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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화 〉 세계 (2) (106/107)

〈 106화 〉 세계 (2)

* * *

폰티나.

드래곤 중에서도 이단이라 할 정도로 오래 살은 고룡.

게임의 숨겨진 장소를 만들어 찾아낸 이에게 무언가를 시키려 꾸몄고,

선대 하이엘프와 함께 미래에 관한 내용을 적은 책을 만들기도 했었다.

아마도 ‘게임’ 이나 이 세계에 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

“구원자라니. 거창하네요.”

[그럴 만도 하지. 여기까지 도달한 이는 수많은 시간 중에서 자네가 처음이니.]

“저 말고도 다른 이들이 있었나 보군요.”

[…많았지. 아주 많았다. 하지만…그 누구도 마지막 ‘해피엔딩’에 도달하진 못했지…]

그녀는 눈만을 움직여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천장을 바라본다.

말없이 있는 그 모습은 마치 회상을 하는 듯했다.

[자네가 정말 마지막이었지. 잊힌 그 게임을 다시 플레이한 이는 없었으니까.]

“역시 그게 이쪽으로 오게 되는 열쇠였군요.”

예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왔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

“…당신은 뭐죠?”

단순히 정체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근본. 근원.

그 모든 것에 관해 물어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군. 이제 와서 숨길 필요는 없으니…]

그녀는 그런 내 생각을 읽었는지 그 커다랗고 날카로운 눈을 이쪽으로 향하고는 말한다.

[나는 이 세계를 만들고 지켜내신 창조신이 남긴 파편 중 하나다.]

“파편…?”

[3대 신을 창조하고 많은 종족을 만들어내고…본래라면 소멸까지 가실 분이 아니셨다. 다 어떤 존재에 의한 것이었지. 나는 그 이후로 창조신의 일부를 갖고 태어난 존재.]

거기까지 듣고 난 하나의 단어가 떠올랐다.

“…악마로군요.”

[후하하…이해가 빨라 좋군.]

몇 번이나 언급은 되었음에도 기록은 없었다.

의도적으로 지웠든지, 아니면 그 존재가 너무나도 은밀했는지.

그렇지만 언급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것이든 영향은 주고 있다는 뜻.

[옛날이야기를 풀어나가듯이 하면 지루할 테니 간단하게 말하겠네. 일찍이 이 세계에는 창조신과 악신이 존재했지.]

그것은 아직 이 세계에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

이 세계를 누가 관리하는지를 두고 두 신은 싸웠고, 창조신이 승리하게 된다.

지는 이는 깨끗이 물러나는 조건이었기에 악신과 연관된 것은 모두 사라졌어야만 했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의 분신을 남겨뒀지. 그게 지금의 악마라 불리는 존재일세.]

그들은 정말 은밀하고 또 치밀하게 일을 벌였다.

세계를 관리하는 신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세계에 융화되어 갔다.

[창조신이 자신을 대신해 세계를 관리할 3대 신을 만들어내고 힘을 빠진 틈을 타 그들은 완전히 그의 존재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지.]

그들은 어떻게 하면 혼란을 주고 자신들이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선택했다.

드래곤과 인간 사이에서 나온 입장도 가진 힘도 애매한 존재인 용인을 이용하기를.

[중심이 되는 한 소년이 선택되었지.]

“아디스만…”

[당시 용신 카르아와도 가까이 지내는 존재 중 하나였으니 안성맞춤이었겠지.]

“……”

이것도 그 흔한 그놈도 본래는 착한 녀석이었어.

그런 전개인 걸까…?

[아, 하지만 동정할 필요는 없네. 녀석은 알면서 이용당한 거니 말이지. 아니 정확히는 이용당해 줬다고 해야 하나?]

그건 정말로 다행이다.

녀석을 날려버리는데 손 속은 두지 않았겠지만, 어딘가 감정에 찝찝함이 남을 뻔했을 테니.

[아주 영악한 놈이지. 하지만 어딘가 본능대로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 자만과 오만을 겸한 성격도 발목을 잡는데 한몫하고 말이지.]

“언제까지고 어리광만 부리려는 어린아이 같죠.”

[음. 적절한 표현이로군.]

녀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폰티나에게 물어봐도 그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

이 수수께끼는 녀석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어쩐지 별것 아닌 이유일 거 같긴 하지만.

“그러면 이야기 흐름은 대충 알았는데, 전 어떻게 해야 하죠?”

[악마와 대적하기 위해서는 창조신의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힘은 현재 아주 미약하지. 그렇기에 그것을 한곳에 모을 필요가 있지.]

“그건…?”

[3대 신의 힘. 그리고 자네가 모아왔던 드래곤 하트.]

