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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1화 〉 마신(4) (101/107)

〈 101화 〉 마신(4)

* * *

“마, 말도 안 된다. 어떻게 신의 영역에 허락도 없이….”

마신이 당한 모습에 얼굴이 새파래져서 몸을 벌벌 떠는 헬레나.

나는 상당히 충격을 받은 헬레나의 몸을 감싸 안았다.

“흥…더러운 잡종. 그 천박한 손버릇은 아직 버리지 못했군.”

가슴이 꿰뚫려 심장을 적출당했음에도 마신은 표정 변화 하나 없이 그저 입가에 한줄기 피가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마신이 오히려 재미가 있는지 아디스만은 와~ 하고 재미있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당신도 그런 남을 깔보는 말투는 여전하네. 그거 때문에 옛날에 카르아에게 혼난 거 기억나지 않아?”

“까불지 마라…. 네놈 따위가 입에 올려도 좋은 이름이 아니다.”

“아니. 돼. 그야 지금의 난 그 카르아라고 해도 되는 상태니까.”

너라면 알고 있잖아? 라며 비웃는 목소리에 마신의 얼굴이 짜증 난다는 듯이 얼굴이 구겨졌다.

몇 번 그가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이 가장 심했던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녀석이 했던 말은 어딘가 걸리는 말이었다.

본인 = 카르아 라는 공식이 성립된다는 듯한 말.

“…설마!?”

최악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조금이라도 생각하기 싫은 그런 상황.

“그럼 시간이 아까우니 바로…”

“…!”

그렇게 내가 생각하고 있으면 녀석이 마신의 몸에서 팔을 뽑아내 그 손에 들린 심장을 입에 가져간다.

그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나는 그것을 저지하기 위해 움직이려 했다.

[움직이지 마라.]

“!?”

이 목소리가 없었다면 나는 분명히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주춤하는 사이 녀석은 마치 맛있는 과실을 입에 대는 듯이 그것을 으적으적 먹기 시작했다.

“우욱….”

그 그로테스크함에 헬레나가 헛구역질하고 나도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나도 몬스터나 인간은 죽여본 적이 있기에 어느 정도 면역은 있었지만, 저 장면은 상상을 초월했다.

“아~ 맛있었다. 역시 이 순간이 제일이라니까.”

입가를 스윽 닦고는 황홀한 듯이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면 곧 그 몸에서는 엄청난 양의 마기가 급격하게 부풀어 올랐다.

마신에게서 느껴진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 힘만큼은 비등했다.

그의 힘을 먹어버린 것이다.

“오우야. 이거 길들이려면 조금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는데?”

“하…. 네놈 따위가 길들일 수 있을 거로 생각하나?”

“뭐, 해봐야지. 그나저나 뭔가 좀 이상하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얌전한 거지? 언제나 나만 보면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

“기습한 놈이 말은 잘하는군….”

“으음………. 뭐 아무래도 좋나.”

조금 의심스럽게 마신을 바라보던 녀석은 그 시선을 거두고 나를 향했다.

“안녕~ 리제~ 내가 놀아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을 거 같아서 말이야.”

“할 일 끝났으면 얼른 꺼져. 망할 자식.”

“어이쿠. 너무 그렇게 인상 찡그리지 마. 예쁜 얼굴이 엉망이라고? 뭐, 그래도 예쁘긴 한데 말이지.”

“…….”

이 새끼는 안 본 사이에 더 능글맞아졌다 해야 하나. 굉장히 기분이 나쁘다.

나에게 보내는 저 호의 섞인 시선도 굉장히 역겹다.

당장에라도 검을 들고 달려들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뭐, 아직은 때가 아니니 이만 넘어갈게. 그럼 나중에 보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그런 나를 보고 녀석은 피식 웃어 보이고는 갑자기 나타났을 때와 똑같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기척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는 헬레나를 데리고 급히 마신에게로 향했다.

“망할 잡종이…갔군.”

“마, 마신님…!”

그러면 마신은 이제는 허세를 부릴 힘도 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헬레나가 서둘러 그 곁으로 가 상태를 확인한다.

하지만 볼 것도 없었다.

근원 자체를 빼앗긴 존재가 살아남을 길은 없다.

“…어째서 일부러 당하신 겁니까?”

“어…?”

그러니 나는 이 마신이라는 존재가 사라지기 전에 그것을 알아야만 했다.

“리, 리제. 그게 무슨 소리냐.”

“그 답은 나 말고 이 사람이 잘 알고 있겠지.”

“후, 후후…크하하하!”

나로서는 이래저래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어 그리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에 마신은 재밌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크게 웃음 짓는 그는 어딘가 굉장히 홀가분하게 보였다.

마치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는 듯이.

“우리는…쓸데없이 너무 오래 존재했다. 그리고 받은 저주는 우리의 근원마저 오염시켰지.”

“그게 무슨….”

“저주란, 감정이라는 이름의 괴물이다. 나와 카르아… 그리고 하얀, 아니 메르와의 사이에서 생긴 그건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받았지. 생각해보면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냥 하다못해 어느 한 쪽이 사과 한마디라도 했다면 많은 게 달라졌겠지….”

그것이 정확히 무슨 일이었는지는 모른다. 그렇지만, 어떤 일인지는 대충 예상이 되었다.

그리고 알았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라고 해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본디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너에게 카르아의 자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그 아이가 있다면 문제없을 거다.”

“자세한 설명은….”

“시간이…없군. 단지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저 검의 사용법….”

마신이 가리킨 것은 마검. 그리고 곧 그 손이 내 손에 닿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검의 사용법.

…이건 설마?

“이러려고 저에게 저걸…. 그렇지만 이건 완전히 도박이지 않습니까.”

