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화 〉 다시 (2)
* * *
나는 어쩌면 너무 모든 것을 오냐오냐 받아줬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시스티아에게 따끔하게 혼을 냈다.
제정신으로 돌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과연 잘한 일일까?
나는 물론이고 사제복에 질척하게 묻어버린 피를 마법으로 제거하고, 나 자신은 입고 있던 리리스의 드레스를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그 옷을 입고 있으면 흥분이 더 심한 거 같으니 말이다.
한쪽 구석에 그녀를 무릎 꿇고 손을 들게 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울먹이며 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마음이 약해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벌을 관리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다.
[저는 리제의 야한 복장에 흥분해 코피를 쏟는 개변태입니다]
“똑바로 들어. 똑바로.”
“으으…”
자신이 저지른 일을 나무판에 써서 그것을 들게 하는 것은 세아였다.
저거는 내 아이디어가 아니다.
세아가 강력하게 주장해서 어쩔 수 없이 시키게 된 것인데…저게 맞는 걸까?
“시스티아 언니…괜찮아?”
“세라. 가까이 가지 말라고 했지. 변태가 옮는다고.”
“변태라는 건 옮는 거야? 그럼 세라도 아야 하는 거야?”
“아, 아니야! 세라야! 그런 거 아니야! 속으면 안 돼!”
“똑바로 벌 안 서? 그리고 우리 조카한테 다가오지 마. 이 개변태년아…”
누구 동생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신랄하다.
이거 어쩐지 서로 관계가 반대된 듯한 느낌이…?
세아가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해야 맞는 상황이었는데.
“으윽…나 그런 취향 없는데 리제랑 똑같은 얼굴로 그러면 눈 뜰 거 같아.”
“너, 성녀 맞아…? 아니, 본래 성녀들은 죄다 치녀, 음란, 씨받이 같은 태그를 달고 있는 게 기본이었던가…?”
아니, 그건 아니야.
확실히 성녀가 그런 쪽에 많이 쓰이긴 해도 본래 성녀는 그런 게 아니야…
그렇게 납득해버리면 안 돼!
“근데 가슴이 너무 납작해서 흥분이 금방 식어버리네. 다행이다…얼굴이 똑같다고 다가 아니었어.”
“이! 껌딱지 같은 게! 죽여버린다!”
“꺼, 껌딱지…? 아, 아무튼! 난 이제부터 자랄 거거든! 리제같이 폭발적으로 커질 거거든!”
“나도 아직 성장 다 안 끝났어!”
“어, 언니랑 이모 싸우지 마!”
금방이라도 싸움이 발발할 것 같은 상황에서 세라가 그 조그마한 몸으로 어떻게든 말리려고 노력한다.
도대체 어째서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시스티아가 누나와 떨어진 시간 동안 정말 외로워했거든요…그러니까 그…너무 나쁘게 보지 말아주세요.”
“하아…”
쓰게 웃으면서 어떻게든 변호하려 하는 레온이었다.
그래. 확실히 이건 시스티아를 두고 떠나버린 내 책임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곁에서 쭉 있었더라면 저렇게는 되지 않았을 수도…
“아무튼…일단 시간이 없으니 정보교환부터 할까?”
“아, 네. 하지만 그 전에. 누나, 정말 감사합니다.”
양팔을 몸에 딱 붙이고 90도로 인사한다.
그게 어떤 뜻인지 아는 나는 그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감사하면 노력해서 갚아라.”
“네!”
은혜를 느끼지 말라고 말해도 이 아이는 듣지 않을 것이다.
이대로 적당히 맞춰서 더 노력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나도 겸손은 떨지 않는다.
“누나에게 여태까지 있었던 일은 다크엘프에게 대충 들어서 아니까 저희 쪽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간략하게 있었던 일들을 풀어냈다.
리히텐이 무사히 제국을 완전히 장악해서 수도도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는 것.
어느 정도 복구가 완료된 뒤에는 중립 도시 아르테시아에 있는 메르 교단의 본부에서 절차를 거치고 정식으로 레온은 용사, 시스티아는 성녀로서 각 나라에 이번 일에 관한 지원을 요청하고 다녔다는 것.
다만, 그것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일어나지도 않을 것 같은 일에 쉽게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니까.
“특히…왕국은 굉장히 비협조적이었어요. 근데 그것도 다 이유가 있더라고요.”
“이유?”
“이미 적들의 손에 떨어졌어요.”
“뭐…?”
레온의 이야기로는 왕족을 더불어 상층부가 전부 이상해서 조사해본 결과.
그들은 어디까지나 그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괴물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고 한다.
…왕국 일대가 기생충의 근거지가 되었다.
“이 일을 다행이라 하기에는 그렇지만, 그 일 때문에 다른 나라들도 협조적으로 돌아섰달까. 교단에 오히려 부탁을 해왔달까…”
“…어쨌든, 놈들의 근거지가 거기라는 이야기로구나.”
“네.”
“…마을은 어떻게 되었지?”
‘리제’가 자란 마을 에르틸.
끝자락이긴 했지만, 그곳도 왕국령이었다.
“수도에서 멀어질수록 피신할 시간이 있었어요. 마을 사람들은 모두 무사해요.”
“그래…”
거기에 란델과 지냈던 곳과 예전에 시크리프가 있었던 남작가가 있던 곳도 사람들은 일단 무사하다고 한다.
