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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 마신(3) (100/107)

〈 100화 〉 마신(3)

* * *

내가 이 세계에 온 것은 분명 어떤 초월적인 존재에게 불려 오게 된 것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확신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 그게 확정되어버렸다.

내 눈앞의 마신으로 불리는 존재에게.

“창조주라는 건 창조신님을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그렇다. 아무래도 그거까진 알고 있던 모양이로군.”

“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말이죠. 그리고 지금 그게 확정되어버렸네요.”

그렇게 말하면 마신은 마치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웃는다.

얼굴이 쓸데없이 잘생겨서 굉장히 재수 없는데, 사람을 깔보는 듯한 눈빛이 더 재수가 없다.

신이라는 존재이니 오만해질 수밖에 없긴 하겠지만….

어쩐지 마신은 좋아질 수는 없을 것 같아.

“헬레나도 할 일을 끝냈으니 일으켜도 되겠죠?”

“자, 잠깐. 리제!”

아직도 엎드리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헬레나의 조그마한 몸을 일으켜 안았다.

할 일도 다 끝난 거 같은데 이런 어린아이(물론 진짜는 아니지만)를 계속 그런 자세로 있게 하는 건 영 모양새가 안 좋았으니까.

게다가 마신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 같고.

“아무래도 좋다. 무녀는 무녀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지.”

“환영하지 않는다는 듯이 들리는데요?”

“당연하다. 짐이 의식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이곳에 온 것이니 말이지.”

아무래도 마왕의식의 날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멋대로 이곳에 쳐들어온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아니, 이건 정확히는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이 문제인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고 나에게는 아무런 감정도, 정확히는 호의 비슷한 감정이 있는 것 같다만….

“우리가 이곳까지 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알고 계신 가요?”

“마계는 결국 실력이 전부다. 그게 없다면 강자에게 굴복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 말은 상황파악은 하고 있다는 이야기란 말이지?

“아무리 약육강식이라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겁니까?”

“짐에게 설교할 생각인가? 이방인.”

“힉….”

호의적인 시선이 금방 불쾌함으로 물들었다.

그것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살벌한 기운이 넘실넘실 넘쳐흘렀다.

성격답게 자신에게 대드는 존재에게는 용서가 없다는 건가.

내 품에서 덜덜 떠는 헬레나를 끌어안고 보호하며 나는 다시금 말한다.

“지금 상황이 당신에게도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니라는 것만을 말씀드리고 싶을 뿐입니다.”

“흥. 그 추악한 잡종이 짐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실제로 용신님은 당하셨습니다.”

“그 녀석은 무력해서 당한 게 아니다!!!”

“!?”

정말 순수한 분노의 표출.

아까보다도 몇 배는 더한 압박이 느껴져 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잠시.

그 기운을 거둔 마신은 이를 뿌득 갈았다.

“그 녀석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했을 뿐이다. 너무나 미련할 정도로….”

“…….”

그게 어떤 것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신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맡은 종족을 지키는 것을 창조신으로부터 명받았다.

여신이 인간을 중심으로 한 지상의 모든 종족에게 힘을 빌려주며 존속하게 하고, 마신은 마족들이 강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며, 용신은 가장 고위 종족 중 하나인 드래곤의 존속 및 조화를 맡는다.

그리고 용신 카르아는 다른 종족들이 섞이며 태어난 용인이라는 종족에 대해서도 자신의 아이들과 같이 돌보았다.

“녀석은 그 잡종을 신뢰했다. 반쪽짜리라도 자신이 지켜야 할 존재라며. 하지만 그게 녀석이 저지른 큰 실수다. 열 받게도 일찌감치 손을 뗀 하얀 년이 현명한 판단을 했다 할 수 있지.”

하얀 년은 여신 메르를 말하는 거겠지.

어지간히 싫어하는지 하얀 년이라고 하는 순간에도 얼굴이 팍 구겨졌다.

흔히 있는 믿었다가 뒤통수 맞았다는 상황.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나는 단지 약간의 의문이 들었었다.

녀석은 어떤 식으로 용신을 먹을 힘을 얻었는가.

어째서 용신을 포함한 다른 신을 먹을 생각했는가.

녀석을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어쩌면 이들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지는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속여서 이기는 것도 약육강식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그것과 이건 다르다.”

“하지만….”

“다르다고 했다….”

마치 으르렁거리듯 낮게 말하는 모습을 보니 여기까지 해야겠군.

분명 본인이 말하는 것이 모순덩어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다.

“그렇게 그 잡종이 싫으시면 저도 어떻게 보면 똑같은 잡종인데 괜찮으시겠어요?”

“넌 특별하다. 절반이 녀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니.”

“…….”

아~ 그러니까 주관적인 생각이 마구 들어간 판단이라 이거지?

신이라는 존재가 그래도 되는 거야?

…아니, 아니지. 여신도 어떻게 보면 편애하는 경향이 있으니 마신은 그러지 말라는 건 없잖아.

대신 그 대상이 특수하다는 것뿐이지.

“당신이 용신님과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건 정말입니까?”

“……사실이다.”

태연한 척 대답하긴 했는데, 미묘하게 대답이 느리다.

