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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 결전(1) (107/107)

〈 107화 〉 결전(1)

* * *

“이제 곧…이제 곧이야…”

이제는 끔찍한 괴물들의 소굴이 된 왕궁.

갖은 벌레들이 꿈틀거리고 있는 그 속에서 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곧 있으면 이 세계를 깨끗하게 만들 수 있어.”

그가 생각하는 것은 아주 먼 옛날.

아직 3대 신이 건재했을 때, 자신이 아직 용인의 꼬맹이에 불과했을 때의 기억.

많은 종족 중에서 유일하게 반반이 섞인, 어디에 속해야 할지 모르는 애매한 입장이었을 때 그는 세상을 살았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대놓고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그들을 차별하고 있었고, 그는 그것을 그 누구보다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차별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미묘한 일이었고,

지금은 그런 취급을 받고는 있지만, 이 세계를 관리하는 신들이 힘을 써주고 있으니 언젠가는 대우가 달라지리라고 모두가 생각했다.

다만, 그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음에 안 들어.”

그의 가슴 속의 작은 불만은 성장하면서 점점 더 커졌고, 그것에 불을 지른 것이 그에게 접근한 한 존재였다.

[그렇게 불만만 쌓아놓고 비참하게 살 생각이라면 그냥 저지르면 되는데 말이지.]

그것은 자신을 이용하려고 다가온 악마라는 존재.

창조신이 남긴 이 세계의 관리자인 3대 신을 먹어치우고 이 세계를 차지하고 싶은 존재.

거기까지 파악이 끝난 그는 악마에게 이용당해주면서 자신도 이익을 얻으려고 했다.

이 힘이 있다면 자신이 원하는 깨끗한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 누구의 차별도 받지 않고 방해받지 않고, 근심 걱정 따윈 아무것도 없는 그런 세계.

마음이 맞는 부하들과 어여쁜 신부와 함께 그런 세계에서 지내면 참 재미있을 거야.

과정은 장대하지만, 결과는 제법 소박한 그의 미친 계획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중간까지는 잘 되는가 싶었다.

하지만 상대를 너무 얕본 탓에 패배했고 봉인 당해 다시 힘을 기르는 데 시간이 걸려 버렸다.

그리고 지금, 다시금 기회가 찾아왔다.

[너무 여유를 갖는 게 아닌가. 네 본래의 몸도 되찾아야 할 텐데?]

“아, 그거? 딱히 필요 없어. 그거 되찾는데 공들일 쓸 바에야 포기하는 게 나아.”

[하긴 도마뱀 놈들을 상대해야 할 테니.]

“정답.”

이번 싸움에서 그 무엇보다도 귀찮고 상대하기 힘든 종족.

본래의 몸은 오랜 봉인 탓에 힘도 많이 떨어져 있고, 그것을 또 길들이기에 시간이 걸린다.

[그렇지만 도마뱀 놈들과 싸워야 하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이번 싸움에 걔들 안 올걸? 로드 한 마리 오는 정도라면 모를까. 지금쯤 내분이니 뭐니 아주 바쁠 테니까.”

[저번에 어린 도마뱀들을 일부러 죽인 건 그런 이유였었군.]

“놈들은 오만하기에 방심시키기도 쉽고 속이기도 쉬우니까. 지금쯤 로드를 경질시켜야 한다느니 뭐니 하면서 한창 싸우고 있겠네.”

뒤통수를 깨부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는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여유를 부리면 네가 뒤통수를 맞을 위험이 있다. 안 그래도 지금 변수가 너무 많으니 말이지.]

“괜찮아. 어차피 이제 하나만 더 모으면 되니까.”

용신, 마신을 흡수했고 이제 남은 건 여신뿐이다.

저쪽도 필사적으로 그것을 막으려고 들 테니, 아마도 이번이 최종결전.

이쪽이 먼저 여신을 흡수하느냐. 막히느냐로 판가름날 것이다.

“변수가 없다면 이쪽이 8…”

하지만 변수가 안 생길 리가 없으니 넉넉하게 잡아 6:4.

다만, 뒤집을 수 없는 확률은 아니다.

확률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0.01의 확률이라도 있다면 어떤 식으로라도 그것을 뚫고 오는 것이 있다.

“어떤 식으로 날 즐겁게 해주려나…”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상상하며 그는 즐거운 듯이 웃는다.

[…음. 아무래도 준비를 해야겠군.]

악마는 그런 그를 몰래 지켜보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앞으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이제 아무도 몰랐다.

*

중립 도시 아르테시아.

모든 나라의 중심에 있는 곳이며 신전의 본부가 있는 곳.

그 어떤 분쟁을 용서치 않는 장소.

한때 전 대륙으로 한 큰 전쟁으로 엄청 혼란스러웠던 시기.

메르 여신의 대리자가 여신의 명을 받아 전쟁을 중재하기 시작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모든 나라가 힘을 합쳐 지은 도시라고 한다.

여신의 대리자는 메르 교단의 초대 교황이 되었고, 교단을 점점 넓혔고, 다른 나라도 적극 메르 교단을 받아들였다.

이게 초기의 역사.

그 뒤로 마왕이 등장하고 용사가 등장하여 서로가 싸우게 되는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하게 되었다.

모든 나라의 원조와 교류를 하게 된 아르테시아는 그 어떤 곳보다도 빠른 발전을 이루었다.

