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다시 (3)
* * *
엘프의 숲에 도착한 우리는 다시금 둘로 나뉘었다.
봉인과 드래곤들의 상태를 지켜보기 위해 유미네는 바로 둥지로 갔고, 그것을 세라와 세아가 따라갔다.
세아는 좀 더 유미네에게 발을 내딛기로 한 모양이었다.
아직 우리에게는 복잡한 감정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대로만 간다면 가까운 미래에는 반드시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세라도 내 기억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세아를 눈치껏 도와주고 있으니, 정말 복덩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엘프의 숲 밖에서 안내역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시스티아와 나뿐이 되었다.
뭔가 또 폭주하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한 내게 그녀는 온화하게 웃으며 내게 말한다.
“다행이네.”
“응?”
“가족이랑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마치 자기 일처럼 기뻐하는 시스티아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녀 같았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듣고 바로 대답하기 힘들어하는 내가 있었다.
현실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은 하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가족과의 재회…
이별만 겪어왔던 내게 익숙하지 않은 말이었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거로 생각했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소중하게 키운 여동생이 눈앞에서 죽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게임의 그 메시지를 보게 되어 눈을 뜨니 이 세계다.
이것은 과연 내가 원한 해피엔딩? 아니면 누군가가 짜놓은 대로 움직인 결과?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내게는 다시금 책임져야 할 존재가 많아졌기에.
“리제는 너무 복잡하게 생각해.”
“아흐어?”
시스티아가 내 얼굴에 손을 뻗어 내 볼을 잡아 쭈욱 늘렸다.
개구쟁이같이 한쪽 입가를 올려 웃으면서 그녀는 내게 말한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딱히 관계가 회복되지 않을 정도는 아닌 거 같고, 이럴 때는 그냥 아무 생각하지 말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 같아.”
“……”
계속 내 볼을 장난감같이 가지고 놀았다.
내게 한마디 해주면서 그 미소 속에서 어디선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본인의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제는 영영 만날 수 없는 가족.
살아서 곁에 있을 때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아.
그녀가 내게 그리 생각하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떻게 보육원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들리는 것만 같았다.
가끔은 너무 생각만 하지 말고 과감하게.
“…알았어. 노력해 볼게.”
“응. 그러는 게 좋아.”
계속 내 볼을 가지고 노는 시스티아의 손을 잡으면 약간 얼굴을 상기시키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어쩐지 입술도 조금 내미는 거 같은데…
나보고 어쩌라고…?
아니, 원하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받아주기에는 시스티아는 아직 너무 어리다.
나도 그게 정답인지 몇 번을 생각하게 되고 말이다…
그래도 나를 향한 조언에 관한 감사와 친애의 표시 정도는 해줘도 나쁘지는 않으리라.
쪽
계속 눈을 감고 있는 시스티아의 이마에 입맞춤을 해주었다.
“우…이마?”
기쁘기는 하지만 불만이라는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그녀는 곧 한쪽 볼을 부풀렸다.
못 본 척. 스윽 시선을 돌렸다.
주제를 바꾸기로 했다.
“그보다 여신 메르와 접신하고 싶은데 가능해?”
“하아…접신? 직접 만나겠다고?”
“응. 만나서 해야 할 말이 있거든.”
마신은 자신이 죽은 것을 알면 여신이 고집을 꺾을 거라 말했다.
다른 이야기도 모두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그녀와 만나야만 한다.
“말을 전하는 거 정도는 지금도 가능한데, 접신은 아르테시아의 본부 신전까지 가야 해. 거기에 가장 좋은 매개체가 있거든.”
“그래?”
어차피 아르테시아까지 갈 예정이었는데, 좀 더 일정을 앞당겨야겠구나.
저 말대로라면 아디스만의 다음 목적지는 아르테시아다. 여신의 힘을 먹고 싶을 테니까.
아마 최종 결전지도 그곳이 되겠지.
“음? 근데 좀 이상한 게 있어. 평소 같으면 리제와 같이 있을 때 엄청 귀찮게 하는데 조용하네?”
어쩌면 마신이 죽은 것으로 뭔가 영향이 간 것일까?
아마 연관이 전혀 없지는 않으리라.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존재인 성녀에게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 있어서 제법 큰일이겠지.
아니면 벌써 그놈에게 먹혔다든지…?
아니, 아니다. 메르가 사라졌다면 성녀인 시스티아도 어떤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게 없다는 것은 아직 건재하다는 이야기다.
어쩌면…내가 곁에 있어서…?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나. 어지간히 미움받나 보네…”
“나도 그게 좀 신기한데 말이야.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거지? 이상하다니까?”