거기에 표정도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이건 혹시….

“그렇다면 용신님에게 자식이 있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

이번 말에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의미.

“그 반응은 모르고 계셨군요?”

“그, 그럴 리가 없다. 카르아에게 자식이라니…!”

“부정하셔도 제가 맡아서 기르고 있으니까요.”

그 말에 내 품에 있던 헬레나의 몸이 움찔 떨렸다.

내가 말하는 게 누구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적당히 지껄이는 거라면 용서하지 않겠다….”

“저는 용신의 수호자입니다.”

“녀석은 후계도 만들지 못하고 겨우 정신의 일부만이 봉인이라는 형태로 여태까지 보냈을 거다!”

“이런 일로 거짓말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할 말이 없어진 마신이 그렇게 나를 노려보지만,

“아니, 설마…? 내가 얼마 전에 순간적으로 느낀 건…?”

순간적으로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렇게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히 물어온다.

“이방인. 그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건 왜 물어보시죠?”

“그 아이를 만나봐야겠다. 진짜인지 아닌지.”

“…….”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다짜고짜 세라를 만나야겠다고?

그것과 동시에 놀란 것은 마신에게서 느껴지는 다급함이었다.

얼른 확인을 해봐야 하겠다는 느낌.

“…죄송하지만 안 될 거 같습니다.”

“뭐라고?”

“그 아이는 지금 제 딸입니다. 처음에는 용신님께 맡았을 뿐이지만, 지금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지요. 그 아이를 꼭 봐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씀해주지 않는 이상은 안 됩니다.”

“…….”

그런 내 말에 나를 힘껏 노려보는 마신. 너무 과잉 반응하는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아니다.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나는 세라의 부모이니까. 게다가 마신이라는 존재는 아직 신뢰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세라의 아빠는 아닌 거 같고.

“그런가…. 알았다.”

또 뭔가 나를 위협하려 하는가 싶어 준비하고 있었더니 그런 말을 하며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진짜 알 수가 없네….

어째서 그런 말을 한 건지 궁금은 한데 분명 말해주지는 않겠지.

“…그건 그렇고 저희가 이곳에 온 목적은 아십니까?”

“무녀를 마왕으로 만들어 달라는 이야기를 하러 온 거겠지.”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가능합니까? 불가능합니까?”

돌리고 있던 시선이 헬레나에게 향한다. 더는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는 안고 있던 그녀를 내려놓았다.

그 시선을 마주 보며 마른침을 삼키며 그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무녀라 한들 재능은 충분하다. 힘은 떨어져 있다고 해도 보충만 하면 아마 문제는 없겠지. 거기에 내가 정한 의식의 날은 아니더라도 이곳까지 오기도 했다. 확실히 자격만으로 보면 충분하다.”

그 말은 내 질문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도 헬레나도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야 알고 있으니까. 이렇게 쓸데없이 장황하게 말한다는 것은….

“하지만 불가능하다.”

결국, 최종으로는 부정적인 대답을 한다는 것.

“이유를 물어봐도 됩니까?”

“간단하다. 녀석보다 더 합당한 존재가 있으니까.”

“뭐라고요?”

“…역시.”

나는 의문. 헬레나는 이해.

그리고 스멀스멀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불안감.

떠오르는 것은 내게 쌓이던 마기.

“이방인. 리제. 너다.”

“아…?”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이 짜증 나는 마신은?

“너에게는 자격이 있다. 그러니 다음 마왕은 너로 정하지. 그 뒤에 다음 마왕을 무녀로 정하든 다른 적당한 이로 정하든 마음대로 해라.”

“아니, 진짜….”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야?

“뽑아라.”

그렇게 놀라고 있는 사이 바로 내 앞에 검 한 자루가 나타났다.

이곳에 오기 전에 봤던 마검 그리샤다.

아니, 초대 마왕 밖에 뽑지 못한 마검을 왜 나한테….

“그걸 뽑으면 이제부터 넌 마왕이다.”

“아니, 이걸 왜 나한테…”

“뽑아라.”

그것은 강요하는 것으로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지금의 나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넌 뽑아야 한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쿠구궁!

우리가 있던 공간 전체가 아주 강한 충격을 받은 듯 흔들린다.

큰 지진이라도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충격에 몸이 휘청거렸다.

“아읏!?”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는 헬레나를 챙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길래 이런 일이….

“뽑아!!”

“!?”

다급한 마신의 목소리.

이번에는 생각하는 것보다도 먼저 몸이 움직였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고 말하듯이.

그렇게 내 손이 마검에 닿아 그것이 손쉽게 뽑히는 것과 동시에­

­푹!

마신의 가슴에서 새빨간 피가 튀며 무언가 튀어나왔다.

손과 팔이었다.

손에는 심장으로 보이는 것이 아직도 맥동하고 있었고 팔에는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 주인의 얼굴은 나오지 않았지만, 난 그게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이 더럽고 소름 돋는 기색은 이 세계에서 한 명밖에 없다.

“까꿍~”

“개자식!”

그렇게 마신의 뒤에서 얼굴을 빼꼼 내민 놈에게 나는 욕을 박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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