“도박이라도 확률이 있는 이상 거기에 거는 게 좋지 않겠나. 지금의 너라면 잘 알 것이다. 얼마나 많은 너와 같은 이방인들이 끝이 없는 시작을 하여 얼마나 이 세계가 ‘재시작’을 했는지를.”

나와 같은 이방인. 즉, 나와 같은 게임을 하고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한 엔딩을 본 사람들.

그 하나하나가 끝이 없는 시작이며 재시작.

“…나머지는 메르에게 가보거라. 녀석도 내가 사라진 것을 알면 고집을 꺾을 거다….”

“…….”

나는 끄덕이는 것으로 답한다. 그러면 마신의 시선은 곧바로 우리가 하는 대화를 이해하지 못해 당황하고 있는 헬레나에게 향한다.

“마족과 인간과의 사이를 개선하고 싶다 하였나.”

“그, 그건….”

“리제를 따라 보좌해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길이 열릴 거다….”

“마신님….”

“내게 남은 건 얼마 안 되지만….”

마신은 헬레나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힘을 긁어모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헬레나에게 쏟았다.

그것은 확실히 전체적인 힘으로는 미약한 힘이었지만, 현재 헬레나의 몸을 본래 상태로 돌리는 일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었을까 싶을 정도의 외모. 작았을 때의 티가 살짝 나는 것을 보면 확실하게 헬레나의 어른 모습이었다.

“이걸로 겨우…쉴 수 있겠군.”

“마신님…!”

“나는 반드시 너희의 좋은 신은 아니었겠지. 그럼에도 그리 슬퍼해 주는 건가…. 나쁘지는 않군…”

마신의 몸이 투명해져 사라진다. 한때 신이었던 존재는 그 모든 힘을 빼앗기고 다른 이에게 주어 사라진다.

“부디 다시 보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

“…….”

그것은 나도 깊게 동의하는 바였다.

“아…카르아. 너는 거기에 있었군….”

마신 오르사아드. 그는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그 존재를 끝냈다.

*

헬레나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나는 마검만을 챙긴 후 곧바로 마왕성을 빠져나왔다.

그 녀석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분명 마신이 가장 큰 목적이겠지만, 그것 외에도 이 마계, 마족이 목적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는데.

내가 알고 있는 애매한 미래도 나라는 존재가 개입함으로써 더 애매해지고 있는 걸까.

“역시나…!”

밖으로 나와 목격한 것은 엉망진창이 된 도시. 갖은 비명, 코를 찌르는 피 냄새. 그리고 싸우는 소리였다.

“도, 도대체 어디서 이런 수의 마물이…!”

도시를 공격하고 있는 존재는 벌레 형태의 마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것들에 기생 되어 움직여지고 있는 것들이라든지.

마치 자기들 세상인 마냥 모든 것을 먹어치우려는 듯이 움직였다.

“아니야. 저건…”

먹어치운다기보다는 먹이를 어딘가로 옮겨간다고 하는 행동이 맞는 거 같다.

마치 개미나 벌과 같이 먹이 비축을 위한 행동.

“빨리 도우러 가야 합니다!”

“알고 있…!?”

­쾅!

다급하게 외치는 헬레나의 말에 대답하려는 순간.

우리 근처에 무언가가 큰 힘을 받아 빠르게 떨어져 내리며 바닥에 박혔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니.

“퉤!”

“유미네!”

핏덩이를 뱉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유미네였다.

그 몸에는 큰 상처는 없었지만 자잘한 상처가 많이 있었다.

“리제인가. 그 모습을 보면 무사히 일을 마친 건가?”

“무사하다 해야 할지 좀 복잡하지만, 아무튼, 그거보다 어떻게 된 거예요?”

“제법 강한 녀석이 있었다. 그 뱀파이어 로드라고 하는 놈 말이지.”

“유미네가 이기지 못할 정도란 말이에요?”

“그런 게 아니다!”

그런 내 말에 발끈해서 언성이 높아지는 유미네. 그게 뭔가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어서 굉장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놈이 내가 불리한 곳으로 이동하고 다녀서 싸우기 힘들 뿐이다….”

“아아….”

대충 어떤 일인지 알겠다.

다른 마족을 신경 쓰며 싸워야 하는 유미네에게 있어서 이곳은 불리한 곳이다.

상대가 인질을 잡고 싸우면 불리하게 되는 것과 똑같은 일.

제 실력을 내지 못하고 당하는 게 열 받는 것이다.

“그보다 리제. 마왕성에서 할 일이 끝났다면 넌 먼저 다크엘프 마을로 돌아가라.”

“돌아가라고요?”

“그래.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다. 여긴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 세라와 세아, 그 아이들에게 가.”

아직도 나와 연결된 세라에게서는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고 있다.

무언가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하지만 다크엘프 마을이 습격을 당하는 건 미래에 있는 일이니 유미네가 말하는 느낌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거기에 나도 얼른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세라나 세아가 마음에 걸리는 것도 있지만, 지금 상황이 너무 급하게 돌아가고 있다.

얼른 다른 두 곳을 돌고 여신 메르와 시스티아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나는…좋든 싫든 마왕이다.

아직 시간은 남아 있으니 이곳을 해결하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가십시오. 마왕님.”

그런 내 망설임을 알아차렸는지 헬레나가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정식적으로 내가 마왕이 된 것을 인정하는지 나를 존대하며 마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디까지나 임시로 맡는 것이니 그럴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끝내 고쳐지진 않았다.

“알았어.”

나에게 모든 이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하지만 그것을 하기 위한 수단은 가지고 있다.

마신이 말한 재시작을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기선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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