“그렇다는 건…”

내가 여태까지 받아들인 것들 모두가 창조신의 파편이었다는 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하나 받았을 테고, 나머지는 이곳에 있는 것뿐이지. 자, 그럼 시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 바로 시작하지.]

“잠깐. 괜찮을까요?”

[음? 뭐지?]

“제 딸. 세라에 관해서입니다.”

마계에서 돌아와 다시 만났을 때부터 느낀 위화감.

그건 내가 쉬이 설명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렇다고 세라 본인이 아는 거 같지도 않고.

그 답을 알고 싶었다.

[카르아의 분신…말인가.]

“분신이요?”

[그 아이는 카르아의 힘을 베이스로 마신 오르사아드의 근본이 합쳐진 것이다. 아이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둘의 공동 합작이지.]

“그건 어째서…”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다. 자신들이 없어지고 난 다음 관리를 할 존재가 필요했으니까. 본래는 여신 메르도 그것을 함께 해야 했겠지만, 너무 사이가 안 좋아서 말이지…]

“즉…‘재시작’ 이후의 세계를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는 거로군요.”

[음. 그렇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곳으로 와 죽었고, 또 얼마나 많은 재시작이 되었을까.

영원을 살 것만 같은 신이 지친 모습으로 있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간이었으리라.

[신들은 알고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크게 간섭을 못 한다는 것도 있지만, 어떻게 움직이든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어떤 루트에서든 알고 있으니 말이지.]

“그러면 혹시 여신이 시스티아에게 매달리는 것은…”

[그녀의 수많은 죽음을 손가락 빨면서 지켜보기만 해야 했으니까.]

낡은 것을 벗어던지고 새로이 시작해야만 한다.

마신이 말했던 그녀의 고집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그럼 세라는 결국 신이 되어야만 한다는 이야기로군요.”

[용신, 마신, 여신. 나뉘는 것이 아닌 그녀가 오로지 그 일을 다 해내야만 하겠지.]

“꼭 그래야만 합니까…?”

[대신할 존재만 있다면 괜찮겠지만, 현재로선 없군. 이 세계는 관리하는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성립될 수 없는 곳이네.]

“……”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 어린아이에게 모든 것을 맡겨야만 하다니.

[곧 자네와의 연결도 끊기겠지. 그렇게 되면 연결점은 성녀들이다. 동생인 세아. 마족의 헬레나. 시스티아.]

“아, 아니 세아도요?”

[얼마 전에 용신의 성녀로 선택받았지. 본인은 자각 못 하는 거 같다만.]

이런 망할!

[아무튼, 자네가 이곳에서의 일이 끝나면 해야 할 일은 여신 메르를 만나 힘을 양도받고 세 성녀를 지키며 놈과 악마를 쓰러트려야 한다는 것이다.]

“참 중대하네요…근데 정말로 제가 이길 가망성은 있습니까?”

마신이 내게 말한 마검 사용법도 정말 엉망이다.

통할지 안 통할지도 모르는 도박과 같은 사용법.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도 지금의 자네에게는 소용없겠지. 다만, 아디스만. 그놈이 용신과 마신에게 가져간 힘은 그저 껍데기라는 것만 알아두면 되네. 진정한 것은 자네에게 있지.]

그 시선은 내 드래곤 하트와 마검을 향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쩐지 마신이 너무 쉽게 당해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그거 때문인가.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닐세.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지. 적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면서 말이지.]

“그게 이런 형태입니까…”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 하트. 마검은 마검. 그 밖에 여러 가지도 단순히 그것만으로 보지 무언가 다른 뜻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고정관념이라는 것은 그래서 무섭다.

[나는 자네가 있는 세계에 간섭해 이 세계를 게임이라는 형태로 만들어 알렸지.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이들을 찾기 위해서.]

“그 모든 방식이 저와 비슷했다면 악질이네요.”

[……그래. 악질이지. 미안하군.]

부정은 하지 않는 건가.

다만, 난 다른 이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는 내가 있던 곳보다도 이곳에서 훨씬 더 소중한 것을 얻었으니까.

“이제 됐습니다. 시작하죠.”

궁금한 것은 대부분 해소되었다.

이제 시간도 얼마 없는 그녀에게 뭐라고 할 것도 없다.

나는 나대로 이 세계에서 쭉 살아가야 할 테니까.

그 위협이 되는 존재를 철저하게 배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 내가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조각을 그대에게 넘기도록 하지.]

“폰티나…”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되네.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그녀의 거체가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억지로 연명하고 있던 그 육체가 마지막 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뒤는 잘 부탁하네. 부디 다시 이 세계가 시작되지 않기를 빌며…그대의 앞날에 축복이 깃들기를. 진정한 행복이 가득하기를…]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모든 생은 마감된다.

이 생명은 분명 어떠한 밝은 미래로 이어지리라.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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