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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 세계 (1) (105/107)

〈 105화 〉 세계 (1)

* * *

자신의 딸과 손녀.

유미네. 그녀에게 있어서는 한 번 버린 가족이라는 존재가 어떤 인연인지 돌아왔다.

드래곤에게 있어서는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였기에, 자신 또한 드래곤이라는 존재였기에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고 해도 쉬이 허락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절대적이지 않게 되었다.

용인은 해악. 세계에 맹독과도 같은 존재.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해온 일이 있기에 수습할 길은 너무나도 막막했다.

과거는 무슨 짓을 하든 없어지지 않는다.

그게 있음에 현재가 있고 미래가 존재하는 것이니까.

누구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자신이 행했던 일로 후회하며 살아간다.

현재의 정신상태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자신이 생각해봐도 피식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없는 생각마저 든다.

그럴 자격 따윈 어디에도 없을 텐데.

이미 실컷 상처 입혀놓고 만회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웃긴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딸들과 손녀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지금의 상황은 즐거운 일이 아니지만, 그 속에서도 행복을 느낀다.

여러모로 그녀에게 고민을 주는 나날이 계속된다.

“와~ 여기가 드래곤 레어구나…”

“흐흥~ 멋지지?”

“왜 네가 의기양양한 건데?”

리제 일행이 숨겨진 장소로 향하고 있을 무렵.

드래곤 레어로 온 유미네 일행 중 두 사람은 떠들썩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유미네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몰래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그래. 굳이 저 안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고 해도, 바라보기만 해도 이렇게나 행복하지 않은가.

“저기…그, 유미네 씨. 데리고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응? 아, 아니…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

비록 모녀같의 대화는 아닐지언정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리제와는 다르게 세아는 아직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쪽에 호의는 보내는 것 같지만, 뭐랄까…아직 선 밖에서 우물쭈물하고 있다 해야 할까?

자신 쪽에서 아예 선을 넘어가 손을 내밀면 될 일이지만, 그녀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로드! 돌아오셨군요!”

“그래. 별다른 일은 없었나?”

“그게…”

그렇게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지려 했을 때, 그녀의 기운을 느끼고 한 드래곤이 급히 다가왔다.

유미네의 말에 그는 약간 다급한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로, 로드께서 급히 해결해주셔야 할 문제가 생겼습니다…!”

“뭐…?”

“그게…내분이 일어나려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드래곤은 굉장히 자존심이 높은 존재다.

그 수는 적지만, 한 개체 한 개체가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고 자신들이 최강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존재를 하찮게 여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자존심이 높기에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 것도 있다.

자신들이 한 번 정한 로드의 말에는 절대적으로 따르는 일.

동족끼리의 분쟁을 싫어하는 유미네로서는 내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지?”

“…레드 드래곤의 수장. 아카샤를 필두로 한 세력입니다.”

“이런…”

그들이라면 그 사태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을 누가 모르랴.

*

상황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드래곤 세력의 정확히 반이 갈려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

레드 드래곤 수장인 아카샤를 필두로 한 세력이 더 힘으로 강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대로 싸움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큰 피해가 날 것은 확정적이었다.

“저희는 용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현재 설치고 다니는 아디스만의 토벌.

그리고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용인의 멸족.

다른 한쪽은 오로지 로드를 따른다는 이들이었다.

“아카샤…나는 네가 좀 더 현명할 거로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로드.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대로는 넘어갈 수 없다는 것이 저희의 의견입니다.”

정말로 송구스럽다는 듯이 눈을 슬쩍 감고 고개를 숙이는 아카샤.

그도 어떻게든 냉철하게 판단하려 해도 자식을 잃은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로드. 저번에 데리고 온 용인을 그냥 풀어준 것부터 저기에 있는 또 다른 용인을 데리고 다니시다니 제정신이십니까?”

“이보게! 아무리 그래도 로드께 무슨 망발인가!”

“내가 어디 틀린 말을 했나!? 난 지금 용인이라는 것들이 내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더러워지는 거 같네!”

“……”

세아나 세라는 이곳에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음을 뒤늦게 후회했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어떻게든 따라온 두 사람을 억지로라도 막았어야 했다.

이런 드래곤들의 제멋대로인 모습을, 말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너무나도 창피했다.

그리고 정말 미안했다.

“로드! 이번 사태는 반드시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이건 모두 당신이 무능하고 금기를 어긴 게 문제이니 말입니다!”

맞는 말이다.

자신이 무능한 것은 맞는 말이다.

금기를 어긴 것도…드래곤에게는 절대로 저질러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른 것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잘못이다.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죄가 없다.

