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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 다시 (1) (102/107)

〈 102화 〉 다시 (1)

* * *

한 번 마음을 정하고는 망설임 없이 나는 마계를 나왔다.

당장에 숨겨진 곳이 급하기는 했지만, 그보다 급한 일은 세라와 세아를 만나는 일.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마신이 계속 카르아의 아이를 언급한 것이 신경이 쓰였다.

지금은 아니어도 무슨 일이 생길 확률이 높으니까.

“어?”

“아! 엄마~!”

“세라!”

마계를 황급히 나오면 바로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세라는 눈을 반짝 빛내며 내게 달려왔고, 나도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느끼며 꽉 끌어안았다.

“엄마. 보고 싶었어!”

“나도.”

“어이구. 누가 보면 몇 년 만에 재회한 줄 알겠네.”

“이모도 같이해!”

“아~난 됐어!”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는 근처의 세아를 손으로 잡아 끄며 아주 친근하게 반응하는 세라.

세아도 그게 싫지만은 않은 듯 작게 한숨을 쉬면서 슬쩍 이쪽에 손을 올려둔다.

그것만 봐도 정말 친해졌다는 것이 느껴져서 뭔가 뿌듯하다.

과거를 생각하면 정말…

아니, 잠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보다 너희가 왜 여기에 있어? 마을은?”

“세라가 꼭 가야 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온 거야. 엄마를 위해서 가져와야 할 물건이 있다고.”

“날 위해서?”

“응! 엄마 이거!”

활짝 웃으며 내게 내민 그것을 받았다.

“드래곤 하트?”

그것은 드래곤 하트. 그것도 아마 내가 회수할 예정이었던 숨겨진 장소에서의 물건.

아니, 어떻게…?

“세라야. 이거 어떻게 구해온 거야?”

“웅? 우웅…”

입을 삐죽 내밀고 뭔가 곰곰이 생각을 시작하는 세라.

그런 세라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어째서지? 평소 같으면 간단한 감정이라든지 생각 같은 것이 전해오는데.

“엄마 생각? 같은 게 머리에 파팍~ 떠올라서…그래서 엄마가 필요하다는 게 느껴져서? 그래서 이모랑 같이 가지러 갔어!”

“생각…?”

“응! 엄마가 게임? 이라는 거로 알고 있는 거. 맞지? 그거랑 여기랑 똑같잖아.”

“…!”

그 말에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세아조차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알고 있으니 게임이라는 단어에 놀란 모습을 보였다.

나와 세아와는 다르게 이 세계에서 태어난 세라가 그것을 알 방법은 없다.

있다고 한다면…내 기억을 읽는 것.

어쩌면 카르아가 이 세계에서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나와 세라의 관계가 상하에서 하상이 되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세라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어.

“엄마…? 세라 잘못한 거야…?”

“아니야. 그런 거. 고마워.”

“에헤헤…”

이번에는 아마 생각이 아니고 불안함을 읽은 거겠지.

아무래도 자기 뜻대로 계속 읽을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다.

‘마신이 세라를 신경 쓴 이유를 알 것 같아.’

아직 추측 단계에 불과하지만, 세라는 어쩌면 이 세계의…

­펑!

거기까지 생각하다 폭발음에 중단되었다.

저쪽은 다크엘프 마을이 있는 방향이다.

“오빠. 걱정하지 마. 방비는 해두었으니까.”

“뭐?”

내가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세아가 그렇게 말해왔다.

아니, 얘가 무슨 힘이 있다고 방비를 해뒀단 말인가?

“부서지진 않았어. 그 알잖아? 제국에서 내가 쳤던 결계.”

“아. 세라에게 엄청 맞았었던 그때?”

“아니, 어떻게 생각을 해도…”

창피했던 순간이었는지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처음으로 세라가 인간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했던 때.

그때 보았던 검은 결계.

“그거 내 고유능력이야.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힘이 더 강해져서 웬만한 거엔 절대 안 부서져.”

“그렇게 말하면 괜히 플래그 같은데…”

거기에 세아가 괜히 자신만만하게 힘주며 말하면 더 그럴싸해 보인달까…

“아, 아무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줘.”

“일단 가면서 대충 알려줄게.”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언제까지 안전할지는 모른다.

나는 세아까지 끌어안고 그대로 날았다.

“다 설명하지는 못하고, 그 녀석이 있어. 아마 저기에 있는 게 그놈일 거야.”

세아에게 있어 아디스만은 트라우마 그 자체.

일부러 이름을 빼고 말해도 알아들었는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아니, 솔직히 말하면 괜찮지 않지만, 분명 괜찮아질 거야.”

“너 무리하는 건 아니지?”

재차 하는 말에 괜찮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리고 작은 한숨.

“후…이제 와 생각하면 오빠의 그 충격적인 음치로 제정신이 들었다는 것도 좀 웃기네.”

“그 정도까진 아니지 않아…?”

“자각이 없다는 게 더 악질이거든?”

“……”

그렇게 이상한가?

“아니야! 엄마 잘 불러! 음치 아니야!”

“넌 괜히 편들지 마! 고친다고 해서 고쳐질 수준이 아니니까 그냥 봉인하고 있어야 한다고!”

그렇게 내가 음치냐 아니냐로 티격태격 싸움이 시작된다.

뭐, 어쩔 수 없나…세라는 무조건 내 편이고.

여기선 일단 세아의 말에 따라보자. 민폐 수준이라면 봉인하는 게 맞아…

­퍼엉!

그렇게 쓰게 웃다 보니 다크엘프 마을이 있는 쪽에서 다시금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까보다도 더 강한 폭발.

좀 더 속력을 내서 가보면 마을 전체에 검은 막이 있는 것이 보였다.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모습으로 방어력 하나만큼은 확실히 믿을만한 거 같다.

