로 꼭두각시가 된 것이라면 미인계로 붙잡아서 세뇌를 시키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었고, 아직 저항할 의지가 있다면 협력하는 방향으로 잡는다.
물론 이것들은 전부 커티스 녀석이 없는 틈을 타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녀석은 주변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리를 비우는 때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헬레나 쪽은 그 정보를 이미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그에 맞춰 조정한 결과였다.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해도 본디 이 마계의 제일가는 세력.
많이 위험하다고는 해도 영향력은 상당했다.
그렇게 커티스가 없는 틈을 타 우리는 재빠르게 행동했다.
녀석이 남긴 감시역은 특출나게 강한 녀석이 없었기에 리리스의 환술로 속이며 녀석의 세력에 저항할 세력을 모았다.
대부분은 녀석을 진정으로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뜻을 모으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것과 동시에 우리가 빠르게 진행하고 있던 일.
마왕의 자리.
“설마하니 마왕이라는 게 그런 식으로 정해질 줄은 몰랐는데.”
“뭐, 모르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저희 마족 중에서도 아는 이는 얼마 없으니.”
“…….”
마왕의 자리에 어울리는 자.
일단 무력이 기본 바탕에 깔렸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이가 훨씬 더 여신 메르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느냐.
인간이 아닌 여신 메르를 향한 것이라는 점이 포인트였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덤이라는 느낌?
그렇다는 것은 마신이 마왕을 정해 인간계를 공격하는 확실한 목표는 여신 메르라는 것이 된다.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마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르지만…성녀인 헬레나에게도 자세한 건 말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대리라고도 할 수 있는 마왕에게도 말했다는 말이 없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말하기 싫은 일일까?
“근데 헬레나는 인간과의 관계 개선이 목표 아니었어?”
“마신님은 어디까지나 여신이 싫으신 거고 인간이 싫으신 건 아니다.”
“어느 쪽이든 연관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인간 사회에 여신이라는 존재는 절대적이다.
교단은 각 국가에 침투해 있기에 여신의 존재는 절대적인 곳도 있다.
“거기에 마왕이 되는 조건이 여신에 대한 악감정이라면…”
“그건 괜찮다. 여신은 나도 싫어하니까.”
“음….”
그건 모순된 말이 아닐까?
“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다만 어떻게든 하기 위해서라도 난 마왕이 되어야 하고 마계를 통합해야만 한다.”
“상당히 어려운 길이 될 거야.”
“그건 각오하고 있다. 일이 잘 흘러간다고 해도 인간이나 다른 종족과 곧바로 관계 개선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야 하겠지. 뭔가 큰 계기가 생긴다면 크게 단축할 수 있겠지만 말이지.”
“계기라….”
그 말에 나는 아디스만이 떠올랐다.
녀석은 말하자면 모든 종족에게 있어 공통의 적이다.
놈이 세계 전체를 위협하는 어떤 일을 터트린다면 그게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걸 못하게 하는 게 지금 해야 하는 일이기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런 게 없더라도 노력해야만 하겠지. 그때는 잘 부탁한다. 리제.”
“그래. 알았어.”
헬레나의 진심 어린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 그럼 이제 슬슬 아니야?”
마계 하늘에 떠 있는 붉은 달이 더욱 새빨갛게 물든다.
시간으로 치면 24시가 되었다는 증거.
“음.”
조그마한 몸으로 계속 나에게 안겨 있던 헬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바로 곁에는 도시 중앙에 서 있는 거대한 마왕성.
마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왕성은 마왕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사용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마왕이라는 존재를 정하는 순간부터 사용된다고 해야 하나?
방금 말했던 것은 어디까지나 마왕이 되는 조건이고, 그 조건 이후에 클리어해야 하는 것이 있다.
성은 탑을 등반하듯이 올라가야 하는 구조로 우리 둘은 그것을 올라가야만 한다.
그리고 최상층까지 올라가는 것이 마왕이 되는 방법.
“꽉 잡고 있어.”
“음.”
내 옷을 꽉 잡는 것을 느끼며 날아올라 성벽을 지나간다.
“하암~ 진짜 너무 따분하다….”
“그러게…. 여길 침입할 녀석이 어디에 있다고…. 아직 선정식도 멀었는데 말이야.”
내성에서 경비를 서는 자들의 목소리를 지나치며 나는 내가 파악하고 있던 곳까지 날아간다.
정말 리리스의 환술은 보면 볼수록 굉장하네….
웬만한 공격 기술보다 훨씬 매력적인 힘이다.
“좋아. 여기까지 오면 됐어.”
“정말로 이곳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건가?”
“그렇다니까.”
내가 주시하고 있던 곳에 내려서서 그런 대화를 나눈다.
정말 최소한의 경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기에 마왕성은 정말 고요했다.
그런 와중 나는 내 기억을 따라 어떤 것을 찾기 시작했다.
마왕성 근처에 있는 많은 장식물 중에 꽤 특징적으로 자리 잡는 외뿔의 가고일 상.
그 바로 뒤편을 나는 더듬거린다.
“이거다!”
그리고 찾아낸다.
크르릉!
손끝에 걸리는 부분을 누르면 마찰음과 함께 성 한쪽이 문과 같이 열린다.
“저, 정말로 있을 줄이야….”
“내가 반드시 있다고 했잖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안도했다.
마왕성에 존재하는 비밀통로.
게임에서 용사가 마왕성에 침입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정면에서 쳐들어가는 거보다 쉽고 시간을 단축한다.
여태까지의 경험상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약간 불안한 마음이 있긴 했는데 정말 다행이다.