전 대륙에서 가장 거대하고 발전된 도시가 바로 아르테시아다.

그리고 가장 평화로운 도시.

“빨리! 준비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아니, 도시였다.

지금의 아르테시아는 전투를 할 수 없는 이는 다른 곳으로 피신하기 바빴고,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방어를 좀 더 견고히 하기 위해 분주히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마르티나 왕국이 괴물의 소굴로 변했다고는 하나 바로 이쪽으로 오는 건 확실한 것입니까?”

“용사와 성녀에게서 들어 온 정보입니다.”

“용사와 성녀라고는 하지만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지 않습니까.”

신전 본부에 모인 각국의 대표자들은 신전의 요청에 따라 최소한 방어 병력만을 남기고 이곳에 모인 것에 관해 상당한 불만이 쌓여있었다.

왕국이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 아는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못 미더운 용사와 성녀의 정보라며 진정한 적들과의 결전지가 이곳이 될 거라니.

그들은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불만을 토로하는 사이 담담하게 그런 말을 한 이는 이번에 새로 카이테스 제국의 황제가 된 리히텐이었다.

이번 한 차례 난리를 겪고 난 뒤. 겨우 복구가 끝나가는 와중에도 나라가 아슬아슬해질 정도로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온 그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저희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마르티나 왕국이 저렇게 된 원인에 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이 상황에 관해 잘 아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그 대상이 신뢰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지 않습니까.”

여신이 선택한 성녀. 성검이 선택한 용사.

그것만으로도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도 좋은 존재였다.

다만, 그 대상이 너무 어려서 못 미더워 보이는 것도 사실.

“아니, 하지만…!”

“불안하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불안하긴 마찬가지니까요. 하지만 저의 불안함은 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을지…그리고 이번 싸움으로 제국의 병사들이 얼마나 희생될지…그것에 있습니다. 또다시 많은 목숨이 여신께 돌아간다고 생각하니…많은 생각이 듭니다.”

“……”

그런 리히텐의 말에 모든 이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불안하기만 할 뿐. 실질적인 피해는 아직 없기에 직접 피해를 본 나라의 황제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뭐라고 할 말이 있을 수 없었다.

좌중은 조용해졌다.

그들 사이에는 답답한 분위기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곳에 성녀와 나란히 신전의 상징으로 자리 잡는 교황이라도 있었다면 좀 나았겠지만, 그는 지금 몇몇 고위 사제와 함께 이 도시를 지킬 결계를 구축하고 그것을 유지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신전을 이끄는 인물로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제1 성기사단의 단장. 추기경의 딸이자 교황의 손녀이기도 한 엘렌이었다.

그녀는 다른 가족들과 다르게 신성마법을 잘 쓰지 못하기에 검의 길을 걸어와 집안 인맥이 아닌 오로지 실력으로만 이 자리에 올랐다.

본래라면 성녀의 호위기사를 맡아야 하는 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그 자리를 사퇴하고 지금의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입니까?”

“밖에 지금 당장 확인해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확인해야 할 것?”

“설명하기가 어렵기에 직접 보시는 게 좋습니다. 병사들도 동요하고 있기에 재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릅니다.”

그 말을 하는 엘렌의 얼굴은 평소와 똑같이 냉정하게 보이려 하고 있었으나 그 긴장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는 것일까?

이곳에 모인 대표자들은 앞서 나간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그러면 이곳저곳에는 맡은 작업을 하면서도 불안에 떠는 병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의 지휘관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성벽 위를 오른다.

“아, 아니…?”

“저건 도대체 뭐지…?”

이곳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그들은 보았다.

병사들이 무슨 이유로 불안해하는 것인지.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 거대해서 하늘을 뚫고 올라갈 정도. 멀리 있음에도 그 거체가 눈에 또렷하게 보였다.

모두가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는 사이.

리히텐과 지휘관으로서 함께 온 페이론 후작은 그 거체를 보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후작…내가 지금 생각하는 게 맞을 거로 생각하나?”

“…저건 어쩌면 그것과 비슷한 존재라 생각됩니다. 폐하.”

제국 수도에 갑작스럽게 생겨난 시체의 탑.

규모도 느껴지는 힘도 차원이 다르지만, 저것은 분명…

“그러고 보니 리제에게 들은 게 있었다.”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그걸 가장 조심하라고 했었지.”

그리고 그게 전장에 나오면 승산이 없을 거라는 것도.

만약 정말로 그게 저것이라면…

“어, 어어!? 움직였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갑자기 그런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면 그것에 미묘한 움직임이 생겨난 것이다.

그그극

이상한 둔탁한 소리가 들리더니 하늘에서 무언가 내려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짙은 어둠이었다.

우우웅…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커다란 빛덩이가 생겨났다.

방금 보인 어둠과는 정반대로 모든 것을 밝힐 듯이 아주 거대한 빛.

그곳에서 느껴지는 아주 강대한 마나.

“폐하!”

“큭!?”

저건 그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어둠은 그저 거대한 용의 입안.

그리고 저 빛은 드래곤이 특기로 한다는 브레스.

보통의 드래곤에게서도 볼 수 없는 강대한 힘.

쾅!

마치 주변을 다 터트릴 것만 같은 폭음과 함께 그것은 쏘아졌다.

주변은 물론 아르테시아를 그대로 집어삼킬 것만 같은 위력.

모두는 그 강대한 마나 덩어리를 눈앞에 두고 그저 굳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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