“오…이거 진짜 안 깨지네?”

“이 개자식아!”

공중에서 턱을 쓰다듬으며 감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놈에게 나는 브레스를 날린다.

“우앗!?”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몸을 옆으로 휙 던지며 잘도 피한다.

그냥 그대로 처맞고 뒤졌으면 좋았을 것을.

세라가 있어서 말부터 생각까지 바르게 쓰고 싶은데 저놈이 있으면 그게 안 된다.

아이의 교육에 좋지 않아.

“와. 리제. 여기에 있다는 건 마계를 그냥 두고 온 거야?”

“네가 뭔 짓을 벌일지 알아야 말이지.”

“하하하! 재밌네. 재밌어.”

짝짝짝, 손뼉 치며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박장대소를 한다.

역시 이 녀석의 사고방식은 어린아이 같은 경향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일까.

불변자 같은 그 성향은 대체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세아야. 너도 참 많이 변했구나.”

“입 닥쳐…그 더러운 입으로 내 이름 부르지 마.”

“아, 세뇌가 풀렸구나?”

이제야 조금 관심이 간다는 그런 느낌으로 그리 말한 녀석은…입을 벌리고 미소를 지었다.

“네 오빠 놀이도 꽤 재밌었는데. 아쉽네~”

보는 사람이 오싹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괴한 미소였다.

마신의 힘을 먹고 또 이상하게 바뀐 것일까?

‘아니, 아니야…’

마신의 존재가 담긴 마검 그리샤의 소유자가 된 지금이라면 알 것 같다.

녀석의 뒤에 어떤 존재가 있으며, 또 그게 누구인지를.

교묘하게 융합되어 있지만, 분명히 다른 것이다.

“우리 리제한테서 떨어졋!”

“!?”

주변이 말 그대로 깨끗하게 정화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순한 신성력.

그 무지막지한 힘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빔 마냥 녀석을 향해 낙하했다.

“으아악!!”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놈의 얼굴이 고통에 물들어 구겨진다.

몸 일부가 타들어 가고 있다.

저것은 분명히 고통과 타격을 주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신성함이 느껴지는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이 세계에 딱 한 사람밖에 없다.

그리고 그녀 곁에는 반드시 한 사람이 존재한다.

“뒈져. 망할 새끼야!”

그것은 다분히 분노가 담긴 칼질이었다.

평소 쓰지 않을 더러운 말을 사용하며 성스러운 검을 턴다.

“끄르륵…!”

마를 멸하는 성검의 공격이 몸을 난도질한다.

몸의 형체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힘을 되찾으면서 회복력이 좋아진 탓인지?

“리제~!”

“시스티아~!”

야호~ 라고 외치며 한 손을 붕붕 흔들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시스티아의 모습과 분노의 칼질을 마친 레온이 땅에 사뿐히 내려서는 모습이 보인다.

흘깃 새까맣게 타버리며 난도질당한 놈을 바라본다.

미동도 하지 않고 공중에 멈춰선 그 모습을 보고 마무리를 지을까 생각하다가, 놈이 재생된 눈알을 굴리고 성대와 입을 움직였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파!! 아프잖아! 뭐 하는 짓이야! 이 썩을 성녀! 용사!”

저렇게까지 분노하는 모습은 처음인 거 같다.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길길이 날뛰는 모습이 너무나 지저분했다.

“너희가 왜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으면 안 되잖아!”

“그딴 건 알 필요 없고. 그 더러운 면상 좀 치워. 우리 리제가 더럽혀지잖아!”

못 본 사이에 시스티아도 입이 좀 많이 험해진 거 같다…?

“리제는 내 신부라고. 이 미친 성녀야!”

“하! 꿈도 야무져! 누가 누구의 신부야? 지랄하지 말고 정화돼라.”

시, 시스티아…?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망할! 계획이 엉망이야! 넌 반드시 그냥 죽이지 않는다. 성녀!!”

“마음대로 해! 이 미친놈아!”

그대로 다시금 하늘에서 떨어지는 신성력의 덩어리.

처음과는 달리 피해를 받은 녀석은 그것에 완전히 타들어 사라져버렸다.

어차피 저것도 분신이다.

하나라도 죽여 놓으면 힘은 뺄 수 있겠지만, 또다시 저 지긋지긋한 얼굴을 봐야만 할 것이다.

“꺄아~ 리제!”

내가 바닥에 내려서서 세라와 세아를 내려놓으면 시스티아가 새하얀 사제복을 펄럭이며 내 품에 뛰어들어왔다.

“리제! 너무 오랜만이야! 습하! 습하! 아, 리제의 냄새. 그리고 이 감촉! 진짜야!”

“아니, 당연히 진짜지…”

“그리고 그 복장은 뭐야. 너무 야하잖아! 잘 어울리지만, 남들에게는 보여주기 싫은데!”

“이건 그저 사정이 있어서…시, 시스티아!”

잔뜩 흥분한 그녀를 어떻게 진정시키나 고민하던 차에 주르륵, 하고 코에서 흘러내리는 새빨간 액체.

“코피! 코피!”

“이 정도는 괜찮아!”

“아니, 전혀 괜찮지 않아!”

감동의 재회가 엉망이었다. 피로 얼룩진 재회…그것도 오로지 시스티아의 코피로…

“하아…점점 심해지네…누나, 그냥 좀 참아줘요. 아마 곧 제정신으로 돌아올 테니.”

“이런 일이 또 있었단 말이야!?”

안 돼! 이럴 순 없어! 시스티아가 시스티아가…!?

“시스티아 언니가 이상해…”

“저게 바로 변태라는 거야. 기억해 둬.”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이건 꿈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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