“자, 들어가자.”
나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 헬레나를 내려놓고 그 조그마한 손을 잡아 안으로 들어간다.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 선정식 같은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럼, 너만 알고 있어. 그러면 다음 대는 아무런 문제 없잖아.”
“…….”
마왕성은 공중에서 침입을 막는 강력한 결계가 있기에 출입할 방법이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뿐인데, 후보자 중 누가 먼저 성의 마지막까지 오르느냐를 경쟁하는 선정식을 제외하면 엄중히 봉인되어 있어서 들어갈 방법이 없다.
하지만 지금 이 방법은 모든 것을 깡그리 무시하고 손쉽게 새치기를 할 방법이다.
헬레나가 조그마한 머리를 들어 올려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느껴진다.
그 시선에는 호기심이 잔뜩 어려 있었는데, 내가 사전에 캐묻는 건 금지라 했기에 물어보고 싶어도 못 물어보고 있는 거다.
그런 헬레나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게임을 생각하며 나아간다.
비밀통로는 별다른 건 없고 계속 쭉 이어지는 길과 계단만이 존재한다.
“길이…막혔다.”
“기다려 봐.”
그곳을 계속 나아가면 막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도 숨겨진 버튼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누르면 길이 열린다.
아니, 정확히는 탑의 시작이라고 해야 하나?
“오오…. 여기가 성의 내부인가.”
내부는 처음 보는지 눈을 빛내며 두리번거리는 헬레나.
불빛 하나 없는 새까만 어둠이 드리워진 성의 내부.
탑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기본 성이기에 그럴싸한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여기는 어디쯤이지?”
“6층인가 그럴 거야.”
층수로 표현되지 않아서 정확히는 잘 모르겠는데, 절반 정도로 기억하고 있으니 맞을 거다.
“마왕성 꼭대기가 12층. 아니, 정확히는 13층인가?”
“맞다. 12층이 마왕이 지내는 곳이고 13층이 마신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뵐 수 있는 장소지.”
게임에서는 12층에서 모든 게 끝나니 말이야. 13층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게임 때와는 다르게 우리 목표는 13층.
어떻게든 헬레나를 거기까지 보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그럼 얼른 출발하자. 녀석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까.”
“음. 그러자꾸나.”
우리 둘이 마왕성 공략.
나머지는 곧 있으면 돌아올, 아니 어쩌면 지금 돌아왔을지도 모르는 커티스와 그를 따르는 세력을 저지하는 일.
숫자 적으로는 이쪽이 유리하긴 하지만, 질적으로 보면 저쪽이 우세하다.
리리스의 환술이 강력하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면 그리 쓸만한 게 못 된다.
아스타도 내가 기억하는 마왕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은 굉장히 허약하다.
확실히 강하기는 하지만 많이 부족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그보다도 마계 전체의 힘이 약해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커티스에 의해 척살된 강한 마족도 상당히 많으며 아스타의 경우는 커티스의 아래에서 관리를 받고 있던 터라 여러모로 단련할 기회가 사라졌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철저히 관리만 받고 있으면 된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육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너무 과한 생각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헬레나와 마왕성 내부를 걷고 있으면 철그럭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기척.
그것은 생명체가 내는 것이 아닌 무기질한 것이었다.
“벌써 이렇게 우글우글 있네….”
공간 가득 빽빽이 메운 갑옷.
투구에는 푸른빛으로 이글이글 불타는 불빛이 본래 사람이라면 눈이 있어야 할 부분에서 타오르고 있다.
그것들은 검, 창, 도끼 등 무기를 하나씩 들고 일제히 이쪽을 바라본다.
“단축한 만큼 여기서부터는 최대한 성실히 잡으면서 올라가야 할 거다.”
“알고 있어. 그래야 네 힘도 회복하지.”
마왕 후보가 마왕성이라는 탑을 오르는 것은 단순히 시련이라는 이유만이 아닌 그 힘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한 것도 있다.
이곳에서 나오는 몬스터를 잡으면 잡을수록 그 힘을 흡수할 수 있다.
게임으로 치면 몬스터를 잡아 경험치를 올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헬레나를 호위하면서 몬스터와 싸우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막타는 헬레나에게 넘겨야 한다.
그래야 힘을 회복시킬 수 있을 테니까.
얼떨결에 이 세계에 와서 버스 기사가 되어버렸다.
“죽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도 꽤 힘들 것 같은데….”
지금 내 수준에서 저것들은 그저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아직 유미네의 수준에는 못 미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미네가 너무 강한 것이다.
요즘은 상태창도 점점 애매하게 되어버려서 모르겠는데 이미 게임에서 본 용사의 수준은 넘지 않았을까?
물론 어디까지나 내가 키웠던 용사 캐릭터의 이야기지만 말이지.
올리기가 정말 힘들 뿐이지 게임에서의 성장 한계는 없었으니까, 전 유저를 보면 정말 다양하게 있었지.
어쨌든 그 수준의 용사라고 해도 마왕성에 쳐들어가서 마왕을 이길 정도는 된다는 거다.
그러니 이곳은 문제가 전혀 없다.
“자, 그럼 어디….”
적당히 몸에 힘을 푼다.
너무 강하게 들어가지 않게.
어디까지나 적당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음…. 리제여. 이번에도 잔해밖에 남지 않았구나.”
처참하게 부서진 고철을 손가락으로 콕콕 찌르는 헬레나.
그런 헬레나의 곁에서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평소와 같은 오러 사용. 이제는 그리 어려울 것도 없이 이 행동이….
“왜 조절이 안 돼?”
좀처럼 제어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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