어째서 이런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유미네가 이를 악물다가 뭐라 한마디 하려 했을 때.

“지랄하고 앉았네.”

그런 찰진 욕이 이 자리에 울려 퍼졌다.

그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이쪽을 보고 있던 세아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뭐, 뭐라?”

“지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쩔래? 언니에게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진짜 심각하네. 이 틀딱 도마뱀 놈들아.”

그녀는 당황한 그들을 비웃듯이 한쪽 입가를 올리며 이어 말한다.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유미네를 포함한 모든 이가 그대로 굳어버렸다.

감히 어느 누가 드래곤의 앞에서 저런 욕을 할 수 있을까.

오래 살아온 그들에게 있어서도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힘을 합쳐서 그 망할 새끼 잡는 걸 도와도 모자랄 판에 용인이 어쩌고 하면서 내부분열 일으키고 있니? 진짜 머릿속에 뇌가 있는 건 맞아?”

“이 더러운 용인 년이…!”

“그것도 생각을 해봐. 내가 용인으로 태어난 게 뭐가 잘못인데? 내가 뭔 죄를 지었어? 금기? 그딴 거 알게 뭐야. 너희도 자식이 죽으면 노발대발 떠들잖아. 그런데 우리 엄마에게 뱃속에 있는 우리를 지워야 했다고 말할 수 있어? 이 망할 도마뱀 새끼들아. 입장 바꿔 생각해 봐.”

“……!?”

유미네에게 우리 엄마라는 단어가 귀에 단단히 박혀 들어왔다.

그녀도 분명 홧김에 아무런 생각 없이 나온 말이겠지만, 그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마음속으로는 엄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너무나도 기뻐서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아니지.’

마냥 기뻐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리제라면 모를까 세아는 연약한 존재.

이 중 아무나 그녀에게 달려들면 막을 수단이 없다.

그렇다면 그걸 막아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

그리 생각하며 움직이려 한 그녀였지만 그러지 못했다.

【떽!】

“……!?”

분명 김이 빠지는 소리였는데, 그 안에 담긴 기운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그리고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듯한 그런 것이 담겨있었다.

모든 드래곤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세아의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존재에게로.

“엄마가 친구들끼리 싸우는 거 아니랬어! 그러니까 아저씨들도 사이좋게 지내야 해! 안 그럼 맴매야! 맴매!”

볼을 불룩 내민 어린아이의 불만 표현.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그 말에 토를 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감히 어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이건 분명…자신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분의 기운.

용신님이다.

*

세피리아와 아우리아의 도움을 받아 향하게 된 덕분에 도달하는데 그리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게임에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거 같은데…역시 부탁하길 잘했다.

“세 사람은 여기서 기다려 줘. 이 앞은 나 혼자 다녀올게.”

“우…나도 따라가고 싶은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시스티아와 세피리아가 마치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아우리아만이 의젓하게 고개를 숙이며 나를 배웅했다.

다만, 그녀의 꼬리가 추욱 늘어져 있던 것을 보면 별로 다르지는 않았으려나…?

그렇게 피식 웃으면서 진입한 동굴은 내 옛 향수를 자극했다.

그래픽과 현실은 다르지만, 어쩐지 똑같이 보였다.

“어라?”

그렇게 동굴을 조금 들어가면 금방 막다른 곳에 다다랐다.

분명하게 게임과는 다른 구간.

“문…인가?”

막힌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너머에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즉, 이것은 문이라는 뜻이다.

“부수고 들어가야 하나…?”

우웅!

그렇게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으면, 허리춤에 있던 마검이 마치 공명하듯 울었다.

키잉­

그것은 차츰 날카롭게 우는 듯한 소리로 변하고 벽에 이상한 문양이 떠올랐다.

“이건…?”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복잡하게 뒤얽힌 듯한 그 모양은 게임 패키지에 그려진, 유저들 사이에서도 무슨 문양일지 많은 말이 오고 갔던 것이었다.

그걸 여기서 보다니…

쿠궁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점점 위로 올라가는 그 문 너머에는 살짝 푸른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진행한다.

끝까지 도달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천장의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동.

한 편에는 푸른빛을 내뿜고 있는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그 곁에는 정말로 거대한 그린 드래곤이 힘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꼬리만을 호수에 담근 채 힘없는 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금방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폰티나…?”

그런 내 부름에 그 거대한 눈동자가 부르르 떨리더니 천천히 열린다.

용족 특유의 날카로운 눈은 빛을 잃었지만, 정확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이제야 왔나. 이세계에서 온 구원자여…]

미소를 지으려 한 것일까?

그렇게 그녀는 잘 움직이지도 않는 입을 일그러트리는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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