피신한 사람들은 모두 제국에서 받아들여서 제국민처럼 챙겨주고 있다고.
리히텐이 신경을 많이 써줬다는 것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고 아르테시아에 교황님과 각국의 대표가 모여서 지금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그러다가 누나와 함께 다크엘프가 절 찾아왔고, 리제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급히 이곳으로 왔어요.”
“굳이 올 필요는 없었는데…”
“시스티아도 시스티아지만, 저도 뵙고 싶었으니까요.”
레온이 정말로 기쁘다는 듯이 씨익 웃었다.
나도 그것을 마주 보며 웃었다.
이게…이거야말로 정상적인 재회가 아니었는가.
“다시 한번 말해봐! 이 껌딱지!”
“빈유! 빈유! 빈유! 빈유! 쌍둥이면 리제의 반이라도 닮으라고!”
“이게 진짜!!”
“아이참! 둘 다 그만해애~!”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나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아디스만은 이곳에 온 김에 다크엘프를 모조리 죽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세아의 능력 덕분에 막혔기에 일단은 잘 넘어갔다고 할 수 있다.
두 사람과 갑작스러운 재회를 하고 우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마계에 일어난 일도 어떻게든 정리되고 그 주모자였던 커티스도 모습을 감췄다.
합류한 유미네는 결판을 못 내 분해했는데, 아마도 그건 다음에 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렇게 나는 헬레나에게 일단 다크엘프와 마계를 맡겨놓고 나중에 싸울 수 있는 이들을 데리고 합류하라 말해두었다.
마계도 많이 혼란하긴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이건 이 세계가 멸망하느냐는 그런 차원의 이야기니까.
…아마도 모든 게 망하면 재시작을 하겠지만.
…여기서 또 재시작이라.
아마도 흔한 회귀는 아니리라.
돌아가면 나는 보육원의 리제로 시작할 것이다.
레온은 본래의 일을 다 하기 위해 공국에 들렀다 아르테시아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무래도 누나가 걱정이겠지.
“그럼, 정보수집은 부탁한다. 위험하다 싶으면 무조건 튀어.”
“알고 있다.”
시크리프도 정보수집에 보내고 우리는 본래에서 시스티아가 추가된 일행으로 엘프의 숲으로 향하기로 했다.
거기가 마지막이다. 아마도 거기에…그녀가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번 일로 돌아가는 건 찬성이다만…”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아니…역시 저 아이도 데려가는 건가?”
대규모 전이 마법을 준비 중이던 유미네가 자신을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보는 시스티아를 부담스럽다는 듯이 힐끔 쳐다보았다.
“더 성숙한 리제야…그리고 더 커…”
아주 욕망에 충실했다.
여태까지 발산하지 못한 것을 지금 양껏 폭발시킨다는 듯이.
“제게는 세라만큼이나 소중한 아이에요. 지금은 그게 좀…폭주 중이지만, 대충 상대하며 넘겨주세요…최대한 피해는 가지 않게 할게요.”
“으, 으음…”
아무리 그래도 드래곤 로드인 그녀에게 달려들 생각은 하지 않을 거 같지만, 만일을 위해서 조심은 해두자.
뭣하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할 것이다.
두 사람을 위해서라도…
“…뭐, 성녀이기도 하고 네 소중한 사람이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네?”
아니, 이 사람이 어쩐 일로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할머니는 엄마랑 더 친해지고 싶은 거야!”
“어? 엉?”
“그런 건 아니다. 흠흠. 준비는 끝났으니 얼른 출발하지. 아, 하지만 마지막 점검을 좀 해볼까…”
“꺄~ 할머니! 갑자기 안으면 간지러워~!”
세라를 꼬옥 안고는 쌩하고 멀어지는 유미네.
표정은 그리 변화가 없었지만, 그 귀가 살짝 빨갛다.
창피해하고 있다고?
“꼭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질질 끌고 있을 수도 없잖아.”
“세아…”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남처럼 있는 거보다는 좀 더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게 낫다고 봐. 있을 때 잘하라는 말도 있잖아. 뭐, 지금 상황에 그리 어울리는 말은 아닌 거 같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거보단 낫지 않을까. 거기에…”
“거기에?”
“엄마가 있는 느낌이 어떤 건지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
“……”
그 말에 내가 뭐라 할 수 있을까.
원래 세계에서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아기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른다.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재혼한 새아버지와 함께 내 나이 16살이 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제 태어나 1년도 안 된 세아를 남겨두고.
내가 이를 악물고 부족함 없이 키웠다고 주장한들, 세아 본인에게 채워지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부모님. 특히 엄마의 품을 부러워했던 세아다.
이 세계에는 자신을 낳아준 엄마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생각하는 게 있는 거겠지.
나는 조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근데 왜 적극적으로 행동 안 해?”
“…세뇌당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저지른 일도 있고, 감각을 잘 모르겠달까…아, 몰라! 그렇게 보면서 웃지 마! 쓰다듬지 마!”
내 손길을 요리조리 피하며 씩씩거리는 세아.
어느새 이렇게 컸구나…
조금 감격하면서도, 언제까지고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언젠가는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
나는 이 세계에 오기 전에 봤던 ‘해피엔딩’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했다.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