“……”
어느 정도 짐작은 가지만, 어디까지나 짐작이기에 말하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그녀를 만나게 되면 알게 될 일이다.
“주인님~!”
“……!?”
시스티아와의 이야기가 마무리 지어질 즈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무 위에서 들려왔고, 그 목소리의 주인은 아주 가볍게(?) 나무에서 뛰어내려서는 내게 안겨들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을 반가움에 해버리는 것은 하이엘프인 세피리아였다.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나도 평범하지는 않지만.
“세피리아. 네가 와줬구나.”
“네! 당연하죠! 주인님의 안내역은 저밖에는 맡을 수 없으니까요!”
기분이 상당히 고양된 그녀는 마치 사람의 온기를 찾듯이 내 품에 얼굴을 묻었다.
어린아이다운 면이 있던 그녀였지만, 약간 좀 고양된 거 같은데?
‘어쩌면 니나의 일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항상 곁에 있어 힘이 되어주었던 이가 실은 배신자.
태연한 척하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마음에 쌓이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별일 없었지?”
“네. 그럼요. 주인님께서 원하시는 준비도 잘 되어가고 있답니다.”
“힘내줘서 고마워.”
“에헤헤. 뭘요.”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기분이 좋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뜬다.
긴 귀가 쫑긋쫑긋 리듬을 타며 움직였다.
엘프의 감정표현. 이건 이거대로 귀엽다.
“리, 리제?”
“아, 시스티아. 그러고 보니 세피리아랑은 처음 만나지? 이쪽은…”
“아니, 그런 건 됐고! 주, 주인님? 리제에게 주인님이라 한 거야!?”
“그건 좀 깊은 사정이 있는데…”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음에도 세피리아는 내게 받은 은혜 때문인지 내 노예로 남기를 선택했다.
그 증거는 아직 그녀의 몸에 남아 있고, 난 누가 뭐라고 해도 그녀의 소유자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주인님이라 불리고 있는데, 그게 시스티아에게는 이상하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다급히 설명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시스티아가 말하는 논점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리제에게 그런 취향이 있었다니! 말해줬다면 나도 가능한데!”
“……네?”
나는 지금 무슨 말을…?
“부러우신가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전 주인님의 유일한 소유물이랍니다. 이 자리는 누구에게도 넘겨 드릴 수 없어요.”
“소, 소유물이라니…뭐야, 그거 치사해! 엄청 부러워!”
“아니…”
도대체 뭘 갖고 다투려는 겁니까?
“이건 또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렸군요…”
“아, 아우리아.”
둘 사이에 이상한 싸움이 시작되고 있으면 뒤이어 아우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피리아만이 아니고 그녀도 왔구나.
“나는 대체 뭘 가지고 싸우는 건지 잘 모르겠다…”
“저는 알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싸울 건 아니겠지요.”
“……안다고?”
그녀는 내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지나쳐 두 사람에게 다가간다.
“두 분 다 거기까지 하세요. 쓸데없는 싸움은 리제 님께 폐만 끼칠 뿐입니다.”
침착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그리 말하는 아우리아,
그 말이 통한 것인지 두 사람은 몸을 움찔 떨면서 이상한 싸움을 멈췄다.
역시 아우리아라고 해야 할까.
이럴 때는 정말 믿음직하다니까!
“그리고 언니. 리제 님의 소유물은 언니가 유일한 게 아닙니다. 저도 소유물이니 그 점을 잊지 마시길.”
“그, 그건 그렇지만, 정식인 건 나뿐이잖아…”
“아니, 아우리아! 당신이 왜 그렇게 된 건데!?”
도대체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냐고…
“흠흠. 아무튼, 리제 님께서는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얼른 목적지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 좋겠지요.”
“그, 그건 그렇지…”
“여기까지 와서 할 말을 잃게 하네…”
또다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향하는가 싶었더니, 아우리아는 다시 똑바로 대화 흐름을 돌려놓았다.
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이 참 인상적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말 몇 마디로 사람을 쥐었다 폈다 하는 걸 참 잘한다.
이런 타입이 가장 무섭단 말이지…
“그, 그럼 주인님. 목적지는 그곳이 맞으신 거죠?
”그래. 맞아.“
”알겠습니다. 그럼 제 뒤를 꼭 붙어서 따라와 주세요. 조금 깊은 곳이라 시간이 좀 걸릴지도 모르지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기합이 잔뜩 들어간 세피리아의 뒤를 따라 엘프의 숲에 진입한다.
마지막 숨겨진 곳을 향해서.
그리고 분명 그곳에 있을 폰티나를 만나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